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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예천, 길손의 고단함 달래주던 삼강주막(三江酒幕)

by 혜강(惠江) 2015. 4. 14.

 

 

예천 삼강주막(三江酒幕)

길손의 고단함 달래주던 쉼터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길 27



·사진 남상학

 

 

*내성천, 금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삼강나루터는 예부터 절경으로 꼽혔다.

 

 

   '맛있는 샘이 밝게 솟는 물의 고장' 예천. 물 맑고 산이 높아 예로부터 경북에서도 은근하고 은은한 마을로 손꼽혔습니다. 물돌이 마을로 유명한 회룡포가 이름을 얻으면서, 길이 나고 사람의 발길이 잦아졌지요. 거기에 100여 년 역사의 국내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이 2009년에 복원되면서 경북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예천 땅에 숨은 명소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경북 예천에 있는 삼강주막을 다녀온 지 벌써 한 달이 가까운데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삼삼합니다. 내성천, 금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에 나루터가 있고 그 언저리에 삼강주막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선비나 장사꾼들이 한양이나 장사를 위해 오르내릴 때 배를 타던 곳이었기 주막은 나들이객에게 막걸리 한잔으로 허기를 면하게 해 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이용되었지요.

  예전에는 주막을 주사(酒肆)·주가(酒家)·주포(酒舖)라고도 불렀지요. 현대적 의미로 볼 때 술집과 식당과 여관을 겸한 영업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루터에서 배를 타는 길손들에게 술과 음식을 팔고 숙박을 시키던 곳이지요. 조선 시대의 주막은 나그네가 하룻밤을 쉬어 가는 곳으로서 대부분 술과 음식을 같이 취급했으며, 주막에서 이들 객들을 상대하는 주모는 대체로 남의 소실이거나 나이 든 작부들이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 삼강주막은 예전부터 선비나 장사꾼들이 한양이나 장사를 위해 오르내릴 때 쉼터나 숙소로 이용했다.(위), 아래는 삼강주막의 내력을 설명하는 간판

 

 

  주막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정확한 고증은 할 수 없으나, 기록상으로 주막의 효시는 신라시대 경주에 있던 천관(天官)의 술집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신라 시대의 노래 천관원사(天官怨辭)를 보면, 김유신(金庾信)이 젊었을 때 천관이 술 파는 집에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말입니다. 그 내용인즉 이러합니다.

  「젊은 화랑 김유신이 가까이 했던 천관이라는 여인에 얽힌 전설입니다. 김유신이 젊었을  한동안 친구들과 함께 술 파는 계집의 집에 드나든 일이 있었습니다. 유신의 어머니는 이를 알고 매우 걱정하여 하루는 곁에 불러 앉히고 엄하게 훈계를 하였습니다. 그때 유신은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맹세하였습니다.


  그런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유신은 놀이를 갔다가 술에 취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타고 오던 말이 멈추어서서 고함을 지르므로 벌써 집에 도착하였는가 하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그 집은 자신의 집이 아니라 전날에 드나들었던 천관의 집이었습니다.

  이것은 말이 늘 다니던 길이라 익숙한 까닭에 길가에 있는 천관의 집으로 잘못 들어갔던 것이지요. 유신은 노하여 말에서 내려 허리에 찼던 칼을 빼어 말의 목을 내리쳐 죽이고 말안장도 그 마당에 내버려둔 채 한마디 말도 없이 그 집을 나와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광경을 본 천관은 갑작스런 모습에 한동안 정신을 잃었다가 얼마후에 정신을 차린 뒤 말없이 탄식하다가 유신을 원망하는 노래를 지었다고 하는데 그 노래가 바로 천관원사이며, 노래의 내용은 알려져 있으나 가사는 지금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녀나 주막의 주모에 얽힌 사연이야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오죽하면 거리의 주막으로 나왔겠습니까? 그리고 많은 사내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숱한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여인들이지요.



 

* 현재 삼강주막에는 나룻배 사공과 보부상들이 아닌, 관광객을 위하여 음식(국밥)과 막걸리를 판매한다.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주막이라면,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문경새재의 주막촌을 들 수 있는데 그곳에는 지금도 나라에서 운영하던 조령원(鳥嶺院)·동화원(桐華院) 터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천안 삼거리는 능수버들의 전설과 함께 주막이 번성했던 곳이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길목인 섬진강 나루터의 화개(花開), 한지와 죽산물·곡산물의 집산지인 전주 등이 주막이 많았던 곳으로 꼽힐 수 있습니다.

