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동리․목월문학관
천년 고도 경주에 번지는 문학의 향기
- 한국문단의 양대 산맥을 이룬 문단의 거봉 -
글·사진 남상학
경주가 낳은 우리 문단의 두 거목(巨木). 동리 선생과 박목월 선생은 경주 출신으로 한국문단의 양대 산맥을 이룬 문단의 거봉들이다. 이 두 분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문학관이 경주 불국사 입구 맞은편(경주시 진현동 551-1)에 세워졌다.
‘동리․목월문학관’이라 명명한 건물 안에는 이 고향에서 성장한 두 문학인의 발자취들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뜻있는 문인들을 중심으로 동리ㆍ목월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 이들이 경주시의 협력을 얻어 2006년 3월24일에 개관한 것이다.
지난 번 경주에 왔을 때 불국사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문학관 안내표지판을 본 터라 차는 불국사 주차장에 세워두고 산책을 겸해 언덕 길울 올랐다. 불국사 입구 맞은편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는 시멘트 다리 밑 연못에는 푸른 연잎으로 덮여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기왕 위쪽에 차도가 있으니 나무다리로 만들었으면 운치가 있었을 텐데 아쉬운 감이 있다. 안내하는 분이 친절히 맞으면서, 먼저 입구 쪽에 있는 경주가 낳은 향토인물관을 보고 동리ㆍ목월문학관 지하 영상실에서 영상물을 먼저 시청하라고 일러준다.
우선 현대식으로 지은 건물이 그 어느 문학과보다 깨끗하고 아담하다고 느꼈다. 뜰 가장자리에는 시화전 액자를 걸어놓듯 수많은 판넬을 걸어놓았다. 가까이 가 보니 모두가 동리․ 목월의 문학적 업적을 칭송하는 짤막한 시화를 담은 액자들이다. 문단의 중견 시인들의 이름이 보였다.
동리․목월문학관은 왼쪽은 동리, 오른쪽은 목월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은 연보와 작품의 성격, 문학적 위치, 생전에 즐겨 사용하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자료가 풍부한 것은 두 분 모두 작고한 지 얼마 안 되는 최근의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물도 다른 문학관에 비하면 다양하고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다. 아쉬운 것은 관람객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홍보가 부족한 탓도 있겠으나 경주하면 신라 천년의 유적 유물을 우선 생각하기에 그런가 보다.
문학관측 자료에 의하면, 유족으로부터 기증ㆍ위탁받은 김동리와 박목월의 저서를 비롯 약 7천여 종의 장서와 육필원고를 비롯한 문학자료 1천 5백여 점, 생활유품 2백 50여점, 추사ㆍ운보ㆍ월전 등의 애장품 30여 점 등 국내문학관 중 가장 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먼저 소설가 김동리관을 둘러보았다.
A. 소설가 김동리관
1. 김동리의 작가적 생애
김동리(金東里, 1913. 11. 24~1995. 6. 17)는 한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본명은 시종(始鐘)이다. 1934년 <백로(시)>, 1935년 <화랑의 후예>, 1936년 <산화>가 연이어 당선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인생의 구경(究境)을 탐구하는 문학 정신을 주창하였다. 또한 운명의 문제를 폭넓게 형상화하였고, 해방 후에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작품에 구현하고자 했다. 김동리가 쓴 소설의 주제는 대체로 '운명'이다. 이것은 곧 그가 추구한 '생명이 구경적 형식'을 그는 스스로 '운명'으로 파악했음을 의미한다. 주요작품으로는 《사반의 십자가》,《무녀도》등이 있다. 소설가 손소희가 부인이다. 작가로서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보면,
* 1913년 11월 24일 김임수(壬守)의 5남매 중 막내로 경상북도 경주에서 출생하다. 본명은 시종(始鍾). 아명은 창봉(昌鳳), 호적명은 창귀(昌貴)
* 대구계성중학교에서 2년간 공부하고, 서울로 올라와 1929년 경신(儆新)고보 3학년에 편입하였으나 4학년에서 중퇴하고 귀향하여 문학을 섭렵하였다.
* 낙향하여 박목월 등과 사귀며 동서양의 고전에 심취, 인간과 자연과 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 1933년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김달진·서정주 등의《시인부락》동인들과 사귀면서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34년 조선일보에 시 <백로(白鷺)>가 입선, 1935년 단편 <화랑의 후예>가 중앙일보에, 1936년 <산화(山火)>가 동아일보에 각각 당선되어 등단했다. * 토속적 소재를 운명론적 인생관으로 다룬 <무녀도(巫女圖)> <바위> <황토기(黃土記)>, 식민지의 비참한 현실을 묘사한 <찔레꽃> <동구 앞길> 등으로 일약 신세대 작가의 기수가 되었고, 1939년 문단의 중진 유진오 선생과 세대 논쟁의 평론<순수이의(純粹異議)> <신세대문학정신>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 광복 후 문단의 좌·우 투쟁에 뛰어들어 순수문학을 옹호하고 서정주·조연현·박목월·곽종원 등과 함께 <청년문학가협회>를 조직, 회장이 되었다.
