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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광주. 전남

전남 고흥 봄맞이 여행, 초록의 힘, 겨울을 밀어내다

by 혜강(惠江) 2010. 2. 19.

전남 고흥 봄맞이 여행

 초록의 힘, 겨울을 밀어내다

 

박경일 기자

 

 

 

  전남 고흥의 나로대교 아래 옥강리의 바지락 양식장에 떠밀려온 파래가 온통 초록의 밭을 이루고 있다. 설 연휴 하루 전날, 도회지에서 귀향할 자식들을 위해 촌로들이 차진 개펄에서 겨우내 탱글탱글 속살이 여문 석굴을 따고 있다.

 

 
  온통 초록색이었습니다. 외나로도 봉래산의 삼나무 숲에도, 나로대교 아래 옥강리의 바지락 양식장에도, 과역리의 마늘밭에도 초록색이 당도했습니다. 전남 고흥반도에서는 바람 끝에도, 햇살 끝에도 봄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바람과 햇살이 고흥의 산과 바다, 들판을 차례로 초록색으로 물들여가고 있었습니다. 그 초록을 딛고 남도는 지금 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전남 고흥반도는 멀고 멉니다. 수도권에서 가자면 예닐곱 시간쯤은 넉넉히 걸립니다. 그러나 봄을 맞이하겠다고 한다면 이 정도의 거리가 대수겠습니까. 남녘 땅의 봄기운은 겨우내 매서웠던 혹한으로 단단하게 긴장됐던 근육을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게 풀어줍니다. 고흥에서 봄기운에 몸을 적시겠다면, 우람한 나무둥치와 초록의 관목들이 빼곡히 산자락을 가득 메운 삼나무 숲길을 타박타박 걸어도 좋겠고, 파래가 밀려온 바지락 양식장 개펄의 아지랑이 속에서 굴을 캐는 어촌주민들이 생계를 꾸리는 현장을 내려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부드러운 구릉마다 초록으로 물결치는 마늘밭 사이에 서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혹시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봄을 가두어두고 싶다면 폐교에 들어선 소박한 미술관 3곳을 찾아가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김금남 작가의 ‘화행(畵行)’전이 열리고 있는 도화헌미술관이나 남포미술관도 좋습니다. 그보다 더 낭만적인 기행을 원하신다면 페리를 타고 거금도를 딛고, 다시 여객선을 타고 자그마한 섬 연홍도로 건너가 ‘섬 속의 섬’에 들어선 연홍미술관엘 다녀와도 좋겠지요. 연홍미술관에서는 지금 여수 출신 화가 3명의 ‘3인3색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미술관에 걸린 그림 속에서는 쪽빛 바다가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고흥에는 반도 동쪽의 남열리, 서쪽의 용정리 그리고 남쪽 거금도의 오천리 일대의 그림같은 바다 드라이브 코스도 있습니다. 마치 파도가 오르내리는 듯 출렁거리는 이 길은 바다 경관뿐만 아니라 마을과 포구를 휙휙 지나쳐가면서 바닷가 사람들의 생활 속을 관통하는 길이어서 더욱 따뜻합니다. 고흥만의 습지를 지나면서는 이제 막 떠날 차비를 하고 있는 순백의 고니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고흥에서는 이런 뜻밖의 명소들이 즐비해서 혹시 출발 전에 목록에 올려놓은 소록도와 외나로도 우주센터를 동선에서 지울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에도 들에도 촌부들 마음에도 ‘봄빛’이 시나브로∼
 
 
 
 

고흥 땅 어디에서나 야트막한 구릉에는 마늘이 심어져 있다. 겨울 추위를 견뎌내고 푸릇푸릇 자라난 마늘밭의 이랑을 걷노라면 다가온 봄이 손에 잡힐 듯하다.

 

▲ 위 사진은 나로도 가는 길가의 텃밭에서 만난 갓 이파리에 봄비가 맺혀있는 모습. 아래는 대낮에도 어둑어둑한 외나로도 봉래산의 편백·삼나무 숲.

