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백리길
‘한국의 나폴리’에 걷기길 계절마다 경관 달라 ‘감탄’
한산도·미륵도·비진도 등 6개 섬 ‘바다백리길’ 42.1㎞ 열려
글·박정원 부장대우 / 사진·김승완 기자
▲ 비진도 망부석 전망대에서 비진도 내항과 한려해상을 바라보고 있다. 비진도의 두 개 섬을 가르는 경계가 마치 모세의 기적을 보는 듯하다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경남 통영엔 섬이 567개 있다. 그중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 딱 100개가 있다. 공단은 그 100개의 섬 중에 가장 아름답고 비교적 접근이 쉬운 6개를 골랐다. 그리고 사람들이 걷기 편한 길을 조성해 지난 10월 중순 ‘바다백리길’이란 이름으로 개통했다. 2012년 4월 공사를 시작한 지 1년 6개월여 만에 완공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냥 놀러가기 위해서 섬을 찾는데, 걷는 길까지 생겼다니 너도나도 몰렸다. 주중엔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이, 주말에 1,000명 이상 섬 방문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아직까지 ‘걷기가 대세’인 상황이 꺾이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 6개의 섬이 미륵도, 한산도, 비진도, 연대도, 매물도, 소매물도다.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음직한 가볼 만한 섬들이다. 각 섬의 특징을 걷기길에 그대로 녹여 냈다. 미륵도엔 달아길(14.7km), 한산도는 역사길(12km), 비진도는 산호길(4.8km), 연대도는 지겟길(2.3km), 매물도는 해품길(5.2km), 소매물도는 등대길(3.1km)로 불린다. 이들을 모두 합한 총 길이는 42.1km다. 그래서 이름도 ‘바다백리길’이라 붙였다. 이 중 미륵도 달아길을 제외하고는 전부 배를 타고 가야 한다.
미륵도는 처음엔 미래사를 출발지점으로 잡아 미래길이라고 했으나 미래사보다 더 보편적인 최영 장군의 흔적이 있는 달아공원의 경관이 아름다워 달아길이라고 붙였다. 한산도는 이순신 장군이 한려해상에서 거둔 승리의 자취를 따라 가볼 수 있는 길이라고 해서 역사길이라 명명했다. 비진도는 애초 산호해수욕장의 이름 그대로 산호길이라 사용했다. 연대도는 어부들이 지게를 지고 생활하던 길을 따라 길을 조성해 지겟길이라 했다. 매물도는 바다를 품고 해를 품는다는 뜻으로 해품길로 지었고, 소매물도는 아름다운 등대가 있어 등대길로 했다.
이 모든 길은 어디 내놔도 전혀 뒤지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통영의 특징을 뚜렷이 대변하면서 특히 경관이 아름다운 한산도 역사길과 비진도 산호길 2개 코스를 답사했다. 한산도는 세계 4대 해전으로 꼽히는 한산대첩으로 유명한 이순신 장군의 유적이 있는 곳이고, 비진도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섬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동부사무소 김수정씨가 직접 코스안내에 나섰다. 김수정씨는 2010년 탐방로 고시와 더불어 기획단계부터 참가해 지금까지 4년째 조성 및 관리까지 책임지고 있는 바다백리길 베테랑 직원이다.
- ▲ 맞은편 미륵산과 한려해상을 배경으로 한산도 역사길을 걷고 있다.
