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및 정보/- 전라북도

전북 완주공기마을 숲길’, 편백향(香) 가득 ‘수직의 자유’

by 혜강(惠江) 2010. 6. 26.

전북 완주 공기마을 ‘숲길’

편백향(香) 가득 ‘수직의 자유’

 

 

박 경 일 기 자

 

 

 

▲ 공기마을 편백나무숲은 그저 걷기만 하는 숲이 아니다. 빽빽한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짙은 나무향으로 샤워를 하면서 머물러 쉬거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는, 그런 숲이다

 

 

 

  이곳은 온통 ‘수직의 세상’입니다.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이룬 편백나무들이 곧게 서서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숲. 그 숲 한가운데에는 ‘갈 지(之)’자로 비탈을 누인 제법 긴 오솔길이 놓여 있습니다. 그 길에 들어 치솟은 편백숲 사이를 걷노라면 ‘곧은 것’의 아름다움과 함께 수직의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여기다가 건강한 나무가 뿜어내는 짙은 향기와 발바닥으로 온전히 전해지는 폭신한 흙길의 감촉까지 보태집니다.

 

  곧은 나무들이 숲을 이룬 길에 들면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도회지 생활에서 비틀어진 충동과 과욕쯤은 다 씻어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게 숲의 향기로 몸과 마음을 맑게 씻고 나면 잊고 있던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듯 촉각이 싱싱하게 되살아난답니다. 그 숲이 있는 곳이 바로 전북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의 공기마을입니다. 마을이 밥공기처럼 생겼다 해서 ‘공기마을’이란 이름이 붙은 10여호 남짓의 작은 마을 뒤편. 옥녀봉과 한오봉 자락에 펼쳐진 우람한 편백숲은 지금 짙은 향기의 초록 숲그늘이 하루하루 더 짙어지고 있습니다.



  공기마을 편백숲이 ‘수직의 세상’이라면, 완주 땅에는 가장 조용한 순간이 만들어 내는 ‘수평의 침묵’을 전해 주는 길도 있습니다. 역시 상관면에 있는 상관저수지의 물길을 끼고 이어진 숲길입니다. 상수원으로 쓰이는 저수지는 모내기를 끝냈어도 무넘기가 넘치도록 그득하게 맑은 물을 담고 있습니다. 그 물길에 바짝 붙어서 걷는 활엽수림 우거진 길. 초록의 숲이 고요하게 수면에 반영되는 물길을 따라 걷는 이 길은 비탈을 부드럽게 오르내리면서 줄곧 수평의 물을 바라보며 이어집니다. 저수지에 가득 고인 물이 소리를 빨아들이는지, 그 숲은 침묵으로 가득 차서 출렁입니다. 사람 사는 마을 가까운 곳에 이렇듯 깊고 고요한 숲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공기마을의 편백숲과 상관저수지를 끼고 도는 숲길은 이제 막 진면목을 드러낸 곳입니다. 아직 행락객들로 어지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편백숲에는 주말이나 휴일이면 눈 밝은 이들이 찾아들긴 하지만, 상관저수지의 숲길만큼은 미처 발견한 이들이 없는지 어느 때 찾아가더라도 고요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여름의 초입, 독자들을 전북 완주군 상관면의 ‘수직의 세상’과 ‘수평의 침묵’이 펼쳐지는 길로 자신있게 초대합니다. 두 숲길 모두 한번 걸어 본다면 오래도록 가슴에 담아 두고 싶어질 곳입니다. 그런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편백나무 숲길을 걷는 사람들이 마주 오는 이에게 동의를 구하며 건네는 첫마디는 늘 이랬으니까요. “이 길, 참 좋지요?”

 

                             

 

전북 완주서 만난 ‘2色 숲길’

 

수면 가득 초록이 찰랑… ‘수평의 침묵’

 

                                                    

 

▲ 이른 아침 옅은 물안개가 낀 상관저수지의 모습. 상수원으로 보호되는 곳이라 농번기에도 맑은 물이 무넘기를 넘칠 정도로 그득하다. 물 건너편 수면에 바짝 붙어 저수지를 끼고 도는 운치 있는 수변 숲길이 이어져 있다.

