캄보디아
캄보디아, 알고 떠나자!
- 앙코르와트를 여행하는 법 -
⊙ 씨엠립을 여행하는 법
캄보디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혹시 영화 툼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 뒤편에 빼꼼히 보이던 이미지가 전부는 아닌지? 사실 졸리의 잘빠진 몸매보다 더 관심을 훅 끄는 것이 앙코르 유적지 이야기다.
여행의 좋은 점은, 그 나라의 역사와 함께 내 삶에서 멀고 막연했던 낯선 지역을 피부로 느끼며 알아간다는 점이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매일의 밥을 먹고 웃고 울면서 나처럼 살아나간다는 점을 깊이 느끼게 된다. 캄보디아, 영화나 이미지 속에서 아스라했던 나라, 그곳의 삶을 속속들이 알아보도록 하자.
* 캄보디아, 알고 가자!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남서부에 있는 나라로, 입헌 군주제 국가다. 그래서 캄보디아의 정식 이름은 캄보디아 왕국 Kingdom of Cambodia. 수도는 프놈펜으로 앙코르와트와 앙코르 톰 등의 유적지로 잘 알려진 나라다. 국교는 불교이며 언어는 크메르 어를 사용한다. 한국과의 시차는 두 시간이니 경도는 대략 30도 차이쯤.
한 때 아시아에서 가장 눈부신 문명을 발달시켰던 앙코르 왕국. 그러나 그 근대 역사는 안타까울 정도다.
캄보디아의 역사는 동남아나 아시아 국가들의 근대사처럼 식민의 역사로 얼룩져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 1954년 독립을 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프랑스 식민지였기에, 프랑스는 크메르 제국을 부르던 깜부자 Kambuja가 프랑스어로 Cambodge라 불렀다. 이것이 영어로 캄보디아 Cambodia로 불리게 됐다. 이후 군부의 독재 후, 1993년 캄보디아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도 1960~1970년대는 정치적으로 무척 어두웠던 독재 시기다. 캄보디아도 그렇다. 캄보디아의 이미지를 가장 검붉은 핏빛으로 만든 대표적인 사건을 꼽자면 1970년 크메르 루즈 학살이 아닐까.
1970년 론 놀의 쿠테타로 크메르 공화국이 되었고 무장 공산주의 학살이 자행된 것으로, 죽음의 터. 킬링필드 Killing field 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정치적 대규모 학살이었다. 단 4년간 인구의 1/3인 200여만 명이 노역과 죽음으로 끌려 들어간 사건이었다.
오늘 날 캄보디아는 1인당 GDP가 1천 달러도 되지 않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비교하자면 우리나라는 1인당 GDP가 2만 3천 달러를 넘겼다.) 여행 하다보면 먹고 살기 위해 노점으로 나온 여자들과, 맨발로 구걸하는 아이들을 부지기수로 만난다. 팔릴 것 같지 않은 조잡한 물건을 하루 종일 파는 이들도 많다. 저들은 과거 조상의 화려했던 흔적으로 오늘날의 생계를 이어가는 셈이다.
그러나 과거의 어떤 화려했던 순간도 현재의 남루함을 어찌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과거의 영광이란 흩어지고 나면 덧없을지 몰라도 그 영광이라도 되새김하고 싶은 것이 인간인 것일까.
앙코르 유적지의 사원들은 금박으로 덧씌워져 있었고 보석으로 가득찼으며 사람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다. 지금 유적지는 낡고 스러져가며 풍화되어 가고 있지만, 금은보화가 없어도 전 세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찬란한 쇠락, 웅장한 몰락이다. 과거의 쇠락과 몰락을 부여 잡고 오늘의 생존이 이어지고 있는 현장이 바로 캄보디아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나라를 단순한 역사 몇줄과 소득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 삶을 돈의 척도로만 잴 수는 없다. 해맑게 웃는 사람들이 오늘을 성실히 사는 곳이다. 아이들은 크메르의 미소보다 예쁜 미소를 짓는 곳이기도 하다.
* 캄보디아 역사, 알고 가자!
역사 이야기는 관심이 없다면 조금 따분할 수는 있지만 그 나라의 과거를 간단히라도 아는 것은 현재의 모습을 이해하는 초석이다. 캄보디아의 간단 연대는 다음과 같다. 약 10세기 안팎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앙코르의 유적지가 건설되었다. 우리가 만나는 역사적 유적지는 무려 1천 년 전으로 여행인 것이다. 시간 여행을 잘 하려면 시기를 잘 살펴야 한다.
