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꿈 사라진 옛터
경기도 수원의 화성(華城) 맛집 5선
화성(華城)은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조선 후기의 읍성이다.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는 부친 사도세자의 능을 화성(수원)에 옮기고 신도시를 건설한다. 당시의 최신 기술과 장비를 동원, 기존 성들의 좋은 점만 본떠서 최고의 시설을 갖춘 성곽 도시를 만들었다. 화성은 노론 벽파가 둘러싼 한양에서 벗어나 만년을 보내고자 했던 정조의 정치적 의도로 건설된 도시다.
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았을 만큼 문화적 가치를 지녔으면서 원형도 잘 보존된 성곽유적이다. 조선후기의 정치, 실학, 건축, 축성술 등의 역사를 한 자리에서 음미할 수 있는 드문 실물 자료이기도 하다. 관계 당국에서도 잘 정비를 해놓아 성의 둘레를 따라 산책과 답사를 하기 수월하다. 수원 시민은 물론 외부에서도 많은 관광객과 답사객이 수원 화성을 찾아온다. 교육적 가치가 높아 자녀를 동반하고 가볍게 찾아온 가족 단위 여행객이 특히 눈에 많이 띈다.
수원은 예부터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개성과 더불어 상업이 발달한 도시다. 사람이 모이면 그들을 상대로 한 장사꾼이 있고, 그 가운데 규모가 큰 거상도 나온다. 자본가가 여럿 생기면 또한 그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도 서게 마련이다. 수원갈비가 유명한 향토음식으로 부각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수원시는 몇 해 전부터 영통을 비롯해 동쪽으로 새로운 도심축이 형성되었다. 무게중심이 동쪽으로 기울면서 본래의 수원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느낌이 든다. 그러나 화성의 문화재적 가치가 재조명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활기도 살아났다. 화성을 중심으로 성곽을 따라 그 둘레에는 여전히 맛난 음식을 내놓는 식당들이 많다. 금강산도 식후경! 성 안팎을 둘러보다가 끼니 때 찾아볼만한 ‘화성 맛집 5선’을 소개한다.
쉽게 만들지 않은 깊은 맛의 칼국수 <청학동 칼국수>
처음엔 칼국수(6000원) 맛이 무슨 맛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차츰 한 입 두 입 먹다보면 제 맛을 알아가게 된다. 평양냉면처럼 깊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육수를 낸 뒤 혼합한 육수는 정성과 솜씨가 뒷받침 된 탄탄한 맛이다.
- 청학동 칼국수의 칼국수
우선 기본 육수를 낸다. 다시마, 무, 양파와 함께 배, 사과, 파인애플 등 과일, 그 밖의 재료들을 넣고 푹 끓인다. 그러나 이 식물성 기본 육수는 깊은 맛이 적다. 그래서 육우의 잡뼈를 고아 만든 육수를 따로 낸다. 이렇게 두 가지 육수를 미리 만들어 둔다. 주문이 들어오면 바지락과 북어포에 채 썬 대파, 양파, 호박, 당근을 넣고 끓인다. 이때 칼국수 면을 썰어 넣는다. 거품을 걷어내고 국물이 우러나면 여기에 두 가지 육수를 첨가해서 본격적으로 끓여 칼국수를 완성한다.
칼국수 맛은 육수도 중요하지만 면발도 무시할 수 없다. 육수에 들인 공만큼 주인장 허권(60) 씨는 반죽에도 무척 신경을 쓴다. 다른 첨가물 없이 오직 소금과 물만으로 반죽한다. 반죽의 상태가 바로 완성된 칼국수 면의 상태와 똑같아진다는 것을 허씨는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 24시간 숙성시킨 반죽을 만져보니 마치 어린 아가 피부 같다. 잡아당겨보면 끊어지지 않으면서 쭉 늘어난다.