여자 가슴가리개 같은 섬 모양…
선녀 전설도 얽혀
비진도 산호길
비진도는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여인의 섬’이란 주제로 접근했다. 이름에 대한 유래도 몇 가지 전한다. 섬에 미인이 많았다고 해서 미인도라 부르기도 했고,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승리한 보배로운 곳이라 해서 비진도라 명명했다는 설도 전한다. 또 산수가 수려하고 풍광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해산물 또한 풍부해 가히 보배(珍)에 비(比)할 만한 섬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사람들은 비진도가 여자의 가슴가리개와 닮았다고 한다. 북쪽 섬과 남쪽 섬이 둥글고 붕긋하게 솟아 있고, 그 두 개의 섬을 방파제를 사이에 두고 한쪽엔 산호해수욕장, 다른 한쪽엔 몽돌해수욕장이 이어준다. 마치 모세의 기적을 방불케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는 가슴가리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비진도에 들어서면 어머니품에 안기는 듯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그 섬 속으로 들어간다. 아니 어머니의 품속에 살포시 안겨 본다. 외항에 내리는 순간 육지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한적한 시골 풍경이 성큼 다가온다. 걷는 길이지만 섬 둘레길을 도는 것이 아니라 주봉인 선유봉(312m) 정상을 거쳐 순환해서 돌아오는 코스로 조성했다. 김수정씨는 “비진도에는 콩자개덩굴 군락지가 자생하며,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화장실이 어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동백은 기본이고 봄부터 가을까지 갖가지 야생화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콩나무는 공기 좋은 곳에서만 서식하는 오염지표식물로 그만큼 청정지역이라는 말이다.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가 “어서오세요. 여기만큼 좋은 곳도 없을 거예요. 많이 보고 가세요”라며 말을 건넨다. 밭을 지나 선유봉으로 올라가는 숲으로 들어서자 마치 원시림에 들어서는 듯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수종도 다양하다. 굴피나무, 개서어나무, 당단풍 등에 노루귀와 보라색꽃을 피운 야생화가 여기저기 자리 잡고 유혹한다. 활엽수들은 이제 단풍이 들려는지 조금씩 빨간·노란색으로 물 들고 있었고, 동백은 여전히 초록의 향연을 뽐내는 형국이다.
첫전망대, 망부석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 얽힌 전설도 재미있다. 아주 옛날 무지개를 타고 비진도에 내려온 선녀가 홀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어부를 만났다. 그의 효성에 감격한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산홋빛 아름다운 물결이 있는 비진도에서 그 남자와 살기로 결정했다.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어느 날 바다로 나갔던 어부는 풍랑을 만나 섬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선녀는 매일 해가 뜨면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 남편을 기다리다가 끝내 망부석이 됐다. 전망대 옆에 있는 망부석 바위에서는 바로 눈앞에 바다가 내려다보이며, 옆모습이 여자 같아 보인다.
- ▲ 비진도 산호길에는 작은 섬인데도 동백나무숲길과 때죽나무숲길, 후박나무 자생지숲길 등 다양한 수종의 숲길을 지나친다.
- ▲ 1 단풍이 물든 호젓한 한산도 역사길을 낙엽을 밟으며 걷고 있다. 길도 잘 조성돼 있다. 2 한산도 제승당 앞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다. 오른쪽으로는 천연기념물 팔손이나무 군락지가 있다.
길은 제법 오르막이다 . 외항선착장이 GPS로 해발 6m이고, 선유봉이 312m다. 300m 이상을 올라가야 하니 조금은 거친 숨을 내뱉는다. 길보다는 주변 숲과 경관을 보고 가노라면 힘도 덜 들고 모든 게 새롭게 다가온다.
전망대에 이르렀다. 비진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다. 여자 가슴가리개 같은 두 개의 섬이 얼핏 보인다. 정말 모세의 기적을 보는 것 같이 물이 갈라져 있고, 한쪽은 모래사장, 다른 쪽은 보여 준다.
김수정씨는 길을 내느라, 길을 낸 뒤 반응을 듣기 위해 주민들을 자주 만난다. 주민들은 “육지 사람들이 수시로 전화 걸어 왜 식당 운영을 하지 않느냐. 제발 식당 좀 해라”는 전화를 숱하게 받았다고 전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투덜거리며 식당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섬을 찾는 방문객들이 식당이 없어 주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닦달한다는 것이다.
때죽나무·동백·후박나무 군락지도 지나
곧이어 큰 바위 위에 큰 바위가 얹혀 있는 흔들바위다. 실제로 흔들어 보니 흔들거린다. 망부석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선녀가 홀로 남은 어머니의 식사가 걱정되어 밥을 내려 보낸 것이 밥공기 모양의 흔들바위라고 한다.
계속 오르막이라 바람이 부는 줄도 몰랐다.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골바람이다. 양쪽이 트여 있어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인 셈이다. 사계절 시원한 곳이라고 한다. 바로 위는 선유대다. 널찍한 바위가 두 개나 있다. 선녀들이 놀던 바위라고 한다. 성인 10여 명은 족히 앉을 만한 넓이다.