캄보디아를 여행하기 전에 간단한 연표 정도는 숙지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 1~6세기 : 국가 푸난, 인도차이나 반도의 첫 번째 국가
⊙ 7세기~: 국가 진랍, 지방 분권적 정치 체제
⊙ 9~13세기 : 자야바르만 2세의 크메르 제국 시작, 수도는 앙코르 왕국으로 번영을 한 시기
⊙ 14세기~ : 서쪽 아유타야, 남쪽 퉁구왕조(미얀마), 동쪽 베트남 사이의 약소국가
⊙ 1863년~ : 프랑스 식민지
⊙ 1954년~ : 프랑스 공동체 내 자치국으로 독립
⊙ 1975~1979년 : 군벌 폴 포트의 무장 공산주의 단체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 학살
⊙ 1993년~ : 망명 국왕 노도롬 시아누크가 돌아와 캄보디아 왕국 건립
* 앙코르 왕국 역사, 알고 가자!
우리는 사실 캄보디아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앙코르 왕국에 대한 관심으로 씨엠립을 찾는다. 그럼 앙코르의 역사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 나라의 역사도 가물가물한데 다른 나라의 역사는 그저 졸립기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앙코르의 찬란했던 과거를 모르고 앙코르와트를 찾는다면 앙코르는 그저 돌무더기로 보일 것이다. 앙코르 왕국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이해하는 것은 이 위대하고 신비로운 유적지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 첫걸음이다.
사실 앙코르 왕국에 대한 견해는 학자들마다 다르다. 이유는 간단하다. 명확하고 자세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기록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는 왕의 말을 일일이 적는 관료까지 있을 정도였지만 앙코르 왕국은 각 신전이나 부조에 새겨진 산스크리트 어나 주변국의 기록이 전부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니 몇 가지 상식 수준만 알아가더라도 앙코르 와트를 여행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상식 1. 왕은 보호를 받는 자라는 뜻의 '바르만'의 이름이 붙는다. 자야(승리), 인드라(전쟁 신) 등 신의 이름을 주로 쓴다. 왕들의 이름을 보면 자야바르만 = '승리가 따르는 자', 인드라바르만 = '전쟁에 가호가 따르는 자' 라는 의미다. 앙코르 왕은 모계 혈통이었던 만큼 무조건 장자가 잇지 않았으며 왕위 찬탈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상식 2. 왕위의 바뀜은 표지석 스독 칵 톰 Sdok Kak Thom에 새겨진 데바 라자 의식의 기록에 근거 한다. 이 데바 라자 Deva raja 의식 후 왕위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원 건립에 힘을 쏟았다. 이 의식 역시 아주 정확한 년대와 왕위 바뀜의 해를 뜻하지는 않는다. 앙코르 왕국의 역사를 간략히 요악하자면 아래와 같다.
⊙ 802년 : 자야바르만 2세의 앙코르 왕국 건국, 프놈 꿀렌에서 데바 라자 의식으로 스스로 신왕 및 독립국 선언.
⊙ 877년 : 인드라바르만 1세 즉위, 현재 롤루오스인 하리하랄라야에 쁘레아 꼬, 바콩 건립. 자신의 사원, 부모를 위한 사원, 신화 의미와 치수의 의미를 가진 저수지 등 3대 건축업을 확립.
⊙ 889년 : 야소바르만 1세 즉위, 현재 롤루오스에 인드라타타카 저수지의 인공섬에 롤레이 건립, 크메르 문자 창조. 롤루오스에서 앙코르 와트 지역으로 수도 천도. 앙코르 최초 사원 프놈바켕 건립.
⊙ 944년 : 라젠드라 바르만 2세~자야 5세 황금기 시작. 동 메본, 피미엔나카스, 쁘레룹 건립. 라젠드라 2세 스승이자 자야 5세 장인 야흐나라바하가 반띠에이 쓰레이 건립.
⊙ 1011년 : 수리야바르만 1세 철권통치, 절대 왕권 시기 시작. 앙코르 톰 건립 시작, 서바라이 축조.
⊙ 1033년 : 수리야바르만 2세 즉위. 강력한 중앙 통치 실시. 참파 정벌로 사망. 앙코르 와트 건립.
