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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충청북도

충북 괴산, 초록 두른 절집, 연두빛 계곡에서 마음을 씻다

by 혜강(惠江) 2013. 5. 16.

 

충북 괴산

 

초록 두른 절집, 연두빛 계곡에서 마음을 씻다

 

문화일보 박경일 기자

 

 

▲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의 이른바 ‘쌍둥이 마애불’. 정식 이름은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이다. 법화경에 나오는 다보여래와 석가여래의 설화를 반영해 고려시대에 만든 마애불인데, 함께 새겨진 다보여래가 석가여래의 설법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역할을 한단다. 그 풍모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마애불은, 한적한 도로변에 있어 새재 자전거길을 넘어온 이들이 잠시 멈추고 둘러볼 뿐이다.

 

 

 ▲  비로자나불을 모신 각연사.

 

 

  '회화나무 괴(槐)’에 ‘뫼 산(山)’. 충북 괴산을 한자로 쓰면 이렇습니다. 실제로도 회화나무며 느티나무가 많긴 하지만, 괴산이 그 이유만으로 이런 한자 이름을 가진 건 아닐 겁니다. ‘회화나무 괴(槐)’자는 어떤 분야에서 으뜸이라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조선시대 최고 행정기관인 의정부를 ‘괴부(槐部)’라 했고, 왕궁을 ‘괴신(槐晨)’으로, 승정원을 ‘괴원(槐院)’으로 불렀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무엇이든지 모두 으뜸’까진 몰라도, 괴산이야말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의 손꼽히는 여행 명소라는 데는 흔쾌히 동의합니다. 구름이 걸리는 산자락은 첩첩이 이어지고, 그 산자락이 품은 계곡에는 수정 같은 물이 넘쳐 흐릅니다. 푸른 산과 맑은 물을 두른 마을 어귀에는 수백 년의 시간을 거느린 아름드리 거목 한 두 그루쯤 멋지게 서 있습니다.

  괴산이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이즈음에 딱 맞는 여행지인 건, 그 이름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불교의 향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괴산의 ‘괴(槐)’자는 또 한편으로는 탑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불탑이나 사원이란 종교적인 뜻이 스며있는 것이지요. 이런 이름 뜻에 걸맞은 오래된 마애불과 사찰이 괴산 땅 곳곳에 있습니다. 석벽에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새겨진 쌍둥이 마애불이 그렇고, 유독 입술이 붉은 석불상을 모신 각연사나 1000년에서 꼭 10년이 빠진 990년 묵은 느티나무가 지키고 선 공림사도 그렇습니다.

  괴산에는 또 불가의 깨끗한 정신처럼 맑은 물이 흘러넘치는 계곡이며 강줄기가 곳곳에 있습니다. 유연한 굽이를 그리며 흘러내리는 괴강과 예부터 이름난 명소인 화양계곡과 선유동계곡, 여기다가 쌍곡계곡과 갈론계곡을 더합니다. 괴산에는 그 물길을 보며 걷는 이름난 도보코스 ‘산막이옛길’이 있습니다. 그 길에 이어붙여 갈론계곡과 마을을 지나는 도보코스 ‘충청도 양반길’이 최근에 새로 놓였습니다. 충청도 양반길은 바닥이 훤히 비치는 맑은 계곡의 물길을 따라가는 길이기도 하고, 숲이 수면에 드리운 진초록을 발아래 두고 산허리를 걷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 길의 절반쯤은 문경새재 넘어 옛 선비들이 드나들던 길이었으되, 나머지 절반쯤은 괴강변의 강변마을 주민들이 나무하러 드나들던 길이었으니 ‘양반길’이란 이름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렇다 해도 ‘충청도 양반’이란 이름에서 그 길이 ‘느린 팔자걸음’쯤이 적당하다는 것쯤은 쉽사리 짐작이 가실 겁니다.

  만산(萬山)이 다 초록으로 짙어가는 이즈음에 괴산으로의 여정을 권합니다. 어지러운 저잣거리에서 사는 이들에게 수행이란 게 뭐 별 게 있겠습니까. 그저 일상의 어깨 위에 올라탄 것들을 잠깐이라도 내려놓고 가볍게, 그러면서도 느리게 걷는 일. 그것으로 ‘사는 기쁨’이 별 게 아니라는 깨달음에 가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걷는다는 것 그대로 ‘마음닦음’이 되는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  이른 아침 운무가 걸린 괴산 달천변의 풍경 

 

▲ 지난해 태풍으로 넘어진 괴산 삼송리의 왕소나무.(사진 왼쪽) 잦은 봄비로 명주실처럼 곱게 쏟아지고 있는 수옥폭포.

