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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봄 찾아 떠나는 동해 묵호여행, 찬란한 ‘복수초’ 봄은 그렇게 오더이다

by 혜강(惠江) 2011. 2. 6.

봄 찾아 떠나는 동해 묵호여행

 

겨울 뚫은 찬란한 ‘복수초’ 봄은 그렇게 오더이다

 

박 경 일 기자

 

 

 

 

▲ 혹한 속에서 눈밭을 뚫고 고개를 내민 복수초가 저리도 환하다. 유독 길고 혹독했던 겨울 끝에 다가올 봄은 얼마나 화사할 것인가. 강원 동해시 찬물내기에서 만난 올해의 첫꽃 앞에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묵호의 봄은
   시린 손 호호 불며
   겨울바다에서 삶을 그물질 하는
   어부의 굳센 팔뚝으로부터,

   신새벽 어판장에서
   언 손 소주에 담가가며
   펄떡이는 생선의 배를 가르는
   내 어머니의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언덕배기 덕장에서
  찬바람 온몸으로 맞이하는
  북어들의 하늘 향한
  힘찬 아우성으로부터,

  엄동설한에도 희망을 노래하는
  그대, 묵호의 안부를 묻는 마음으로부터…

   <묵호동 등대오름길 벽화 중에서>

 

 

  참으로 춥고도 긴 겨울입니다. 동장군의 기세가 어찌나 등등한지요. 겨울이 가면 매양 봄은 오는 것이고, 봄이 온다는 ‘입춘’도 이제 코앞이지만, 혹한의 서슬이 아직 시퍼렇게 날이 서있으니 봄을 기다리는 설렘 따위는 먼 얘기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차갑게 언 땅 밑으로도 봄은 오고 있습니다. 엄동설한의 혹한에서 가녀린 꽃송이 하나가 쌓인 눈 위로 머리를 살짝 내밀었습니다. 마치 봄의 징표처럼…. 저리도 부드러운 것이 어찌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을 뚫어내고 올라와 노랗고 여린 꽃잎을 틔워냈는지요. 강원 동해시의 찬물내기 공원에 피어난 엄지 손톱만 한 작은 복수초꽃 한 송이가 세상을 다 환하게 밝힙니다. 그 꽃 앞에서 이성부 시인의 시 ‘봄’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후략).”

  동해시에서는 꽃이 아니었더라도 봄의 기운이 두루 감지됩니다. 묵호항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비탈진 달동네. 언덕 위의 등대로 향하는 논골, 어달리 달동네 마을의 비탈진 계단에서는 한때 번성했던 묵호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푸른 바다와 고래 그리고 명태·오징어, 탄가루 날리던 석탄 부두의 추억들이 푸근한 벽화로 그려져 발길을 붙잡습니다.

  한때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기항지’로 불렸던 묵호는 봄이 가장 먼저 당도하는 땅이었다고 했습니다. 양지바른 비탈 면에 다닥다닥 붙여 지어진 슬레이트 지붕의 달동네 마을 사람들이 봄바람을 가장 먼저 감지했다는 것이지요. 고깃배가 만선기를 펄럭이며 묵호항으로 들면 바다가 보이는 마당에 나와 가장을 기다리던 가족들은 단숨에 비탈길을 뛰어내려가 명태와 오징어를 매운 바람이 몰아치는 덕장으로 실어날랐습니다.

  거센 바닷바람이 뱃일을 나간 가장을 삼켜버렸어도, 그 울음같은 바람에 명태와 오징어를 말리면서 생계를 이을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묵호의 달동네 사람들. 그들은 명태를 널어놓은 빨랫줄에서 꽝꽝 얼어붙은 빨래를 거두면서 겨우내 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논골마을의 계단에서 만났던 담벽의 글귀로부터 ‘묵호의 봄’이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배웁니다. 흘려쓴 글귀는 묵호의 봄이 ‘겨울바다에서 시린 손 불며 삶을 그물질 하는 어부의 굳센 팔뚝으로부터’, ‘신새벽 어판장에서 언 손 소주에 담가가며 펄떡이는 생선의 배를 가르는 내 어머니의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언덕배기 덕장에서 찬바람 온몸으로 맞이하는 북어들의 하늘 향한 힘찬 아우성으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묵호의 땅에 당도하는 봄은 다름아닌 ‘희망’의 다른 이름이겠지요. 그런 희망이야말로 시인의 말대로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 오는 것’이겠지요. 무릉계곡의 꽝꽝 얼어붙은 쌍폭포에서 그 두꺼운 얼음 아래로 들려왔던 물소리도, 찬물내기 공원의 눈밭에서 머리를 내민 복수초도, 묵호항의 달동네에 깃발처럼 널어놓은 빨래들도 기실 따스한 봄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희망의 표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물 깁는 어부·북어 매다는 아낙… 언 땅 녹이는 삶의 입김