이윽고 비진도 최정상 선유봉에 도착했다. 북한산둘레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조성했다는 2층 전망대까지 있다. 사방 조망이 가능하다. 여유를 갖고 주변을 살펴본다. 김씨는 “이곳에선 비가 오고 난 뒤 뱀들이 몸을 말리기 위해 똬리를 틀고 있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며 “이 섬에도 뱀이 너무 많아 간혹 길을 조성할 때 깜짝 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천적이 없어 개체수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다.
- ▲ 마치 호수같이 잔잔한 바닷물이 제승당 앞에까지 들어온다. 태풍이 치면 이곳에 모든 배들이 정박한다.
정상까지 평평한 숲길을 걷다가 선유봉을 기점으로 다시 하산길이다. 때죽나무와 자귀나무, 후박나무, 메밀잣밤나무, 동백나무 군락지를 계속 지난다. 이런 섬에서 이런 다양한 수종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니…. 무척 행복한 순간이다. 감탄이 연속으로 나온다. 봄이면 진달래가 하얀색, 빨간색 꽃을 피워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한려해상 경관이 그대로 내려다보여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하고 아름답다. 자칫 경관을 살피다 하산길에 미끄러질 것만 같다. 경관을 감상하느라, 하산길 발길 살피느라 눈이 부산하다.
쪽빛바다의 절정은 노루여전망대에서 만끽할 수 있다. 가파른 절벽의 해안절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옛날 주민들은 이곳을 한자로 장탄(獐灘)이라고 했다. 노루여는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옛날 선유봉 일대에 노루가 많이 서식해 사람들이 산 위에서 노루를 쫓아 벼랑 아래로 떨어지게 하여 잡았다고 전한다. 가끔 해안절벽에서 떨어진 노루가 허우적대는 것을 지나가는 배가 잡아 건져 올렸다는 데서 유래한다. 노루여전망대의 끝지점엔 설핑이치 또는 갈치바위가 있다. 갈치바위는 태풍이 불 때마다 파도가 이 섬 바위 위로 넘나들면서 소나무 가지에 갈치를 걸쳐놓는다고 해서 붙여졌다. 설핑이치는 한자로 ‘雪風峙(설풍치)’이다. 옛날부터 정초가 되면 북풍한설의 눈보라가 휘날릴 때 바다로 쑥 내민 이 등마루에 눈바람이 쌓여 은세계의 설경을 이룬다고 해서 ‘雪風峙’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햇빛에 반사한 쪽빛바다는 연이어 반짝거린다. 저 멀리 고기잡이 나간 어선이 통통거리며 항구로 들어오고 있다. 그 위로 갈매기들이 먹이를 찾아 “꺄륵~꺄륵~”하며 날아다닌다.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여유로운 풍경이다.
곧이어 한적한 돌담길과 함께 아담한 비진암이 나온다. ‘참선수행도량’이라는 문패 같은 안내문이 눈길을 끈다. 주변은 원시림같이 관목과 목본식물들로 가득하다. 인적도 드물다. 한때는 몇 가족이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전부 빈집 같아 보인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전부 육지로 나간 듯하다. 가끔 한 번씩 와서 쉬거나 청소하는 정도다. 인근 밭도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지 꽤 된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다.
- ▲ 비진도 산호길에서 해안절경을 이루는 노루여를 바라보고 있다.
- ▲ 한산도 역사길에는 도로가 잘 닦여 있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공단에서는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 준다.
바다냄새가 물씬 난다. 육지에서 맛 볼 수 없는 냄새다. 적당히 짠맛이 섞인 듯한 바다냄새는 한국에서만, 아니 온대지방에서만 난다고 한다. 인근 일본 해안도 한국에서의 바다냄새와는 달랐다. 지극히 한국적인 바다냄새다. 새들도 지저귄다. 산천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온데간데없다. 지금의 농촌과 어촌 모습이다. 그 촌으로 다시 사람들이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걷는 길이 뚫렸으니 경제의 길도 뚫리고 사람 사는 길도 곧 뚫릴 것 같다. 비진도 산호길의 미래는 더욱 밝아 보인다.
산호길 전체 길이는 정확히 4.8㎞라고 하지만 대략 5㎞ 잡으면 된다. 소요시간은 2시간 43분.
