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등대
그래도, 어둠을 밝히는 등대가 있다
영도=정상혁 기자 /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사
파도소리뿐이었다. 그녀는 뜨개질을 멈추고 긴 적갈색 양말을 잠시 손에 들고 있었다. 다시 등대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 한결같은 불빛을, 냉혹하고 사정없는, 그토록 그녀 자신이면서 또 자신이 아닌, 그토록 자신을 사로잡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1927)
육지의 끝에서 밤의 식구들을 마중하다
한반도 동남단 최대(最大) 항구의 끝, 원형의 35m짜리 백색 콘크리트 골격이 반짝이는 부산 영도 등대, 석양이 마무리되면 광원(光源) 하나가 서서히 달아오른다. 등대와 함께 살아온 이들에게 영도 등대의 빛깔은 '안도의 빛'이다.
*10년간 육지의 끝에서 밤의 식구를 인솔한 부산 영도 등대./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이 집은 차라리 기호라고 불러야 한다. 쉽게 밤에 잠기는 곶(串). 이곳에 이르러 파도는 더 급격히 허물어지고 비와 구름은 제 문법을 수시로 바꾼다. 이 집의 식구는 어둠이며 불친절한 기후 속에서 바라보는 집은 더 따뜻해지고, 더 아득해지는 것이고, 이따금 울먹이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거기에 집이 있다는 사실이, 손바닥 크기의 수신호 하나가 작게 흔들리고 있다는 마음이 어둠을 혼란에서 건져 올린다.
등대(Lighthouse). 매일 밤 집어(集魚)하듯 빛을 분사하는 조용한 창문이 있다. 저기 육지가 있구나, 순풍을 타고 체온을 바꾼 물고기처럼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 지난달 25일 땅거미 질 무렵, 한 관광객이 근처 바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파도의 낯빛이 어두워지자 영도 등대가 서서히 빛을 뿌릴 준비를 하고 있다. 석양이 마무리되면 광원(光源) 하나가 서서히 달아오를 것이다. /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등대의 낮과 밤… 110년 역사, 부산 영도 등대
그리하여 110년간 육지의 끝에서 밤의 식구를 인솔한 그 집을 발견했을 때, 숱한 바다의 비문(非文) 앞에서 늘 꼿꼿했을 하나의 대문자 앞에 섰을 때, 조금 감개가 무량해지는 것이다. 부산 영도 등대. 한반도 동남단 최대(最大) 항구의 끝, 원형의 35m짜리 백색 콘크리트 골격이 반짝이고 있다. 20년째 등대와 함께 살아온 항로표지원 김명환(49)씨가 “낮에 보이는 영도 등대 빛깔을 ‘안도의 빛’이라고 한다. 타지에서 배 타고 수개월 만에 돌아와 이 등대를 보면 얼마나 기쁘겠나”라고 말한다. 등대를 둘러싸고 어선과 상선 몇 척이 해협을 건너온다. 짐을 부리고 혹은 싣고 돌아오는 것들. 갈매기가 그 위를 소식처럼 떠다닌다.
원래는 ‘절영도 등대’라 불렸다. 일제강점기 당시 영도는 군용 말 목장 때문에 ‘목도(牧島)’라 불렸는데, 이곳 말이 워낙 빨라 그림자가 보이질 않는다고 해 ‘절영도(絶影島)’라 칭했다. 1974년 행정 편의상 ‘절’자를 빼고 영도 등대로 개명했고, 1988년 영도 항로표지관리소로 명칭을 변경해 오늘에 이른다. 지척에 무인 등대가 서 있는 일명 주전자섬, 생도(生島)가 보인다. 더 멀리로는 대마도가 보인다. 대마도를 상대하는 남문 유일의 양항(良港)으로, 시계가 좋은 밤엔 국경을 넘은 서로의 불빛을 구경하기도 한다. 가장 멀리 보일 때가 9~10월이라 한다.
- 태종대 위에서 해풍을 즐기는 관광객들.
- 영도 등대 앞 ‘뱃길을 인도하는 인어상(像).
영도 등대는 접근성이 뛰어난 등대다. 영도대교 덕분에 사실상 섬의 지위에서 벗어났는데, 부산역에서 승용차로 30분만 오면 태종대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걸어서 15분 정도면 등대에 닿는다. 등대 바로 우측에 태종대가 있다. 신라 태종무열왕이 활을 즐겨 쏜 곳이라 전해진다. 정자처럼 평평한 바위와 더불어 부산 일대에선 보기 드문 울창한 숲과 해식 절벽이 해풍에 따라 기괴한 조각이 돼가고 있다. 오래 닳은 돌바닥이 미끌미끌하다. 관광객들이 모여 앉아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닷바람을 맞고 있다.
