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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충청남도

대청댐과 금강을 걷다

by 혜강(惠江) 2012. 3. 30.

 

대청댐과 금강을 걷다

 

 

청원·대전=글·이영민 기자

 

 

 

 

대청댐 주변‘금강 로하스 해피로드’는 봄날 게으름을 피우며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길가에는 매화·벚꽃이 봄이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강에는 푸른 물결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넉넉한 댐과 고즈넉한 강변 봄날 트레킹의 절묘한 세트

 

 

   애주가로 유명했던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말했다.

 "꽃 속에 앉아 술 한병을 친구도 없이 마셨다. 그런데 들어 올린 잔에 밝은 달이 비치고 그림자까지 더해져 세 사람이 되었다. 달은 본래 술을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내 몸을 따라 할 뿐. 그래도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를 데리고 봄철을 마음껏 즐겨보자."(월하독작·月下獨酌 中)

   이런 정취는 술을 마셔야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봄날 강가를 걸어도 찾을 수 있다. 햇살이 따사로운 강가를 걸으면 이리저리 치고 나가는 봄바람과 말없이 뒤따르는 강물을 만나게 된다.

   봄날 강변 트레킹을 위한 장소로는 대청댐 인근이 제격이다. 충북 청원군과 대전 대덕구가 만나는 대청댐은 비단물길 금강의 고즈넉함과 국내 3대 호수 중 하나로 꼽히는 대청호의 넉넉함이 한 세트를 이루는 곳이다. 여정의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대청댐에서 대청호·금강의 풍경을 크게 살피고 나서, 금강을 따라가며 올망졸망한 강가 풍경을 둘러보는 게 좋다.

 

 

 

대청댐에서 담는 원경(遠景)
 


 

 대청댐에 올라서면 대청호가 보인다. 해의 움직임을 따라 순간순간 변화를 거듭하는 곳이다. 해가 구름 뒤로 돌아가면, 호수는 파랗게 변하고 산에는 그림자가 진다. 하지만 해가 구름 사이로 다시 나오면, 호수는 백지가 되고 산에는 연한 초록빛이 감돈다. 산과 호수가 햇빛에 따라 유채색과 무채색의 영역을 번갈아 주고받는 것이다.

 대청호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금강이다. 매끈한 곡선을 그리며 흘러나가는 강을 따라 나무들도 줄지어 섰다. 누런 잔디밭에는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점을 이루며 달려간다. 풍경은 있지만, 소리는 없다. 대청댐에서 담아내는 원경에는 봄이 더디게 오는 듯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대청댐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강과 호수를 보고 있으면, 갑자기 생겨나더니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거대한 잔물결 덩어리를 보게 된다. 광야를 달리는 100만 대군 같기도 하고, 시커멓게 하늘을 뒤덮고 이동하는 메뚜기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 위를 건너는 바람이 물에 닿으며 그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풍경은 아직 차갑지만, 물을 건너온 바람은 따뜻하다. 봄바람이기 때문이다. 이 봄바람을 두고 가사 ‘상춘곡(賞春曲)’을 쓴 정극인은 “화풍(和風)이 건듯 불어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에 진다”고 했다. 시인 김동환이 ‘산 너머 남촌에는’에서 “‘진달래 향기’ ‘보리 냄새’ ‘호랑나비 떼’ ‘종달새 노래’를 싣고 온다”고 표현했던 남풍(南風)이기도 하다.

 



금강을 따라 만나는 근경(近景)


 대청댐에서 눈에 담은 풍경의 입구는 댐 아래 대청교에서 찾을 수 있다. ‘금강 로하스 해피로드’다. 대청교에서 시작해 용정초등학교까지 약 5.6㎞가 풍경이 가장 뛰어나다. 나무데크로 덮여 있어서 아이들도 함께 걸을 수 있고, 천천히 걸어도 2시간 정도면 끝에 닿을 수 있다. 이 길은 대청호 주변을 걷는 ‘대청 호반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해피로드에 들어서면 물속에 1m 정도 몸을 담근 나무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물살이 거세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수초보다 강건한 나무라 그런 것인지 물속에서도 꼿꼿하다. 가까이서 보니 멀리서 봤을 때 앙상하던 가지에 봄을 기다리는 새싹이 움트고 있다. 신기하면서도 낯설지 않다 했더니, ‘그림 선생님'으로 한국에 잘 알려진 서양 화가 로버트 노먼 로스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던 풍경과 비슷하다.