 

 



  이곳 예천의 삼강주막 역시 내성천, 금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이니, 오고 가는 길손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던 것이지요. 삼강주막 마을의 나루터는 1960년까지만 해도 번성을 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1980년경부터 강을 건너질러 다리가 건설되고부터 나룻배 운행이 중지되면서 이곳 길손들의 쉼터인 삼강주막도 그 기능을 잃게 되었지요. 그런데도 2006년 유옥련 할머니는 200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70여 년간 이곳을 지켜왔다고 합니다. 삼강주막의 마지막 주모였던 셈이지요. 

  그 후 삼강주막은 돌보는 사람이 없어 방치되었는데, 뭇 시민들이 길손의 향수를 달래주던 삼강주막을 잊지 못해 하자 2007년 예천군에서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현재의 건물은 1900년경 지은 것으로 규모는 작지만,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삼강주막과 그 뒤에 서 있는 수령 450년의 훼나무는 주막의 역사와 풍치를 돋보이게 하는 것으로  예천을 대표하는 풍경이 됐습니다.

 

 

 

* 주막의 역사와 풍치를 돋보이게 하는 수령 450년 된 훼나무



  
  주막에는 항상 세상 이야기가 넘치고 훈훈한 정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때로는 한 잔 술을 마시다가 객기에 언성이 높아지고 시비가 붙어 싸우기도 하는 곳이지요. 그러나 삶이 고되고 고달파도 주막은 길손의 향수를 달래 준 자리였을 것입니다. 툇마루에 앉으니, 조선 중기의 문신 임숙영이 쓸쓸함을 노래한 「새벽길」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나그네 새벽길에 오르면       
   진작 하늬바람을 타게 되네       
   달 진 뒤에야 첫닭이 울고       
   새벽 추위에 물안개 진다       
   외딴 주막엔 다듬이 소리       
   빈 숲엔 벌레들 노래       
   스스로 가엾다. 천 리 밖에서       
   길이 뿌리 뽑힌 쑥대로 떠돎이여


 

  그렇지요. 길손에게는 떠돌이로서의 외로움이란 있게 마련이지요. 그 외로움을 달래기에 제일 좋은 방법은 주막에서 맛볼 수 있는 한 잔 막걸리가 아니었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눈을 들으니, 장대 높이 ‘주(酒)’라고 쓴 등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주막임을 알리는 간판격이지요. 혼마 규스케라는 일본인이 1894년에 여수거사(如囚居士)라는 필명으로 지은 『조선잡기(朝鮮雜記)』에 따르면 술집 입구에 “술상머리에 술값 내놓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시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드나드는 손님 중에는 술값도 없으면서 주모와 수작부리기 위해 빈둥거리며 드나드는 몹쓸 망나니들이 술을 마시고 술값을 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망나니는 아니더라도 그 당시에는 봄 보릿고개 때 마신 술값을 가을 추수가 지나고야 갚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부엌 흙벽에 세로로 그어진 줄들이 예사로 보이지 많았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마지막 주모로 불린 유 할머니의 외상 장부. 까막눈이었던 유 할머니가 부지깽이로 흙벽에 선을 그어 외상값을 표시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삼강주막에는 본채 외에몇 채의 집이 더 있습니다. 보부상들이 머물던 곳, 나루터 뱃사공들이 잠을 자는 용도로 시용한 집들입니다. 창고와 마구간이 있어 행상인들의 물건을 맡아 주기도 하고, 마구간에서는 마소나 당나귀 등 짐승을 관리해 주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삼강주막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합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주모 한 상’이다. 두부, 도토리묵, 배추전, 막걸리 한 주전자가 올라옵니다. 가격은 1만 4천 원으로 비교적 착한 가격입니다. 그리고 식사를 위한 장국밥을 별도로 팝니다. 옛날 시장에서 맛보던 맛 그대로입니다. 양도 푸짐해서 주막의 인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삼강주막에서는 체험활동과 민박 체험을 할 수 있다.  


 평일에는 붐비지 않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하루 평균 1천 명 내외의 관광객이 몰려와 쉴 수 있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고 합니다. 우리는 점심을 먹을 후 내생천 나루터를 거닐며 그 옛날 이곳에 길손으로 넘쳐났을 풍경들을 떠올리며 회상의 나래를 펼쳐보곤 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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