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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독립운동의 정신이 살아 있는 현장이자 민족의 성지(聖地)

by 혜강(惠江) 2008. 10. 24.

 

서대문독립공원

 

독립운동의 정신이 살아 있는 현장이자 민족의 성지(聖地)

 

글·사진 남상학

 

 

 

  서대문독립공원은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 자리로, 1992년 8월 15일 형무소 일대를 독립 공원으로 개원했다. 지금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포함하여 사적 제32호인 독립문을 비롯하여 서재필 동상, 독립관, 3.1 독립선언기념탑, 순국선열추모탑으로 구성되어 있는 역사공원으로서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역사적으로 가장 상징적인 공원이다. 아울러 독립공원은 벽천 연못이 있고 나무가 울창하여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 독립공원 종합안내도(상)와 독립공원의 랜드 마크인 독립문(하) *

 


  이곳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는 1908년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었다. 일제강점기 한국민의 열화와 같은 독립운동을 막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을 탄압, 수감하였던 대표적인 감옥이었다. 해방 이후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이용되었으나, 현재는 한국독립운동사 교육의 현장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 서대문역사관 종합안내도 *

 

 

  따라서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 약 4만 여명의 독립 운동가들이 수감되어 고통 받았던 곳으로, 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서 옥중에서 항거하거나 끝내 순국하신 선열의 민족혼이 깃든 독립운동의 현장이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 운동가들은 체포와 판결과정에서 잔혹한 취조와 고문, 그리고 복역과정에서 혹독한 처우와 고된 노동으로 목숨을 잃거나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갖고 살아야만 했다.

 

 

 * 망루와 붉은 벽돌담이 보인다.(서대문형무소역사관 출입문이 이곳에 있다) *

 

 

  정부는 1988년 2월 20일 서대문 형무소의 옥사 열다섯 동 중 세 동(10호, 11, 12호 옥사)과 사형장을 사적 제 324호로 지정하였다. 1992년 8월 15일 형무소 일대를 독립 공원으로 개원했다. 1995년에는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의 공사를 시작해 1998년 11월 5일에 개관했다. 따라서 서대문형무소는 1998년 8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 서대문형무소 설립배경 및 3.1운동을 알려주는 게시물 *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조국독립을 위해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순국하신 애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을 되새겨보는 한국독립운동사 전문박물관으로, 역사 ․ 문화 유적으로 전시 ․ 교육 ․ 체험을 통해 전세계에 한국민의 민족혼과 자주정신을 일깨우는 현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 독립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세운 처음의 독립문과 독립문이전비 *

 

 

   이곳을 관람하려면 지하철 3호선 4번출구로 나와 독립문에서부터 차례대로 관람하는 것이 편리하다. 독립문 근처는 고가도로가 설치되어 어수선한 분위기이지만 독립문의 우람한 자태는 여전하다.


  처음 독립문은 1898년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하여 독립협회가 세운 것으로, 이곳에서 동남쪽 70m 지점에 있던 것을 성산대로 건설 공사 때(1979. 12.31)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본래의 석재를 이용하여 옛 모습 그대로 옮겼다. 높이 14.21m, 폭 11.38m, 45cm x 30cm 규격의 화강암 1,850여개로 세워졌다.



* 독립협회를 창설하고, 독립공원, 독립문을 세운 주인공 송재 서재필 박사 동상 *

 

 

   독립문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공원으로 들어서면 송재 서재필박사동상(徐載弼博士銅像)이 서있다. 개화운동가이며 독립운동가인 서재필(1866~1951)박사의 동상이다. 그는 1896년 이승만(李承晩)·이상재(李商在)·윤치호(尹致昊)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독립문·독립관·독립공원을 세워 독립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발간하여 자주·자강·민권의식을 북돋았다.

 

   그리고 1890년대 말 미국에 간 이후 대한인국민회 등에서 한인사회의 결속을 다지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제공하고, 외교활동을 전개하는 등 조국의 독립에 기여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 대한민국 순국선열 위패 봉안관으로 사용되는 독립관과 안내판 *

 

 

그 뒤로 독립관 건물은 진입로 좌측에 있다. 이 건물은 1407년(태종 7년), 중국사신을 영접할 때 사용되던 영빈관인 모화루(慕華樓)였으나 1429년(세종11년) 모화관으로 확장 개축하였다. 조선시대 대표적 한식 목조건축양식이다. 독립협회에서 이 건물을 독립관으로 개칭하고 독립운동의 기지로 활용하면서 일제가 철거하였다가 1989년 서울시가 복원하여 현재 3000위의 선열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 3․1독립선언기념탑(상)과 기미독립선언문(중), 벽면에 설치한 부조물(하) *

 

 

