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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전라북도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 백제 무왕이 꿈꿨던 또 다른 백제

by 혜강(惠江) 2012. 5. 5.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

백제 무왕이 꿈꿨던 또 다른 백제

 

글, 사진 문일식(여행작가)

 

 

 

미륵사지 전시실 모형도

 

 

  백제의 고도 하면 충청남도 공주와 부여를 떠올린다. 그곳에는 백제의 도시라 불릴 만큼 다양한 역사와 문화재가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익산 역시 백제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공주나 부여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익산은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장이다. 백제 무왕이 누구던가. 신라의 선화공주와 국적을 초월한 전설 같은 순애보를 남긴 왕이다.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으로 대표되는 백제의 또 다른 고장, 익산에 묻혀 있는 백제 이야기를 만나보자.


 

미륵사지를 둘러보는 가족

 

미륵사지를 둘러보는 가족



켜켜이 쌓인 시대의 흔적, 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에는 백제의 궁궐터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 있다. 왕궁면 왕궁리다. 왕궁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지명이 아닐까? 왕궁리에는 사적 제408호로 지정된 익산 왕궁리 유적이 남아 있다. 무왕 때 천도한 백제의 왕궁이었으며,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는 왕궁터에 사찰을 세운 독특한 유적이다.  

 

  익산 왕궁리 유적의 발굴조사는 1989년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그동안 동서 245m, 남북 490m에 이르는 왕궁의 규모와 담장뿐 아니라 왕궁 내부의 건물지와 석축, 백제 최고의 정원 유적, 금과 유리를 가공·생산했던 공방터, 화장실 유적이 발굴되었다.


 

왕궁리 유적 전시관과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왼쪽/오른쪽]왕궁리 유적 전시관의 모습 / 국보 제289호로 지정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왕궁리 유적의 금당터

 

왕궁리 유적의 금당터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화장실 유적이다. 삼국시대 최초의 화장실일 뿐 아니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모두 3기의 화장실터 가운데 가장 큰 곳은 길이 10.8m, 폭 1.8m에 이른다. 화장실 유적에서는 회충, 편충 등 기생충 알과 함께 독특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일명 화장실 뒤처리용으로 불리는 뒷나무, 즉 측주다. 

 

  1,300년 전 백제인들은 화장실에서 종이 대신 측주를 사용했는데, 이 측주는 길이가 25~30cm 정도이며, 끝부분이 둥글고 매끄럽게 처리되어 있다. 측주를 사용해 뒤처리를 하는 모습은 각자 상상에 맡긴다.


 

화장실 유적을 재현한 디오라마

 

왕궁리 유적에서 발굴된 화장실 유적을 재현한 디오라마

 


   왕궁리 유적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다. 국보 제289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사찰이 언제 세워졌는지 알려진 바가 없어 탑이 세워진 시기도 의견이 분분하다. 시대가 어떻든 8.5m에 이르는 위풍당당한 이 석탑은 왕궁리 유적을 사방으로 돌아가며 둘러봐야 제맛이다.  

 

  특히 서편으로 해가 떨어질 때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석탑의 실루엣이 가히 장관이다. 문의 : 왕궁리 유적전시관, 063-859-4631, wg.iksan.go.kr


 

왕궁리 오층석탑

[왼쪽부터]소나무 사이로 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 왕궁리 오층석탑의 실루엣 / 흐드러진 벚꽃 사이로 보이는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백제의 꿈, 새롭게 태어나는 익산 미륵사지  

 

  익산 미륵사지는 어느 나라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3탑 3금당의 가람 배치를 하고 있는 백제 최대의 가람이며,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가장 큰 석탑이다. 익산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 때 창건한 이후 조선시대까지 사세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만 하더라도 《조선왕조실록》 태종 7년에 여러 고을의 복을 빌던 절을 명찰로 대신 지정하는 기록이 보이지만, 조선 정조 때의 문인 강후진의 《와유록》에 나오는 <유금마성기> 편에 "미륵사는 100여 년 전 폐허가 됐으며, 7층으로 남아 있는 석탑의 옥개석 위에 사람이 올라가 낮잠을 즐긴다"라는 내용이 나오는 걸로 봐서 미륵사의 폐사를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미륵사지 동탑

 

복원된 미륵사지 동탑의 전경

 


   익산 미륵사지는 오랜 세월 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일제강점기 때인 1915년 보수와 함께 실측이 이뤄졌다. 하지만 시멘트를 덕지덕지 바른 허접한 보수 공사에 불과해 오히려 흉측한 몰골로 남게 되었다. 그 후 익산 미륵사지는 1974년 동탑지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1980년부터 미륵사지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1992년 미륵사지 동탑 복원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해체된 석탑 부재와 미륵사지 석탑

 

[왼쪽/오른쪽]해체된 석탑 부재 뒤로 미륵사지 동탑과 당간지주가 보인다. / 가설 덧집 내부에서 본 해체된 미륵사지 석탑



   2001년에는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복원이 결정되었다. 복원된 동탑 옆에 서 있는 커다란 가설 덧집이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 복원하는 공간이다. 석탑을 해체하는 데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해체가 마무리될 무렵 귀중한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석탑 1층 심주석 중앙의 사리공에서 발견된 금제 사리장엄구와 금제 사리봉안기가 그것이다. 