 

 

# 혹한 속에 피어난 ‘첫꽃’과 마주치다

   새해 들어 ‘첫꽃’과 마주쳤다. 마침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올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떠올린다면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첫꽃’은 누군가 길러낸 것이 아닌, 야생의 눈밭에서 저 스스로 꽃잎을 틔워낸 것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맨땅에서 차가운 눈을 뚫고 복수초가 당당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털 목도리같은 알록달록한 이파리를 두르고 피어난 복수초의 노란 빛이 어찌나 짙던지…. 혹한의 한복판에서 피어난 꽃은 장하고도 장했다.


   강원 동해시 천곡동의 ‘찬물내기(냉천·冷泉)’. 우리 땅에서 복수초가 가장 먼저 피는 군락지다. 인근 취병산의 물이 지하로 스며 수맥을 따라 흐르다가 솟는다는데, 여름에 손발을 담그면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갑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겨울에는 반대로 따스한 물이 솟는다. 한겨울에 찬물내기에 피어난 복수초도 이 물의 기운을 받았으리라. 엄지손가락 한마디쯤의 작은 꽃이지만 복수초의 노란 빛으로 주변이 온통 환했다.

   꽃을 틔워낸 것은 세 송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심조심 발 밑을 살펴보니 이곳 저곳에서 새순이 움트고 있다. 이제 막 꽃대를 올리기 시작한 것도 예닐곱 송이가 넘었다. 꽃을 피우고, 꽃대를 세우거나 새순을 틔운 자그마한 것들에게서 기분좋은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그건 시험에 앞서 슬쩍 훔쳐본 답안지에서 느끼는 ‘두근거림’과도 비슷했다. 그런 느낌이 어떤 것인지는, 그곳에 찾아가 보면 알게 되리라.



# 묵호항 달동네 골목 ‘희망의 봄 풍경’

   봄의 정서를 ‘기대’ 또는 ‘희망’으로 읽는다면, 동해시 묵호진동이 바로 그런 정취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해시에 딸린 자그마한 ‘동(洞)’에 불과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묵호의 위세는 자못 당당했다. 소규모 어항이었던 묵호항은 1941년 무연탄 출하 항만으로 개발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태백, 사북 일대에서 열차편으로 항만에 부려진 석탄을 실어나르던 인부들이 대거 묵호항으로 밀려들었고, 묵호 앞바다에 명태와 오징어떼가 몰려들면서 고깃배들로 포구는 불야성을 이뤘다.

 

1980년대 동해항의 개항으로 보조항만으로 전락한 묵호항은 이제 고작 채낚기 어선 200여척만 남은 쇠락한 항구가 되고 말았지만, 묵호등대 부근의 달동네 마을에는 떠들썩하던 전성기 시절 묵호의 애환과 정취를 들여다볼 수 있는 풍경이 아직 남아있다. 이른바 논골마을과 어달리 일대의 산동네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기항지’로 불렸던 곳. 논골과 어달리 마을의 비탈진 사면을 따라 난 수십 갈래의 골목길에서는 삶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지금이야 주민들이 하나둘 떠난 달동네 마을은 쇠락한 풍경으로 다가오지만, 한때 이곳은 삶이 진득진득 묻어나는 곳이었다.

