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및 정보/- 일본

홋카이도, 일본 최북단 '설국(雪國) 여행'

by 혜강(惠江) 2017. 12. 31.

 

홋카이도, 일본 최북단 '설국(雪國) 여행'

 

눈과 온천, 생맥주와 라멘… 냉정과 열정을 동시에 만나다

 

 

홋카이도=이병철·시인

 

 


입맛 도는 ‘해산물 천국’… 참치뱃살·광어·관자 등 신선한 횟감이 가득…
눈 구경에 눈이 즐겁고… ‘러브레터’ 찍은 오타루 영화처럼 온통 하얀세상
료칸에서 보내는 하룻밤… 노천온천에 몸 담그면 일상의 피로가 사르르~

 

 

 

 어제가 반복 재생되는 오늘의 극장, 삶을 계량하는 온갖 숫자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음에도 근시와 난시가 생기고, 불안한 잠 속으로 하루의 환청과 이명이 걸어 들어온다. 내 인생에 민원을 넣고 싶다. 눈과 귀도 쉬어야 한다고, 암기 과목처럼 들러붙은 처세의 언어와 폭탄주에 지친 입에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홋카이도를 떠올린다. 새하얀 눈꽃 하나가 머릿속에 내려와 앉는다.

 

 

 
 
▶일본 오타루로 향하는 길, 열차의 네모난 창 밖으로 눈의 세계가 펼쳐진다. 차창에 낀 성에가 겨울이 펼쳐놓은 한 폭 그림을 초현실 화풍으로 바꿔놓는다.
 

 

 우리나라 면적과 맞먹는 땅에 500만명이 사는 고장. 사람이 적은 만큼 자연이 깨끗하고 아름답다. 겨울 추위가 매섭고 눈이 어마어마하게 내리며 사철 선선하다. 신(新)치토세 공항에서 JR(Japanese Rail) 열차를 타고 40분을 달려 삿포로역에 도착했다.
 
 일본 열도 최북단, 북위 43도 홋카이도의 겨울은 오후 4시만 돼도 어둑하다. 시계탑과 TV타워 등 명소가 모여 있는 중심 시가지에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차갑던 도시의 뺨이 발그레해졌다. 오도리 공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따뜻한 음식과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파는 노점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곳곳에서 캐럴이 흘러나왔다.
 
 유명한 삿포로 라멘을 먹으러 식당을 찾았다. 진한 육수가 일품인 미소라멘을 한 젓가락 먹고 오직 홋카이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삿포로 정통 생맥주를 마셨다. 뜨겁고 차가운 기쁨이 번갈아 온몸을 쓰다듬었다. 스스키노 거리까지 걸으며 금방 먹은 라멘을 소화했다. 식도락을 작정하고 온 여행, 한국에서 예약한 스시 집으로 향했다.
 
 주방장이 알아서 음식을 내는 '오마카세' 전문점이다. 참다랑어 고급 뱃살과 광어회부터 붕장어·고등어·전갱이·학꽁치·북방조개 등 각종 초밥과 시샤모, 가리비 관자, 말린 명란, 성게 알과 연어 알 올린 카이센동까지 신선한 북해도 해산물을 만끽했다.


 다음 날, 밤새 내린 눈으로 별천지가 된 삿포로를 떠나 오타루에서 점심을 먹었다. 영화 '러브레터' 배경지로 잘 알려진, 작은 운하를 품고 있는 조용한 도시다. 북해도 양고기를 주물 화로에 구워 먹는 동안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식당을 나서자마자 모자와 외투, 머리카락과 눈썹까지 다 하얘져 걸어 다니는 눈사람이 되었다. 오타루 맥주 양조장으로 피신해 눈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현지 맥주를 마셨다.
 
 사방이 어두워질 무렵에야 사납던 눈보라가 온순해졌다. 흰 눈에 덮인 거리 위로 촛불처럼 작고 따뜻한 불빛들이 켜졌다. 물기 머금은 가로등이 보석처럼 빛나는 오타루 운하를 따라 걸었다.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스이텐구 신사에도 올랐다. 종일 눈길에 발이 푹푹 빠졌는데도 흰 운동화가 새것 같았다. 오타루역 근처 24시간 선술집에 앉아 목련꽃처럼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며 이모쇼주(고구마 소주)를 마셨다. 북해도산 털게와 선어회가 술맛을 돋웠다. 
 
