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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0 경인 신춘문예 당선시 - 차우차우 / 김진기

by 혜강(惠江) 2010. 1. 2.

 

                     [2010 경인신춘문예·시 당선작]

 

 

                          차우차우 -김진기

   


                       

                        사자개 차우차우
                        긴 갈기를 바람에 빗질하며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칠장사 참배객의 발길이 어스름을 따라 사라지고 
                        스님의 독경 소리 어둠에 몸을 누이면 
                        티베트에서 온 차우차우 
                        몰래 경내를 빠져 나가 칠현산에 오른다 
                        바라보면 멀리 눈 덮인 고향이 보인다
                        달라이라마가 포탈라 궁을 버리고 망명길에 오른 이후 
                        그는 이곳으로 흘러왔다 
                        호기심 어린 눈들이 발소리 지우면서 다가오면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듯 
                        괜찮다 괜찮다 가벼이 꼬리 흔든다 
                        꿈속에서나 만나는 그리운 히말라야 캄파라 패스를 
                        이불처럼 두른 라싸 포탈라 궁 
                        누가 구름 위에 백홍의 궁전을 지었나
                        돌아가는 마니차는 눈빛에 반짝이고 막 피어 올린 향내가 
                        미로 같은 포탈라 경내를 적신다
                        얼어붙은 티베트 고원을 오체투지, 몇 달을 넘어온 장족이 
                        다리를 질질 끌고 도착할 때마다
                        차우차우 맨발로 뛰어 나간다 
                        고행을 먹고 사는 것인지 
                        갈라터진 손바닥 무릎에서 흐르는 피, 내세의 제단에 올리면 
                        신은 때때로 길을 비켜 준다 
                        소문은 바람을 타고 먼저 왔는지 
                        칠장사 차우차우가 도착하기 무섭게 라싸 차우차우들이 몰려나온다
                        부여잡고 얼굴 부비는 뭉클한 안부가 골목에 흥건하다

 

 

<심사평> -----------------------------------------------------------------

 

성찰로 이끄는 힘 빼어나고…진정성·서정적 울림 돋보여

   
   

                          

                       정수자                     정호승

 

  경기·인천 지역의 유일한 신춘문예답게 예심을 거쳐 온 응모작들은 수준이 상당했다. 우선 자기만

의 생각이나 체험을 시의 그릇에 얼마나 잘 담아내는가에 주목하며 정독에 들어갔다. 또 은유를 거

친 삶의 육화라는 시의 본질적인 특성도 염두에 두었다. 이즈음 시단에 팽만한 시류 좇기나 손끝에

서 만든 것 같은 작품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정독 후 고른 작품은 권대희의 '지팡이를 두드리는 부처님', 김진기의 '차우차우', 김태환의 '분필',

이영희의 '풍천장어', 이담정의 '사라진 상징'이었다. 다시 이들의 작품이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따져 나갔다.  '지팡이를 두드리는 부처님'은  내용의 진정성을 평가받은 반면 뒤로 갈수록 처지는

결성 부족과 작위성 등이 지적됐다.  '분필'은 가장 많은 작품을 보낸 의욕적인 습작으로  눈길을

었다. 특히 '분필'의 호소력과 전달력이 두드러졌지만 잦은 반복으로 인한 이완과 직설적인 면이

슬렸다.  '풍천장어'는 신선한 발상과 언어 다루는 솜씨를 인정받은 데 반해 공소한 느낌과 어디

듯한 상투성으로 내려놓게 되었다.

  마지막 남은 '사라진 상징'과 '차우차우'를 놓고 논의를 거듭했다. '사라진 상징'은 무엇보다 발랄

상상력에 언어 감각이나 비유 구사가 능했다.  '사라진 상징', '주파수 이론'처럼 제목에서도 습

시간이 엿보였지만, 산문시 형태나 기법 등의 면에서 시류 혹은 기성 시인의 작품을 연상시키

낯익음이 지적됐다. 그와 달리 '차우차우'는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과 서정적 울림이 돋보

였다.

 

  특히 라싸 '포탈라 궁'이라는 우리 시대의 한 정신적 극점을 현재의 구체적 장소에 겹치면서 성찰

이끄는 힘이 빼어났다. 티벳에서 온 '차우차우'가 안성의 '칠현산'에 올라 '멀리 눈 덮인 고향'을

보는 모습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고행을 통해 올라야 하는 어떤 가치나

세계를 환기하는 힘에도 신뢰가 갔다. 시 당선작은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고통을 통해 도달해야 할

화해 같은 정신의 향기를 보여준다. 특히 칠장사가 임꺽정이 머물며 거듭난 절이라는 점에서 '티베

트에서 온 차우차우'의 발견과 각성은 더 깊은 여운을 지닌다. 당선을 축하하며, 부디 새로운 진경

열어가기를 바란다.

 

 

<당선소감> ----------------------------------------------------------------------

 

 

시작 늦어 만만찮던 시인의 길…머무르지 않고 더욱 정진할것

 

- 김진기         

 

                                                                                            

 

 

  일요일 아침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좀처럼 흥분을 모르던 내 단단한 노하우가 맥없이 빗장을 풀고 말았다.  

                                                                        
  "감사 합니다."
  남들은 "그 나이에 무슨 시 공부냐? 편히 지내지"하며 핀잔 반 충고 반 던지곤

했다. 그러나 아득한 꿈은 나를 지금에야 불러냈다. 대학에서 4년간 국문학 공부를 한 나는 배고픈 시인의 길을 버리고 현실을 좇아 취업을 택했다. 3년 전 다시 여유를 찾아 시에 매달리게 된 것은 4년 동안 공부한 문학의 애착이 아까워서였다. 나는 국문학 중에서도 특히 시가 좋았다.

  그러나 시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보니 이 쪽은 결코 만만한 동네가 아니었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

복병, 선수마다 꺼내든 무기가 달랐다. 같은 말을 표현하는데 표현하는 방법이 신출귀몰했다. 나

는 어디로 가야 하나 수없이 망설였다. 아직도 정확한 길은 모른다. 남들이 하루 5시간을 자면 나는

4시간을 자야 하고 남들이 하루에 시 10편을 읽으면 나는 15편을 읽어야 한다. 나는 지금에 머무르

않겠다. 뒤 돌아보지 않겠다.

  기축년 한해는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들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 인생을 다시 공부해야 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은 나를 기특하게 보신 것 같다.  태백산 검용 소물이 흘러 한강의 젖줄이 되듯 내 고

향의 맑은 마음도 시처럼 흐를 것이다. 항상 내가 어려울 때 손을 내밀면 조건 없이 도와준 인간미 풍

기는 여러 선생님들의 정이 생각난다. 그리고 객지에서 동분서주하는 내 아내와 중국의 큰 아들 내외

와 손자 동주, 싱글 의 둘째 아들 모두와 기쁨을 나누고 싶다. 특히 미숙한 내 글을 뽑아 불씨를 당겨

준 경인일보 관계자와 심사 위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 약력
1937년 강원도 태백산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 국문학과 졸업
전 대한일보 기자, 춘천 문화방송 부장
현 태림인더스트리(주) 명예회장

 

 

<출처> 2010. 1. 1 /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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