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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는 농원' 농장지기 이경복 교장이 일구는 행복

by 혜강(惠江) 2011. 10. 14.

                                                           

깨닫는 농원 

농장지기 이경복 교장이 일구는 행복

 

 글·사진 남상학

 

 

 ‘나무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라듯이,
사람도 생각의 뿌리가 튼튼해야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 '

 

- 그의 글 중에서 -


 

 * <깨닫는 농원>  설립의 목적을 새긴 괴석 *

 

   

  10월 11일 우윳빛 가을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지는 11시. 1시간 45분을 달려온 1호선 열차가 양주역에서 멎었다. 배낭을 짊어진 나는 재빨리 개찰구를 빠져 나왔다.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의 한 작은 마을의「깨닫는 농원」 농장지기 이경복 선생이 이미 차를 가지고 나와 있었다. 그의 모습은 2년 전 본 모습처럼 여전히 생기가 넘쳐보였다. 나는 같이 만나기로 한 김수웅 선생과 함께 농장지기의 승용차를 타고 농장으로 향했다. 가을 벌판은 벌써 가을 색으로 완연했고, 벼가 잘 익은 논은 황금색 일색이었다.

  10여분쯤 달려 우리는 농장 입구로 들어섰다. 농장은 처음 찾았던 때와는 달리 많이 정돈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그 동안 성장한 나무들이 집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승용차에서 내린 우리는 농장을 한 바퀴 돌았다. 새로 세운 기둥과 탑이며, 채소와 묘목이 자라는 채마밭과 농원의 구석구석을 소상하게 설명하는 농장지기의 얼굴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나는 첫 번째 농원을 방문하고 그의 카페에 “농원지기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고, 초야에 묻힌 교육자의 혜안이 부러웠습니다. <깨닫는 농원>에서 생각의 뿌리를 깊게, 그리고 든든히 내리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방문 소감을 올렸는데, 그는 인생의 후반에 이루고자 했던 꿈을 이곳에 이뤄냈고 아직도 이루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경복, 그는 평생 신념과 집념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나는 오랜 기간에 걸쳐 특별히 교분을 가진 적이 없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교육행정지도자과정 연수를 받을 때였다. 우리는 전국시도에서 선발된 40명의 교장들과 함께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의 한 교실에서 거의 4개월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수를 받았다. 14일간 이탈리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등 유럽지역 교육시찰연수도 함께 했다. 서울에서 참여한 이는 우리 두 사람 외에 김수웅, 최길자 두 교장 모두 네 사람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강의 시간 전후와 점심시간, 그리고 해외연수 기간 동안 교육에 관한 주제를 비롯하여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 가운데서 나는 그분이 가진 철학과 이상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때 그는 가방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복사물을 건네주면서 대화하기를 즐겨했다. 그의 글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생각을 이끄는 말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고 있는지 진단한 것이었고, 나아가 우리의 말. 얼. 삶에 대한 얽힘(상호관계) 등을 정리한 것이었다. 당시 그의 말과 글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보기 드물게 생각이 깊고 심오하고 논리가 정연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생각이 스며들 여지가 없을 만큼 자기생각( 세계)의 틀이 견고했다. 그만큼 철두철미하고 신념이 강했다.

  그러기에 그는 교육현장에 있을 때는 국어정화운동을 폈고, 방송에 출연하여 ‘우리 말 우리 얼’에 대한 방송을 하기도 했다. 연수를 받은 그 다음해(1955) 그가 내게 보내 준 묵직하고 두툼한 책『겨레여 생각이여 말이여』(1995년, 고려원)는 그 동안 준비한 원고를 묶어 책으로 출판한 것이었다.  ‘생각의 길은 말이고, 말의 그릇은 글자’임을 강조한 그는 ‘남이 주인인 생각을 내가 주인인 생각으로, 허상 중심에서 실상 중심으로, 수직적 가치관에서 수평적 가치관으로 생각의 틀을 바꿔 나가야한다’고 역설했다. 그야말로 내용 자체도 묵직한 것이었다. 뒤이어 그는 『생각의 뿌리』(2006년, 인물과사상사)를 냈다. 그는 ‘나무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라듯이, 사람도 생각의 뿌리가 튼튼해야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 생각의 뿌리는 자연, 생명, 사랑, 지혜에 튼튼하고 깊게 뻗어야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잘 자라서 좋은 꽃이 피고 탐스러운 열매가 열린다.’고 역설한다. 소유와와 욕망, 출세와 쾌락을 좇아 허상에 빠져 살아가는 현대인을 비판하면서, 젊었을 때부터 바른 교육을 해야 한다며, 우리도 탈무드 같은 책으로 생각의 뿌리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던 그가 현직에서 퇴임한 뒤, 양주의 진산인 불곡산을 병풍처럼 옆에 두른 땅, 1,500여 년 전 신라가 당나라 대군을 몰아낸 매소성 전투지로 추정되는 대모산성 자락에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깨닫는 농원>을 세웠다. 이곳은 백석과 광적 들판이 훤히 보이는 곳이며 여기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양주 8경 중 1경에 꼽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이곳에 터를 잡고 땀을 흘리며 박토를 개간했다. 유난히 돌이 많은 언덕 자락을 일궈 여기서 나온 돌로 탑을 쌓고, 괴석(塊石, 돌멩이)을 옮겨와서 그 괴석에 그의 생각을 글로 새겼다. 그리고 주변은 온통 꽃동산으로 만들었다. 그가 정성껏 꾸민 것은 ‘깨닫는 상’, ‘모녀 탑’, ‘물과 자연’, ‘조상의 언덕’, ‘생명 탑’, ‘마음의 하늘’ 등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서양 유적지에서나 볼 수 있는 높은 돌기둥을 두 개나 세웠다. 그는 한 돌멩이에 이렇게 글을 새겼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집념이 강한 사람인가를 말해 준다. 그는 농원을 설립한 이유에 대하여 분명히 말했다.

