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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인천. 경기

인천 북성포구, 바다는 땅으로 바뀌고 포구의 삶은 그대로…

by 혜강(惠江) 2010. 12. 12.

              

인천 '똥마당' 북성포구 이야기

 

바다는 땅으로 바뀌고 포구의 삶은 그대로…

 

 인천=글·강신재 여행 작가 / 사진·허재성 영상미디어 기자

 

 

 

 

북성포구 앞에는 낯선 공단이 서 있다. 해거름 녘 공단에 사람들이 사진기를 들이민다. 부두에는 고단한 삶이 숨 쉰다.

 

 

  포구는 '낭만'인 줄 알았다. 물비늘 위로 미끄러지는 어선, 보름 만에 뭍을 밟고 버릿줄을 묶는 어부, 오랜 항해에 숨을 헐떡이는 고기까지 모두 그 두 글자를 떠받친 까닭이었다.

  물큰한 감성으로 묶여버린 포구에 다른 해석이 끼어드는 건 불편한 일이었다. 타원형의 눈으로 봐온 세상을 마름모의 눈으로 다시 보라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인천 한구석의 그 포구를 만났을 때 이유없이 피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똥마당'이라 불렀다. 그 정체는 거대한 공장 사이 후미진 골목을 걷다 난데없이 나타났다. 애먼 포구는 특이한 습성까지 가지고 있었다. 오래전 사라진 줄 알았던 어선 위에서 열리는 어시장이라니. 연인들 발걸음이 분주한 인천 월미도 뒷골목에 숨은 포구, 북성포구 이야기.       

 

 

 

 

 

◆매립지 끝에 붙은 갯가의 삶

  이상한 느낌은 여정 전부터 감지됐다. 포구를 다녀온 출사족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얘기로 혼을 뺐다. 내비게이션에도 누락된 지명이니 '대한제분'을 입력해 찾아갈 수밖에 없다는 둥, 인천역에서 찾아갈 때는 주차장인지 막다른 골목인지 범죄 현장인지 모를 생경한 길을 걸어야 하니 오직 직진의 욕구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둥 그런 말이었다.


  인지상정을 실감하며 긴 골목길로 들어섰다. 커브를 두 번 도니 횟집이 먼저 나타났다. 바다를 찾는 시선을 막고서 늘어선 가게는 여섯 집이었다. 바다 쪽으로 다릿발을 세워 내부를 확장한 가게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건 근래의 신축인 것 같았다. 바다를 마주 보고 선 가게 건물은 '하꼬방'을 수리한 듯 세월의 냄새가 폴폴 일었다.

  볼음도 횟집 주인이 말했다. "장사한 지 30년 됐어. 근데 여기 부두가 대한제분 땅이야. 비켜 달랄 땐 비켜주겠다 했는데, (대한제분측은) 여기서 30년 장사했으니 앞으로 벌어먹을 수 있을 때까지 벌어먹으라 그랬어."

  본래 이곳은 갯마을이었다. 어부들은 포구랄 것도 없는 바닷가에 고깃배를 몇 척 대놓고 바다와 뭍을 오갔다. 1960~70년대 대한제분 등 기업이 인근 지역을 매립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바다를 잃은 어민들은 그 매립지 끝에 슬며시 고깃배를 풀었다. 왕래가 많아졌고, 외지 사람도 찾아왔다. 어민이 직접 갓 잡은 생선을 팔기 시작하자 횟집도 따라 생겼다. 북성포구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그전엔 포구 끝에서 횟집 골목 끝까지 낭떠러지 뚝길이었어. 길도 아니여. 험악하게 생겼댔지. 그 부두도 아닌 것에 매일 같이 고깃배가 30척이나 더덕더덕 댔어. 그럼 나무사다리를 배에 걸쳐 놓고 댕기는 거야. 그러다 물이 밀면(차면) 배가 점점 올라가잖아. 그 다릿발에 고리를 안 매면 사람이 떨어져서 다치고 그랬어. 3년 전 항만청서 물량장 만들어주고 나서는 여다 대지만."