 

 

# 개펄에서 만난 초록, 그 초록보다 더 짙은 아버지의 노동

그 개펄에서 초록색을 만난 것은 뜻밖이었다. 썰물로 바닷물이 밀려나가면서 나로대교 아래 동래도 앞 차진 개펄이 드넓게 드러났다. 끝간 데 없는 개펄이 온통 초록빛으로 빛났다. 깊은 바다에서 떠밀려온 파래였다. 애초에 개펄에 돌담을 쌓아만든 바지락 양식장인데, 그 양식장으로 파래들이 떠밀려와 걸린 것이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초록빛이었다. 남도 땅이 이제 막 봄의 문턱을 넘었음을 알리는 그 초록의 싱그러움이었다.

그러나 초록의 풍경보다 정작 가슴을 덥힌 것은 ‘노동의 풍경’이었다. 촌로들이 지게를 지고 물골을 따라 개펄을 오갔다. 이제 막 종패(씨조개)를 뿌렸으니 바지락 채취는 아직 한참 이른 시기. 바지락 대신 겨우내 탱글탱글 속살을 키운 굴을 캐러 가는 길이었다. 촌로들은 아스라이 멀리까지 나가 차진 개펄에 손을 넣어 어른 손바닥만한 튼실한 석굴을 따서 지게에 한 짐씩 싣고 나섰다.

질벅거리며 미끌미끌 발목을 붙잡는 개펄 위를 무거운 지게를 지고 휘청거리며 물골을 따라나온 굵은 주름의 촌로들은 이따금 갯바위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마침 설날 연휴를 하루 앞둔 날. 이들이 고된 노동으로 캐내온 굵은 석굴의 쓰임은 묻지 않아도 알 일이었다. 석굴은 도회지에서 객지살이를 하는 자식들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리라. 실한 굴을 넣고 개운하게 끓여낸 떡국은 도회지 생활에 지쳐 돌아온 자식들에게 비로소 고향 바다로 되돌아왔음을 일깨워줄 것이겠다. 명절 며칠 전부터 행여 몸이라도 상할까 자식들이 전화를 걸어와 “갯일을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했지만, 가진 것 없는 바닷가 마을의 촌로들이 그저 손놓고 자식들을 기다리기는 만무한 일. 할머니는 저물도록 무릎까지 빠지는 개펄에서 석화를 캐고, 할아버지는 그 석화를 지고 휘청거리며 갯골을 따라 실어내온다. 그 갯가 풍경이 가슴을 덥히는 것은 조류에 떠밀려온 초록의 기운보다, 자식들에게 내어놓는 고향의 밥상을 위해 기꺼이 바치는 촌부들의 고된 노동이다.

 

# 봉래산의 삼나무·편백나무의 장대한 숲

이즈음 고흥 땅은 초록색으로 가득하다. 고흥 땅 어디에나 구릉을 따라 심어진 마늘은 진즉부터 초록빛이 성성했고, 여기다 보리밭도 푸름이 더해가고 있다. 길가의 텃밭에 심어놓은 갓에는 마침 내린 봄비가 동글동글 고여있다. 고흥에서는 어디로 향하든지 이런 초록의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시야에 보이는 풍경은 액자에 가두어 두면 그것 그대로 ‘봄의 풍경’이 될 정도다. 고흥을 ‘지붕없는 미술관’이라고 일컫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흥에서는 외나로도를 빼놓을 수 없다. 고흥에서 나로대교를 지나면 내나로도이고 여기서 다시 다리를 건너면 외나로도에 닿는다. 외나로도가 알려진 것은 우주센터 덕이지만, 사실 우주센터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관광객들은 우주센터 입구의 우주과학관이나 나로호 모형 우주선 정도만 들러볼 수 있다. 과학관의 전시물들은 그것만으로도 열광할 만하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우주센터와 발사대는 외지인들의 시선으로부터도 숨겨져 있어 먼길을 찾아간 관광객들에게 실망스럽게도 ‘그저 거기 있겠거니’ 하는 정도의 감흥만 전해줄 뿐이다.

