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지렁이를 알아가다
- 서귀옥
얼마나 천천히
몸을 대보는지요 아스팔트 위에서
겉돌았던 생을 자책하듯 틈새기 찾으며
보도블록들이 공중에 쏟아지지 않게 꽉 붙들고
누가 몰래 이 별의 불룩한 자루 속을 뒤지나
누가 자꾸 이 별의 아픈 데를 헤집나 알아내겠다는 듯
민들레를 펼쳐놓고 안테나 뽑고 있네요
빗물에 둥둥 뜬 노란 암호를 풀면서
웅덩이로 풍선을 불면서
자전거바퀴에 감긴 빗방울 체인을 휙휙 채면서
스며들기 좋은 데를 기웃거리네요
이 별의 마디마디 흠집이 저리 깊었나, 다 읽히고 마네요
저러다 밟히면 어쩌나 싶어도 흙투성이로 뒹굴고 차이는 일들이
이 바닥을 알아가는 일이라는데요
진창에 바람 불어넣어 씨앗을 터뜨리기도 하고
꼬챙이 휘두르며 꽃밭을 들쑤시다가 부러지기도 하는데요
하긴 차갑게 스며들지 않고서
어떻게 이 별에 다시 태어날 수 있겠어요
태양이 높이 튀어 올랐다 내려오는 사이
뜨겁던 꽃이 식어버리고
버드나무에 앉은 매미 울음소리가 홀쭉해지고
차갑게 얼어붙은 처마의 톱니 날 풀리는 것들이 모두
별의 깊은 데에 몸 대보는 일이지요
흙빛을 닮아가기 위해 몸속 거친 끈 하나
풀어놓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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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신인문학상] 시 당선자 및 심사평
[시 부문 당선소감] 서귀옥
“이제 할 일은 독창성·신선함 찾기”
한 사내를 사랑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이다. 영화를 본 날부터 나는 키팅과 시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사내를 보듯 대놓고 시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을 다른 시각으로 봐라, 그것이 틀리고 바보스러울지라도 시도를 해봐라!”라며 책상 위에 올라서는 그를 보고,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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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다운 기발한 발상·기법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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