 

# 화려한 치장 없어도 정갈한 각연사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이다. 충남 괴산에 진의귀라는 선비가 살았다. 그가 괴산의 청안 땅 명승을 이르는 ‘청안팔경’에 시를 지어 얹었다. 시는 글로 썼으되, 마치 붓으로 그려둔 그림을 방불케한다. 짐작건대 그가 붓을 들었던 때는 아마 계절이 여름으로 넘어가던 요즘같은 때였으리라. 

 

 옛 절은 적막하나
 층층마다 산을 대하고 있고
 숲 사이 물길 안개 속에 있는데
 낮이 고요하니 이끼낀 문 닫혔어라
  …(중략)…
 선 탑에 해지도록 세상 일 생각하니
 산 빛은 푸르러 옷을 적시려 하네. 

  괴산 땅에는 그의 시 구절대로 숲 사이로 안개에 싸인 물길을 짚어 들어가는 옛 절이 몇 곳 있다. 이쪽 산의 느슨하게 풀어진 자락과 저쪽 산의 비슷한 자락이 만나서 이루는 굽이를 족히 10리쯤 따라 들어가 만나는 절집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괴산의 각연사다. 창건시기를 따지면 1500여 년 전인 신라 법흥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깊은 절집이다. 법주사보다 30년쯤 앞서 주춧돌이 놓인데다 주위를 두른 산을 병풍으로 삼은 자리도 명당이다. 하지만 절집의 위세로 보자면 거대한 석불과 처마를 잇댄 법당들로 즐비한 법주사에는 못 미쳐도 한참은 못 미친다. 각연사에는 고작 대여섯 개 남짓의 전각만 헐겁게 앉아있을 뿐이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매달아 둔 연등마저도 한가할 정도로 띄엄띄엄하다.


  각연사에는 웅장한 불전도, 화려한 치장도 없다. 대신 각연사를 가득 채우는 건 맑음과 정갈함이다. 대웅전과 비로전, 요사체 앞마당은 가지런한 빗질 자국으로 정갈하다. 좀처럼 어지러워질 일 없는 산중 절집 마당에서의 빗질이란 더럽힘을 씻고자 함만은 아닐 터. 빗질 소임을 맡은 스님에게는 쓸어낸 자리를 또 쓸어내는 일은 그것 자체가 수행이었으리라. 그러니 빗질 자국 선명한 마당에서 곧 절집이 나아가는 ‘수행의 정신’을 본다.

  각연사에서는 대웅전보다 비로전이다. 비로전에는 화강석을 쪼아 만든 비로자나불이 모셔져있다. 유독 입술이 붉은 비로자나불은 괴산이 가진 두 개의 보물 중 하나다. 불상과 함께 비로전 앞 마당의 아름드리 보리수나무도 눈여겨 봐둬야 할 것이다. 보리수는 불가에서 깨달음의 나무로 불린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그늘 아래서 깨달음을 얻어서 그렇다. 이즈음 각연사 보리수나무에 연초록의 새잎이 돋으면서 드리우는 그늘이 하루하루 넓어져 가고 있다.

# 느티나무 군락 속의 공림사

  낙영산 아래 공림사도 못지않은 절집이다. 각연사만큼은 아니지만 신라 경문왕 때 지어진 것이니 그 내력이 깊다. 경문왕이 나라의 스승(국사·國師)의 지위를 내렸으나 이를 사양하고 물러나서 초가를 짓고 수행에 전념한 자정선사가 창건했다. 나라의 부름을 거절했지만 그의 덕을 높이 산 왕은 초가 자리에 절을 세우고 친히 공림사란 이름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공림사에는 유독 오래된 느티나무가 많다. 절집은 뒤로는 군데군데 드러나는 낙영산의 흰 암릉을 두고, 앞으로는 우람하게 가지를 뒤튼 늙은 느티나무 군락을 품고 있다. 절집의 경내에도 범상찮은 느티나무가 서 있다. 그중에서도 종무소 곁에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 가장 우람하고 크다. 수령이 1000년에서 딱 10년이 빠진 990년이라는데, 그만한 시간의 깊이가 믿기지는 않지만, 촛농이 흘러내리는 듯한 밑동의 위용이 대단하다.

  공림사는 잘 가꿔진 절집이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절집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고운 잔디를 깔아 두었는데, 마당 복판에 1993년에 세운 흰 빛의 오층짜리 적광탑이 세워져 있다. 두 마리 사자가 호위하고 있는 탑은 묵은 맛 대신, 탑면마다 가득 새긴 여래와 보살의 섬세하고 화려함이 돋보인다. 대웅전 옆에는 소박한 석가탑을 세워 적광탑의 화려함을 단정함으로 지그시 누르는 형국이다. 적광탑 주변은 지금 색색의 연등으로 화려하게 불붙어있다.

