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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영주 부석사에 내려앉은 가을경치

by 혜강(惠江) 2011. 11. 7.

                                                            

경북 영주

 

부석사에 내려앉은 가을경치

 

 - 금빛 풍경에서 느끼는 무아(無我)의 경지 - 

 

·사진 남상학



* 부석사로 오르는 길은 은행나무 단풍으로 가득하다 *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이며 영남지방의 진산(鎭山)으로 알려진 소백산, 그 소백산 허리를 감돌아 오르는 아흔아홉 굽이의 죽령(竹嶺)은 영남의 3대 관문중 하나로서, 그 옛날 과거길 선비들의 수많은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했다. 

 

 

   * 죽령터널이 뚫려 편하게 갈 수 있지만 가을 정취를 맛보려면 죽령고개를 넘는 것이 좋다.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중턱에 있는 절 하나. 매년 가을이면 이 산사로 가는 길 위 하늘은 샛노란 은행나무로 뒤덮여 부석사를 찾는 이는 정말 행복하다. 구절양장 죽령 너머 풍기를 지나고 순흥 소수서원을 지나 이 땅에서 가장 예쁜 절집 부석사에 이르는 길은 온통 빨갛게 익은 사과밭이다. 불자(佛者)가 아니더라도 이 ‘영남 최고의 사색길’을 누가 마다할 것인가. 부석사로 가는 길에 늘어선 노란 은행나무, 가을햇살을 받았을 때 황금빛으로 빛나는 모습이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 붉은 사과와 노란 은행잎이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 

 

  

  부석사의 매력은 가을에 더욱 돋보여 붉은 물감을 부려대는 단풍으로 유명하다. 환상적인 금빛 은행나무와 조우할 수 있어 운치가 있다. 특히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는 산사 고유의 고즈넛한 멋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이 멋스러움을 만낏할 수 있는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 초조인 의상 이래 그 전법 제자들에 의해 지켜져 온 중요한 사찰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문무왕 16년(서기676년에 창건하고 화엄종을 널리 전했다고 한다. 의상은 676년 부석사에 자리잡은 뒤 입적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법을 이은 법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니 부석사와 의상과는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절로 오르는 길에서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관광객들 *

 


  <송고승전 宋高僧傳〉 의상전(義湘傳)에는 의상과 선묘, 부석사 창건에 관한 설화가 자세히 적혀 있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善達寺) 또는 흥교사(興敎寺)라 불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 부석의 향음(鄕音)으로 보기도 한다.

 

  의상을 부석존자(浮石尊者)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 부석종(浮石宗)이라 하는 것은 이 절의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다. 의상 이후 혜철(惠哲)을 비롯하여 신라 무열왕의 8대손인 무염(無染)과 징효(澄曉) 등 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었다. 만년에 이곳에 머문 원융(圓融)은 대장경을 인쇄했는데 지금 부석사에 전하고 있는 화엄경판은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372년(공민왕 21) 원응(圓應)국사가 주지로 임명되어 가람을 크게 중창했다고 한다. 

 

 

 

* 노랗게 물든 황금빛 은행나무와 단풍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부석사 일주문이 높다 다.


 

  노랗게 물든 황금빛 은행나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부석사 일주문에 다다른다. 부석사로 진입하기 위해 일주문을 넘어서면 숲길이 곧장 사찰로 안내하고 제일 먼저 기적비와 당간지주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부석사 창건과 함께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보물 제256호인 당간지주는 부석사로 들어서는 숲길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 화강석 소재의 당간지주는 높이가 4.25m이며 조각은 없지만 끝 부분의 각을 둥글 게 처리해 두고 앞 뒤 양 측면에 길 게 종선이 양각 처리되어 있어 다소곳한 연인의 느낌을 주고 있는 통일신라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주> 마지(摩旨):부처에게 올리는 밥


   정호승의 시 <그리운 부석사>의 전문이다. 사람은 숙명적으로 사랑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 시인은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서 평생을 앉아 하염없이 사랑에 젖어 그리움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잠시  당간지주를 바라보며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보다가 다시 단풍이 화려한 길을 따라 걸어올랐다.  

 

 

 

 * 부석사 배치도 * 

 

 

  고즈넉한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산책한 뒤에 만나는 부석사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미를 그대로 뽐내고 있다. 부석사 당간지주를 보고 계속 안으로 접어들면 삼층석탑 2기와 요사채가 자리 잡다.

 

  그리고  일직선상에 범종각이 자리 잡고 있다.  계단식으로 언덕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만든 사찰의 주고 때문에 여행을 하려면 처음부터 하나씩 잘 살펴가면서 여행하여야 한다.  특히 천왕문을 지나 아홉 석축을 잇는 계단을 오르면 가을빛을 머금은 절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안양루는 부석사의 주불전인 무량수전의 앞마당에 자라잡은 누각이다. 2층구조에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무량수전과 함께 이 영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안양루는 부삭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옛날부터 많은 선비들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경내 전경과  산봉우리를 보면서 시를 읊었다. 무량수전 앞에  안양문(安養門)을 세웠는데, 안양(安養)은 곧 ‘극락(極樂)’을 일컬음이니, 과연 이 안양루의 안양문을 통과하면 극락세계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인가.  이쯤에서 나는 이문재의 <겨울 부석사>를 떠올려본다. 