 

   ‘사람은 자연, 생명, 사랑, 지혜에 생각의 뿌리를 튼튼히 내려야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 이를 교육으로 깨닫게 하고 싶어 이를 책  <생각의 뿌리>를 쓰고 여기에 깨닫는 농원을 세운다.’

  그렇다면 이 농원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농원이 아니다. 수익을 위해 채소나 과목을 심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입장료를 받기 위한 것도 아니다. 괴석에 새긴 글처럼 설립자가 쓴 책 '생각의 뿌리'를 농원에서 읽도록 하고, 이를 느끼면서 깨닫게 함으로써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의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을 지닌 것이었다. 농원을 거닐며 여기저기 우뚝 솟아 있는 괴석에 새긴 글들을 읽으며 자산을 돌아보고 바로잡자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농원인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잘 자라서 좋은 꽃이 피고 탐스러운 열매가 열리듯이 사람도 생각의 뿌리가 튼튼해야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 생각의 뿌리는 자연, 생명, 사랑, 지혜에 튼튼하고 깊게 뻗어야 한다.” 고 말했듯이. 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겠는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농장지기의가 꿈은 미완의 상태에 있다. 입장료도 없어 누구나 쉽게 들어와 구경할 수 있는 농원이지만 아직 농원을 방문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이 농원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그의 책 <생각의 뿌리>를 읽으며 그 마음에 새로운 진리를 천둥처럼 깨닫는 사건은 영원히 기대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생의 도(道)를 깨우치고자 하는 사람은 일찌감치 농장 바로 아래위에 있는 교회(사랑교회)와 사찰(대성사)로 발길을 돌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들 어떠랴!  어쩌다 신기한 농장의 이름에 끌려 이곳을 지나가던 사람이 호기심에 들르거나 혹은 이웃 주민들이 애쓰고 수고하여 농장을 가꾸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둘러보거나, 아니면 우리네처럼 평소에 알고 지내던 노년의 친구들이 방문하여 잠시 생각을 정리해 보고 또 일깨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겠는가. 이상향을 꿈꾸던 공자(孔子)도 만년에는 주위 왕족 측근들의 반대로 자신의 이상을 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의의 신념에 불타 꾸준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실행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깨닫는 농원>은 그의 이상향이요, 그는 이상향의 행복한 군주일 수밖에. 왜냐하면 공자와 마찬가지로 그는 행동하는 실천가이기 때문이다.  

  점심을 인근 식당에서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우리 방문자의 손에 무언가 가득 담긴 비닐봉지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곳에는 자기가 텃밭에 직접 씨를 뿌려 애써 가꾼 무, 풋고추, 호박, 산에서 주운 알밤 등이 담겨 있었다. 감사의 뜻으로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넉넉한 마음을 가진 멋스러움으로, 만년의 삶을 일구는 행복감으로 넘쳐 있었다. 나는 그런 친구를 가진 것에 또 행복해 하며 발길을 옮겼다. 


 

 

* 수목으로 둘러싸인 농원지기의 집과 장독대

 

* 농원에 세운 괴석들- 이곳엔 농장지기의 철학과 교육관이 담긴 글들이 새겨져 있다.

 *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든 ‘깨닫는 상’, ‘모녀 탑’, ‘물과 자연’, ‘조상의 언덕’, ‘생명 탑’, ‘마음의 하늘’ 등 *  

* 농원 안에는 계절에 따라 각종 꽃들을이 피어있다. 꽃만큼 예쁜 것이 있을까? *

 

*그의 농원에선 죽은 나무토막이나 가지도 설치미술 작품이 된다.*

 

* 책과 수석으로 가득찬 그의 집은 농장지기의 명상과 연구의 장소이기도 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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