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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대관령 옛길’의 황홀함, 신사임당이 율곡 손잡고 서울 가던 길

by 혜강(惠江) 2010. 6. 15.

 

 ‘대관령 옛길’의 황홀함

 

 단오 때 신목 내려가는 길이자 신사임당이 율곡 손잡고 서울 가던 길

 

 

 

▲ 대관령 옛길

 

 

 계절을 이야기할 때 꽃으로 말하기도 하고 곡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옛 어른들 말로는 나이가 어릴수록 당장 눈에 보이는 꽃으로 말하고, 나이가 들수록 논밭의 곡식으로 시절이   가는 걸 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5월 말과 6월 초 사이의 요 짧은 한 주간이거나 열흘 정도의 기간을 무어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꽃으로 말하면 장미가 피어나고, 과일로 말하면 앵두가 빨갛게 익고 청매실이 통통하게 살이 올라 노래지기 전에 얼른 거둬들여야 하는 계절입니다. 곡식으로 말하면 밀과 보리를 수확하는 계절입니다. 

 

  가을에 씨를 뿌린 보리가 봄이 되어 다시 파릇파릇 바다와 같은 평원을 이루고, 그것이 바람 속에 황금 물결로 누렇게 익는 5월 말과 6월 초 사이의 이 시기를 어른들은 ‘맥추(麥秋)’라고 불렀습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보리가을인데, 같은 여름도 초여름과 한여름과 늦여름으로 나듯 예전 어른들은 같은 초여름 날씨라도 보리가 익는 ‘맥추 무렵’과 보리가 익은 다음의 ‘맥추 이후’를 구분해 썼던 거지요.

 

  같은 뜻의 말이라도 제 인생의 큰 스승과 같은 할아버지는 맥추보다 ‘맥량(麥凉)’이라는 말을 즐겨 쓰셨는데, 그것은 보리가 익을 무렵의 날씨가 봄과 여름의 한중간이면서도 또 가을처럼 서늘한 맛이 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도시에서는 잘 느낄 수 없지만 5월 하순에 한창 더울 때는 한여름 날씨처럼 덥다가 6월에 접어들며 며칠 동안 가을처럼 서늘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시기가 맥추 혹은 맥량이라 불리는 보리가을인 거지요.

 

  음력으론 대개 단오 무렵인데, 달력을 보니 올해는 단오가 조금 늦습니다. 그런 맥추와 맥량의 계절에 소개할 바우길은 제2구간 ‘대관령 옛길’입니다. 겨울부터 봄까지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흰 눈길이고, 가을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드는 이 길이 보리가 익는 맥추 무렵 며칠 동안 ‘단오가 서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 옛길 속새밭

 

   출발은 구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상행휴게소입니다. 서울에서 오는 길로 설명하면 고속도로를 타고 대관령 정상까지 내처 달리는 것이 아니라(주의하십시오. 그러면 여지없이 강릉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니까) 진부를 지난 다음 횡계로 빠져나와 국도를 이용해 대관령휴게소로 와야 합니다. 거기에 자동차를 세우면 ‘대관령 양떼목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고, 바우길 1 구간 ‘선자령 풍차길’로 가는 숲속 소로가 있고, 또‘대관령 국사성황당’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바로 이 길을 따라 국사성황당으로 죽 걸어가시면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인류 무형문화유산이 세 개 있습니다. 판소리와 종묘제례악과 강릉단오제가 바로 그것인데, 천년의 축제라고 불리는 강릉단오제가 시작되는 곳이 이곳 대관령 국사성황당입니다. 

  유네스코에서 인류문화유산을 선정할 때 함께 신청한 중국 단오와 강릉단오제가 경합을 벌였습니다. 보통 이러면 기원을 따지게 되는데 애초 단오가 기원한 것은 중국이 틀림없지만 그것은 단지 굴원의 고사와 함께 설화적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 신명나는 축제로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한 것은 강릉단오라 중국 단오는 탈락하고 강릉 단오가 인류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것입니다.

 

▲ 옛길 피나물밭.