 

  먼 길 달려와 축시 읽고 나자  텅 빈 사과밭 문득 보인다, 붉은 것들을 
  익히고 난 나무, 나무들 사이로
  젊어, 부석사 가는 길 
  신행하는 청춘의 이마에 터지는 빛 알갱이들
  폭죽처럼, 시간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렇다면 예서 서 줘야지, 서야지
  배흘림기둥이 되어 버린 중년들 
  축시 후렴은 까맣게 잊고, 숨이 차
  당간지주에서 한 번 쉰 다음 안양루 오르는데 
  아, 거기 삿갓이 먼저 와, 삶의
  삶인 것의 거죽을 확, 벗겨 내고 
  소백산 능선들을 보라, 오래 나무에
  새겨 놓았으니 한 번 보라, 한다 

    - 이문재의 <겨울 부석사>에서

 

 

 


   마치 극락세계를 통과한 양 호흡을 가다듬고 안양루를 통과하면 무량수전(無量壽殿)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부석사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보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는 무량수전을 만나는 기쁨이다. 부석사는 소백산의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 등 연이어진 백두대간의 준봉들을 바라보다가 닿게되는 봉황산, 그 산을 배경으로 두르고 있는 품새가 예사 사찰과는 사뭇 다르다. 무량수전 앞에서 봉화산 쪽을 바라본 풍경. 사찰과 가을 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은 부석사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또한 부석사의 무량수전앞이나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조망은 아주 빼어나다. 그러나 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량수전이 우리나라 옛 문화의 아름다운 한송이 꽃이라는 상징으로 평가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지리와 인문, 자연경관에 관심을 가진 식자들에게 언제나 깊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1916년 해체 보수시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초기에 무량수전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 7년(1358) 적의 병화를 당하여 우왕 2년(1376)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3년(1377) 조사당(祖師堂)이 재건되었다고 적혀 있다. 무량수전의 평면구조는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팔작지붕이며 배흘림(엔타시스)이 뚜렷한 기둥이 받치고 있다. 이 건물 내부에서 볼 수 있는 헛첨차와 각 첨차 밑면의 연화두형수식(蓮花頭形修飾), 주두와 소로의 굽면이 곡면이고 굽받침이 있는 점, 솟을대공 등에 고려시대 주심포 양식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절은 신라 화엄종의 도량(道場)임에도 불구하고 본전인 무량수전에 봉안되어 있는 소조불좌상(국보 제45호)은 서쪽의 서방정토에 계시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주불(主佛)로 모신 것이 특징이다.  높이 278cm, 광배높이 380cm의 이 불상은 우리나라 소조불상 중 가장 크고 오래되는 이 불상으로 모든 법당에서 만나는 불상의 배치와는 달리 동쪽을 향해 앉아 있다.

 

   무량수전 앞에는 석등(국보 제17호)이 있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특히 화사석(火舍石) 4면에 새겨진 도트라지게 새긴 보살상 조각의 정교함은 이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무량수전 서쪽에는 큰 바위, 부석(浮石)이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데서 부석사라는 이름이 연유하였다고 한다.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3층석탑(보물 제249호)과 동부도, 원흥국사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가 자리 잡고 있다. 부석사 3층 석탑은  무량수전 동쪽 언덕 위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높이 526cm.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이 놓여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형식이다. 1960년 석탑을 해체·수리했을 때 3층 옥신에 있는 사리구멍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으나 기단부에서 철제탑·불상파편·구슬 등이 수습되었다.

 

 

 

 

 

  무량수전의 왼편에 삼성각, 주지실, 서부도가 왼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삼층석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자인당, 웅진전, 단하각, 조사당(국보 제19호)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국보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는 조사당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전시관(遺物館展示館)에 보관되어 있으니 여기도 둘러볼 일이다.   


  사찰 앞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경관, 울긋불긋 채색된 가을 풍경을 품안에 끌어안은 모습은 마치 부처님의 온화한 자비심일까? 보는 이의 마음을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했다.

 

 

 

 

 

  매년 가을 이맘때, 영주에 가면 맛과 향이 좋으며 당도가 높아 일명 꿀사과로 불리는 영주사과를 맛볼 수 있다. 영주 사과따기 체험은 부석사의 노오란 은행나무 숲길과 함께 가을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이다. 이번 체험여행으로 찾아가는 농장에서는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나무에서 바로 따서 먹어볼 수 있으며(저농약 재배품종) 현지가격에 구입도 가능하다.

 

 

 

 * 부석사 주차장 위쪽에 조성해 놓은 연못도 볼거리다.  절벽의 물이 낙하하면서 무지개가 생기는 것이 특징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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