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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0 강원 신춘문예 당선시 - 산부인과 41병동에서 / 김현숙

by 혜강(惠江) 2010. 1. 2.

 

                   [신춘문예 당선작-시]

 

 

                산부인과 41병동에서

                                

                                                                 

                                                                          - 김현숙 <춘천시 후평3동>

 

 

 

  목숨 걸고 터를 사수하려는 사람들과 강제 철거로 문책당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이

에 불길이 솟았다 강대병원 41병동 입원실에 누운 그녀의 마음도 이미 화염에 휩싸였

다 산부인과 의사가 가랑이 사이 좁고 음습하게 숨어있는 그를 찾아내 명명한 것은

D25, 20년 동안 빈방을 먹고 몸집을 키워 집채로 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병실은 침묵의 섬, 형광 수족관 유리벽에 갇힌 여자는 영락없이 부레를 잃고 바닥까지 가라앉은 넙치

가 되었다 TV는 밤낮없이 용산 강제철거 참사를 알리고 별보다 많은 눈물과 촛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강제 철거는 내 깊은 동굴 속에서도 일어났다 마취 4시간 만에 피 주머

니에 고인 D25는 몇 날 며칠 창자를 지나 억울하다고 빈터에서 울었다 화염에 휩싸여

죽은 용산참사 가족들이 TV 화면 속에서 실신했다 불을 낸 책임이 넙치라고 했다가 꽁치라고 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이 달랐다. 그녀의 몸이 점차 수족관이 되었다 밤마

다 몸을 떠난 부레가 허공을 날고 납작하게 엎딘 시간들을 물고 사라지는 갈치 떼가 보였다 스산한 야광을 구경하는 관객은 네모난 아파트와 깜박이지 않는 붉은 십자가들뿐, 그런데 왜 십자가는 약자들의 빛이 되지 못할까 크레졸 안개가 어지러웠다 가끔 배를

움켜쥐고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은 투명한 해파리 촉수에 찔린 손을 높이 쳐들었다 의사는 여성을 잃은 대신 생명을 얻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D25를 죽이고 그녀가 산 수족관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가장도 잃고 터도 뺏긴 그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신문이 말했다 그들에겐 죽을지언정 터를 지켜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별보다 많은

눈물과 촛불은 물대포로도 꺼지지 않는다 허공을 얻은 몸은 이미 바다가 되었을 테니.


*D25 : 여성의 자궁 속에서 자라는 근종의 종류

 

 

[신춘문예-시 심사평]의미와 상징성 융합 괄목상대

 

 


 
  응모작 대부분이 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시의 형식적 요구는 만족시키고 있는 반면 상상력의 내면화나 깊이에는 미흡했다. 이는 언제부턴가 문화적 유행처럼 되어버린 시 쓰기 공부, 혹은 시인 만들기의 한 경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근래 시단의 이슈였던 그로테스크 시와 환상적 상상력 혹은 가독성을 부인하는 시편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젊은 응모자의 새로움에 대한 시도와 함께 기존의 전통 서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한편 생활고나 청년 실직자들의 좌절 등 현실과 세태를 반영하는 작품도 눈에 띄었고 함축의 어려움을 비켜가고자 하는 한 방편으로 보일 수도 있는 전반적으로 시가 길고 또 산문성이 짙은 경향을 보였다.

  1,200여 편에 이르는 응모작 중 최종심의 대상은 신정남의 `인북천 피라미의 노래'를 비롯한 8편이었다. 그중 명순이의 `지각한 길'은 생을 조망하는 사유와 시각은 뛰어나나 다소 평이함에 머무른 감이 있고 김영삼의 `덩굴장미'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대하는 신선함이 돋보이는 반면 단정적인 표현과 상반되는 모호함의 혼재가 오히려 시의 진정성을 흐리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신정남의 `인북천 피라미들의 노래'는 생태적 상상력과 형식 면에서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다. 그러나 관념성과 다소 교훈적이라는 측면에서 시의 리얼리티를 놓친 점이 아쉬웠다.

  당선작 `산부인과 41 병동에서'는 개인의 고통과 사회적 병증을 병치시키면서 그 의미와 상징성들을 융합하는 역량이 괄목상대할 만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대성을 빈다.   -이영춘·이상국 시인
 
 
 

[신춘문예-시 당선소감] -----------------------------------

 

 

詩 안에서 살고 詩 안에서 죽어야

 


  등단이란 관문은 시인다운 시인을 가려 시의 고삐를 채워주는 의식이다. 시 안에서 살고 시 안에서 죽어야 그 고삐가 풀릴 것을 알기에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살면서 고통당한다는 것은 육체와 영혼이 나쁜 것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죽음은 무의식이지만 고통은 의식의 연속, 인간의 내면을 죽음보다 더 두렵고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절박한 고통의 순간이 내게도 찾아왔고 감내하는 마음으로 내면의 눈을 떠 세상을 보니 비로소 타인에 대한 고통을 내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산부인과에서 여성성을 잃는 수술로 내 몸에 있던 생명의 요람이 철거되는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TV에선 용산참사 현장 화염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몸의 작은 기관 하나가 철거되는 순간에도 내 의지의 불꽃이 실존한 것처럼 그들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며 맹렬히 싸워야 할 실존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 시를 통해서 가진 자들이 만든 법이나 질서에 우선하는 생명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미흡한 시를 뽑아 준 고명한 심사위원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그분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정진할 생각이다. 사랑하는 가족 재휘와 새미나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 영광이 골고루 나누어지기를 하느님께 기도하고 싶다.

△김현숙 △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강원대대학원 철학과 문학 석사 △시선 동
인 △수향시낭송회 회원 △강원복지신문 기자 
 
 
<출처> 2010. 1. 1 / 강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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