 
 
▶①유명 횟집 ‘마루 스시’ 주방장이 칼질을 하고 있다. 스르르 녹는 건 눈뿐만이 아니다. ②료칸 근처에서 바라본 노보리베쓰의 해안 마을. ③오타루 운하가 밤에 이르러 빛을 흘리고 있다. ④곡식 가루처럼 보슬보슬 눈이 쌓인다. 그 위를 홋카이도의 사람들이 걷는다.


 

 겨울 홋카이도를 찾은 진짜 이유는 온천과 숙박이 결합된 전통 여관 '료칸'에서 푹 쉬다 오기 위해서다. 유황 온천이 유명한 노보리베쓰에는 대형 료칸 호텔이 즐비한데, 나는 온천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택했다.

 

 노보리베쓰역으로 마중 나온 직원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광막한 태평양이 펼쳐진 해안가 절벽 위의 료칸 리조트, 극진한 친절과 함께 다과와 말차를 대접받은 후 다다미방에 짐을 풀었다. 갈아입은 유카타를 벗어 던지고 노천탕에서 태평양과 마주 보며 목욕했다. 뜨거운 온천수에 몸을 담그자 마음까지 훗훗해졌다. 혹한의 바닷바람이 이마를 스칠 때마다 아늑함에 나른해지던 정신이 번쩍 깼다.

 온천욕을 하자 출출해졌다. 일본 전통 코스 요리인 '가이세키'를 맛볼 시간. 광어·대구·연어·방어 등 각종 생선 요리부터 청정 지역 시라오이현의 소고기와 계란을 활용한 샤부샤부, 갓 도정한 흰쌀밥 등이 차례로 상에 올랐다. 태평양 푸른 물결을 보며 파도 소리 듣고, 히노키탕의 편백나무 향을 음미하며 온천에 몸을 담근 후 맛보는 홋카이도의 산해진미. 새벽녘 1시간 동안 노천탕을 통째로 빌려 사케를 마시며 온천욕을 즐겼다. 밤하늘 달과 별에서도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탕에서 잠깐 몸을 일으키면 살갗에 오소소 돋는 소름마저 별빛이었다.

 가이세키 못지않은 조식 뷔페가 제공됐다. 체크아웃하려니 정말 아쉬웠다. 하루 더 묵으려 했지만 객실이 없었다. 친절과 예의, 편안한 휴식,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이뤄진 그 천국에서 나와 노보리베쓰의 명소인 '지옥 계곡'을 산책했다. 괜히 뜨끔했다. 설산 곳곳에서 유황 연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이 과연 지옥을 연상케 했다. 특급 열차 '스즈란'을 타고 다시 삿포로로 돌아오자 어느새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다.

 소설 '빙점'의 무대인 아사히카와, 푸른 호수가 아름다운 비에이, 야경으로 유명한 항구도시 하코다테도 있다. 설국(雪國) 홋카이도를 여행해야 할 이유는 형용사로만 나열해도 꽤 많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편리하고…. 여기에 '저렴하다'를 슬며시 끼워 넣어도 될 만큼 엔화 환율이 많이 내려갔다. 짧은 여정으로도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물론 이국 정취와 순도 높은 휴식까지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 숫눈 밟는 소리와 바람 속에서 나비 떼처럼 부유하는 눈발의 날갯짓에 귀를 달래는 곳, 말하지 않을 권리를 행사하는 입에 미식의 기쁨을 선물하는 곳, 홋카이도가 벌써 그립다.

 

 

 

 

◇여행정보



축제
내년 2월 1~12일 ‘삿포로 눈 축제’가 열린다. 69년째 이어지는 행사로 전 세계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


음식
미슐랭 별 3개를 얻은 ‘스시 다나베’와 1스타를 획득한 ‘마루스시’ 등 오마카세 전문점을 비롯해 유명 맛집이 즐비하다. 양고기 징기스칸, 털게 요리, 스프커리, 라멘, 회전초밥, 해산물 덮밥 ‘카이센동’, 소바, 교자만두, 디저트, 생맥주 등을 맛보길 권한다.

료칸
삿포로·노보리베쓰·오타루·하코다테·아사히카와·비에이 등 홋카이도 대부분 관광지에 료칸이 있다. 아고다, 료칸클럽닷컴, 호텔온센닷컴 등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노보리베쓰의 대형 료칸 호텔들은 삿포로까지 오가는 송영버스를 운행하므로 편한 이동이 가능하다

 

 

 

[출처] 2017.12.29  / 조선닷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