이순신 장군 발자취 고스란히 전해
한산도 역사길
한산도는 전국에서 38번째로 큰 섬이며, 그 안에 있는 제승당은 사적 제113호다. 한산도 지명 유래는 옛날 바다목장이 있을 정도로 큰 섬이었다고 해서 ‘한섬’ 또는 ‘한뫼섬’이었다고 한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임진왜란 때 왜군을 막는다는 의미로 한산도(閑山島)라 불리게 됐다고 전한다.
사적 제113호인 제승당은 1593년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아 한산도에 통제영 본영을 설치했을 때 지금 제승당 자리에 장수들과 작전회의를 하던 운주당을 세웠다. 지금으로 치면 해군작전사령부다. 이순신 장군은 제승당을 통해 한산대첩과 남해 일대에서 세계 해전에 빛날 한산대첩과 전무후무한 무패의 전적을 올린 기념비적인 곳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1959년 사적으로 지정하고 관리하고 있다. 유명한 시조 ‘한산도 달 밝은 밤에~’하는 ‘한산도가’도 이곳에서 지었다.
한산도 역사길은 제승당에서 출발하면 된다. 제승당으로 가는 길은 한쪽은 바다이고, 또 한쪽은 산이다. 천혜의 요새 같은 곳이다. 태풍이 오면 선박들이 일제히 이곳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제승당으로 들어가는 길이 예쁘고 정겹기까지 하다. 이제 가을이 오려는 듯 단풍이 살짝 다가선 느낌이다.
- ▲ 1 비진도 산호길 출발 지점에 있는 길 표시. 이정표를 따라가면 길을 잃을 우려는 없다. 2 비진도 선유봉 정상 가는 길로 산호길을 내, 다소 등산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제승당 주변은 의외로 기품 있는 적송이 눈에 많이 띈다. 임란 이후에 육지의 사람들이 한산도로 이주하면서 육지의 소나무를 이곳으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동백나무와 적송, 팔손이 등이 어울려 사철 푸르른 모습을 보여 준다. 동백은 토종이라 꽃이 통째로 떨어진다고 한다. 10월에 만개하는 꽃댕강나무도 옆에 있다. 한산도에만 자생하는 나무다. 꽃이 떨어질 때 목 떨어지듯 댕강하고 떨어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해당화, 철쭉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제승당에 들어서려는 순간 ‘대첩문(大捷門)’이란 현판 글씨가 보인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들어서기 전부터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제승당에는 이순신 장군의 존영을 모신 영당, 유허비를 비롯한 많은 송덕비, 수군을 훈련시키던 활터, 수루 등 부속시설이 원형 그대로 복원되어 관리하고 있다. 수려한 주변 경관과 더불어 당시 조선 수군 본영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수루엔 ‘한산도가’가 그대로 전시돼 있다. 방문객들은 대개 제승당만 보고 한산도를 떠났다. 이젠 한산도 역사길이 생겼으니 섬을 한 바퀴 돌아보고 가게 생겼다.
자전거 타기에 안성맞춤
제승당에서 나와 한산도 역사길로 접어든다. 다니는 차는 별로 없고 해안도로는 전부 포장돼 있다. 걷기에도 무리가 없지만 자전거 타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실제로 전국 자전거대회를 한산도에서 열기도 했다. 공단에서는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 방문객들의 편의를 도모해 준다.
이내 숲속 산길로 향한다. 한산도 최고봉 망산(293m)으로 가는 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망대가 나온다. 역사길 답게 이순신 장군의 자취에 대한 설명을 곳곳에 안내하고 있다. 세계 4대 해전의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과 그리스 살라미스, 영국 넬슨 제독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숲은 편백과 소나무 등으로 이뤄진 혼재림이다. 섬인데도 불구하고 바다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다. 간혹 탁 트인 전망대에서나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제승당 옆에 있는 산으로 역사길을 조성했다. 고동산이다. 임진왜란 때 서로 연락을 취하기 위해 이 산에 올라 소라고동을 불어 신호를 보냈다 하여 고동산이라 했다 한다. 한산도에는 이와 같이 임진왜란 때 있었던 일이나 사건으로 지명이 유래된 경우가 많다. 갑옷을 벗었던 곳을 해갑도(解甲島), 왜적이 길을 물었던 곳을 문어개(問語浦)라고 한다. 개미목(蟻項·의항)은 지형이 개미의 허리처럼 생긴데다가 한산대첩 때 왜적 패잔병들이 개미처럼 올라갔던 곳이며, 대섬(竹島)은 우리 수군이 화살대를 얻기 위해 시루대를 재배하던 곳이며, 지금도 자생하고 있다.