태종대 바로 옆에 신선대(神仙臺)가 있다. 옛날 신선과 선녀들이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이곳 바위에서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신선바위 안쪽에 망부석 하나가 뾰족이 섰다. 왜구에 끌려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내가 돌이 됐다는 전설. 전설의 고향이기 전에 자연사 박물관이다. 7000만년 전 이곳 경치를 먼저 둘러봤을 공룡들이 발자국을 여럿 남겨 놨다. 백악기 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길이가 450㎜짜리도 있다.
이곳 해안 절벽은 유색 고무 찰흙을 여럿 겹친 뒤 꽈 놓은 것처럼 녹색과 흰색, 붉은색의 암석이 맞물려 띠(슬럼프 구조)를 이루고, 바닥엔 마그마가 퇴적암을 뚫고 들어오면서 생긴 열이 그려낸 동글동글한 무늬(구상혼펠스·Orbicular hornfels)가 천연 그림을 그려놨다.
아이들이 안내 표지판 앞에서 사뭇 진지한 얼굴이 된다. 등대 좌측엔 둥근 자갈이 쌓인 역빈(礫濱·자갈해변)이 펼쳐져 이국적인 경치를 자아낸다. 파도의 힘이 강한 해식 절벽 아래 가벼운 모래는 쓸려가고 무거운 자갈만 남았다. 서로 부딪치면서 둥글어진 검은 자갈이 썰물 때마다 쌀 쓿는 소리를 낸다. 배가 고파 그런가. 경치 구경, 바람 목욕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이제 등대의 시간이다.
- 영도 등대 내부 나선형 계단
오후 7시, 등대에 불이 들어온다. 수평선의 푸른 빛이 진해지면서 이윽고 바닷물과 섞인다. 빛의 핵심은 등명기(燈明機). 지름 1m 남짓한 등명기가 수평 회전하면서 빛을 쏜다. 40㎞까지 뻗어나가고, 이 빛이 18초에 세 번 항해자에게 도달한다. 섬백광 18초 3섬광, 이걸 전문용어로 등질(燈質)이라 한다. 밤바다가 구겨진 화선지처럼 바람에 나부낀다. 주름이 흔들릴 때마다 그 위에 떠가는 작은 배의 안위가 궁금해진다. 항해술이 좋아졌다지만 소형선은 여전히 등대를 필요로 한다. 사무실에서 쪽잠을 준비하던 김 항로표지원이 “궂은 날 레이더가 없으면 배가 계속 대마도 쪽으로 가기도 한다”고 했다. 빛이 안 듣는 날엔 음향으로 무신호(霧信號)를 보낸다. 길 잃은 배는 그 소리를 듣고 뱃머리를 돌릴 것이다.
오전 5시 50분, 등대의 불이 꺼진다. 비로소 빛이 소멸한 전망대로 올라간다. 바다가 붉어지고 있다. 오륙도와 동백섬, 남형제섬 같은 작은 점들이 지워진다. 바람이 작정한 듯 몰아친다. 곧 비가 올 모양이다. 이 바람에도 출항하는 배가 있다. 생도에 집단 서식한다는 칼새도 낙동강으로 먹이를 물러 날아간다. 이들은 저녁쯤 올 것이다. 어둠의 식구가 돼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등대 꼭대기에 있는 등명기.
영도 등대 등대 시설과 미술품 전시실, 자연사 박물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6000권의 도서를 소장한 해양 도서실도 있다. 오전 9시~오후 6시.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및 매주 월요일 휴관. 숙박 불가. 부산 영도구 동삼동 1054. (051)405-1230
태종대 오전 4시~자정. ‘다누비 열차’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동절기엔 오후 7시)까지 운행한다. 운행 요금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051)405-8745
가족끼리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등대도 있다. 제주도 산지 등대, 부산 가덕도 등대, 여수 거문도 등대. 울산 울기·간절곶 등대는 방학 기간인 12월~2월 1박이 가능하다. 문의 해양수산부 (044)200-5871
<출처> 2016. 9. 8 / 조선일보
'국내여행기 및 정보 > - 부산. 경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해군항제, 36만 그루 '벚꽃항구', 열흘간 분홍바다에 잠긴다. (0) | 2017.03.30 |
---|---|
2017∼2018 '한국관광 100선' 에 경남 8곳 선정 (0) | 2017.02.09 |
함양의 아름다운 천년의 숲, 상림(上林) (0) | 2015.10.27 |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 일대를 걷다 (0) | 2014.04.24 |
산청 정취암, 기암절벽에 매달려 산천을 품은 암자 (0) | 2014.04.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