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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
솜털도 아니게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버리려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버리려고
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2004년>
<해설> 사랑이 아니면 부서져 버리리라
신용목(34)은 젊은 시인이다. 요즘 젊은 시인들 시가 너무 난해하다고 고개 젓는 독자분도 많지만, 오해를 푸시길. '진정성'이라는 말이 낡아 보이긴 해도 예나 지금이나 '진정성' 있는 시의 마음은 통하게 되어 있으니. '진정성'이라는 낡고 오롯한 마음을 바꾸어 말하면 곧 사랑의 마음이겠다. 신용목은 삶에 대한 조촐한 사랑의 마음이 시의 근원자리임을 아는 시인이다. 그래서 신용목은 동시대 사람들의 남루한 삶의 곡절에 진득하니 귀 기울인다. 시를 짓는 그의 태도는 담박한 낡음을 옹호하고 그가 펼쳐 보이는 시의 감각은 청신한 젊음을 섭렵한다. 좋은 궁합이다.
이 시 〈민들레〉는 '오직 사랑'을 향한 간결하고 빛나는 뼈대를 담백하게 드러낸다. 모호함으로 무언가를 감추려 하지도 과장되게 드러내려 하지도 않는다. 설명이 필요 없다. 심심해서 그에게 이 시를 쓴 때가 언제쯤인지 물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왠지 자꾸 실연당한 기분이 들었단다. 실제로 실연당한 것도 아닌데! 세상이 나만 왕따 시키는 것 같은 꿀꿀한 느낌도 그 비슷한 언저리에 있을 게다. 질풍노도의 청춘에 자신이 믿었던 신념, 그것을 실천하는 일의 어려움, 당장 코앞에 닥친 먹고 사는 문제 등이 난마처럼 얽혀 안팎으로 우울하던 때를 겪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란다. 사랑이란 '있지도 않은 약속' 같은 거라는. 그리고 사랑이란 '있지도 않은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는 다짐' 같은 거라는.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다짐하기를, 있지도 않은 약속일지 모르지만 자신을 다 걸자!고 했단다. 그렇게 자신을 다 거는 사람만이 고독할 자격이 있는 것 같다고 사투리 섞인 어눌한 말투로 그가 말한다. 햐! 환하다. 있지도 않은 약속에 자신을 다 걸고 처형되는 민들레처럼.
'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 이빨들, 뾰족하다// 저 아귀에 물리면 모든 罪가 아름답겠다//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별의 갈퀴// 하얀 독으로 스미는 罪가 나를 씻어주겠다'(〈별〉). 죄를 씻는 것이 사랑임을, 사랑으로 스스로를 정화하기 위해 사랑의 뾰족한 이빨에 기꺼이 물려야 함을 그는 알고 있다. 아직 젊은데 이 조숙함은 어디서 왔을까. 하긴 그는 지상의 남루를 견디는 갈대들, 그 아버지들 뼛속 바람까지 보는 아들이다.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가장(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갈대 등본〉). 지상의 쓸쓸한 어버이들이여. 수고를 그만 떨치시고 다음 세대로 확산되는 사랑의 풍욕을 즐기시길. 시인 아들이 걸어서 도착할 바람의 끝에서 새로운 사랑의 역사를 받으시길!
<출처> 2008. 10. 16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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