  각연사와 공림사를 앞세우느라 뒤로 밀리긴 했지만, 사실 괴산에서 불법의 자취를 만나겠다면 ‘쌍둥이 마애불’을 맨 앞으로 둬야 하리라. 쌍둥이 마애불, 정식 명칭으로는 ‘원풍리 마애이병불좌상’이다. 이름이 좀 어렵지만, 뜻을 알고보면 쉽다. 원풍리는 마을이름. 마애(磨涯)는 ‘바위 벼랑에 새겼다’는 뜻이고, 이병(二倂)은 ‘둘이 나란히 섰다’는 얘기다. 불좌상이 ‘앉아있는 부처’란 건 다들 아는 일이겠다.

  경북 문경에서 작은새재(소조령)를 넘어 괴산으로 향하는 길가의 암벽. 거기에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눈을 지그시감고 어깨를 맞대고 앉아있는 마애이불병좌상이 있다.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이야 전국 곳곳에 흔하지만, 석가와 다보가 함께 새겨진 쌍둥이 마애불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그렇다면 두 불상을 한 바위에 나란히 새겨 세운 뜻은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불국사 마당에도 석가탑과 다보탑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다보는 석가 이전의 과거불. 석가가 대중에게 설법할 때 다보는 탑으로 솟아서 그 말이 진실하고 영험하다는 걸 증거한단다. 다시 말해 다보는 이른바 석가의 ‘보증인’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쌍둥이 마애불 앞에서 기원의 손을 모은다면 속된 말로 ‘기도발’이 좀 더 잘 듣는 건 아닐까.


# ‘종합선물세트’ 같은 도보코스

  괴산에서는 불가의 깨끗한 정신처럼 맑은 물이 흘러넘치는 강과 계곡이 곳곳에 있다. 유연한 굽이를 그리며 흘러내리는 괴강과 오래 전부터 이름난 화양계곡과 성유동계곡, 여기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못지않은 풍광의 쌍곡계곡과 갈론계곡도 있다. 강도 그렇지만 계곡은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는 여름이 제격이다. 하지만 요즘의 정취도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물에 몸을 담그기에는 한참 이르지만, 눈부신 신록의 그림자가 맑디맑은 옥수(玉水)에 드리우는 정취는 지금이 아니고서는 만날 수 없다. 산 아래의 신록은 때를 지났지만, 서늘한 계곡 속의 나무들은 이제 한창 연초록 물이 오르고 있다.

  괴산에서 이런 경과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두루 들러보는 코스를 추천한다면, 단연 지난 3월 말에 조성해 놓은 도보여행 코스 ‘충청도 양반길’이다. 괴산에는 기왕에도 명소가 된 도보코스 ‘산막이 옛길’이 있다. 산막이 옛길의 물 건너편으로 계곡과 강변을 따라 이어놓은 길이 충청도 양반길이다.

  산막이 옛길은 지금은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은 길이 되고 말았다. 우선 물 위에 울릉도와 독도라며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악한 섬을 띄워놓고는 그 위에 소나무를 심어놓은 무신경이 참 거슬린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돈 들여 누구든 손가락질을 하는 흉물을 만든’ 셈이다. 거기다가 길 끝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식당들이 국수 한 그릇 말아내곤 6000원을 받아 챙기는 상혼이 극성이다. 괴산댐 안의 길지 않은 코스를 도는 자그마한 유람선의 승선 요금을 1만2000원씩이나 받는다는 것도 마뜩잖다.

  하지만 이제 갓 조성한 충청도 양반길은 아직 인적이 드물고 때도 묻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직 많이 딛지 않아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흙길의 탄성도 살아있다. 순환해 제자리로 돌아오는 전체 코스는 길게는 6시간, 짧게 돌면 4시간쯤 걸리는데, 갈론계곡을 따라 오르는 구간과 괴산댐의 선바위 일대의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갈론계곡은 괴산의 다른 계곡에 비하면 수량도 적은 편이고 규모도 작지만, 마치 잘 꾸며진 정원처럼 여겨질 정도로 아기자기한 맛이 그만이다. 선바위 일대는 우뚝 솟은 바위와 신록을 뿜어내는 주변의 신록들이 수면 위로 도장처럼 찍히는 모습이 압권이다. 그 길을 충청도 양반처럼 뒷짐을 지고 소요하듯 느릿느릿 걷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신선 되려고…’ 욕망 품은 선교의 명소

  괴산에서는 불법만 살필 일은 아니다. 괴산은 ‘선교(仙敎)’의 명소이기도 했다. 신선이 되기 위한 기도와 수련. 그게 선교의 요체였다. 신선이 되고 싶어했던 인간의 욕망은 훗날 도교로 발전했지만, 민간에서는 선교로 맥을 이어 내려왔다.