⊙ 1181년 : 자야바르만 7세 즉위. 앙코르 최 전성기 시작 및 쇠락 시작. 앙코르 톰 구축, 바이욘 건립. 불교신자. 어머니를 위한 따 프롬, 아버지를 위한 쁘레아 칸, 병원, 도로 등 대규모 건축 사업으로 국력 소진.
⊙ 1215년 : 자야바르만 8세 시기, 힌두교 집권으로 앙코르 톰 일대 불상 파괴, 따 프롬 등의 불상 부조 파괴.
⊙ 1431년 : 아유타야 왕국에 의해 멸망. 진랍 풍토기에 근거하여 이후 역사 추정. 아유타야 2차 침공 시 수십만에 달하던 앙코르인들이 1년 만에 모두 사라짐. 미스테리로 남음.
* 앙코르 왕국, 과거의 기록은?
계적인 불가사의로 남은 앙코르 유적지에 대해 근대의 기록은 없을까? 언제 부터 관심 받게 된 걸까? 사실 앙코르 유적지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건 19세기 들어서다.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오에 의해서다.
그가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우연히 1860년 대 앙코르 유적지를 발견하고 유럽에서 여행기를 통해 소개하게 된다. 물론 그가 최초의 발견자는 아니지만 그의 책으로 인해 유럽 사람들이 동양의 이 신비로운 유적지에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근세에 들어 앙코르 왕국의 감탄할만한 유적지가 주목을 끌면서 드디어 '진랍 풍토기'도 재조명 받았다.
13세기 원나라의 주달관이 1296년 당시의 앙코르 왕국, 즉 진랍국에 파견돼 1년간 앙코르 톰에서 기거한다. 그가 당시 앙코르 인들의 생활 양식과 관습, 풍속, 종교 양식 등에 대해 세세하게 기록한 여행기가 진랍 풍토기다.
중국과 실크로드 유적지는 유럽인들이 주축이 되어 18-19세기에 약탈에 가까운 방법으로 발견되었다. 과학적 방법으로 고고학적 발굴을 하던 때가 아니었기에, 피터 홉커크는 실크로드의 악마들이라 할 정도였다. 진랍 풍토기 역시 19세기 프랑스 학자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그때는 말도 안 되는 가상의 이야기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앙코르의 유적지가 발견되면서 진랍 풍토기가 진짜 이야기이며, 앙코르를 말해주는 결정적인 문헌으로 인정받았다.
※ 앙코르 와트 유적지 배치도
▲ 앙코르 와트 유적지 배치도(좌)와 앙코르 와트의 구성(우)
앙코르와트가 위치한 시엠레아프는 캄보디아 3대 도시 중 하나로 한국의 경주 같은 고대 도읍지이다. 앙코르와트에는 폭이 넓은 도로가 동서로 질서정연하게 뻗어 있고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정교하게 건축한 사원 600여 개가 세워져 있다. 그중 10여 개는 크기가 이집트의 룩소르대신전이나 중세 유럽의 대성당과 비교할 만하다.
▲앙코르 와트를 정면에서 본 모습
세계에서 가장 큰 석조 건물, 가장 큰 종교 건축물로 앙코르와트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계단형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는데 미물계 · 인간계 · 천상계로 구분된다고 한다.
12~13세기에 앙코르 왕국은 두 왕의 강력한 통치로 번성했다. 태양의 수호자로 일컬어진 수리아바르만 2세는 지금의 타이 영토 정도로까지 세력을 떨쳤고 ‘도시의 사원’ 앙코르와트를 건설했다.
앙코르 와트는 동서 1500미터, 남북 1300미터의 웅장한 사원으로, 약 2만 50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37년 동안 건설했다. 몇 겹의 성곽이 앙코르 와트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마지막 성곽 바깥은 다시 폭 190미터의 거대한 해자가 둘러싸고 있다. 앙코르 유적 중에서는 드물게 서쪽에 정문 입구를 두었으며 큰 탑문이 있다. 탑문에서부터 사당까지는 너비 9.5미터, 길이 475미터인, 돌이 깔린 도로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이 유적은 수리아바르만 2세가 힌두교 비슈누에게 바친 것으로, 그가 죽은 다음에는 묘로 쓰인 것 같다.
▲앙코르 와트로 들어가기 위해선 사방을 둘러싼 해자 위의 다리를 지나야 한다.
