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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강원도 선자령 풍차길, 바람에 헹군 듯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

by 혜강(惠江) 2010. 10. 17.

 

선자령 풍차길

 

바람에 헹군 듯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

 

 

글·사진=안중국 월간 山 기자

 

 

* 저 멀리 풍차가 돌아가고 억새풀은 바람에 흔들리는 선자령 초원 능선길. 

 

 

 강원도 선자령 초원에 가볍게 가을이 내려앉았다. 구절초 끝 고추잠자리의 투명한 날개 저 뒤편에는 찬란한 햇살을 머금어 눈부시게 흰 뭉게구름과 짙푸른 하늘, 그리고 어릴 적 팔랑개비 같은 풍력발전기들이 늘어선 초원 둔덕이 펼쳐졌다.

 선자령의 '령(嶺)'은 영마루-고개라는 뜻이지만, 선자령은 봉우리다. 선자(仙子)란 신선이나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뜻하니, 이곳 능선의 굴곡이 아름답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주었던 것일까. 옛적 동서를 넘나들던 길이 이 밋밋한 봉우리 위를 지나게 되며 고개라 이름 붙였을 것이다. 해발 1157m로 사뭇 높은 이 선자령을 정점 삼아서, 해발 800m의 대관령까지 완만하고도 길게 뻗은 능선과 그 바로 옆 짙은 계곡 숲길을 이은 것이 선자령 풍차길이다. 편도 거리가 5㎞쯤 되는 한편 고도 차가 250m에 불과하다. 유유자적 산보하는 듯 걸음이 편하다.

  선자령 풍차길은 강릉 바우길 열 가닥 중 하나다. '강원도 감자바우'에서 따온 이름 바우길이다. 강릉 출신의 이름난 소설가로 아직도 강릉 산골에 부모님이 살고 계신 이순원씨와, 주변 길을 손금 보듯 하는 토박이 산꾼 이기호씨의 앙상블이 바우길로 나타났다. 이기호씨가 강릉 주변 등산로 수백 가닥과 옛길을 재료로 제시했고, 이순원씨는 그와 더불어 소설 한 편씩 엮는 듯한 열정으로 바우길을 이었다. 이순원씨는 이렇게 말한다.

  "바우(Bau)는 바빌로니아 신화에 손으로 한 번 어루만지는 것만으로도 죽을병을 낫게 하는 친절하고도 위대한 '건강의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죠. 이 길을 걷는 사람 모두 바우 여신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길 이름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그 바우길 열 가닥 중에도 가을 풍치가 가장 뛰어난 길을 꼽아달라고 하자 두 사람은 서슴없이 "선자령 풍차길!" 하고 엄지를 치켜든다.

 두 사람은 새로운 길을 내지 않았다. 오래전 산림청이 옛 산길을 가다듬고 팻말을 세워 두었다. 그 후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아 수풀이 무성했던 길을 두 사람이 찾아내고 다듬은 다음 백두대간 종주길의 일부이자 수많은 등산꾼들의 사랑을 받아온 대관령~선자령 길과 연결해서 선자령 풍차길을 탄생시켰다.

 선자령 풍차길의 시작은 지금은 456번 지방도가 된 옛 대관령고속도로 상행선 휴게소다. 이 휴게소는 주말이면 등산객들로 과거 고속도로 시절보다 훨씬 더 붐빈다. 건너편 하행선 휴게소 뜰까지도 차량으로 그득하다. 휴게소 매점은 연중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연다고 한다.

 대관령 국사성황사 가는 길로 걷다가 왼쪽 '선자령 우회로' 팻말이 가리키는 샛길로 접어든다. 휴게소의 번잡한 소음이 멀어지며 곧 온몸을 휘감는 싱그런 숲향―. 잣나무숲이 무성하고 참나무류도 굵은 것들이 공간을 채웠다. 그 사이로 선들바람이 스민다. 설렁설렁 맑은 물에 헹궈지듯 심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길은 뚜렷하며, 드문드문 바우길 표지 리본이 걸려 있다.