칼국수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보리밥이 나온다. 이 보리밥에 함께 나온 열무김치와 양념장을 넣어 비벼먹으면 그야말로 꿀맛이다. 이 양념장은 집에서 담근 고추장을 1년 이상 발효시킨 것으로 만들었다. 고추장에 양파, 마늘 등 양념을 넣고 볶은 것이다. 잘 익은 장맛이 섞인 구수한 보리밥은 중 노년층 고객에겐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칼국수가 나왔다. 칼국수의 윤기 있는 면발이 미녀의 모발처럼 찰랑거린다. 칼국수와 잘 어울리는 김치와 함께 먹으니 그 어떤 성찬보다 기가 막힌 맛이다. 세 가지 육수가 들어간 국물 맛이야 따로 말이 필요치 않다. 다만 그 맛은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 차츰 먹다보면 쉽게 맛을 낸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칼국수로 14년째인 이 집은 수제비(6000원)도 있다. 저녁에는 홍어무침(3인분 2만원)과 파전(1만원)이 있어서 간단하게 술 한 잔도 가능하다. 주인 내외의 음식에 대한 정성이 매우 깊어 인상적인 집이다.
불고기 등 푸짐한 점심을 저렴하게 <육미옥>
수원야구장 건너편에 있는 <육미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꽤 괜찮은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우선 점심특선으로 산채불고기정식(1만원)이 나온다. 한우불고기(180g), 묵나물을 비롯한 7가지 나물이 들어간 산채비빔밥, 한우 탕국, 떡갈비, 튀김, 웰빙 반찬으로 구성했다. 한우 목심으로 만든 불고기에는 넓적 당면, 당근, 대파, 양파와 느타리버섯이 푸짐하게 올라갔다. 과일과 간장, 마늘, 설탕 등 기본양념을 즉석에서 한 뒤 불판에 얹는다.
- 육미옥의 산채비빔밥, 불고기,평양냉면 등
산채비빔밥에는 가시오가피, 취나물, 방풍나물, 참나물 등 평소 먹기 어려운 나물과 민들레, 당근채, 무채, 콩나물 등 모두 7가지 나물이 들어간다. 돼지고기 전지 60%에 소갈비 자투리 살 40%로 만든 떡갈비는 포실포실하고 은은한 불맛이 입맛을 당긴다. 상추, 적겨자, 깻잎 등 쌈채를 아주 푸짐하게 내온다. 산채비빔밥은 산나물 향기를 충분히 즐기고 나서, 먹고 남은 불고기 국물을 부어 비벼먹으면 멋진 마무리가 된다. 여기에 개운한 한우 탕국을 곁들이면 깔끔하다.
수제돼지갈비(250g 1만4000원)+평양냉면(후식용 5000원)도 점심 때 많이 찾는 메뉴 조합이다. 평양냉면을 먹기 전에 고기를 먼저 먹는 전형적인 선육후면 코스다. 양질의 참숯을 피운 뒤 극세사 석쇠를 놓고 돼지갈비를 굽는다. 일반적인 돼지갈비 양념에는 캐러멜을 섞는데 이 집은 캐러멜 대신 파인애플, 배, 양파, 키위 등 과일을 충분히 넣어 단맛을 낸다. 돼지 갈비와 목살이 5:5 정도 되는 갈비를 이틀 전에 양념에 재두었다가 굽는다. 돼지 껍질을 서비스로 주는데 꽤 먹을 만하다. 당귀, 청경채, 로즈, 청겨자, 적겨자 등 쌈채가 모두 11가지나 된다. 가짓수뿐 아니라 양도 퍽 많이 내온다.
수제돼지갈비를 먹은 손님에겐 후식용 평양냉면을 5000원에 판매한다. 메밀 70%의 정통 평양냉면을 추구하는 맛이다. 아직 이 정도 평양냉면은 수원에서는 맛보기 힘들다. 돼지 갈비를 먹은 입을 깔끔하게 헹궈준다.
내장 대신 소 갈빗살로 만든 해장국 <유치회관>
수원에서 25년 째 해장국(7000원)을 파는 집이다. 해장국을 좋아하는 웬만한 수원시민은 한 번쯤 맛을 봤음직하다. 처음엔 북문 근처에서 작은 점포로 출발했다. 점차 손님이 많아지면서 광교산 입구 넓은 점포로 이전했다. 4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힘입어 이 집 해장국은 광교산 등산객과 택시 기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광교산 공원이 들어서면서 10년 전, 다시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현재 아들 형제가 2대째 가업을 이어가 노포 대열로 진입중이다.
