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미술관
자연, 예술,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진 미술관
글 ·사진 남 상 학
* 측면에서 찍은 이상원미슬관 모습, 원형으로 건축하였다.
화창한 가을 길을 달려 춘천으로 향했다. 춘천시 사북면 지암리 계곡으로 가을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그 막다른 골짜기 화악산 자락을 끼고 깊은 산세와 계곡의 물소리가 어우러진 곳에 극사실 화가로 유명한 이상원(80) 화백의 이름을 딴 이상원 미술관이 있다.
둥근 형태의 지상 5층 규모의 미술관 건물은 "예술과 자연이 주는 풍요와 치유를 경험하게 하자"는 취지에 따라 전면이 유리로 돼 미술관 안팎에서 자연과 미술의 어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은 숲으로 둘러싸인 주변 자연과 예술,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져 치유와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이상원 미술관은 10여 년간 서울 인사동과 팔판동에서 갤러리 상을 운영했던 이 화백의 아들 이승형(49) 대표가 아버지의 작품을 보존, 연구, 전시하기 위해 고향인 춘천에 건립하였다. 갤러리 상의 운영은 그 시작부터 미술관 설립을 위한 준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한국 미술계의 시스템과 해외 미술관의 운영사례, 국공립 및 사립미술관과 문화공간에 대한 탐색과 분석을 통해 이상원 미술관의 수립 계획을 구체화하고, 2008년에 현재 미술관의 위치인 강원도 춘천 사북면 지암리 대지를 매입하여 미술관을 건립할 것을 확정하였다.
이후 총 18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3년간의 설계변경 및 디자인 수정, 3년간의 건축까지 무려 6년에 걸쳐 2014년 10월 18일, 자연 친화적인 구조와 형태의 미술관을 탄생시켰다. 화악산 자락 계곡이 흐르는 면을 따라 길게 약 700m의 경사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자연의 형태에 순응하여 미술관 1개 동과 부대시설 5개 동은 계곡과 산책로를 따라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다. 전체면적 4천789㎡에 달하는 넓은 대지 위에 미술관 외에 하얀 색깔이 깔끔한 아트스테이(1~3),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청정한 물이 청아하게 흐르는 계곡을 따라 입구 경비실을 들어서면 바로 주차장이다. 차를 세우자마자 안내원이 친절하게 매표와 함께 안내를 돕는다.
이어 금속공예체험실, 유리공예체험실, 응용미술체험실로 이용되는 나지막한 예술 공방인 아트스튜디오를 거쳐 언덕을 오르면 깊은 숲 속에 둥근 고리 모양의 유리건물이 미술관이다. 부지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원형 모양의 미술관은 전면 유리로 된 구조물로써 미술관 안과 밖 모두에서 자연의 실루엣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도록 지어졌다.
미술관은 1층 로비층을 비롯하여 2~4층의 넓은 전시공간과 5층의 수장고, 사무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술관 건물 모든 공간에서 자연채광을 받아들여 전시 공간 안에서도 작품과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화악산의 산세와 계곡의 맑은 물소리로 가득 찬 정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건물 이외에 인위적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숲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와 같은 입지조건이 가장 큰 특징이다. 노약자를 위한 카트가 준비되어 있어서 경비실에서 미술관까지 카트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미술관에는 이 화백의 작품 3천여 점과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 2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국내외 미술관이 소장하는 작품 외에는 작품을 거의 팔지 않았고, 40여 년간의 그린 작품들은 고스란히 미술관 건립의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자연 속 미술관에 굳이 외국 작가의 작품을 걸고 싶지는 않다는 그의 지론 때문에, 소장품의 99%가 국내 작가의 작품이다.
국내 미술계에서 '입지전적인 독학 화가'로 불리는 이상원 화백은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지만, 미대에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18세에 홀로 서울에 올라와 막일하다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리거나 주문을 받아 초상화를 그리는 이른바 상업 미술로 명성을 날렸다. 1970년 건립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영정 초상화로 이름을 알린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초상화를 비롯해 해외 국빈을 위한 선물용 초상화를 도맡아 그리며 상업 초상 화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그는 1970년대 중반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을 뒤로 한 채 돌연 모든 상업 미술을 중단하고 순수 미술로 방향을 틀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작업의 시작은 수묵산수화였으나 곧 자신의 주제와 주제를 찾아나섰다. <시간과 공간>, <마대의 얼굴>, <해변의 풍경> 등은 초기 극사실주의 화풍으로 그려진 연작이다. 두 차례 입상한 국전(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는 학벌이라는 무형의 장벽을 넘기지 못하고 최초의 민간 공모전인 동아 미술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작품 가치를 인정받았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연작은 인물화였다. 1990년대 초반에 제작하기 시작한 <동해인> 연작은 한국 민중의 험난한 삶과 불굴의 의지를 드러낸 역작들이다. 1990년도 후반부터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종이 위에 그린 수묵화이면서 동시에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극사실적으로 표현된 작품은 해외의 전문가와 관객들로부터 신선하면서도 감동적이라는 반응을 이끌어 냈다.
1953년 십대의 나이에 화가의 꿈을 안고 상경하였던 화백은 2000년에 춘천으로 다시 귀환했다. 춘천시 동쪽 북산면 오항리 조용한 시골에 작업실을 마련해 두고, <영원한 초상>, <향>, <연>, <동해>, <대자연> 등의 연작을 제작하였다.
삶의 치열함과 고단한 여정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이상원 화백은 고향으로 돌아온 뒤 점차 소박하면서도 단순한 세계에 대한 기쁨과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몰두하는 그는 현장 스케치를 나가지 않을 때는 작업실에서 아침 일찍부터 그림만 그린다. 그의 건강은 끊임없이 작품에 몰두하는 정신력에서 나오는 것일까?
지금 이상원 미술관에서는 2015년 하반기 기획전 ‘老病死 - 다시 生’을 주제로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즉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은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단어다. 전시제목을 ‘노병사 다시 생’으로 한 것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순차적인 진행의 끝을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의 상식을 뒤집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태어나서 병들고 늙어 죽음을 앞두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삶의 시작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노년의 시간들, 지나온 생의 경험을 통해 지혜와 넉넉함으로 빛을 내기에 충분한 시간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들, 노년은 우리가 그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평화롭고 충만한 시간일 수 있으리라.
개인전의 주제는 ‘나이 듦’이다. 이상원 특유의 극사실주의적 기법으로 노인의 주름 가득한 얼굴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노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다룬 이 화백의 인물회화 작품 100여 점의 작품들은 늙음을 죄처럼 취급하는 현대사회에서 늙음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깊은 주름과 흰 머리칼에 슬프거나, 무덤덤하거나, 우울하기도 하고 강인하고 고집스러운 표정도 있다. 노년의 삶에 대해 통찰하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화악산 자락의 청정한 자연 속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예술활동을 직접 체험하면서 영혼이 고양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카페에 앉아 권오태 본부장과 환담을 나눴다
<여행 정보>
* 주소 : 강원 춘천시 사북면 화악지암길 99(사북면 지암리 587)
* 전화 : 033-255-9001
* 가는 길 : 춘천댐을 거쳐 오월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집다리골휴양림 입구를 지나 계속 진행하면 된다.
* 개관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
* 관람료 : 성인 일방 4,000원(65세 이상 3,000원) / 청소년 3,000원 / 20명 이상 단체 000원료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과 추석 당일
* 금지사항 : 관내의 쾌적한 환경을 위하여 취사 및 외부 음식물 반입금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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