사원을 제대로 보려면 3생(전생 · 현생 · 내생)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1층은 미물계, 2층은 인간계, 3층은 천상계를 상징한다. 건물은 세 겹으로 된 회랑과, 이 세 겹의 회랑으로 둘러싸인 중앙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겹의 회랑은 중앙 사당 쪽으로 들어갈수록 한 단씩 높아져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를 이룬다.
제1회랑은 동서 215미터, 남북 187미터이고 총 800여 미터인데 회랑벽면에는 크메르제국의 신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벽화가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역사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캄보디아에서는 역사교과서와 같다.
박물관 유물을 훑어보듯 돌아보아도 족히 1시간은 걸리는 이 엄청난 ‘4단 병풍식’ 부조에는 힌두교의 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와 〈라마야나(Ramayana)〉에 나오는 카우라바(Kaurava)족과 판다바(Pandava)족 간에 벌어진 쿠루크세트라(Kurukshetra) 전투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수리아바르만 2세가 코끼리를 타고 병사들 사이를 지나가는 장면도 있고 힌두교에서 말하는 천당과 지옥을 표현한 장면도 있다. 88명의 아수라와 92명의 신이 장생불로약을 추출하려고 ‘넓은 우유의 바다를 휘저어’ 버터를 만드는 신화 속의 한 장면도 묘사되어 있다. 800여 미터에 이르는 부조가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신의 영역인 높이 65미터의 중앙탑은 70도가 넘는 가파른 성벽 그 자체로 담력이 없는 사람은 오르기를 포기할 정도다. 능숙한 등산가라 할지라도 두 손 두 발을 써서 기어 올라가야 하는데 이를 신에 다다르기 위한 예의라고 한다. 모서리에 네 개의 탑이 서 있는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중앙탑은 앙코르와트를 상징하는 곳이다. 이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궁궐처럼 화려한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앙코르와트는 신의 세계를 지상에 구현한 사당인데 중앙탑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받드는 수미산(須彌山)을 나타내고 참배 길은 세계의 기축(基軸) 도로를 모방하며 둘레를 에워싼 벽은 히말라야산맥을, 해자는 세계의 끝인 깊은 바다를 상징한다. 사원 안의 곳곳에는 비슈누에 관한 신화가 조각되어 있고 국왕들의 모습을 비롯하여 코브라 · 무희의 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
수리아바르만 2세의 후계자인 자야바르만 7세는 30년을 통치하면서 세력을 최대로 확장시켜 현재의 캄보디아 · 라오스 · 타이 · 베트남 남부에 걸치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고 도읍인 앙코르톰을 재건하고 병원 · 숙박시설 · 도로를 건설했다. 그가 건설한 건물에 이런 글귀가 남아 있다.
“임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백성의 고통이다.”
‘큰 왕성’이란 의미의 앙코르톰 역시 신의 세계를 모방해 건설했는데 높이 8미터, 한 변이 3킬로미터인 정방형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폭 100미터의 해자가 주위를 두르고 있다. 규모만 보면 앙코르와트보다 더 크다.
▲앙코르톰으로 들어가는 문
앙코르는 왕도(王都), 톰은 크다(大)는 뜻이다. 3킬로미터의 성벽과 그 바깥의 해자가 정사각형으로 주위를 둘러싸고, 중앙에는 세계의 중심이라는 바이욘사원이 높이 솟아 있다.
해자를 지나는 다리 난간은 ‘유해교반(乳海攪拌, 우유바다 휘젖기)’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한쪽에는 54명의 신이, 다른 한쪽에는 54명의 악마가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뱀의 몸통을 붙잡고 있는 형국이다. 유해교반이란 남녀교합을 우주창조의 모습으로 표현한 힌두교의 창조신화이다.
▲해자 위의 다리 난간에 있는 조각상
앙코르톰 중앙부에는 높이 54미터의 바이욘사원(납골당이 있는 불교 사원)이 있다. 바이욘사원에는 54기의 사면탑(四面塔)이 있는데 사면이 부처 얼굴인 사면불안(四面佛顔) 관세음보살을 탑의 당상부에 안치한,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건축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 사면불안은 사방팔방을 자비로써 비춘다고 하는데 자야바르만 7세는 스스로를 관세음보살과 동일시하면서 사면불안을 만들었던 것이다. 사면불안은 사방정토를 상징하며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다. 바이욘사원은 세계의 중심과, 왕의 지배가 전 세계에 미친다는 것을 상징한다.
