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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천안함의 자랑스러운 영령들에게, 어찌 잊을까, 그대들 있어 우리 있음을

by 혜강(惠江) 2010. 4. 17.

 

천안함의 자랑스러운 영령들에게

 

어찌 잊을까, 그대들 있어 우리 있음을

 

 

 

 

절절한 사연들 남기고
스러지기 전에는
그대들이 뜬눈으로 지키어
우리가 눕고 깨고 살 수 있었네

 

 

  진달래꽃 꽃잔디 벚꽃 복사꽃이 만발한 봄날. 천안함의 젊은 혼령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비친 그대들의, 생목처럼 싱싱하고 꽃처럼 활짝 핀 얼굴 얼굴을 보는 가슴은 쓰렸습니다. 노모는 눈을 떼지 못한 채 “아야, 어쩔거나. 눈뜨고는 봇 보겄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천안함이 두 동강 났고 함미와 함수가 물 밑에 가라앉았다는 놀라운 비보를 접했을 때, 우리는 그대들이 기적적으로 생환하기를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은 끝내 기적을 보여주지 않았고 여러분은 드디어 차디찬 시신으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서로를 부여안고 통곡하고 땅을 치며 뒹굴다가 까무러치는 유가족의 슬픔에 잠긴 모습을 보는 우리의 가슴은 진저리쳐지는 분단의 아픔과 분노와 뜨거운 울음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천안함의 꼬리부분이 인양되는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텔레비전 앞에 앉아 한 가닥 한 가닥의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물 속에 잠겨 있던 함미를 인양하고 물을 뺄 때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함미를 지탱해주는 쇠줄이 끊어지고 함미가 다시 가라앉아버리면 어찌할까. 거센 바람이 일어나 파도가 드높아지면 어찌할까. 저 함미 속에 과연 수병들이 들어 있을까. 만일 수병들의 시신이 유실되고 없으면 어찌할까.

  함미의 통로가 열렸을 때 우리에게는 참담한 비보가 거듭 날아들었습니다. 승조원 식당에서 4명의 시신이 나타났고, 기관부 침실에서 14명의 시신이 나타났으며, 샤워실에서 6명의 시신이 보였고, 운동 공간으로 쓰는 후타실에서 4명의 시신이 나타났고, 탄약고에서 2명의 시신이 나타났다는 소식. 여러분의 시신은 목에 걸린 쇠로 된 인식표에 의해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신원이 가려졌습니다.

 

  그러저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여러분은 근무를 하다가 교대를 한 다음 잠자리에 들어 있었고 가벼운 차림으로 몸을 풀고 있었고 휴게실에서 한담을 하고 있었고 탄약고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고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집에 있는 어머니나 애인이나 아내와 통화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단꿈에 빠져 있었고 또 누구인가는 제대 뒤의 취직을 위하여 공부를 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꽝 하는 굉음과 함께 비명에 갔습니다.

  다음 달 9일에 결혼을 하기로 되어 있는 예비신랑인 중사는 기혼 장병에게 제공되는 진해시의 해군 아파트에 입주할 목적으로 예비신부와 미리 혼인신고를 한 상태로 비명에 갔습니다. 어느 하사는 홀어머니가 뇌중풍으로 돌아가심으로써 고아가 된 다음 혼자 힘으로 학비를 벌어 학교에 다닐 생각으로 부사관으로 입대를 하였는데 이번에 그리되었습니다. 생일을 앞둔 병사, 제대를 한 달 앞둔 병장도 그리되었습니다.

  또 어느 중사는 맹장수술을 한 상처가 채 치유되기도 전에 배에 올라 근무하다가 그리되었고, 잠자리에 들면서 아내에게 “자기야 잘 자. 나 교대하고 잠자리에 들었어” 하고 전화를 끊은 다음에 그리되었고, 또 한 하사는 강원도에 사는 어머니에게 월급을 꼬박꼬박 부쳐주던 효자인데 그리되었고, 또 어느 병장은 삼대독자인데 그리되었습니다.

  아, 누가 청순한 그대들의 사랑과 꿈과 내일의 희망을 그렇게 망가뜨렸고 그대들을 깜깜한 죽음 속으로 몰아넣었습니까. 유가족인 어느 아버지는 해군식당에서 미역국이 담긴 식판 하나를 아들 몫으로 받아다 앞에 놓고 아들의 생일을 흐느끼며 조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땅의 보통사람인 여러분은 이 땅과 이 바다를 지키는 용사가 되어 분투하다가 문득 비명에 갔습니다. 아, 이 무슨 억장 무너지는 가슴 찢어지는 슬픔입니까. 아직 시신마저 찾지 못한 영령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한스러운 영령과 그 유가족에게 위로할 어떠한 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육지에 사는 우리는 바다 일선에서 방비를 해주는 그대들이 있어서 잠자리에서 베개를 높이 베고 잠들 수 있었고 바다 여행을 편히 할 수 있었고 해수욕을 할 수 있었고 고기잡이를 안심하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대들이 있어서, 모든 공장이 잘 돌아가고 있었고 전자제품과 자동차가 잘 팔려 경제가 안정되고 있었습니다. 그대들이 있어서 이 민족의 문화가 화사하게 꽃피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창졸간에 여러분들은 먼 나라로 떠나갔습니다. 우리는 허공을 쳐다보며 멍해집니다.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천안함에서 근무하다가 비명에 간 그대들에게 우리는 어떠한 보상을 해주어야 합니까. 과연 그 어떤 보상으로 그대들의 죽음에 보답이 된단 말입니까.

  우리는 지금 슬플수록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대들이 편히 영면에 들 수 있도록 우리들이 이 땅과 바다를 잘 지켜야 한다고, 그대들을 잃고 슬픔에 젖어 있는 그대들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자식 형제를 위로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대들의 죽음을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고, 그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분투해야 한다고. 

젊은 혼령들이여, 굳은 땅에 물이 고이듯 이번의 비극을 계기로 우리는 더욱 단단해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가서라도 이 땅 이 바다를 지키는 여러분의 후배들을 잘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삼가, 한스럽게 이승을 하직한 여러 젊은 그대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 한승원 소설가

 

 

 

<출처> 2010. 4. 17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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