   산동네 사람들은 비탈진 사면에 위태롭게 매달린 슬레이트 지붕의 집에 들어 매서운 해풍이 부는 겨울을 났다. 마당 끝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뱃일을 나간 가장의 무사한 귀가를 기다리기도 했고, 마당을 덕장삼아 오징어며 명태를 널어 해풍에 말리기도 했다. 지게와 대야에 젖은 오징어나 명태를 가득 지고 오르는 가파른 골목길은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을 기다리기 위해 오르는 ‘희망의 길’에 다름아니었다. 비록 묵호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바닷가 마을이나 산동네의 추억이 없다 해도,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낸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라면 그곳에서 누구든 뭉클해지고 만다.

   그 골목이 환기해내는 것은 누추했던 시절의 신산한 삶, 또는 그 삶을 지탱해주던 소박한 꿈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추억들은 골목에 빛바랜 흑백의 필름처럼 살아 남아 그 앞에 선 이들을 아릿한 추억 속으로 끌고 간다. 그 골목의 담장에 누군가 써넣은 글귀 한구절에 가슴이 싸하다. ‘이제는 보라색 조가비랑, 내 아버지 젊은 시절 팔뚝처럼 철철 힘이 넘치던 물고기랑, 먹빛 눈물점이 슬펐던 목포집 주모랑…. 열이, 철이 내 친구들과 내 누이도 모두 떠났네. 기억하리라, 정든 묵호!’

 


# 묵호항의 봄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

   논골마을과 어달리의 달동네 마을에서 묵호등대에 이르는 이른바 ‘등대오름길’에 벽화가 그려졌다. 벽화에 담긴 그림은 옛 묵호항의 정취와 산동네 마을의 풍경을 추억하는 것들이다. 담벽에는 출항하는 오징어배가, 말린 명태들이, 보따리를 이고 비탈을 오르는 할머니가 그려졌다. 생선이 가득 실린 지게, 대폿집과 이발소, 구멍가게도 그려졌다.

   이즈음 관광지에 그려놓은 울긋불긋한 벽화들은 지나치게 밝은 색감에다 장난스러운 필치가 눈에 거슬리지만, 이곳에 그려진 벽화는 좀 다르다. 색채나 구도보다는 그림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발길을 붙잡는다. 담 곳곳에는 묵호의 추억을 담은 시들도 써붙여 있다. 시도 그렇지만, 이곳의 벽화도 ‘보는 것’이라기보다는 ‘읽는 것’에 가깝다. 벽과 담에 그려진 그림과 시는 다소 어둡긴 하지만, 그 그림이 종래에 말하고자 하는 바는 ‘희망’이다. 그래서 그림과 시가 안내하는 대로 그 골목을 오르다 보면 마음이 훈훈하게 덥혀진다.

   묵호등대를 중심으로 바깥 바다 쪽은 어달리이고, 안쪽 묵호항 쪽은 논골마을이다. 양지인 어달리 쪽은 주로 밝은 그림들이 그려졌고, 안쪽 논골마을 쪽은 어촌의 고단한 삶이 주로 그려졌다. 두 길은 등대 앞에서 만나는데, 논골마을 쪽 골목 초입의 담벽에 ‘묵호의 봄’이란 글귀가 써붙여져 있다. 묵호의 봄은 어디로부터 올까. 벽에 써놓은 글귀가 답해준다. ‘시린 손 호호 불며 겨울바다에서 삶을 그물질 하는 어부의 굳센 팔뚝으로부터’, ‘신새벽 어판장에서 언 손 소주에 담가가며 펄떡이는 생선의 배를 가르는 내 어머니의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언덕배기 덕장에서 찬바람 온몸으로 맞이하는 북어들의 하늘 향한 힘찬 아우성으로부터’. 그곳으로부터 묵호의 봄은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묵호항에서 봄을 만나거들랑 이른 새벽 포구에서 이뤄지는 경매에 나가 볼 일이다. 부두에 생선을 부려놓는 굵은 팔뚝의 어부들과, 경매가 끝난 뒤 포구 한쪽에서 그물을 깁거나 그물에서 고기를 따내는 아낙네들의 고단한 노동을 지켜볼 일이다. 또 논골마을이 내려다뵈는 언덕배기의 광이아파트 부근 덕장길에서 해풍에 잘 말라가는 북어와 그 북어를 매달고 떼어내는 이들의 일상을 바라볼 일이다.