 

  특히 금제 사리봉안기에는 백제 왕후가 미륵사를 창건하고 탑을 세웠다는 기록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미륵사의 창건 배경과 창건자, 건립 연대 등이 명확하게 규명되었다. 하지만 늘 사실처럼 붙어 다니던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은 거기에 없었다. 금제 사리봉안기에 따르면, 미륵사 창건을 발원한 사람은 좌평인 사택 적덕의 딸이자 백제 무왕의 왕후이기 때문이다.


 

미륵사지 당간지주와 동탑

 

미륵사지 당간지주와 미륵사지 동탑

 


  익산 미륵사지를 보려면 먼저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1997년에 개관한 이 전시관에서는 창건에서 폐찰까지 미륵사지의 역사뿐 아니라 1만 9,000여 점에 이르는 출토 유물 가운데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금제 사리장엄구와 금제 사리봉안기는 실물 크기로 복제해 전시하고 있으며, 2000년에 출토된 금동향로(보물 제1753호)도 만날 수 있다. 

 

  미륵사지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도록 관람로를 조성해 3탑 3금당의 가람 배치, 2기의 당간지주, 연꽃무늬를 새긴 석등받침과 지붕돌인 옥개석 등 미륵사의 옛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흔적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문의 : 미륵사지 유물전시관 063-290-6799



 

금동향로와 유물전시관 내부

[왼쪽/오른쪽]미륵사지에서 발굴된 금동향로(보물 제1753호) / 미륵사지 유물전시관 내부

 

 

 

백제와 고려를 대표하는 2기의 석불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은 익산을 대표하고도 남지만, 놓칠 수 없는 2기의 석불이 있다.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과 익산 고도리 석가여래입상이 바로 그것. 백제와 고려를 대표하는 석불로 오랜 역사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두 석불은 각각 보물 제45호, 제46호로 나란히 지정되었다.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미륵사지에서 함열 방면으로 4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석불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 이 석불은 임진왜란 때 이곳을 거쳐 여산으로 가려던 왜군에게 영험함을 보이다 목이 달아났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석불의 머리는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인자한 부처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둔중한 스님의 모습이다. 하지만 3m가 넘는 광배와 굵직하게 새겨진 광배의 다양한 문양이 자못 볼 만하다.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과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잇는 7세기 무렵의 백제 석불이다.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석불사 대웅전에 모셔진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왕궁리 유적 인근에는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2기의 석불이 200m 정도 거리를 둔 채 서로 바라보고 있다. 두 불상은 각각 남자와 여자라고 전해지는데, 평소에는 바라만 보고 있다가 음력 12월에 옥룡천이 얼어붙으면 만나서 그동안 못다 나눈 정을 나누다 새벽닭이 울면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두 석불은 봉분 위에 세워져 있으며, 쓰러져 있던 것을 조선 철종 때 익산 군수가 세웠다고 한다. 동쪽 석불 옆에는 석불중건기가 함께 세워져 있다.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왼쪽/오른쪽]갓을 쓰고 있는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 2기의 석불이 200m 거리를 두고 서로 바라보고 있다.

 


 

여행정보


1. 찾아가는길

 

* 자가용

호남고속도로 → 익산TG → 우측 방면 무왕로(720번 지방도) → 금마사거리에서 우회전 → 금마면 소재지에서 미륵사지 방면 좌회전(722번 지방도) → 익산 미륵사지
호남고속도로 → 익산TG → 우측 방면 무왕로(720번 지방도) → 금마사거리에서 좌회전 → 궁성로(약 1.7km) → 왕궁리 유적

 


* 대중교통

서울→익산 :
센트럴시티터미널(02-6282-0114)에서 매일 38회(05:30~23:20), 2시간 50분 소요
용산역-익산역(KTX 매일 25회, 새마을호 매일 13회) 운행
대전→익산 : 대전복합터미널(1577-2259)에서 매일 4회(8:10, 9:20, 12:50, 18:10), 1시간 20분 소요 / 서대전역-익산역(KTX 매일 25회, 새마을호 매일 13회) 운행
부산→익산 : 동부(노포동)버스터미널(1688-9969)에서 매일 7회(07:30~19:00), 3시간 30분 소요

※ 익산 미륵사지로 가려면 평화삼거리 또는 역전 정류장에서 41번, 60번 버스를 타면 된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같은 정류장에서 65번 버스를 타면 된다.

 


2. 맛집

미륵산순두부 : 금마면 기양리 / 순두부 / 063-836-8919
진미식당 : 황등면 황등리 / 한우육회비빔밥 / 063-856-4422
한일식당 : 황등면 황등리 / 한우육회비빔밥 / 063-856-4471
본향 : 신동 / 마약밥정식 / 063-858-1588

 


3. 숙소

익산 비지니스관광호텔 : 인화동 / 063-853-7171

그랜드관광호텔 : 평화동 / 063-843-7777
미륵사자연학교 : 삼기면 연동리 / 063-858-2580
왕궁온천 : 왕궁면 온수리 / 063-291-5000
 

 

<출처> 2012. 4. 25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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