 

 

 

 
 

 

# 숨겨진 수직의 숲,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다



  온통 ‘수직의 세상’을 이룬 전북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공기마을의 편백나무숲. 편백나무는 공기마을 뒤편 산자락에서 올해로 34년째 자라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그 숲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것은 채 몇 달이 되지 않는다. 1976년 이 산자락 85만9500㎡(26만여평)에 10만 그루의 편백나무를 제 손으로 심었다는 공기마을 오철규(73) 이장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나무면 다 같은 나무려니 했다”고 하니, 다른 주민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다.

  사실 공기마을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전주를 지나 남원으로 이어지는 17번 국도변에 ‘편백숲’이라 써 넣은 작고 소박한 팻말을 보고 별 생각 없이 핸들을 꺾어 들어가니 공기마을이었다. 마을을 지나 편백숲과 마주쳤다. 깜짝 놀랄 만큼 짙고 우람한 숲이었다. 숲길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애초에 정했던 목적지와 약속을 다 지워 버렸다. 그만큼 공기마을의 편백숲은 한눈에 반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공기마을 편백숲의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소병주 상관면장이었다. 소 면장은 부임하자마자 공기마을 편백숲에 흥분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런 면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소 면장은 먼저 잡풀로 우거진 임도를 다듬어 냈다. 사람들이 하나둘 입소문을 타고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을을 보내고 봄이 되자 주말이면 마을로 드는 2㎞ 남짓의 좁은 시멘트 도로에 차들이 뒤엉켰다. 10여가구 남짓의 작은 마을에 주차장이 만들어졌다. 곧 그 주차장도 차들로 가득 차 두 번째 주차장이 만들어졌으나 이곳도 곧 차들로 채워졌다. 공기마을에 세 곳의 주차장이 들어선 것은 이 때문이다.

  편백숲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마을 사람들은 적잖이 놀랐다. 비로소 주민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편백숲을 찾아드는 사람들을 위해 숲 한가운데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을 놓았다. 순전히 흙과 쓰러진 편백나무로 놓은 2㎞ 남짓의 소박한 길이다. 그 길이 완성된 것이 이제 보름 남짓. 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편백나무숲 오솔길을 걷는 사람들은 누구든 ‘아, 좋다’를 연발한다. 

  공기마을 편백숲은 울창한 편백나무 사이에 주민들이 새로 놓은 오솔길을 걸어야 제맛이다. 편백들로 가득한 숲은 어찌나 나무들이 빽빽한지 주위가 어둑하다.

 


# 공기마을 편백숲을 걷는 법, 혹은 머무는 법



  알다시피 편백나무는 나무가 뿜어내는 휘발성 물질인 ‘피톤치드’ 발생량이 가장 많고 스트레스 해소와 아토피 피부염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편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혈중 농도를 절반 이상 줄여주고 면역력을 높여 아토피 피부염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단다. 그래서일까. 편백의 기운을 받느라 걸음이 자꾸 늦춰진다. 편백숲 한가운데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2㎞쯤 이어진다. 오솔길 구간에는 편백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 있다.

  오솔길을 다 걷고 내려서면 임도의 사거리다. 임도는 여기서 4㎞가량 더 이어지지만, 편백나무는 1.5㎞ 정도까지만 심어져 있다. ‘산책로 반환점’이라 씌어 있는 곳에서 되돌아나와 산자락 아래 산림욕장을 향한다. 산림욕장은 부드러운 경사면에 촘촘히 편백이 서있다. 다른 산림욕장과 달리 여기는 ‘걷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신선한 나무향을 즐기기도 하고, 잠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한다.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책을 펼쳐 들고 있는 이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공기마을 편백숲을 드는 이들은 저마다 돗자리나 가벼운 먹을거리, 책 따위를 들고 있었다. 공기마을 편백숲은 드물게도 ‘걷기만 하는 숲’이 아니라 ‘머무는 숲’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산림욕장을 지나서 마을로 내려서는 길에는 유황편백탕이 있다. 파이프를 박아서 유황물을 끌어올린 곳인데, 달걀이 썩는 유황내음 가득한 찬 물이 솟는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한때 유황온천으로 이름을 날리던 죽림온천이 근방이다.