▲바이욘사원의 부처상으로 사면에 부처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바이욘사원을 지나면 벽에 새겨진 코끼리 조각에서 이름을 딴 코끼리 테라스가 있다. 코끼리 테라스는 병사들을 사열할 때 이용했던 긴 회랑으로, 중앙의 국왕 전용 테라스에는 반은 새(독수리)고 반은 사람인 가루다 조각상이 있다. 그 앞으로 동쪽 승리의 문을 향해 행군용 도로가 곧게 뻗어 있다. 나병왕(Leprous King)의 테라스는 7미터 높이의 기단에 부조가 뛰어난 다섯 개의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크메르 왕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일부 크메르 왕이 나병을 앓은 것으로 추정한다.
바이욘사원의 북쪽에 있는 바푸온사원은 힌두사원인데 앙코르톰보다 앞선 시기에 건설되었다. 원래는 바이욘사원보다 더 높았다고 한다. 바푸온사원 북쪽에 접해 있는 왕궁 터에 피미아나카스사원이 있는데 이 사원도 앙코르톰 이전에 건설된, 피라미드 형태의 힌두사원이다. 상당 부분이 붕괴되었지만 계단을 통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피미아나카스사원
앙코르톰 동쪽에 거대한 나무뿌리로 유명한 타프롬(Ta Prohm)사원이 있다. 이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톰을 건설하기 전에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불교사원이다. 이 사원의 방 한 곳에는 벽면과 천장을 각종 보석으로 장식해 크메르왕조의 영화를 한껏 뽐냈는데 현재는 모두 도굴되어 보석이 박혀 있던 구멍만 남아 있다.
기록에 의하면 타프롬사원은 전성기 때 3000여 마을을 통치했고 8만 명이 사원을 관리했다고 한다. 이 사원은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무대로도 유명하다. 현재 바냔 나무가 사원을 뒤덮고 있다.
▲영화 〈툼레이더〉에 배경으로 등장했던 타프롬사원
크메르인들은 석재를 쉽게 구할 수 없는 밀림에다 어떻게 앙코르와트 유적의 건축물들을 세웠을까? 앙코르와트 유적군에 사용된 건축 재료는 연와(벽돌) · 라테라이트 사암이다. 벽돌(12인치×6인치×4인치)은 서로 마주대고 비벼서 모서리를 매끈하게 한 후 조심스럽게 쌓고 라임 · 야자 · 설탕 · 덩굴식물의 수액으로 접합했다. 벽돌을 쌓은 후 벽 표면을 문지르거나 석회와 모래로 만든 회반죽을 바르고 그 위에 조각한 후 치장했다.
대부분의 벽돌은 직경 2.5센티미터, 깊이 3센티미터의 구멍을 뚫고 철제로 보강했는데 이것은 벽돌이 지정된 위치에 견고하게 설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매우 두꺼운 벽인 경우 내부를 벽돌 조각과 흙으로 채웠다. 회반죽 사용은 9~12세기에 절정을 이루었고 그 후 쇠퇴했다.
후기에는 주로 라테라이트와 사암을 사용하여 건설했다. 라테라이트는 크메르 지역의 특수한 재료로, 공기와 만나면 단단해지고 절단하기 쉬운 철분을 함유한 점토이다. 주로 건물의 토대나 평평한 단, 계단이나 담을 쌓을 때 사용한다. 대체로 두께 16인치, 폭 12~20인치, 길이 23~32인치로 제작했는데 때로는 보다 커다란 형태로도 만들었다. 사암은 바위를 가열하여 약 4톤의 덩어리로 잘라 사용했다. 사암으로 건축할 경우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고 매끈하게 표면을 갈아 밀착시켰다. 문틀 · 창문 · 문턱 · 조각의 하단부는 편암과 현무암을 사용했다.
앙코르와트 유적군의 건축은 아치를 사용하지 않고 돔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돔 형태를 내어쌓기법을 사용하여 해결했는데 돔은 올라갈수록 두께가 얇아진다. 결론적으로 앙코르와트의 유적군의 대형 건축물은 빈틈없는 설계와 유효적절한 재료 사용 때문에 척박한 환경에서도 탄생할 수 있었다.
