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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제주도

제주 오름 ‘3色 기행’ - 목장, 바다, 습지 ‘개성 가득’

by 혜강(惠江) 2010. 6. 1.

 

제주 오름 ‘3色 기행’

 

'오름'이 숨겨논 '낯선 제주' 여기 있었네

 

목장, 바다, 습지 ‘개성 가득’… 제주의 삶을 굽어보다

 

 

박 경 일  기 자

 

 

 

▲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송당민오름 정상 부근의 풀밭에 앉아 내려다본 목장 풍경. 소들이 평화롭게 연못 주위의 초지를 어슬렁거리며 풀을 뜯는 모습에서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이국적 정서가 느껴진다.

 

 

  제주에는 ‘오름’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분출을 멈춘 기생화산. 누구는 365개라고도 하고, 누구는 368개라고 했습니다. 한라산이 거느리고 있는 이 수많은 오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때로는 장엄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기자기하기도 한 풍경을 빚어냅니다.

  제주를 찾는 이들은 누구나 바닷가에 서서 그 아름다움에 탄복하지만, 정작 제주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의 정점은 중산간의 부드러운 오름의 능선과 그 오름에서 굽어 보는 제주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주를 찾는 이들이 올레길을 걸으며 비로소 길의 아름다움을 느꼈듯이, 오름을 올라보게 된다면 그 부드러운 구릉과 높이가 주는 매력을 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주의 이름난 오름이라면 거문오름,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아부오름, 물찻오름 등이 꼽힙니다. 제법 관광객들의 발길도 잦고 오름길도 뚜렷한 곳입니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오름들도 제각각의 아름다움 하나쯤은 안고 있습니다.

  오름의 매력은 그야말로 다양합니다. 오르는 숲길이 좋은 곳이 있고,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도 있습니다. 아래서 올려다보는 풍경이 좋은 오름도 있고, 오름의 능선을 장식하는 들꽃들이 좋은 곳도 있지요. 그렇게 오름의 아름다움을 보는 ‘다양한 시선’만 갖게 된다면 제주 땅 360여곳의 어떤 오름을 오르든 빼어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 이즈음 올레길이 맹렬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도, 새로 풍경을 발견해낸 것이 아니라 기왕에 있던 길을 이으면서 ‘제주의 아름다움을 보는 방법’을 일러 준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름들을 찾아가 봤습니다. 알려지지 않았으되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곳을 골라 봤습니다. 그렇게 꼽아 본 것이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의 송당민오름과 애월읍 고성리의 산세미오름, 그리고 ‘송악산’으로 불리는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의 절울이오름, 이렇게 세 곳입니다. 송당민오름에서는 이국적인 정취의 목장 풍경을, 산세미오름에서는 자그마한 연못이 담고 있는 오름 자체의 모습을, 절울이오름에서는 깎아지른 벼랑과 바다 너머의 가파도와 마라도의 풍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꼽자면 이들 세 곳 말고도 왜 더 못 꼽겠습니까. 사실 제주의 이름 없는 오름을 찾아 나설 때마다 불친절한 안내판과 헷갈리는 길 때문에 여간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입로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다가 막힌 길 앞에서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알았습니다. 제주가 품고 있는 360개 남짓의 오름들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천천히 개발해야 하는 것임을, 제주의 길들을 천천히 걸어야 하듯 오름들도 천천히 올라야 하는 것임을…. 그래서 이번에는 이들 세 오름의 아름다움만을 담아 보여 드리기로 했습니다.

 

 

#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송당민오름

 

 

▲ 제주의 이국적인 풍경이라면 단연 목장이다. 5·16도로(1131번 도로)의 견월악송신소 앞 제주마방목장의 말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그곳에 송당민오름이 있다. ‘우리 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국적인 목장의 정취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이른바 ‘육지 사람’들에게 초지로 가득한 제주의 목장들은 어디건 색다른 모습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이곳 민오름이 주는 이국적인 맛은 특히 강렬하다. 오름의 부드러운 정상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송당목장이 빚어내는 ‘이국의 정서’는 한눈에 반할 만하다. 외국의 달력 사진을 뜯어서 펼쳐 놓은 듯하다. 볼거리로 양을 풀어 놓는 대관령의 양떼목장 같은 곳에 비할 바가 아니다. 목장의 규모부터 아예 차원이 다르다. 1956년 국립목장으로 개발된 송당목장은 조성 당시 2975만㎡(900만평)에 달했다. 민간에 매각된 지금도 그 광활한 초지의 목장 규모는 상상을 넘어선다. 게다가 이 목장은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길러내기 위해서 소를 방목하고 있는 곳이다.