매왜치는 왜적의 시체를 매장하던 곳이고, 두억개(大村·대촌)는 왜적의 머리를 수없이 베었던 곳을 말한다. 진터골은 육상 전투 교육훈련을 하던 곳이며, 비추리(汝次·여차)는 병선을 건조, 수리하던 곳이다. 염개는 소금을 만들던 염전이 있던 곳, 숯덩이골은 숯을 만들던 곳, 독안바위는 질그릇을 만들던 곳, 창동(倉洞)은 군수품 창고가 있던 곳, 진두(津頭)는 진영이 있던 곳, 야소(冶所)는 무기를 만들던 곳, 옷바위(衣岩·의암)는 군복을 마련하던 곳, 용초(龍草·용초)는 병기를 만들기 위해서 철을 채굴하던 곳, 멜게(荷浦·하포)는 군수물자를 하역하던 곳, 못개는 식수를 마련하던 곳, 망산(望山)은 왜적의 동정을 살피던 곳, 돛단여는 임란 당시 이 암초에 돛을 많이 올려 대선단으로 위장했던 곳이다. 이 지명들은 아직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 한산도 역사길에서 한려해상을 배경으로 길을 걷고 있다. 역사길은 섬이지만 숲이 우거진 코스가 많아 의외로 등산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숲과 길은 좋으나 거의 등산로 수준이다. 또 조망이 안 돼 아쉽다. 하지만 등산 좋아하는 사람은 매우 좋아할 만한 코스다. 소나무, 참나무, 동백 등 식생이 다양하고 계속 우거져 있다. 그 사이로 허물어진 성황당이 있다. 마을주민들이 제를 지내던 곳인데,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듯하다.
망산과 고동산을 연결하는 망산교를 지나면서부터 다시 오르막길이다. 다리 밑으로는 골짜기이면서 도로가 관통하고 있다. 일명 망골이라고 한다. 오르면서부터 주변 조망이 조금씩 트이기 시작한다. 망산 정상에 이르자 역시 사방이 확 트였다. 바로 옆에는 움푹 팬 봉수대가 있다. 적군의 침입이 있을 때 불을 피워 다른 섬으로 신호를 보내 전달했다.
정상 바로 밑에는 서어나무 군락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정말 이 섬들에는 사람들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자연 상태의 숲이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이곳에서 누군가 가꾸었을 리는 만무하니 말이다. 원체 다양한 나무들이 곳곳에 군락을 이룬 모습은 확 트인 바다의 조망을 보는 것 못지않게 방문객들을 즐겁게 한다. 정말 훌륭한 식생이다. 숲 사이로 보이는 한려해상도 매우 이국적이다. 한국의 나폴리라고 이름 붙인 이유를 알겠다. 한 번씩 나오는 전망대는 그 이국적인 풍광을 마음껏 즐기도록 했다.
진두로 하산하는 코스는 포근한 숲속길이면서 등산로의 모습도 가끔 보인다. 끝지점엔 전국에서 유일한 한산초중학교가 있다. 학생들이 도시로 나가 학생수를 채우지 못해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같이 있다. 이곳에서 바로 바다로 접속된다. 한산도 역사길은 총 12㎞에 걷기보다 등산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더욱 제격인 코스다. 소요시간은 점심시간(1시간 30분)을 제외하고 4시간 꼬박 걸렸다.
- ▲ 한산도 역사길 개념도
탐방 가이드
교통
비진도는 통영여객터미널에서 비진도를 경유해 매물도로 가는 배를 타면 된다. 성수기에는 배편이 늘어나지만 평소에는 하루 세 번 들어간다. 통영 출발 편은 오전 7시, 11시, 오후 2시10분 등이고, 비진도에서 통영으로 가는 배편은 오전 9시10분, 오후 1시20분, 오후 4시40분 등이다. 소요시간은 약 40분. 배편 예약은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 www.seomticket.co.kr. 문의 통영여객터미널(055-645-3717)
한산도는 방문객이 많아 배편이 자주 있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 한산도에서 돌아오는 마지막 배편은 오후 5시30분이다.