앙코르 와트 유적군은 파괴의 흔적이 완연하다. 과거 도굴꾼들이 무차별적으로 유물들을 도굴해 엄청난 가격으로 팔았는데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도 자신이 도굴에 참여했다고 시인했을 정도이다.
앙코르와트 자체의 면적이 워낙 넓어 철저한 경비가 어렵기 때문에 현재도 많은 예술품이 도난되고 있다. 그래서 무려 7000여 점이 넘는 문화재를 박물관에 보관하면서 현장은 복제품으로 대체하고 있지만 잦은 내전으로 인해 문화재를 제대로 보관할 여력도 없는 상태이다. 현재 앙코르와트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과 동시에 위기에 처한 유적 목록에도 등재되었다. <다음백과 : 세계불가사의 여행>
* 앙코르 유적지 티켓의 모든 것, 알고 가자!
자. 역사만 공부하고 있으니 좀이 쑤시지 않는가. 일단 가서 보면 왕들의 복잡한 이름들도 쏙쏙 들어올 것이니 걱정 말길. 씨엠립에서 유적지로 달려가면 먼저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툭툭, 택시 기사가 이미 그 장소는 잘 알고 있다.
밥 먹고 손님 태우는 것만 수년 간 한 사람들이므로 기사에게 티켓 없다고 하면 자동으로 데려다 준다. 두근두근 환상적이라는 그 장엄한 모습을 보기 위해 지불할 돈은, 관람 일정에 따라 다르다.
- 앙코르 유적지 티켓의 종류 : 1일권 20$, 3일권 40$, 7일권 60$다. 3일의 일정이라면 3일권(3days in a week)을 산다. 통합 입장권에는 반찌아이 쓰레이, 롤루오스 유적지 입장료가 포함되며 프놈꿀렌은 제외된다.
3일권과 7일권은 연달아 유적지를 방문하여 쓰지 않아도 된다. 아주 편리하게 일정을 짤 수 있다.
예를 들어 3일 권은 일주일 이내에 3일, 7일권은 30일 이내에 7일을 선택하여 쓰면 된다는 말이다. 티켓을 살 때 무조건 사진 촬영을 하여 티켓에 인쇄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다. 입장권을 보여 주면 검표원이 해당 날짜에 펀치로 구멍을 뚫어 며칠 째 사용을 하고 있는지 표시한다. 단, 신용카드는 받지 않으며 예매도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현금이 최고다. 언제나 달러와 함께 하시길.
티켓에 얼굴 사진을 찍어 넣으므로 7일권 등을 사서 타인에게 양도하는 건 불가다. 티켓 검사도 착실하게 수시로 하기 때문에 티켓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챙겨서 다니도록 하자. 유치원생 같아서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목에 걸 수 있는 명함 목걸이를 하나 챙겨 가면 무척 편하다. 게다가 유적지 입구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 유적지 입장 티켓이 없으면 유료로 이용해야 하니 반드시 목에 걸자.
앙코르와트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장엄하기 이를데 없다는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꼭 한 번쯤 보고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방문할 일출 시간이 티켓 판매 시간보다 빠르다면? 놓칠 수 없는 일출을 보기 위해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새벽밥을 먹고 나왔는데, 티켓 박스가 문을 열지 않았다면 어쩌지?
일출을 티켓 박스 건물에서 눈물 머금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럴 땐 전날 티켓을 오후 5시 이후에 끊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다음날이 티켓 개시일이 된다.
그런데 티켓 하나 끊겠다고 툭툭이나 택시를 타고 유적지에 가기엔 교통비가 다소 아깝기도 한 것이 사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앙코르와트의 감동적인 일몰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후 5시 이후의 티켓을 끊고 바로 스라 스랑, 쁘레룹 같은 일몰 명소로 가자. 유적지 입장은 5시 내외까지지만 일몰 지역은 사실 입장 마감 제한이 없다. 미리 일몰도 보고 다음날 일출도 보고! 사실상 3.5일 권처럼 쓸 수 있는 셈이니 유용하지 않은가.
- 티켓 건물 위치 : 각 유적지 입구
- 티켓 판매 시간 : 5:30-17:30
- 유적지 입장 시간 : 5:30am-5:30pm
- 티켓 판매 가격 : 1일권 20$, 3일권 40$, 7일권 60$, 현금만 가능
(꿀렌 산 Mt kulen, 벵밀리 사원 Bengmealea 제외)
- 오후 5pm 이후에 다음날 티켓 판매 시작, 모든 티켓에 사진 촬영하여 인쇄함
- 입장권 교환 및 환불 불가, 찢어지거나 훼손된 티켓은 무효, 12세 이하 무료(여권 확인 필요)
* 씨엠립 여행, 피 같은 여행 팁을 알고 가자!
