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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6년 시작 신인상 수상작 : 속기 외 4편 / 배지영

by 혜강(惠江) 2017. 2. 2.


<2016 시작 신인상 수상작>



속기 외 4편 


배지영

 


나는 당신을 아주 빠르게 받아 적는다

잘 보이지 않는 모습과

질 들리지 않는 말이 있었지만

이것은 예비의 착상이었기에

모호함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가볍게 넘기며

어떠한 점과 글자들이 지나가고 기록이

너무 빠른 나머지

스케치를 하듯이

당신은 이제 선 하나로 설명이 된다

추상적이다 피카소의 소처럼

나는 당신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안도한다

당신은 당신이 아니게 되었지만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당신은 지긋지긋하게도

거의 모든 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당신은

나의 신이다


 

 

모닝 베이커리

 

 

당신과 사랑을 나누면 허벅지

안쪽이 붕 뜨는 기분이다

 

달달하게 반죽한 밀가루가

오븐에 부플어 오른 것처럼

 

금방 꺼내어 펄펄 뜨거운 상태도,

아주 식어사 차갑게 바삭바삭

바스라져버리는 상태도 아닌 미적지근한 온도

 

말랑한 겉 부분과

습도 높은 공기로 가득 찬 그곳

고소한 냄새

 

서로의 손이 깍지를 끼면

어린아이의 손과

요리의 끝을 맺는다

 

등줄기에 매달린 당신과

좋은 하루의 작별키스를 한다

아직도 난 그 미적지근한 온도를 유지한 채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당신의 품은

따뜻한 집이자 짐이다


 

   

꽃자리

 

 

내가 사랑한 건 까마귀였다

할머니는 깨를 볶아 대야에 담았고

고양이는 거기에 똥을 쌌다

신이 일하지 않는 돼지의 긴 코를 잘랐다

오빠는 자르지 않은 연근을 던진다

등 굽은 검은 염소의 호흡이 무너지면

검불은 어김없이 타오른다

입술 색이 같은 여고생들이 떼로 몰려오자

자궁 속에서 밤나무가 자랐다

은하수가 유성의 닻을 애만지고

매미 위에 기름공이가 고깔춤을 추자

가을 햇덧에 서리병아리가 태어났다

씨 없는 처녀 땅은

살꽃 한번 못 피우고

흉터 같은 그늘만 솟아난다

떠돌이 여자의 몸이고 싶다

 

 


과조*

 

 

너는 어쩜 눈이 이렇게 기니

감은 눈 위로

알록달록 색깔을 칠하며

네 성병에 대해 침묵했던 그 시간

자, 봐봐 하고 손거울을 건네자

너는

바닥에 반사된

한 뼘 정도의 빛에

가만히 손을 대어본다

곧 죽을 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졸다가

이젠 좀 괜찮아진 것 같다는 너

그랬니, 그랬니, 대답하다가

다 담지도 못할 말이 쏟아져

내 살에 도로 붙었다

삶을 놓아버린 사람에게

대화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괜찮은 건데, 라는 말은

배 속에서

산산이 찢어두기로 한다

 

*볕이 적게 비치다

 

 

기질

 

 

입을 벌려야 할까 입을 다물어야 할까

시청 입구에 큰 붕어는 하루에도 멏 번씩 고민을 한다

그게 오래된 고민이었다는 것조차 계속 잊는 듯

무엇 하나 뱉지도 삼키지도 않는 입질을 계속했다

 

입을 벌렸다가

입을 다물었다가

혀를 내밀었다가

말아 넣었다가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게만큼이나 짓눌리는 액체의 부력을

최대한 친화적으로 참아내려

 

붕어는 정확한 발음이라는 걸 하려다 말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평생을 불행함에 몰입했다

 

턱의 기억이

사라진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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