- 유치회관의 해장국과 김치
이 집 해장국의 가장 큰 특징은 내장이나 천엽 등 전통적인 해장국 건더기가 없다는 점이다. 특이하게도 소 갈빗살을 건더기 고기로 쓴다. 비록 호주산 소의 갈빗살이긴 하지만 고기를 씹을 때마다 갈비의 고소한 맛이 난다. 마치 갈비탕의 갈비를 씹는 느낌이다.
도가니, 사골, 갈비뼈로 육수를 낸다. 고기(갈비)는 따로 삶아둔다. 여기에 우거지와 파, 양념을 넣은 뒤 주문이 들어오면 육수를 붓고 끓인다. 국물이 맑고 맛이 깔끔하다. 일반적인 해장국의 텁텁함이나 탁한 국물과는 사뭇 다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중 노년층이 주 고객인 다른 해장국집과는 달리 청년층이나 심지어 고교생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해장국 스타일로 먹고 싶어 하는 고객을 위해 선지는 따로 삶아두었다가 함께 준다. 선지해장국처럼 먹고 싶으면 여기에 선지를 투하해서 먹으면 선지 해장국으로 변신한다. 먹을수록 해장국의 맛과 기능에 갈비탕 맛을 합친 새로운 형태의 해장국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갈비탕과 달리 된장이 들어가고 마늘과 생강이 많이 들어간다.
이름처럼 해장용으로 먹을 때는 청양고추를 넣어 얼큰하게 먹으면 좋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양념장(다대기) 1/3스푼, 청양고추 1/2스푼, 깍두기 국물 2국자를 풀어서 먹으면 최고의 해장국이 된다. 본격적으로 해장을 원하는 손님을 위해 얼큰하게 양념하고 양을 푸짐하게 만든 술국(8000원)도 있다.
예전 시골의 여름용 붙박이 반찬이었던 짠지가 찬으로 나오는 점도 신선하다. 개운하고 간간한 맛을 내는 짠지는 웬만한 동치미보다 훨씬 맛이 낫다. 따로 써 붙여놓지 않았지만 이 집은 밥이든 국물이든 반찬이든 얼마든지 먹고 싶은 만큼 더 먹을 수 있다. 하루 24시간 영업을 한다.
마음에 썰물 왔을 때, 부드럽게 채워주는 한치회 <향원>
수원 토박이 원문식(70) 씨가 3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한치 횟집이다. 한 때는 유명 인사나 연예인들이 수원에 왔다가 꼭 들렀던 명소였다. 참치로 큰돈을 벌기도 했는데 가짜 참치 사건의 여파로 모든 참치 집들이 서리를 맞으면서 이 집도 그 피해를 봤다. 지금은 메뉴가 오로지 한치회 한 가지뿐이다. 주방장 종업원들을 다 내보내고 지금은 원씨 부부가 단출하게 운영하고 있다.
- 향원의 한치회
주인장 원씨에 따르면 한치 계열 생선은 한치, 갑오징어, 오징어 순으로 맛이 좋다고 한다. 오징어는 많이 먹으면 속이 부대끼지만 한치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횟집의 위치가 한치의 산지가 아닌 이상 급랭시킨 한치를 받아쓴다. 원씨가 오랫동안 한치회를 만들면서 경험해보니 제주산 한치는 살이 두껍고 강원도 한치는 살이 얇다고. 가급적 씹는 느낌이 좋고 맛이 부드러운 강원도 한치를 쓴다고 한다. 한치회는 2인분 기준으로 3만5000원, 한치무침은 3만원이다.
한치회는 양념 맛이 좌우하고 양념 맛은 장맛이 좌우한다. 직접 담가 제대로 익힌 고추장을 쓴다. 여기에 오이, 배, 쑥갓, 고추, 미나리, 참깨, 상추, 깻잎 등 10여 가지 재료를 넣고 천천히 비벼서 먹는다. 특히 배채를 넉넉히 넣어 시원하고 속이 편하다. 회를 싫어하는 사람도 한치회무침은 좋아한다. 달달한 장맛과 부드러운 한치의 맨몸이 혀에 감길 때마다 바다를 떠올리게 만든다.