  괴산의 선유동 계곡이야말로 선교의 명소였다. 선유구곡의 명소의 지명에는 망선대, 은섬암 등 ‘신선 선(仙)’자가 빠지지 않는다.‘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칠성대와 학소대가 있는 선유산에서 도사 최삼수와 남궁두가 수련했다고 전한다. 남궁두는 속리산을 단숨에 뛰어넘고자 여기서 수련을 했고, 죽지 않고 살겠다는 일념으로 최항도 이곳을 찾아들었다. 번개처럼 내달리는 축지법을 익히려던 박지화도 여기서 도를 닦았다고 전한다. 꼭 선유동뿐만 아니다. 연풍면의 수옥폭포도 흰 수염의 신선이 함께 그려진 수묵화 속의 풍경을 방불케 한다.

  선교에 몰두했던 이들이 아무리 치열하게 수련했던들 신선이 됐을리는 만무하고, 선풍(仙風)도 이미 끊어진지 오래다. 대신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온 거대한 나무들에서 인간이 꿈꾸던 불사의 꿈을 본다. 괴산 오가리에는 삼괴정이 있다. 느티나무 거목이 세 그루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하나는 죽고 두 그루가 여태껏 성성하게 남아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다. 두 그루 중 아래쪽 큰 것의 수령은 900년 남짓. 인간의 수명으로 본다면 그 시간의 깊이는 영생이나 다름없다.
 

 

  이쯤에서 꼭 찾아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 지난해 여름 태풍 볼라벤에 허망하게 쓰러진 왕소나무다. 어마어마한 둥치를 뒤틀며 자라 ‘용송(龍松)’이라고도 불렸던 나무인데 태풍과 인간의 무관심으로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회생을 위한 뒤늦은 극진한 간호를 받고 있지만, 두 개의 가지 중 하나는 이미 죽었고, 나머지 한쪽 가지도 솔잎 끝이 갈색으로 타들어 가고 있다. 잔가지 끝에 새 눈이 희미하고 나오긴 했지만, 새잎이 아직 돋지 않고 있다. 과연 누운 채 한쪽 가지라도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그 나무 앞에서 오래된 것들의 무게를 본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지탱해왔더라도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언제고 넘어져 사라지고 말 것들의 무게를….

 

 

 

 

괴산 가는 길, 묵을 곳 먹을 것

 

 

괴산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증평나들목으로 나가 510번 지방도로를 타고 증평방면으로 향하다 34번 국도로 갈아타고 가면 괴산군에 가닿는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안성분기점에서 평택-제천 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대소 갈림목에서 중부고속도로로 갈아타면 된다.  괴산으로 들고 나는 길에서 별다른 목적지 없이 괴강의 물길을 따라 즐기는 드라이브가 제법 운치 있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괴산에는 리조트나 콘도 등은 없다. 읍내에 그나마 깨끗한 모텔이 두 군데쯤 있지만, 가족단위 여행에는 권하고 싶지 않다. 대신 괴산읍에서 가까운 쌍곡계곡 쪽에 맑은 계곡물을 끼고 있는 운치 있는 숙소들이 제법 있다. 본격 피서철이 아니라면 따로 예약을 하지 않고도 쉽게 방을 구할 수 있다. 예약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조령산 휴양림(043-833-7994)이 가장 추천할 만한 숙소다. 괴산에는 괴강의 물길이나 계곡 주위에 텐트를 칠 수 있는 강변오토캠핑장들이 곳곳에 있다. 캠핑장 중에서는 달천의 물길을 끼고 있는 괴산읍 능촌리의 자연애캠핑장(010-5465-5500)을 추천한다.

  괴강을 끼고 있는 괴산은 민물매운탕으로 유명하다. 그중 괴강매운탕(043-832-2974)이 대표적인 곳. 빠가사리와 쏘가리, 잡고기 매운탕 등을 낸다. 메기조림과 모래무지도 조림으로 내놓는다. 인근의 괴산매운탕(043-832-2838)도 쌍벽을 이루는 맛집이다. 새재 3관문 쪽의 ‘조령산묵밥’(043-833-5689)은 묵밥과 청국장, 산채비빔밥 등으로 알려진 곳이고, 조령산휴양림휴게소식당(043-833-5689)은 두부와 닭백숙으로 유명한 곳이다.> 2013. 5. 15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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