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구림마을
상대포·도기박물관 따라 옛 역사로 시간 여행

* 구림마을 토담길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마을은 백제의 왕인박사와 도선국사의 탄생 전설을 품은 곳이자, 걸출한 인물들을 수 없이 배출한 2200년이란 긴역사가 깃든 마을로 면면히 지켜 온 문화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온 듯 옛 향기가 풀풀 살아나는 전통마을이다.
구림마을 탐방은 상대포구에서 시작해 영암 도기박물관을 가로질러 자연마을로는 그 규모가 으뜸이라는 구림마을로 들어간다.
구림마을의 입구인 상대포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중국과 일본을 잇던 국제항구로 현재도 곶의 형태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왕인박사가 천자문과 백제의 발전된 문화를 일본에 전하기 위해 이곳에서 배를 탔으며, 일본과 중국의 교역선이 드나들며 번성울 구가했던 곳이다.
상대포를 뒤로 하고 가마터와 영암요, 그리고 다양한 도기들이 전시되어 있다는 영암도기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 초입에 1986과 1996년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의 발굴조사에 의해 학계에 알려진 한국 최초의 시유도기가마터(사적 제338호) 가마터가 시선을 붙잡는다.
영암은 1200년 전에도 질 좋은 점토와 풍부한 화목감을 재료삼아 대규모로 도기를 제작했던 곳으로 가마터 발굴 시 출토 된 백제의 도기들과 옛 도기 제작 과정, 그리고 현재 생산되고 있는 영암도기까지 재현, 전시하고 있다.
소박하고 고풍스러운 풍경을 지닌 구림마을에서 유일하게 위용을 뽐내는 현대식 건물인 박물관의 전시실에는 붉디 붉은 영암의 황토가 솜씨 좋은 백제인의 손길을 거쳐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견디며 탄생했던 백제 도기들이 단아하고 다소곳하게 유유한 시간의 먼지를 털어내고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영암군은 영암도기의 명성과 영광을 되찾기 위해 우리나라 최고 품질의 황토라 칭송받는 영암의 흙으로 여전히 전통방식을 고수해 도자기를 제작 하고, 여기서 생산되는 생활자기들이 명품 그릇으로의 면모를 지키며 영암군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고부가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지원을 한다.
그래서인지 전시되어 있는 찻잔을 비롯해 반상기와 도자기 소품들까지 간결하고 소박한 백제 도기의 멋스러움에 현대적 감각과 실용성을 입힌 영암도기에 자꾸 손길이 닿는다. 그러나 어쩌랴, 눈과 마음이 호사를 누렸으니 족함을 알고 전시실을 나왔다.
박물관 앞은 도자기 체험 공방을 비롯해 도기로 구워 놓은 의자와 탁자 등이 오밀조밀 뜰을 장식하고 있는데 조형물 대부분이 영암도기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예사롭지 않은 작품들이다. 영암도기박물관 외부 전시실은 박물관들이 지닌 중후함이나 묵직함 대신 고향집 마당 같은 곰살 맞은 풍경이다. 호젓함이 깃든 박물관 외부 전경에 취하다 보니 어느새 하늘은 붉은 노을이 한창이다.
수령 500살이라는 느티나무가 굽어보는 회사정은 50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구림대동계의 창설과 때를 같이해 지어진 회원들의 집회장소로 구림마을을 찾은 귀빈의 영접이나 경축행사에 이용되었고, 3.1운동 때는 독립만세의 기치를 올리기도 했던 구림마을의 정신적 지주이자 역사책이라 불리우는 마을의 대문격인 정자다. 한국전쟁 때 불타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86년 복원했는데 풍기문란, 불효 등 마을의 규약과 규범을 어긴 이들을 묶었던 돌과 노둣돌이 현재도 주변에 남아 있다.
구림마을 여행의 피날레는 골목길을 따라 걷는 토담 탐방. 설렁설렁 마실길을 나서 몇 걸음을 떼었을까, 발그레한 황톳길을 사이에 두고 작고 큰 돌의 배열이 조화롭고 박힌 돌과 돌을 감싼 빨간 황토흙빛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 그럼에도 저마다 개성 있는 모습의 담들이 저물어가는 가을볕 아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펼친다.
유년시절 외갓집 마당에 들어서듯 간단없이 골목길을 휘적휘적 걷는데 돌담을 지나치면 다음엔 토담이 나오고 토담이 이어지는가 싶으면 무성한 담쟁이넝쿨로 한껏 치장한 또 다른 담이 본새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렇게 이어지고 굽어지는 구림마을 담들은 긴 시간을 변함없이 서로 기대고 어울려 집과 길의 경계를 짓고, 삶의 안과 밖을 나누는 구분선이자 대대손손 구림마을을 지켜낸 소통의 공간이 되었다.
포실한 흙내음에 취하며 골목길을 돌다 발길을 멈춘다. 집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나지막한 담장에 호박이 제 집을 두고 골목길로 덩실한 몸을 내놓고, 옆집 대문 곁의 담에서는 종종 심어놓은 들깨가 향기를 날린다. 그리고 그 옆집의 담벽엔 푸른빛이 성성한 싸리나무가 마치 잘 다듬어진 정원수인양 돌담을 따라 둘러쳐져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담을 장식한 재료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어 그루의 해사한 접시꽃나무를 비롯해 씨알이 꼭꼭 여문 해바라기 한두 그루, 그도 아니면 사립문 옆의 봉숭아까지. 그렇게 담과 꽃들은 속닥속닥 도란도란, 서로 담을 잇고 소통하며 정감 넘치는 집집마다의 문패가 되어 있다. 곱게 단장한 담 앞에서 한동안 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침침해지는 사위를 가르는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보고 아직 구림마을의 가장 깊은 곳이자 높은 곳인 국사바위를 보지 못했다는 다급함에 후다닥 잰걸음을 뗐다. 주루루 이어지던 구림마을 토담이 끊어지며 넓직한 마당 사이로 커다란 국사바위가 길을 막아섰다. 바위에 오르니 어둠속으로 침잠하는 월출산 자락과 국사암을 비롯한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근래에 건축한 낭주최씨 문중시우가 지척이다. 구림마을은 새로 짓는 건축물들도 고택들과 잘 어우러지게 진행함으로써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며 구림마을 사람들의 정신, 구림대동계를 전승한다.
저무는 하늘 아래 고요가 깊어지는 구림마을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토담이라 하기엔 돌이 너무 많고, 돌담이라 하기엔 선연한 황토 흙빛이 도드라지는, 그리고 유난히 나지막한 담장, 그저 일상적인 담의 의미인 격리와 단절과 불통의 상징이 아니라,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온기로 지켜온 공동체 삶의 미학이 녹아든 진정 아름다운 담을 지닌 구림마을이 서서히 짙어지는 어둠속으로 들어서고 있다.

* 구림마을 회사정 *

* 수령 500살의 구림마을 보호수 *

* 상대포 입구 전경 *

* 영암도기박물관 주변시설과 조형물 *
<출처> 2010. 9. 28 / 주간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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