  목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하늘을 찌를 듯 촘촘히 도열해 있는 삼나무숲. 숲은 마치 높은 벽처럼 목장의 방목지를 구획하고 있다. 숲으로 닫힌 초지 안에 귀족의 우아한 저택만 들여놓는다면 그 모습 그대로 중세 시대 유럽의 장원 풍경이 되리라. 초지에서는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거나 연못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풀을 뜯다 말고 고개를 든 소들의 울음소리는 길고 또 평화롭다. 송당목장의 소들은 비좁은 축사에 가둬 길러지는 소들과는 왠지 풍모도 다르다. 늠름하고 당당하다.

  송당민오름이 있는 송당리는 제주 사람들 사이에서 ‘오름의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다. 오름의 이름만 댄대도 숨이 찰 정도다. 송당민오름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북쪽으로 거슨새미오름, 칡오름이 있고, 동쪽으로는 아부오름, 높은오름, 동검은오름, 백약이오름이, 남쪽으로는 돌리미오름, 비치미오름, 개오름, 성물오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송당리의 오름들은 하나하나가 다 멋지고 아름다운 이른바 ‘명품 오름’들이다.

송당목장으로 들어 오름길 들머리의 1㎞ 남짓한 편백과 삼나무숲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하늘을 가릴 듯 솟은 우람한 나무들 사이로 난 비포장길을 걷는 맛이 그만이다. 길 한쪽의 목책 안에는 미끈하고 탄력 있는 근육의 말들이, 다른 쪽에는 소들이 평화롭게 뛰놀고 있다. 간혹 목책을 넘어온 노루 무리가 고개를 빼들고 이쪽을 쳐다보기도 한다.


# 수민에 비친 오름의 유려한 곡선…산세미오름

 
 
▲ 발치에 아담한 연못을 끼고 있는 산세미오름. 오름의 부드러운 능선이 수면 위로 데칼코마니처럼 찍힌다. 오른쪽 기슭에 방목 중인 소가 보인다.



  제주에는 물이 적다. 한라산을 끼고 있는 제법 큰 계곡들도 장마철이나 비 오는 때를 제외하고는 다 말라붙는다. 화산암이 물을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물게 습지가 형성된 곳들이 있다. 굼부리에 물을 담은 오름으로는 물찻오름과 물영아리오름, 사라오름, 원당오름, 금오름 등이 있고 오름 주변에 샘이나 습지 연못이 있는 오름으로는 세미오름과 산세미오름이 있다. 그 중 애월읍 고성리의 산세미오름은 오름 중에서도 독특한 정취를 빚어낸다. 산세미오름이란 이름은 오름 길이 시작되는 입구쪽에 물이 솟는 아담한 연못이 있어 붙여졌다.

  산세미오름에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빼어난 것은 오름 아래쪽의 연못이다. 물은 황토색으로 탁하지만 그리 크지 않은 연못의 수면 위에 산세미오름의 봉긋한 능선이 거울처럼 담겨 있다. 부드러운 오름의 능선과 그 능선이 수면에 비쳐서 만드는 선이 마치 접었다가 편 데칼코마니처럼 유려한 풍경으로 펼쳐진다. 그 거울 같은 물가의 솔숲 사이로 방목 중인 소들이 몇 마리씩 내려와서 물을 마시기라도 한다면 그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굳이 오름을 오르지 않고 연못 주변만 둘러본다 해도 좋다. 오름길은 해송과 관목들로 빽빽하다. 정상에서의 전망도 숲에 가려 아래서 보는 풍경만 못하다.

  굼부리에 물이 담긴 오름으로는 물영아리오름을 첫손으로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국제습지조약(람사르협약)에 습지보호구역으로 등록된 곳이다. 오름을 따라 오르는 길에 쭉쭉 뻗은 숲이 청량하다. 입구에 탐방안내소도 있고, 오름 덱길도 잘 단장돼 있어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굼부리 습지의 물은 지하수나 하천에서 유입된 게 아니라 비가 내려 담긴 것. 그럼에도 200여종이 넘는 습지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 제주의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대…절울이오름

 

▲ 흔히 송악산이라 불리는 절울이오름의 깎아지른 해안절벽과 그 위로 난 운치 있는 산책로의 모습.