  물량장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최길자씨가 얘기를 보탰다. 횟집 골목이 끝나는 자리부터 폭 20m, 길이 150m의 물량장이 펼쳐졌는데, 이는 마땅한 접안 시설이 없는 포구의 대안이었다. 그 덕에 그물, 어망 등 어구들이 젖은 몸 뉘일 공간이 생겼고, 석축 위를 곡예하며 걷던 사람들도 잊었던 걸음을 되찾았다.

 

 

 

못난 얼굴이어도, 탕으로 끓이면 맛 한번 예쁜 삼식이.

 

◆어선 위에 열린 어시장

   

  강태공 대여섯과 몇 마리 건작 어물만이 지키던 포구였건만, 오전 11시가 가까워져 오자 낯선 걸음들이 하나 둘 포구를 메우기 시작했다. 배낭을 멘 등산복의 부부, 나들이 차림의 할머니들이 있는가 하면 명품 가방에 매끈한 가죽구두 신은 주부까지 그 행색들 한 번 다양했다.

  그들은 모두 고깃배의 입항을 기다린다고 했다. 고기를 싣고 부두로 드는 고깃배는 11척. 그러나 배가 매일같이 들어오는 건 아니다. 물때 때문이다. 북성포구 어민 대표 최해룡씨가 말했다. "이 배들이 조금 때는 못 들와. 수위가 안 맞으니까. 들오더라도 계속 대놓는 건 아니야. 고기 팔고 연안부두로 가지. 여기는 물 쓰면(빠지면) 배가 못 나가지만 거긴 물이 언제나 찰랑찰랑하니 달라. 바다에 아무 때나 나갈 수 있어."

  이날은 조금을 사흘 지난 삼물. 포구 사람들은 오늘쯤이면 고깃배의 입항이 가능할 거라 했지만, 포구로 드는 배는 준호호 뿐이었다. 기다림이 길어졌던 손님들은 속이 탔다. 어선이 대동한 갈매기까지 낚아챌 요량으로 급하게 모여들었다. 북성포구는 별도의 공판장이 없어 잡아온 고기를 어선 위에서 직접 판매하는데, 이날만은 예외였다. 배가 한 척밖에 들어오지 않아 선원들은 물량장 위로 고기를 내리고 흥정을 시작했다. 선주 마누라가 늑장을 부린 사이 그물 꿰는 할머니가 어느새 그 틈에 껴서 바람잡이가 됐다. "낙지 두 마리 1만원! 새우 한 말에 2만5000원! 오늘은 증말 싸!"

  그러나 아줌마들의 앙탈이 금세 따라붙고 공표했던 값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 찰나를 포착한 손들이 날쌔다. 검은 봉지에 낙지머리를 패대기치다시피 하며 3마리를 얻어가고 새우삯을 치르는 현장엔 주꾸미가 덤 신세로 전락해 묻어간다. 그 바쁜 순간들 사이로 준전문가 다 된 손님들 참견도 빠지지 않는다. 광어 '배떼기'에 검은 점이 보이면 그 녀석 양식한 놈이니 조심해야 한다나. 어부 못지않은 눈썰미에 선주는 그냥 웃으며 돌아서고 만다.

 

                ▲ 한때 새우젓골로 불리며 온 나라 새우를 모두 모았다는 동네, 북성동
                    1가 3통 마을.

 

      

 

 

◆ 똥마당은 돈마당이 되지 않았다

  펄떡이는 시간도 잠시, 낙오된 새끼 고기들을 쓸어 담아 1만 원에 덤핑하자 그날은 파장이었다. 빈 걸음으로 부두를 빠져나오는 이치북씨를 따라 북성동 1가 3통 마을을 찾았다. 한때 새우젓골로 불리며 온 나라 새우를 모두 모았다는 동네. 그러나 거기서 멈춰 서서 세월을 잊은 판잣집 행렬이 과거를 자극한다.


  "북성포구 쪽을 옛날엔 똥마당이라 불렀지. 황해도 피란민들이 바닷가에 많이 살았거든. 나무 짝대기 모아다가 하꼬방 짓고서. 그 집에 화장실이 어딨겠어. 바다 옆에 공동화장실을 만들어서 용변을 해결한 거지. 바닷물이 들어오면 씻겨 나가잖아. 애들이 그 바다에서 수영을 하면 똥덩어리가 콧잔등을 스쳤어."