- 무조건 바우처를 챙겨라!
씨엠립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우처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특히 톤레삽 호수를 여행할 때 바우처가 있으면 할인도 받고 처리도 빨라진다. 압사라 댄스나 민속촌 등을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다. 바우처는 곧 예약을 했다는 증빙으로 할인권과 같다.
이 녀석을 어떻게 구할까? 한인 게스트 하우스 등에서 발행하고 바우처로 입장료 미리 지불 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톤레삽 호수의 경우 바우처가 없는 경우 실갱이가 일어난 적도 있다는 후기를 본 적 있다. 미리 준비하고 편히 여행하자!
- 씨엠립 기사와 싸우지 말자!
씨엠립에서 유적지 가는 법엔 택시, 승용차, 툭툭, 자전거 등이 있다. 땀 뻘뻘 자전거 타는 경우가 아니라면 기사와 흥정은 필수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툭툭은 저렴하지만 냉방이 안 되고 흙먼지, 느린 건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나름의 타는 묘미가 있다.
언제나 출발 전에 흥정을 마치도록 하고, 보통 1일 전세를 내어 이동하면 편하다. 1일 12~20$ 정도다. 툭툭은 시내 이동 시 1~3$면 충분하게 다닐 수 있고 전세 낼 때는 일정을 미리 주지시켜 두자.
기사가 돈을 더 내라고 할 때 발끈하지 말자. 먼 유적지에 갈 때 먼 거리만큼의 추가 비용인 셈이다. 전세 비용에 이른 아침 일출, 먼 톤레삽 호수, 롤루오스 등에 갈 때, 반띠에이 쌈레나 반띠에이 쓰레이 등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중간에 어떤 일정을 넣는지에 따라 가변적이니 기사 2-3명과 충분히 흥정해 보도록. 참고로 툭툭 기사의 점심은 챙겨 주지 않아도 된다. 알아서 먹으며 보통 손님을 기다리면서 낮잠을 많이 잔다.
- 씨엠립에서 전화 통화는?
모두가 스마트한 세상에 푹 빠져 있기에 3G 자동 로밍 다 되는 거 아냐? 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데이터 이용료가 엄청나게 부과된 요금 고지서가 두려운 분들이나 자동 로밍 안되는 폰 쓰시는 분들!
공항 SKT나 올레, LG 등에서 로밍폰을 임대해 가는 것도 방법이다. 공항서 출국 시 바로 임대된다. 이 때 전화 임대 등 아무 것도 안해도 무료로 플러그 체인저를 빌릴 수도 있지만 캄보디아는 220V 한국과 동일하니 플러그 체인저를 빌릴 필요는 없다.
SKT의 경우 캄보디아로 로밍을 하는 임대폰은 1일에 임대료 2천원이다. 임대 로밍이든 자동 로밍이든 분당 1~2천원의 통화료라 손이 덜덜 떨리니 용건은 간단히! 참고로 캄보디아의 국가번호는 855, 씨엠립 지역번호는 063다. 전화번호 012 등으로 시작하면 다 휴대전화다.
- 씨엠립에서 급한 일이 생겼다면?
여행지에서는 안전이 최고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고 무사히 돌아보면 이미 반은 성공적인 여행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날치기를 당하기도 하고 실수로 다치거나 곤란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유비무환으로 여행자 보험을 들어 놓고 대사관 정보쯤은 챙기는 센스를 발휘하자.
* 캄보디아 내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
> 주소 : #50-52, St. No. 214, Phnom Penh, P.O box 2433, Kingdom of Cambodia
> 전화 : 영사과 (855-23)211 900/3 (영사과 팩스(855-23)219 302)
> 근무시간 오전 8:30~11:30 오후 13:30~16:30
자, 캄보디아의 역사도 살펴봤고 유적지로 안전하게 이동하여 티켓도 손에 쥐었다! 이제 명함 목걸이에 티켓 넣어서 목에 걸고 한 손에 물병,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역사의 한 장면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두근거리지 않는가?
글·사진 제공 : 하나투어
출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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