덧거리로는 메추리알, 브로콜리, 썬 오이, 삶은 번데기가 나온다. 콩나물국도 아주 시원하다. 이 집에 오래 출입한 주당들은 말린 복어 지느러미를 넣고 불을 붙인 사케를 한치회에 곁들여 먹는다. 한 잔에 7000원이다. 빼곡히 쌓인 접시, 술잔, 주전자 등 기물과 낡은 바닥, 빛바랜 탁자와 의자가 복고적 냄새를 풍긴다. 시간이 몇 십 년 전에서 멈춘 듯한 실내 분위기다. 부담 없이 호젓하게 술잔을 기울이기에 좋은 집이다.
단맛 쓴맛 골고루 맛봤던 왕년 시절을 구수하게 풀어내는 칠순의 주인장 원씨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안줏거리다. 실내에선 흡연도 가능하다. 애연가들에겐 천국과 같은 곳이다. 허허로운 만추, 마음에 썰물 같은 느낌이 들 때 들러볼 것을 권한다.
신선육으로 만들어 잡내 없고 촉촉한 족발 <사또통족발>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훌륭한 음식의 첫째 조건은 좋은 식재료다. 요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족발은 특히 돼지의 다리 부위만 사용하기 때문에 위생적이고 신선한 원육 확보가 중요하다. 이 집은 전일 도축분 국내산 돼지 앞다리와 뒷다리로 족발을 만든다. 다소 구매가격은 비싸지만 잡내가 없고 조직감이 뛰어나 주인장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2시간 피를 빼고 세척한 뒤 육수에 삶는 과정은 다른 족발 집과 큰 차이가 없다. 아무래도 족발의 품질은 육수에서 판가름 나게 마련이다.
- 사또통족발의 족발
이 집 육수는 특별할 게 없는 점이 특별하다. 다른 집은 이런저런 한방 재료나 향료를 넣어 만든다. 그런데 주인장에 따르면 이 집은 달랑 채소와 과일 4가지만 넣는다고 한다. 게다가 웬만한 족발 집이면 기본적으로 넣는 캐러멜이나 계피도 넣지 않는다. 그래도 족발의 제 색깔을 낸다. 오직 네 가지 재료의 황금 비율과 적절한 불 조절만으로 이런 족발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색깔뿐만이 아니다. 돼지 족발 특유의 잡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여기에 돼지 냄새를 잡기 위해 다른 향료나 재료를 넣지 않기 때문에 부수적인 냄새나 향기도 없다. 돼지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보통 다른 족발 집에서는 각종 방향제나 제향제를 동원하는 바람에 돼지 냄새는 나지 않지만 오히려 돼지 냄새를 잡은 재료의 향이 식감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족발도 미리 만들어놓지 않고 당일 팔 물량만 만든다. 오후에 족발을 삶아 매일 5시쯤이면 손님에게 내놓는다. 바로 삶아내기 때문에 식감이 촉촉하고 보들보들하다. 짜지 않은 적당한 간에 담담하고 라이트한 맛 때문에 대학생 등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고 있다.
사또족발은 양에 따라 2만5000원, 2만2000원, 1만9000원의 세 가지. 미니 족발은 1만5000원짜리와 1만원짜리 두 가지가 있다. 매운 맛을 원하는 손님을 위한 양념불족발(大 2만8000원, 中 2만5000원, 小 2만2000원)도 있다. 족발을 먹고 식사까지 마무리하려는 손님을 위해 막국수(6000원)와 쟁반국수(大 1만5000원, 中 1만원)를 준비했다.
이 집은 테이블 4개에 부부가 운영하는 아주 작은 족발 집이다. 하지만 매우 깔끔하고 두 사람이 위생에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메뉴판에 박힌 ‘맛있는 족발만 먹기에도 인생은 짧다’는 문구에 주인장의 음식 철학이 들어있는 듯하다.
* <청학동 칼국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79 (031)244-5088, 바지락칼국수
* <육미옥>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504-4 (031)255-8040 , 불고기, 평양냉면, 산채비빔밥
* <유치회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340-7 (031)245-2880 , 해장국
* <향원>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285-3 (031)244-3161 , 한치회
* <사또통족발>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237-7 (031)242-8254 , 족발
<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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