  북성동에서 반백 년을 보낸 이씨의 기억은 생생하다. 나무껍질을 벗겨 연명하던 시절도 떠올린다. "껍질 뱃기면서 많이 죽었지. 나무를 바닷물 속에 뒀거든. 근데 통나무 타다 뱅글 돌면 미끄러지기도 했지. 그럼 물속으로 빠지잖아. 나무가 덮여서 나올 수가 있어야지."

  뱃일로 돈 좀 만져 본 이들이 있어 '똥마당'이 '돈마당'이 된 적도 있었지만 술에, 색시집에, 사기꾼에 넘어간 어부의 돈은 좀처럼 모이지 않았다.

  그의 말끝에 다시 찾아가게 된 곳은 그 마을 인생처럼 서글픈 포구다. 사람도, 고기도, 배도, 볕도 떠나간 해질녘 포구엔 어둠의 식솔들만 남아 있었다. 귓밥까지 흔드는 목재 공장의 크레인 소리, 앞바다를 압도하며 토악질하는 공장의 연기, 먹구름을 나눠 가진 하늘과 바다. 개발의 입자로 빚은 이 검은 풍경도 어김없는 포구의 단면이었다.

  그렇다. 아름다움과 낭만의 인자(因子)를 받지 못한 포구도 포구다. 그 인자로부터 물러선, 똥마당의 팍팍함을 받는 여행도 여행이다. 아름다움과 낭만의 강요로부터 벗어난 여행자는 그래서 숨은 세상까지 품을 수 있다.

 

 

 

                      

 

 

여·행·수·첩

 

①지하철 1호선 인천역 앞 우회고가 사거리에서 고가도로 쪽으로 우회전한다. 무조건 고가를 따라 가다가 대한사료공업 인천공장 입구를 만나면 우회전한다. 만석 3차 아파트가 가까워질 때까지 직진하면 진행 방향 왼쪽으로 '금바다'라는 가건물 가게가 나온다. 가게를 왼쪽에 끼고 골목길로 진입, 100m가량 걸으면 포구가 보인다.

 

②지하철 1호선 인천역 앞 우회고가 사거리에서 직진한다. 월미도 입구 삼거리에서 대한제분 종합연구소 길로 들어선다. 계속 직진하면 포구 끝이다.

 

 

 

   

 

 

 

◎ 수산물 직거래 정보: 북성포구엔 11척의 고깃배가 하루 한 번 한꺼번에 들어온다. 그 시각에 맞춰 포구를 찾으면 갓 잡은 생선을 어선 위에서 직접 살 수 있다. 물때에 따라 입항하는 시간이 매일 다르므로 사전에 체크하는 것이 좋다. 삼물날(음력 12·27일) 11시 기준으로 매일 입항 시간이 약 30분 정도 늦어진다고 보면 된다. 대개 고깃배가 들어온 후 30분~3시간 사이에 물건은 동이 난다. 조금(음력 8·23일), 무쉬(음력 9·24일), 일물(음력 10·25일), 이물(음력 11·26일) 때나 풍랑주의보가 내렸을 때는 배가 들어오지 않으므로 현장 구매가 어렵다. 그런 날에는 연안부두로 입항한 배들의 싱싱한 생선을 차로 우송, 만석우체국(포구 출입 골목을 되돌아나간 뒤 만석 3차 아파트 쪽으로 직진) 앞에서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포구에 줄지어 선 횟집이 6군데다. 그날 구매한 생선을 가지고 횟집을 찾으면 상을 봐준다. 빈손이라면 볼음도횟집을 추천한다. 그 자리에서 30년을 지낸 할머니의 손맛이 괜찮은 편이다. 할머니는 겨울엔 삼식이 매운탕<사진>을 권한다. 아귀를 닮은 못난 얼굴답지 않게 탕으로 끓이면 그 맛 한 번 예쁜 것이 삼식이다. 기름기는 물론 비린내하고도 담쌓은 국물의 느낌은 제법 오래 기억을 지배한다. 2인분에 2만원 선. (032)765-0147


 

<출처> 2010. 12. 9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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