   진입로 우측의 3․1독립선언기념탑은 1963년 8월 15일 국민의 성금으로 탑골공원에 세웠으나 1979년 탑골공원 정비 사업으로 철거, 12년간 방치되다가 1992년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옮겨 세웠다. 탑신 뒤에는 검은 돌에 독립선언문과 민족대표 33인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벽천 연못은 연못 중간에 돌섬을 없애고, 전체모양도 반듯하게, 자연과 조화되는 풍경식 연못으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 동안 일제 시대 양식과 조경으로 인해 역사적 의미가 퇴색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터에 일본식 조경양식을 우리 전통 조경양식으로 하고 수종도 우리나라 소나무 등으로 교체, 시설과 조경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 순국선열추념탑 *

 

 

   순국선열추념탑은 높이 22.3m, 탑신 좌우40m 길이로 의병 무장상, 순국선열 처형상, 유관순 열사 만세운동상, 안중근 의사 의거상 과 희생자 명단 등이 부조되어 있다.

 

 

 * 서대문 형무소의 붉은 벽돌담 일부와 감시 망루(상), 역사전시관(하) *



   형무소의 붉은 벽돌담 일부와 감시 망루가 있는 역사관 출입문을 들어서면 전면에 역사전시관이 있다. 붉은 벽돌담 담장의 높이는 4.5m, 길이는 1,161m였으나 현재는 앞면 79m, 뒷면에 208m 만 보존하고 있고, 망루는 총 6개소였으나 2개소만 보존하고 있고 높이 10m이다.

 

* 판결문과 옥중일기*


 * 일제의 판결문과 옥중일기 및 3.1운동 당시 사용된 태극기 원판, 수갑 등 *



   역사전시관의 1층 <추모의 장>에는 영상실, 기획전시실, 자료실로 꾸몄고, 2층 <역사의 장>에는 민족저항실, 형무소역사실, 옥중생활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전시관에서는 금년 8월부터 2009년 8월까지 서대문형무소 개소 100년과 서대문형무소 개관 1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기획 <서대문형무소 100년, 그 기록과 역사전>을 개최하고 있다. 특별기획전은 지난 100년간의 서대문형무소의 변천과정과 그 속에 수감되었던 인물, 그리고 그들의 수감생활을 통해 서대문형무소의 민족사적 의의를 살펴볼 수 있도록 꾸몄다.

 

* 독립투사들의 재판, 연행, 고문 모습 재현 *

 

* 유관순 지하감옥(상)과 지하 내부(하) *


 

  역사전시관 왼쪽에는 유관순 지하 감옥이 있다. 유관순지하감옥은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을 투옥하기 위해 1916년 신축한 여사(女舍)로 전체면적은 190평방m이며 4개의 독감방은 사방 1m도 되지 않는다. 유관순 열사가 이곳에서 순국하여 유관순지하감옥으로 명명되었다.  그리고 역사전시관 뒤편으로 중앙사(3)와 옥사(제4), 제11, 12, 13 옥사, 그 뒤에는 공작사(5), 한센병사(6)가 있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의왕시로 이전할 때 옥사는 15개 동이었으나 역사성과 보존가치를 고려하여 7개 동만을 보존하고 있다.

 

 

* 미류나무가 서있는 사형장 건물(상)과 교수형 집행 시설(목줄과 의자가 놓여 있다.) *



  뒤편 좌측으로는 추모비, 사형장, 시구문이 있다. 사형장(사적 제 324호) 사형장은 1923년 지은 목조건물로 높이 5m의 벽돌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면적은 50평방m이다. 전국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애국지사가 이곳으로 이송되어 처형된 곳이다. 사형장 앞에 서 있는 미류나무는 사형수들이 형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붙들고 통곡을 하였다 한다.

 

 

* 시신을 운반해 나간 통로 시구문 *



  사형장 바로 옆에는 사형을 집행한 시신을 형무소 밖 공동묘지에 몰래 버리기 위해 뚫어 놓은 비밀통가 (시구문)있다. 일제가 그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해 폐쇄하였으나 1992년 독립공원 조성시 40m를 복원하였다.

그러나 독립공원은 조성한 지 15년이 지나 전체적으로 시설물이 노후하고 산책로는 비가 오면 진흙탕으로 변해 이용객에게 불편을 주어왔고, 계단이 많아서 통행이 불편할 뿐 아니라, 여러 시설물이 무질서하게 배치되어 혼잡한 느낌을 주었다. 또한 연못이나 수목배치가 일본식으로 되어 있고 외래수종이 심어져 있어 공원 본래의 역사적 의미가 퇴색했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 공원 내에 설치한 파고라(휴식처), 노인들이 한가롭게 쉬고 있다. *



  이제 새롭게 단장된 서대문독립공원은 세계 어느 나라의 독립공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민족의 성지로 탈바꿈하여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활용되고 많은 외국 관광객들을 유치하게 되어 우리민족의 독립정신을 널리 고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본 고교생들의 모습도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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