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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광주. 전남

백양사(白羊寺), 내장사와 쌍벽을 이루는 단풍 터널

by 혜강(惠江) 2008. 11. 21.

 

백양사(白羊寺)

   내장사와 쌍벽을 이루는 단풍 터널 

 

·사진 남상학

 

 

 

  내장사를 둘러보고 일행은 서둘러 백양사로 향했다. 백양사로 가는 길은 내장사 입구에서 순창으로 향하는 49번 도로로 추령을 넘어야 한다. 이 길은 내장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험한 산세를 타고 뚫려 있어 아래에서 보면 아슬아슬하게 보일 정도다. 

 

  20여 년 전 겨울, 눈이 덮인 이 길을 통과한 적이 있다. 신년 연휴(당시는 3일간 휴무) 첫날은 서울에서 지내고 남은 이틀을 이용하여 아내와 아들 둘, 모두 4명이 가족여행을 한 적이 있다. 내장산 입구에서 1박을 하고 백양사를 거쳐 해남 땅끝마을(갈두리)에 갔다가 상경하기로 한 것이다.

 

  내장산 구경을 하고 여관에서 잠자리에 들 때 내리기 시작한 눈이 밤새 그치지 않다가 아침에서야 멈췄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사방 천지가 온통 눈으로 덮였다. 20㎝이상 쌓인 눈 속을 뚫고 승용차로 산을 넘을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하는 것이 고민이었다. 그 때 내 차는 프레스토였다.

  여관 주인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이 상황에서 소형차로 산을 넘는 것은 무리이며 무모한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본래 계획은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백양사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한 동안 망설이다가 아내와 아들 둘과 상의하고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다. 소형차지만 산 지 얼마 안 되는 차일뿐더러 타이어에 미끌어지지 않도록 못을 박았기 때문에(그 시절에는 체인 대신 못을 박는 것이 유행이었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눈이 내린 뒤로 차량이 지나간 흔적이 없는 언덕길(그것도 초행길)을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그런데 추령 고개에 이르기 전 커브 길에서 앞바퀴가 회전하면서 멈춰 섰다. 마주 오는 차량이 없어 다행이었지만 진땀이 났다. 가까스로 방향을 잡고 다시 고갯길을 오르니 마을이 나왔다. 이런 고산지대 분지에 마을이 있다니 반가웠다. 알고 보니 추령마을이었다. 그 때까지도 도로는 사람이나 차가 지나간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이정표를 따라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경사가 심해지는 것이었다. 우측으로는 깊은 계곡이며 가드레일도 없는 길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순간 큰일났구나 하는 생각에 온몸이 오싹해지며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 혼자도 아니고 온 가족이 탄 차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바로 그 때, 늘 내가 즐겨 읽던 성경구절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는 구절이었다. 나는 가족에게 안심을 시키고 저단기어로 왼쪽 언덕에 붙어서 조심조심 내려갔다. 가까스로 언덕길을 내려와 백양사입구에 도착해서야 ‘오, 하나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안도의 숨을 쉬고 나서야 내 상의가 땀으로 젖어 있는 것을 알았다. 극도로 긴장을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흥건히 땀을 흘린다는 사실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우리 가족은 백양사길을 떠올리며 무모한 일은 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지금 나는 그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추령을 오른다. 말끔하게 포장된 길은 가드레일까지 설치되어 쾌적한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들어 글자 그대로 단풍나무길이다. 흐드러지게 물든 단풍을 감상하기 위하여 승용차와 대절한 택시들을 고갯길에 정차시켜 놓고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진수성찬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추령마을을 지나 반월리 반월교 조금 못 미쳐서 백양사 길로 접어들었다. 백양사 역시 생각한 것만큼 사람들로 붐비지 않았다. 백양사지구도 단풍구경에는 모자람이 없다. 내장사의 단풍터널에는 그 규모가 다소 못 미치지만 이곳에도 약 500m에 이르는 단풍이 터널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대단하다.

 

  단풍산행에는 오히려 그 호젓함이나 싱싱함에서 내장사 쪽보다 낫다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백양사 뒤쪽으로 보이는 백학봉은 내장산에 버금가는 단풍산행지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어서 마치 전인미답의 땅을 밟은 것 같은 느낌마저 받는다고 한다. 

 

  단풍터널을 지나면 왼편으로 연못 뒤로 하얀 학바위(백학봉·651m)와 붉은 단풍이 어울린 쌍계루가 시야에 들어온다.  쌍계루 앞에는 널찍한 연못이 있고 이맘때면 백암산 단풍과 학바위와 쌍계루가 잔잔한 이 연못에 비쳐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이 장면을 찍고자 연못 건너 둑에는 카메라맨들이 진을 치고 삼각대를 설치한 채 연방 셔터를 눌러댄다. 

                            

  백암산 황매화야 보는 이 없어

  저 혼자 피고 진들 어떠하리만 
  학바위 기묘한 경 보지 않고서

  조화의 솜씰랑은 아는 체 마라. 


 

  이 시는 노산 이은상이 백양사 부도전 앞에 있는 쌍계루에 앉아 사찰 뒤편 병풍처럼 놓여있는 백암산 학바위를 바라보며 지은 것이다. 아리따운 황매화인들 학바위를 빚어낸 자연의 신비함에 미치지 못한다고 시인은 노래했다.

 

 또 쌍계루의 아름다운 풍광에 취한 고려말 대학자 목은 이색은 “두 시냇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누각이 있어 왼쪽 물에 걸터앉아 오른쪽 물을 굽어보니 누각의 그림자와 물빛이 위아래로 서로 비치어 참으로 좋은 경치”라고 칭찬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조선 팔도 비경 중의 하나로 꼽혔을까.

 

  백양산은 741m 높이의 산으로 백학봉, 상왕봉, 사자봉 등의 기암괴석과 바자나무 숲으로 유명하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에 여환선사가 백암사(白岩寺)란 이름으로 창건한 고찰로 1034년 중연선사가 크게 보수한 뒤 정토사(淨土寺)로 불렸다. 그 뒤 조선왕조 숙종 때 환양선사가 법회를 베풀 때 설법이 신묘하여 산에서 흰 양(羊)이 내려와 백양사(白羊寺)라 했다고 한다. 

 

  백양사는 유구한 역사와 주변의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이 높지만, 청정한 수행도량으로도  손꼽힌다. 대가람을 가리키는 ‘총림’은 전문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계율 교육기관인 율원을 모두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다섯 총림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백양사다. 그리하여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로 일컬어진다. 경내에는 대웅전, 극락보전, 사천왕문, 소요대사 부도 등이 있다. 


  아무래도 백암산의 백미는 백학봉으로, 이곳을 거쳐 오르는 코스가 단풍도 경관도 가장 좋다. 쌍계루를 지나 약수동 계곡으로 10분 정도 오르면 오른쪽으로 영천굴로 오르는 길이 있다. 백학봉으로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르지만 나무 계단 등으로 잘 정비돼 있어 힘들이지 않고 오를 만하다. 왼쪽으로 깎아지른 학바위를 끼고 오르게 되는데 등산로 양편이 빨간 단풍들로 터널을 이룬다.

 

  단풍을 테마로 한 금년 여행은 백양사에서 완주 송광사, 위봉사를 거쳐 막을 내리게 될 듯, 우리는 한옥마을과 덕진공원이 있는 전주를 향하여 떠난다. 낙엽이 지고 어느덧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을 이긴 생명체들이 에 새 얼굴을 다시 내밀 것이다. 성찬의 기억들을 접고 깊은 겨울잠에 들 모든 생명들을 위하여 부라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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