 
 
 

제주의 해안쪽 어디서건 근사한 바다가 바라다보이지 않는 곳이 있을까. 해안가 근처의 오름에만 오르면 빛나는 제주의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다. 그러나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의 절울이오름은 그 중에서도 첫손으로 꼽을 만하다. 제주 최남단 오름인 절울이오름은 흔히 ‘송악산’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절울이오름은 언뜻 봐서는 오름처럼 보이지 않는다. 바다 위로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그 위에 오름이 앉아 있기 때문이다. ‘절울’이라는 이름은 오름의 직벽에 부딪치는 절(파도의 제주 사투리)이 우는 소리를 낸다 해서 붙여진 것이다.

  절벽을 끼고 우뚝 서 있는 절울이오름의 허리춤인 절벽까지는 차로와 산책로가 나 있다. 마라도로 향하는 선착장과 바다 위에 솟아 있는 형제섬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관광선과 마라도행 여객선이 반짝거리는 바다를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관광객들은 대개 오름 아래 해벽 위로 난 산책로만 걷고 되돌아간다. 그러나 오름의 능선에 올라 시선을 더 높이면 풍경은 더 빛을 낸다. 시선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풍경이 이렇듯 매혹적으로 변하는 게 마치 마술과도 같다. 너른 초지처럼 보이는 봉긋한 언덕 위에 올라 오름 정상에 발을 디디면 급경사를 이루며 깊이 꺼진 분화구가 내려다보인다. 깊이 70m. 분화구 안은 아직도 검붉은 화산재로 뒤덮여 있다. 분화구의 경사면은 70도가 넘는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저 안으로 떨어질 수도 있겠다 싶어 왈칵 무서움증마저 든다.

   그러나 절울이오름에서 봐야 할 것은 분화구보다는 남쪽과 서쪽으로 펼쳐지는 황홀한 바다의 전망이다. 동쪽 멀리에는 한라산이 솟아 있고 우람한 송악산이 바짝 다가온다. 고개를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리면 서남쪽 바다에는 형제섬이, 그리고 남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가까이는 가파도가, 멀리는 마라도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오름 주위를 여유있게 돌면서 오래도록 둘러봐도 도무지 싫증이 나지 않는 풍경이다. 여기다가 오름 아래 초지로 난 벼랑길 산책로를 한적하게 걷는 이들까지 바다와 어우러지면서 풍광에 가세한다. 매혹적인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는 곳, 사람마저 풍경이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절울이오름이다.

가는 길

 


  송당민오름 주소는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 156이다. 제주시쪽에서 출발한다면 거로사거리에서 97번 도로를 따라 조천읍을 지나 부대악과 거문오름 사이를 지난다. 명송통나무리조트가 있는 대천동사거리에서 비자림로·송당 방면으로 좌회전해 1112번 도로를 따라 2.1㎞쯤 가면 오른쪽으로 송당목장이 있다. 목장 안으로 들어가면 왼편에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이 있는데 별장 옆으로 오름길이 나 있다. 목장 입구에 차량 차단봉이 설치돼 있고, 목장 관계자의 전화번호가 적힌 팻말이 서 있다.

  산세미오름을 찾아가려면 제주시 노형동 노형오거리에서 신비의 도로 방면으로 좌회전해 1139번 도로를 타고 가다 노루생이삼거리에서 직진, 어승생삼거리에서 직진해 1117번 도로를 타고 간다. 삼거리에서 3.9㎞쯤 가면 왼쪽으로 산세미오름을 알리는 비석이 서 있다. 비석 옆으로 오름길이 있다.

  제주 최남단 오름인 절울이오름은 서귀포에서 더 가깝다. 서귀포시외버스터미널 앞을 지나는 1132번 도로를 타고 중문을 지나 계속 직진하다 덕수삼거리에서 산방산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여기서 사계리로 가는 해안도로를 따라 사계해수욕장을 거쳐 마라도 유람선 선착장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해안 절벽도로로 오른다. 이 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오른편으로 오름길이 있다.

 
 

<출처> 2010. 6. 1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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