그럼에도 외나로도를 찾아가는 이유는 봉래산 자락을 가득 메운 우람한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을 만나기 위한 것이다. 우주과학관 앞의 작은 다리에서 오른편으로 난 샛길을 따라 저수지를 지나 10분쯤 오르면 힘찬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이 펼쳐진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난 숲의 수목은 삼나무로 알려져 있지만, 찬찬히 둘러보니 오히려 편백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겨울에도 짙푸른 상록림이지만, 겨울의 초록이 좀 어둡다면 봄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 초록빛이 화사하게 생기가 돈다.

숲이 시작되는 중턱의 돌담들이 서 있는 집터에서 바라보는 숲은 그야말로 탄성이 절로 터진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은 맑은 날의 풍광도 좋지만, 비가 내리고 안개가 피어나면서 원뿔형 수형들을 지웠다가 그려냈다 하는 때가 가장 아름답다. 일순 안개가 숲을 빨아들였다가 내뱉는 모습에서는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 미술관에서 쪽빛 바다와 봄의 정취를 만끽하다

고흥에서는 바다와 봄의 정취를 예술적인 정취로도 느낄 수 있다. 눈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봄을 만나기 위해 찾아갈 곳은 미술관이다. 고흥에는 군 단위의 지자체로는 드물게 3곳의 사립 미술관이 있다. 여기다가 고흥종합문화회관에 마련된 화가 천경자 전시실을 합친다면 고흥의 미술관은 모두 4곳이다. 이들 미술관을 찾아나서는 여정도 권할 만하다. 고흥에서 미술관을 찾아간다는 것은, 미술관이나 그림을 보는 데 앞서 그곳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바다의 정취까지도 즐길 수 있으니 도회지의 다른 어떤 이름난 미술관보다 더 빼어난 감동을 선사한다. 미술관보다, 미술작품보다, ‘미술관 가는 길’의 아름다움이 더 앞선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사립미술관은 모두 폐교를 단장해서 만든 곳. 도화면 구암리의 도화헌미술관은 단장분교가 문을 닫은 자리에 들어섰고, 영남면 양사리의 남포미술관은 영남중학교가, 금산면 신전리 연홍도의 연홍미술관은 연홍분교 폐교터에 자리를 잡았다.

미술관의 시설이나 규모 면으로 보자면 영남면 양사리의 남포미술관이 첫손으로 꼽힌다. 남포미술관은 교정 곳곳에 조각작품이 설치됐고 미술관 내에는 서양화와 한국화를 가리지 않고 수준높은 작품들이 상설전시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전시장에서 온통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그림 앞에 서면 마음까지 화사해진다.

오붓한 정취로 치자면 도화면 구암리의 도화헌미술관이 으뜸이다. 인근에 고흥의 명소 중의 명소인 활개바위와 금강죽봉의 해안풍경을 가진 고흥반도 남단에 자리잡은 도화헌미술관은 규모가 작고, 전시작품도 소품들이 대부분이지만,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과 작은 음악공연을 치를 수 있는 운치있는 공간도 갖고 있다. 사방으로 그림이 내걸린 다실의 마룻바닥에 앉아 따스한 차 한잔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운치가 그만이다.

가장 극적으로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은 소록도 아래 카페리로 뱃길을 잇는 거금도의 신양선착장에서 다시 여객선을 타고 가는 연홍도의 연홍미술관이다. 연홍도는 섬을 딛고 다시 섬으로 들어서는 ‘불편함’이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준다. 바다를 정원으로 거느린 연홍미술관은 그곳에 가는 도정만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섬 속의 섬 미술관… 작품과 바다의 감동 함께 즐기죠”

 

- 선호남 연홍미술관장

 

고흥반도에서 거금도를 딛고 건너가는 자그마한 섬인 연홍도는 말 그대로 ‘섬 속의 섬’이다. 주민이래야 50여호의 100명이 고작인 작은 섬 연홍도에는 미술관이 있다. 금산초교 연홍분교의 폐교터에 자리잡은 ‘연홍미술관’이다. 선호남(49) 관장은 연홍미술관을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섬마을의 미술관”이라고 소개했다.

“도시에는 우리보다 훨씬 더 시설이 좋은 사설미술관들이 즐비하지요. 하지만 아름다운 남쪽바다를 정원으로 들인 미술관은 우리가 유일할 겁니다.”