 

  단군 신화에 보면 환웅이 처음 하늘에서 땅으로 올 때 신단수를 타고 내려옵니다. 단오의 주신인 국사성황신 역시 신단수처럼 신성한 나무를 타고 내려옵니다. 음력 4월 15일 국사성황제를 지낸 다음 신목(神木)을 잡는 신목부가 성황당 뒤편의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면 10여 명도 넘는 무당이 뒤를 따르고, 구름 같은 구경꾼이 다시 숨을 죽이고 그 뒤를 따릅니다. 

  숲을 헤치던 신목부가 어느 단풍나무 아래에 걸음을 멈추면 바람도 불지 않는데 그 나무가 갑자기 부르르 떨리기 시작합니다. 단군신화의 신단수처럼 국사성황신(신라 고승 범일국사신)이 바로 그 나무를 타고 내려온 것인데, 사람들은 신목부가 나무를 흔드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하지만 신목부가 손을 대기 전에 나무가 먼저 신호를 보냅니다.

 

  사진 속에 울긋불긋 예단을 걸치고 내려오는 나무가 바로 신목입니다. 사진 속의 행차도 제법 대단한 듯 보이지만 옛날엔 강릉부사의 명에 따라 북 치고 장구 치는 무격대 백 명, 저녁 때 횃불을 든 봉화군 수백 병, 제물을 짊어진 사람 수십 명, 말을 탄 관리와 말을 탄 무당 수십 명, 그 뒤에 신단수를 따르는 사람 수백 명이 줄을 서서 횃불 길이만 10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강릉단오제는 국사여성황사에 보름 동안 모셔놓은 신목을 단오장 한가운데 자리잡은 굿당으로 들어왔다가 나갈 때까지 아흐레 동안 밤낮 없이 이어집니다. 옛날의 소도처럼 이곳엔 사람이 숨어들어도 잡아가지 못했고, 자정 통금이 있던 시절에도 이곳만은 통금이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거의 모든 지역의 단오가 일본 헌병들의 말발굽 아래 사라졌지만 강릉단오만은 그 명맥을 그대로 유지해왔습니다. 그것은 강릉단오가 국사성황제를 바탕으로 한 제례와 굿당을 중심으로 한 무속과 난전의 놀이판이 함께 어울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대관령 옛길은 단오 때는 ‘신목’이 내려오는 길이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멀고 먼 서울 땅과 영동지방을 잇는 유일한 고갯길이었습니다. 예전엔 말 그대로 오솔길이었는데, 조선 중종 때 고형산이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하던 시절 우마차가 다니게 닦았다고 합니다.

 

▲ 어명정.

 

  나름대로 강직하긴 했어도 한편으로는 남곤과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일파를 숙청한 사람입니다. 그 후 세월이 흐른 다음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동쪽으로 내려와 고형산이 넓힌 대관령 길을 이용해 한양을 쉽게 침범했다고 해서 이때 놀란 인조가 그의 묘를 파헤치게 했다니 길과 사람의 일이라는 게 참 알 수가 없지요.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그곳의 풍경만 보고 걷는 것이 아닙니다. 길을 걷는 행위야말로 우리의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앞이 훤히 보이는 길과 굽어서 몇 걸음 앞을 짐작할 수 없는 길, 걷다가 돌아보면 또 너무 정신없이 걷는 데만 집중해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온 길 등 그렇게 길은 우리 인생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국사성황당에서 대관령 등길로 조금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동쪽으로는 멀리 동해와 강릉 시가지가, 또 서쪽으로는 아홉 폭의 주름치마처럼 대관령의 고원평탄면과 겹겹의 구릉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 보광리.

 

   늙으신 어머님을 고에 두고

   외로이 서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산을 날아내리네.

 

  신사임당이 어머니를 그리며 쓴 사친시입니다. 이 시처럼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서울로 가던 길이고, 송강 정철이 탐여를 타고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해오던 길이며, 김홍도가 길 풍경에 반해 중도에 화구를 펼쳐놓고 ‘대관령도’를 그린 길이고, 그 밖에도 참으로 많은 시인묵객이 글과 그림으로 헌사를 바친 길입니다.