# 무릉계곡서 얼음이 풀리는 소리를 듣다

   동해시에서 가장 이름난 관광지로는 두타산과 청옥산 자락의 무릉계곡이 꼽힌다. 계곡의 물줄기가 초록과 어우러지는 여름이나 단풍이 붉게 익어가는 가을의 풍경이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다. 그러나 무릉계곡의 겨울철 풍경에서는 또다른 맛이 느껴진다.

   겨울의 무릉계곡은 우선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반석 위로 우르릉탕탕 쏟아져 내리던 물이 쩡쩡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계곡의 물길을 따라 오르는 길의 고요함이 이리 낯설 수 없다. 지난 가을의 낙엽만 발 밑에서 바스락거린다. 게다가 겨울에는 고개를 들면 무너질 듯 솟아있는 무릉계곡의 암봉들이 더 선명하다. 시선을 가리는 활엽수들이 잎을 다 떨군 뒤라 어느 때보다 암봉의 장중함이 더 어둡고 웅장하다. 무릉계곡을 따라 쌍폭포며 용추폭포까지 이르는 길은 부드럽기도 한 데다, 눈이라곤 없으니 걷는 맛도 더할 나위없다. 굳이 산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용추폭포를 목적지 삼아 겨울 숲과 물길을 따라 걷는 길만 편도 40분쯤이다.

   고요한 겨울 숲을 걸어 당도한 쌍폭포와 용추폭포의 물길은 온통 얼어붙었다. 언 물줄기에 또 물이 얼어 보태지면서 폭포는 거대하게 녹아내린 촛농과도 같다. 청량한 대기 속에서 쌍폭포 앞에 섰는데, 폭포 아래 쪽에서 가느다란 물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꽝꽝 얼어붙었던 물줄기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쌍폭포 아래로 내려선다. 쌍폭포 아래 서니 기분좋은 겨울볕이 계곡 안쪽으로 스미는데, 청아한 물소리까지 더해지니 마치 봄 앞에 바짝 다가앉은 것같은 기분이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첫꽃을 만나는 일 그리고 오래된 골목을 오르며 추억을 되새겨 보는 일, 여기다가 고요한 계곡을 찾아 이제 막 얼음이 풀리는 소리를 듣는 일. 이즈음 동해에서 미처 당도하지 않은 봄을 마중나가는 방법이 이처럼 다양하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로 강릉분기점까지 가서 동해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망상나들목으로 나가 우회전한다. 2.5㎞쯤 가다 창호초교 앞에서 묵호동 해맞이길로 좌회전해 ‘묵호등대’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등대오름길을 찾아가려면 묵호항 방파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대오름길슈퍼를 찾아야 한다. 슈퍼 옆길이 어달리 ‘등대오름길’의 초입이다. 등대에 당도하면 등대를 돌아보고 논골마을 쪽의 등대오름길을 찾아서 골목길을 내려가면 된다. 등대 앞의 종점주차장 부근의 가게에 문의하면 내려가는 길을 알려준다.



묵을 곳·먹을거리


동해시에는 동해보양온천컨벤션호텔(구 망상그랜드호텔·033-534-6682) 등의 호텔을 비롯해 다양한 등급의 모텔이 있다. 위치로 보자면 묵호항 부근의 동해관광호텔(033-533-6035)과 꿈의궁전모텔(033-532-9996)을 첫손으로 꼽을 수 있다. 해안도로의 바다 쪽에 딱 붙여 지어져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침대에 누워서 창 밖으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횟집 중에서 가장 이름난 곳은 부흥횟집(033-531-5209). 40년 전통의 동해를 대표하는 맛집인데 곁들임 음식보다 회를 중심으로 내놓는 곳이어서 푸짐한 상차림을 기대했다간 실망할 수도 있다. 묵호항에서 북쪽으로 난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만나는 ‘까막바위회마을’에는 횟집들이 밀집해 있는데 ‘오부자횟집’(033-533-2676)은 물회만 전문적으로 내는 집으로 푸짐하게 내오는 새콤달콤한 물회가 맛깔스럽다.

 

 

 

<출처> 2011. 2. 1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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