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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6년 시와시학 신인문학상 수상작 :억새풀 속 마고꽃을 위하여 외 4편 / 김임순

by 혜강(惠江) 2017. 2. 2.


2016년 시와시학 신인문학상 수상작



억새풀 속 마고꽃을 위하여 외 4편


김임순


 

억새 그늘 속에 숨은 마고꽃을 보았네

땅속에 뿌리내려

제 스스로 먹이 만들 수 있는 식물이건만

스스로 광합성하지 못하고

억새뿌리에 기생하는 마고는

이 가을

억새보다 환하고 이쁜 꽃을 피웠네

뿌리에 기생하는 더 화려한 보랏빛 마고를

가슴속깊이 품어 키우는 억새는

그 사랑을 품어 안고 가을바람 바다에 물결치네

아기를 품어 키우는

그것은 갈대의 어미사랑 그 마음일까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마고꽃 사랑일까




텔레포니쿠스 참회록

 

 

​1. 

카페 한 모퉁이 찻잔을 마주한 연인이 각자 휴대폰을 보고 있다 ‘영화보러갈까’ 문자하면 ‘그래‘ 하고 회신 온다

일명 삐삐를 허리에 찰 때만해도

이건 ‘족쇄여’ 하며 혀를 끌끌 차던 애비도

이젠 아예 휴대폰을 목에 걸고 위풍당당

길고 긴 편지를 쓰고 또 지우던 그리고서야 침 묻혀 우표를 부치고 붉은 우체통에 넣고 돌아보고 또 돌아보던 지난날 단장의 미아리고개 우리는 그때 불행했는가

2.​

보내는 메일이 실시간에 전달되고 사진 영상도 초스피드로 보내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화상통화를 하는 이 시대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한가

키득키득 웃으며 걸어가는 아저씨의

이어폰을 못 보았으면 미친 사람인 줄 알았을 게다

이제는 사람들의 반항조차 멈춰버린 지금

저항해도 꿈쩍도 않을 도도한 흐름에 지레 항복한건지도 모른다

 

그 속도처럼 사랑도 세월도 빠르게 지나가고

슬픔도 삶도 꿈도 화살촉처럼 날카롭다

수상하다

무엇이 우리 오랜 눈맞춤 귀맞춤을 외면하게 하는가


*텔레포니쿠스; 휴대폰 없이는 못사는 사람들, 신조어



​엔트로피(Entropy)를 위하여

 

 

​1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연탄이 타버리면 재가 되듯이

우주의 모든 것은 질서로부터 무질서로 몸을 바꾼다

정성들여 지은 집도 세월이 지나면 허물어지고

숨 멎을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 식어간다

새롭게 혼불을 피워 올려도 언젠가는 꺼지고 만다

2

엔트로피는 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화살촉

닫힌 세계가 아니고 열린 곳이라면 희망은 살아있다네

집을 계속 수선하고 관리하면 새 모습을 오래 간직하듯이

주름진 얼굴 늙어가는 것도 속도를 늦출 수 있다네

엔트로피를 역류하는 것은 오로지 생명현상뿐

그래서 생명이 대단하고 사랑이 고귀한 것

살아있는 것만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화엄세상을 꿈꾸며

 

나무껍질에 붙어 살아남는 난초

이끼와 덩굴식물처럼 편리공생을 택한다

한쪽은 이익을 얻지만 다른 쪽은 이해가 없는 관계

빨판으로 상어에 빌붙어 살아가는 레모라

상어의 먹이 부스러기 먹고살지만 전혀 해를 끼치지않는다

유카나방은 유카의 꽃에 알을 낳고 애벌레를 키우지만

유카를 수분시켜 생명을 살아나게 한다

식물과 곤충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상리공생

질소고정박테리아는 토끼풀 뿌리에서 양분과 서식지를 얻고

식물에게는 질소화합물을 공급한다

사람 사는 세상도

서로 살려주는 화엄세상 되기를

오늘도 환히 비추는 보름달을 보며 꿈꾼다



고라니의 생존권

 

1. 고라니,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먹이사슬 따라 고라니가 살기에 넉넉한 고향숲 어느 날 사람들은 길 낸다고 터널을 뚫고 다리를 놓는다 아기 고라니는 새로 놓인 길 가운데서 죽어가는 친구들을 본다 로드킬 길 건너에 서식지가 있고 이쪽에 먹이가 있으니 새로 놓인 도로를 가로 건널 수 밖에

  겨우 연명하던 어느 날 산업단지 들어선다고 불도저가 밀고 들어와 땅을 파헤친다 고라니,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2 나 초보 농사꾼, 어떻게 해야하나

  부모에게 물려받은 변변한 땅도 없어 경사진 곳 일구어 계단식 경작지 만들었네 콩도 심고 옥수수, 고구마도 심으며 땀 흘려 지은 첫농사 대견스러워 잡초 뽑으며 보살핀다

  오늘은 햇고구마 캐는 날 밤새 설잠을 자고 나간 이른 새벽 콩밭은 싹을 또옥 똑 떼어먹어버렸고 고구마밭은 흙뒤집어 멧돼지가족들이 가을잔치를 벌였다

 

3. 울엄마, 태양초 어디서 구해야하나

 

  태양초를 유난히 좋아하는 어머니 위해 고랑가득 청양고추 심었더니 채 익기도 전에 풋고추 따가는 낯선 인간들 곱게 자라던 가지도 벌레 먹어 시들시들 하더니 용케도 잘 자라던 가지 몇개 성체가 되기도전에 사람들이 따가버렸다 열무는 벌레들이 먹어 치우더니


  다시 가을 배추씨나 뿌려야겠다 마지막 잔치는 누구와 더불어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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