 

  국사성황당에서 올라간 백두대간 등줄기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길은 작은 구릉 사이로 U자로 깊이 파인 길이 꼭 겨울이 아니라도 봅슬레이 경기장 속을 걸어 내려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을 걷거나 거대한 숲 속의 자궁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참나무 숲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대관령 반정’을 지나서부터는 두 팔을 활짝 펼쳐서 안아도 다 안을 수 없는 아름드리 금강소나무 14만 주가 길 양 옆으로 울울창창 서 있습니다. 그런 길을 따라 대관령 옛 주막까지 내려옵니다.

 

 

▲ 옛길에서 본 양떼목장.

 

  한여름에 길을 걷는다면 뙤약볕보다 그늘 길이 백번 좋겠지요. 같은 숲길이어도 그냥 잔디밭이거나 초원보다는 나무 숲길이 느낌뿐 아니라 실제 공기도 다릅니다. 그런데 같은 나무 숲길이어도 일반 활엽수 숲길과 소나무 숲길은 또 다릅니다. 활엽수 숲길을 걷다가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가면 몇 걸음 옮기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어떤 다른 기류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것이 바로 길 옆에 선 나무들이 나에게 주는 위로구나 싶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지 않더라도 살갗에 닿는 공기가 내 몸을 참 귀하게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소나무 숲은 그렇게 우리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소나무 숲을 지나 바우길 제2구간 대관령 옛길은 주막터 아래 첫 마을에서 계속 아래로 대관령박물관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왼편 어흘리 가마골을 지나 다시 산림청 대관령휴양림 쪽으로 방향을 틀어 보광리마을까지 나아갑니다.

 

 

▲ 강릉단오제 중 성황당 산신제. / 대관령성황당 삼신각.

 

  어흘리에서부터 보광리까지 구간의 산길은 예전 나무꾼들이 다니던 길이고 두 마을 사람들끼리만 다니던 길입니다. 이제 산속 마을들도 땔나무를 하지 않아 오랫동안 묻혀 있던 길을 지난해 여름부터 봄까지 바우길 탐사반이 열 번도 넘게 나가 다시 찾아낸 길입니다. 국사성황당에서부터 옛 주막터까지 대관령 옛길 구간이야 원래 소문난 길이지만, 바우길을 걸은 사람들은 옛길 구간보다 이번에 새로 탐사한 어흘리~보광리 구간이 더 황홀하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아름드리 나무와 산골마을을 감싸 안는 얕은 산세가 주는 아늑함에서 오는 황홀함입니다. 오솔길도 황홀하고 또 오솔길 옆의 아름드리 소나무들도 참으로 황홀합니다. 신목이 내려가고, 사람이 내려가고, 나무들의 정령이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길입니다. 도시보다 6~7도 정도 기온이 낮아 공기도 계곡의 물처럼 시원해 우리의 걸음을 붙잡는 길입니다. 지금 등산화를 챙기시기 바랍니다.

 

 아침부터(10시 전에) 걷기 시작하면 점심을 옛 주막터 아래 식당에서 먹으면 됩니다. 도시락을 준비해 경치 가장 좋은 곳에 앉아 드셔도 좋습니다. 비가 오면 대관령 아래 구간 바위 위를 걸을 때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전체 구간 15km(5~6시간 소요)

구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상행휴게소(양떼목장 주차장) 출발~국사성황당~반정(대관령 옛길 돌탑)~옛길 주막~어흘리~산길로 보광리 유스호스텔

 

교통
영동고속도로 횡계 톨게이트→구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하행선 휴게소에서 상행선 휴게소로 우회 이동).  서울~횡계 동서울 터미널에서 횡계행 버스 06:32, 07:10, 08:15, 09:00, 09:35, 10:10, 10:50, 11:25. 

문의 횡계터미널 033-335-5289. 횡계~(구)대관령휴게소 시내버스가 없으므로 택시 이용. 

횡계 개인택시 033-335-6263/335-5960, 횡계택시 335-5596


 / 사진 이기호 바우길 개척대장 

 

 

<출처> 2010. 6 /월간산 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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