숙식
서비진도에는 민박집이 많이 생겼다. 요금은 대개 4만~5만 원 정도 한다. 문의 선유봉민박 055-642-9032 또는 010-9735-6666.
한산도에는 문어포마을에 1곳, 하소리(진두)마을에 2곳의 펜션이 있고, 추봉도마을에서는 민박을 할 수 있다. 요금은 펜션 10만 원 내외. 민박은 5만 원 내외.
- ▲ 비진도 산호길 개념도
비진도 2~5월, 한산도 봄, 연대도 5월 전후가 걷기에 좋아
대매물도 12~4월, 소매물도 연중 찾아
바다백리길을 조성한 뒤 한려해상에 있는 섬들에는 방문객이 더욱 늘어났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직원들은 “걷는 길을 만들었더니, 경제의 길이 열렸다”고 했다. 원래 일정한 방문객이 있을 정도의 이름 있는 섬들이지만 걷는 길 개통 이후 평균 20~30%가량 더 증가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계절 내내 걷기 좋은 이 섬들에, 그래도 특히 아름답고 풍광이 더 좋아 걷기 적합한 계절을 공단 직원들에게 추천해 달라고 했다. 전체적으로 완만하게 걷기에는 대매물도가 가장 좋고, 다른 섬은 등산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비진도와 연대도에는 옛날 사약으로 사용했던 천남성 군락이 있다.
먼저 비진도는 봄엔 야생화가 만발하고, 여름엔 시원하고, 가을엔 운무 없어 에메랄드빛 바다 사진을 찍기에 좋고, 겨울엔 바람이 심하지 않고 바람이 불더라도 나무가 많아 바람을 막아준다. 그 중에서도 동백이 피는 2~3월과 때죽나무꽃이 흩날리는 5월, 산딸기꽃과 열매가 맺는 6월이 특히 좋다. 1월엔 춥지 않은 잔잔한 바람 덕분에 등산객이 많이 찾아온다. 비진도 경관의 백미(白眉)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비진도의 두 개 섬을 연결하는 방파제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산호빛 해수욕장이고, 다른 쪽은 몽돌이 있어, 위에서 내려다보면 전형적인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적 섬이다. 이 섬에서 해풍 맞고 자란 시금치는 별미라고 한다.
한산도는 망산에 진달래 피는 봄이 가장 좋다고 입을 모은다. 또 벚꽃길도 약 8㎞ 된다. 여객선선착장에서 이순신 장군의 유적이 있는 제승당까지는 걷기 좋게 조성돼 있다. 특히 한산도는 섬이 크고 도로가 잘 조성돼 있지만 차가 별로 없어 전국 자전거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바이크족들이 많이 찾는다.
연대도는 통영에서 에코아일랜드(Echo-Island)로 육성하기 위해 중점 투자한 섬이다. 태양광발전소에서 200㎾의 전류를 생산한다. 5월에 양귀비가 빨간색 꽃을 활짝 피우고, 다랭이 꽃밭이 조성될 때 사진찍기 절정에 이른다. 에코 체험센터도 건립돼 있어 10인 이상이면 마을학교에서 먹고 자면서 체험을 할 수 있다. 식생이 다양하고 숲이 울창해 지표식물이 많이 서식한다.
대매물도는 강원도 오지 같은 전형적인 시골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동백꽃이 지천에 널려 12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가 가장 좋다. 사람도 적고 외국에 온 듯한 느낌이 들어 힐링하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꼽을 수 있다. 가장 큰 자랑은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매물도는 길을 조성하기 전부터 한 해 방문객이 40만~45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많이 찾는 곳이다. 대매물도와 달리 도시적이고 사람이 북적거린다. 섬 같지 않게 외롭지 않은 곳이다. 희귀식물과 다양한 꽃이 많고 경관이 우수하다. 슬리퍼를 신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길도 편하다. 겨울 방문객이 상대적으로 적고 나머지 계절은 비슷한 수준이다.
미륵도는 바다백리길의 섬 중에서 코스가 가장 길다. 미륵산을 오르는 코스라 등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편백나무숲이 있어 피톤치드를 맞으며 삼림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조림지역이라 수종이 다양하지 않은 게 단점이다. 겨울과 초봄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출처> 월간산 530호(201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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