 

 

 # 고요와 평화로 가득한 ‘수평의 길’을 만나다



  공기마을 편백숲이 ‘수직의 길’이라면, 상관면에는 ‘수평의 길’도 있다. 면소재지 서쪽 상관저수지의 북쪽 사면을 끼고 도는 수변 숲길이다. 지금은 갈수기에나 물을 공급하는 보조수원지이지만 상관저수지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부터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80여년 동안 전주 일대에 수돗물을 공급해 왔다. 일찌감치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으니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 상관저수지는 첫눈에도 상류쪽에 아름드리 버드나무들이 우거져 범상찮은 경관을 빚어낸다. 상류에 형성된 습지는 크기는 작지만 수달이 출몰할 정도로 숲이 우거졌다. 물가 주위로 빼곡하게 피어난 노란꽃창포가 뚝뚝 져 가고 있다. 특히 이른 아침 햇살이 퍼질 무렵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습지의 풍경은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름답다.

  길은 저수지 상류 끝에서 시작된다. 찰랑거리는 수면과 높이 차이가 20㎝쯤 될까. 숲길은 내내 물을 바짝 붙어서 간다. 이렇듯 물 위를 가까이 끼고 가는 길은 흔치 않다. 이 길은 당초 전북지역 4대 종단이 조성한 ‘아름다운 순례길’과 달래봉(436m)과 마재봉(312m)을 잇는 등산로를 연결해서 만든 것. 그러나 등산로를 타고 산에 오르지 않고, 상류 소대판마을에서 마재골물머리를 거쳐 물가를 끼고 도는 구간을 이어 붙여 걸을 수 있다. 아직 그 아름다움이 알려지지 않아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 길이다. 인근 주민들마저도 길을 아는 이가 없다. 저수지 상류에서 밭을 매던 농부에게 ‘이 길 끝이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을 정도다.

  공기마을 편백숲의 그늘에서 소목장 조석진(58사진)씨와 우연히 마주쳤다. 소목장이라 함은 옛 목가구나 창호 등을 만드는 장인. 조씨는 국내 최초의 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목재 분야의 1호 명장이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9호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열세 살 때부터 나무를 만진 그는 나무의 질감이나 무늬만 봐도 수종이나 수령을 척척 맞힌다. 한평생을 나무를 깎고 다듬어 왔으니 나무에 관한 한 ‘도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이즈음 매일 공기마을의 편백숲을 찾는다. 그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요양을 위해서다. 지난해 5월 급작스럽게 위암 3기 판정을 받은 뒤 대수술을 마치고 방사선치료를 하면서 요양을 위해 건강에 좋다는 숲을 찾아다니다가 친구의 소개로 공기마을의 편백숲을 만났다.

   “우리나라에 이름났다는 숲들을 다 가 봤지만, 이곳만 한 곳이 없어요. 내가 본 숲 중에서 단연 최고로 꼽을 수 있는 곳이지요.”

  조씨는 이곳 편백숲에 망설임없이 ‘최고’란 수식어를 달았다. 편백숲길을 걸을 때 코끝을 스치는 향기가 어찌나 강렬한지 머리가 다 어찔어찔해질 정도라고 했다. 그 길을 느긋하게 걸으면서 고요하게 명장을 하노라면 번잡스러운 생각들을 다 떨쳐 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목가구를 짤 나무를 사러 다닌다. 목상(木商)들로부터 ‘좋은 나무’가 나왔다는 연락이 오면 어디든 마다않고 찾아간다. 그렇게 모아서 잘 말려 놓은 나무가 공방에 가득 쌓여 있다. 몸을 추스르는 대로 올겨울부터 다시 공구를 들고 마음에 담아둔 가구를 짤 생각이다.