올해로 개관 14년을 맞은 연홍미술관은 150여점의 보유 작품으로 상설전시를 하면서 ‘섬과 바다’ 혹은 고흥을 주제로 한 특별전을 꾸준히 열고 있다. 지금도 여수출신 화가 3명의 작품을 전시하는 ‘3인3색전’을 열고 있다. 연홍미술관은 사실 미술관의 입지로는 0점에 가깝다. 고흥에서 배를 두번 갈아타야 한다. 뱃시간에 맞춰 움직이려면 꼬박 하루가 걸리는 일정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연홍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무려 3000명에 달했다.

“우리 미술관에서는 전시품은 물론이거니와 섬의 아름다움까지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카페리와 도선을 갈아타고 들면서 만나는 풍경도 미술관의 그림 못지않은 감동을 빚어내는 것이지요.”

선 관장은 스스로도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 폐교를 임차해 처음 연홍미술관을 개관한 김정만(80)씨와 고흥 민예총 사무국장 시절에 인연이 닿아 연홍미술관 운영을 맡게 됐다. 미술관 문을 연 김씨는 연홍도가 고향으로 14세 때 고향을 떠나 직업군인이 돼서 대령으로 예편한 후에야 비로소 화폭 앞에 선 늦깎이 화가. 그가 연홍분교 폐교를 임차해 미술관을 개관했고 4년 전부터는 선 관장에게 연홍미술관 운영을 맡겼다.

선 관장은 아내가 고흥읍내에서 제법 이름난 음식점을 운영해 ‘먹고 사는 데’ 별 다른 어려움은 없었지만, 연홍도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고 난 뒤에 육지생활을 접고 아내와 함께 연홍도로 들어왔다. 지금도 소에 쟁기를 묶어 밭갈이를 하는 작은 섬마을의 정취가 그의 예술적인 감성을 건드렸던 것. 그렇게 들어온 섬에서 그는 그림을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선 관장의 꿈은 미술관의 성공적인 운영에만 있지 않다. 그는 “미술관장으로 일하면서 연홍도를 아름다운 정취로 가득한 섬마을로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섬을 화폭 삼아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고 싶다는 것이다. 섬의 구릉마다 갓을 심어서 노란 갓꽃으로 섬을 채우고, 쪽빛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릉에 탁자를 놓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주암IC에서 27번 국도와 15번 국도를 갈아타고 꼬막으로 유명한 벌교를 지나면 고흥반도다. 고흥반도는 세로로 길다. 벌교를 벗어나 고흥읍내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읍내에서 다시 외나로도까지 가려면 40분 이상을 가야 한다. 소록도는 연륙교로 연결돼 녹동항에서 소록대교를 넘어가면 바로 닿는다. 소록도는 외지인들에게 오후 5시까지만 개방된다. 연홍미술관을 가려면 녹동항에서 페리를 타고 거금도로 건너가서 거금도 신양선착장에서 하루 7번 있는 도선을 타야 한다.

묵을 곳 & 먹을 것

녹동항 일대에 모텔이며 펜션들이 몰려있다. 특히 새로 지은 녹동여객터미널 부근에 깔끔한 모텔들이 늘어서 있다. 운치있는 숙소를 원한다면 풍양면 풍남리의 풍남모텔(061-833-9350)을 추천한다. 모텔 건물이나 시설은 다소 낡았지만, 자그마한 단독해변(프라이빗 비치)을 두고 있어 독특한 정취를 빚어낸다. 연홍미술관(061-844-4884)과 도화헌미술관(061-832-1333), 남포미술관(061-832-0003) 등도 각각 펜션형식의 숙소를 갖추고 있어 ‘미술관에서의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고흥의 먹을거리라면 단연 활어회. 녹동항에 활어 중매인들이 운영하는 횟집들이 즐비하다. 저렴하게 횟감을 사다가 초장을 사서 맛보는 이른바 ‘초장집’들도 곳곳에 있다. 소영항의 ‘진미회관’(061-833-6615)도 신선한 해산물을 내놓는 곳이다. 이밖에 ‘포두식당’(061-834-5555)의 한정식과 ‘별천지식당’(061-835-3468)의 참장어구이 등도 이름났다.

 

 

<출처> 2010. 2. 17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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