 풍경이 달라지면 소리도 달라진다. 바닥 나무 데크를 밟을 때마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댐에서 볼 때 점처럼 보였던 잔디 공원의 사람들이 공을 차며 내지르는 함성도 들을 수 있다. 길을 호위하듯 이어진 나무 위에서 새소리도 들려온다. 금강변에서 만난 근경은 이미 봄으로 가득하다.

 길을 따라 가면 볼거리도 풍성하다. 숙종 때 성균관 대제학을 지낸 제월당 송규렴이 만년에 제자를 가르치던 ‘취백정’은 고풍스럽다. ‘금강에서 뱃놀이하다 신선이 된 류씨가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깃든 학선대는 한 폭의 산수화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길을 안내하는 암석식물원과 직접 체험이 가능한 매실농원도 해피로드의 한 부분이다.

 

대청댐 부근 호수에선 여러 개의 선을 볼 수 있다. 댐 산책로에서 다듬어진 곡선을 만나고, 호수 건너편 산에서 구불거리는 능선을 발견한다. 바람이 불 때 호수에 생기는 ‘잔물결 띠’는 자연만이 그릴 수 있는 선이다. 작은 사진은 현암사 입구에서 바라본 대청댐 모습. /염동우 영상미디 어 기자

 

 

더 걷고 싶다면…


  사실 ‘로하스 해피로드’는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라기보다는 봄날 게으름을 피우며 걷는 산책로에 가깝다. 호반길의 1코스인 ‘해피로드’만 걷는 게 아쉽다면 다른 호반길 코스들도 도전해 보자.

  호반길 2코스는 이현동 두메마을에서 계족산성까지 총 14㎞(약 5시간) 구간으로, 여수바위 부근에서 대청호를 끼고 이어진 1㎞ 정도의 숲길이 백미(白眉)다. 이 구간 중간에 있는 마을길은 이른 봄 벚꽃터널을 이뤄 ‘아름다운 전국의 길 100선’에 꼽혔다.

  3코스는 찬샘 마을회관에서 시작해 노고산성과 성치산성으로 꿰는 총 10.5㎞(약 4시간)이다. 이곳은 노고산성에서 바라보는 대청호 경관이 일품이다. 날씨만 좋다면 멀리 충북 보은·옥천·영동의 산봉우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총 8.5㎞(약 2시간 30분)의 4코스는 신상동 폐고속도로에서 시작해 신선바위를 거쳐 고봉산성까지다. 금성마을 입구 호수에 범람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방을 걷는 구간이 가장 운치 있다. 제방을 따라 버드나무가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오리와 백로가 한가롭게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5코스(9㎞·약 3시간)는 호반길 6개 구간 중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출발점인 흥진마을을 나서면 광활한 억새밭과 갈대 터널을 만난다. 이곳에선 가을이면 사람 키보다 크게 솟아오른 갈대와 억새가 바람에 맞춰 군무를 춘다.

 마지막 6코스는 총 11㎞(약 3시간 30분) 구간 대부분이 포장되어 있지 않아, 흙길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그중에서도 ‘전망 좋은 곳’이라는 투박한 간판이 달린 작은 언덕이 가장 유명하다. 이 언덕에 올라 호수의 풍경을 보면 마치 섬에서 바다를 둘러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_여행수첩

 

 

속도로를 이용해 대청댐으로 갈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신탄진 인터체인지로 나와 신탄진 4거리에서 대청댐 방면으로 향한다. 내비게이션으로 주소를 검색하려면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 57번지’ 또는 ‘대청공원 주차장’을 입력하면 된다.

대청댐과 해피로드 주변에는 민물매운탕 음식점들이 많다. 대청댐 입구 오가리에는 과거 대통령들이 청남대에 내려왔을 때 매운탕과 장어구이로 유명한 맛집이 있다. 호반레스토랑(042-931-0815)은 분위기 좋게 스파게티를 맛볼 수 있고, 대청매실가든(042-931-3838)은 각종 오리요리와 직접 담근 매실장아찌를 즐길 수 있다.

대청댐과 금강 줄기를 한 화면에 담고 싶다면 현암사 입구가 좋다. 올해는 추위 탓에 개화(開花)가 늦지만 왕벚나무·산철쭉·백철쭉·청매화가 만개하는 봄풍경은 해피로드의 놓칠 수 없는 사진 촬영 포인트다.

 

 

 

<출처> 2012. 3. 29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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