  편백은 보통 가구나 창호 등에 쓰이지 않는 수종. 그러나 그는 “고가구의 골재는 괴목이나 참죽을, 내부는 오동을 쓰는데 앞으로는 서랍 안쪽이나 가구의 뒤판으로 편백을 써볼 생각”이라고 했다. 편백숲을 찾고 나서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경험을 한 뒤로 ‘쓰는 사람의 건강’까지 생각한 향긋한 가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편백으로 가구를 만든들 살아 있는 숲이 주는 건강함을 당할 수 있을까.

  그는 “누구나 이 숲에 와 보면 잘 자란 나무가 얼마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며 “부디 이 숲이 건강한 사람에게나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만나다
 

  전북 완주에는 빼어난 명소들이 곳곳에 있다. 절제되고 소박하면서도 깊은 맛이 풍겨 ‘잘 늙은 절집’으로 불리는 화암사를 위시해 위봉사, 송광사 등의 이름난 절집도 있고, 동상저수지와 대아저수지를 끼고 도는 드라이브 코스도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양면의 ‘오스갤러리’도 지나치면 아쉬운 곳 중 하나다.

  오스갤러리는 이름 그대로 갤러리에다 레스토랑, 그리고 카페를 더한 곳이다. 오성저수지를 끼고 있는 오스갤러리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카페와 노출 콘크리트로 멋스럽게 치장한 갤러리가 있다. 카페 앞에는 초록의 잔디가 깔려 있어 낭만적인 느낌에다 예술적인 향취도 물씬 풍긴다. 그저 차를 마시자고 들어가는 곳은 아니라는 뜻이다. 갤러리에 들러 회화, 조각, 도예 등 전시된 미술작품을 둘러보고 카페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틀이 그대로 액자가 되는 창 밖으로 너른 잔디밭과 저수지의 물빛을 바라보며 누리는 차 한잔의 여유가 더할 수 없이 낭만적이다.

  오스갤러리의 주인은 건축가 전해갑씨다. 그의 지론은 ‘이 세상에 자연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것. 전씨는 최근 경남 진주에서 250년 된 한옥을 뜯어다가 갤러리 인근 종남산을 마주 보는 곳에 복원했다. 이름하여 ‘아원’이다. 실내구조나 난방방식 등을 현대식으로 개조하지 않고 뜯어온 그대로 짜맞췄다. 대신 한옥 뒤편에 직각의 낮은 시멘트 건물을 지어 한옥과 이어 붙였다. 다도체험 등을 위해 빌려 주는 곳이라는데, 어찌된 게 시멘트로 지은 건물의 내부가 한옥보다 더 한옥답다. 묵어갈 수 없어 아쉽긴 하지만, 갤러리에 정중하게 구경을 청하면 아원을 보여준다.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익산갈림목에서 익산-장수간 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완주나들목으로 나온다. 전주 방면 우측 도로로 접어들어 17번 국도를 따라 전주역과 아중역을 거쳐 상관면 소재지를 지나 호반약국 앞에서 우회전해 들어가면 편백숲이 있는 죽림리 공기마을이다. 마을 안쪽에 편백숲길 산책로 앞에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상관저수지는 상관면사무소에서 우체국을 지나자마자 우회전한다. 우회전 길이 마치 U턴처럼 굽었다. 이어 상관보건소 앞에서 749번 지방도를 따라 좌회전해 가다 보면 왼편으로 상관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를 알리는 표지판에서 좌회전해 물가 끝에 차를 세우면 거기서부터 수변 산책로가 시작된다.

 

 

 

<출처> 2010. 6. 23 / 문화일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