 그 많던 사람들은 그림자도 없고, 숲 속엔 우리 일행을 비롯해 몇몇 팀뿐이다. 거의 모든 등산객들이 대관령~국사성황사~선자령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백두대간 길로만 갔기 때문이다. 그 길의 바로 아래 계곡 속으로 이런 멋진 숲길이 있다는 것을 저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르는 것이다.

 주변이 온통 밋밋한 구릉지 일색인 산세여서, 그 가운데 계곡이라 해보았자 무슨 멋이 있을까 싶었던 선입견 때문에 계곡에서의 감탄과 놀라움은 더하다. 둥근 바윗돌들과 맑은 계류로 이루어진 계곡 풍치는 저기 설악산 천불동계곡의 지류 하나를 옮겨다 놓은 듯 깊고 아름답다.

 

 

 

 숲을 벗어나 선자령 정상부를 향해 오르노라면 여기저기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선 대관령목장 초원이 활짝 펼쳐진다. 하얗고 미끈하게 각선미를 드러낸 풍차들이 뭉글뭉글 완경사의 순한 굴곡면을 이룬 이곳 선자령 일대의 산릉과 어울려, 저기 유럽 알프스의 산록과 흡사한 목가적 풍경으로 떠오른다. 누가 이 아름다운 풍경 속을 도회형의 빠른 걸음으로 걸어갈 수 있겠는가.

 능선 서쪽은 높낮이 차이가 별로 없는 구릉지의 연속인 반면 동쪽은 깎아지른 급경사다. 수천만 년 전 지표면이 침식작용을 받아 평탄해진 뒤 어느 때인가 급속히 융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대관령과 선자령 일대는 개마고원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고위평탄면 지형이다. 아무튼 지형이 이러하기에, 대관령으로 가는 하산길에서는 종종 툭 소리가 날 만큼 시원스럽게 동해 쪽 조망이 트인다.



                      

 

길잡이 상행선 휴게소→'선자령 우회로' 팻말→가파른 계단→양떼목장 경계→잣나무숲→'성황사 갈림길' 팻말에서 왼쪽→계곡 옆(두 아름 잣나무)→산중 오거리→풍차 기둥 아래→선자령 정상→국사성황사→출발점(상행선 휴게소)

 이곳이 풍력발전기가 많은 것은 바람이 그만큼 세고 잦기 때문이다. 반드시 강풍에 대비해 옷가지를 챙겨야 한다. 10월 말이면 첫눈을 맞을 수도 있다! 계곡 길이 끝나고 산중 오거리에 올라선 뒤에는 120도 방향의 오른쪽 두 번째 넓은 임도로 가야 한다(차단기에 바우길 리본이 여러 개 매달려 있다). 500m 가서, "쉬익 쉬익" 하며 돌아가는 거대한 풍차 기둥 바로 아래에 이르른 다음엔 임도를 버리고 90도 오른쪽으로 꺾어 숲길로 오르면 선자령 정상이다.

 바우길 카페(cafe.daum.net/baugil)에 길 안내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기면 바우길 탐사단원 17명 중 시간이 나는 사람이 오케이 사인을 해주기도 한다. 내 고장 사랑으로 무료 봉사하는 이들이며, 그 중엔 강릉아산병원 산부인과 의사(이상수씨)도 있다.

접근로
영동고속도로 대관령나들목으로 나와 우회전, 500m 가서 굴다리 지나자마자 좌회전하면 구 영동고속도로로 올라선다. 6㎞ 달려 좌회전해 상행선 휴게소로 들어간다.


숙박
바우길탐사단은 바우길을 찾는 이들을 위한 싸고도 멋진 통나무집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10월 초 시작했다(033-645-0990). 대관령 동쪽 산록 아늑한 곳에 있으며, 1인당 1박2식에 2만원 받는다. 5인 가족이 10만원. 저녁 및 아침식사 포함이다. 강릉에서 횟집은 강문 해변이 좋고, 시내 왕숯불구이집(033-646-0901)의 김치두루치기는 강릉 주민 단골이 많다.

 

 

<출처> 2010. 10. 14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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