* 1940년대 후반기에 <달> <혈거부족(穴居部族)> <역마(驛馬)> 등의 단편을 발표한 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전쟁에서 취재한 <귀환장정(歸還壯丁)> <흥남철수>, 현실적 소재를 다룬 <실존무(實存舞)> <밀다원시대(蜜茶苑時代)>, 신(神)과 인간의 문제를 다룬 장편 <사반의 십 자가> 등을 발표하고 1955년 자유문학상, 1958년 예술원상을 받았다.
* 1953년 이래 서라벌예대(현재의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1960년대에는 초기의 운명론적 경향으로 돌아가 <등신불(等身佛)> <까치소리> 등을 발표했으며 1970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이 되었다.
* 1973년 중앙대 예대 학장, 1981년 예술원 회장, 1983년 문협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예술원 원로회원이 되었다. 이 시기에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영역, 불역, 일역, 독일어역으로 간행되어 동리문학의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을화>가 노벨문학상 수상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 시집에는 《바위》 《패랭이꽃》이 있으며 평론집으로는 《문학과 인간》《문학개론》《문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 지병으로 1995년 6월 17일 타계하였다.
* 유적지
(1) 생가(경북 경주시 성건동 186번지)
(2) 묘(경기도 광주군 신현2리) : 부인인 소설가 손소희(1917-1987)씨의 묘 옆 묘비 후면에 미당 서정주의 김동리찬(金東里讚)을 새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슨 일에서건 지고는 못 견디던 한국문인 중의 가장 큰 욕심꾸러기, 어여쁜 것 앞에서는 매양 몸살을 앓던 탐미파 중의 탐미파, 신라 망한 뒤의 폐도(廢都)에 떠오른 기묘하게는 아름다운 무지개여' - 1996년 6월 1일 미당 서정주 글
2. 김동리의 작품 세계
김동리의 초기작품의 경향은 토속적 소재를 운명론적 인생관으로 다루었으나, 후기에는 종교를 배경으로 한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 경향을 띄었다. 그는 평생을 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 사상으로 일관하였다는 평을 듣고 있다.
초기작품 <무녀도(巫女圖)> <황토기(黃土記)> 등은 토속적(土俗的), 샤머니즘적, 비현실적 제재에서 자기 생명 자체에서 파악한 인간 생명의 신비력과 허무주의 적인 운명을 추구했으며, 또 현실의 중압 때문에 선(善)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혼구(昏衢)>, 현실에서 취재하여 일상성을 그린 <다음 항구> 등의 두 경향을 보였다.
1936년에 발표한 <무녀도>는 무속 신앙과 예수교가 교체되어 가는 시대적 조류를 배경으로 하여 신비스런 우리 민속을 그려 놓은 작품으로, 주인공인 무녀 모화를 통하여 몰락해 가는 운명의 비애를 단순히 애수로써 해결 짓지 않고, 그 운명과 싸워서 그것을 극복해 감으로써 그것이 비록 몽환적이기는 하나 거기서 강력한 인간 정신을 찾으려 하였다.
해방 후 좌우익의 정치적 격변, 6․25 사변 등을 거치면서 현실을 배경으로 그의 작품도 변모되어 <달> <혈거부족(穴居部族)> <역마(驛馬)> 등의 단편을 발표한 후, 전쟁에서 취재한 <귀환장정(歸還壯丁)> <흥남철수>, 현실적 소재를 다룬 <실존무(實存舞)> <밀다원시대(蜜茶苑時代)> 등은 종래의 토속적, 한국적 특성이 인류의 보편성으로, 종래의 한국적 인간상이 보편적 인간상으로, 한국적 현실이 세계적 현실로 확대된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흥남철수>는 6․25 사변 때, 유엔군의 흥남 철수 작전에서 취재한 것으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그린 것이며, <밀다원시대>는 부산 피난 당시의 다방 ‘밀다원’에 드나들던 당시 실제 문인들을 모델로 하여 그들의 심리적 불안을 표출한 것이며, <실존무>는 현대인의 부조리(不條理)를 파헤친 단편이다.
그리고 기독교 관계 문헌에서 취재한 <사반의 십자가(十字架)>(현대문학, 1955~1957)는 하늘의 질서와 땅의 질서를 대조시켜, 인간의 총체적인 운명을 걸고 있는 인간의 운명과 구원의 문제를 추구한 역작이다. 이 작품은 지은이의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전기의 한국적, 신화적, 전설적, 신비적인 경향에서 인류적, 보편적, 세계적인 현실로 확대되어 있다. 주인공 사반은 예수와 나란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데, 예수가 하늘과 미래와 죽음을 이상으로 한 것과는 반대로 땅과 현실과 삶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또 그의 대표적 단편인 <등신불>은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등신불이 된 만적선사의 인생 고뇌를 ‘나’의 입장으로 다루어 인생의 구경적(究竟的) 운명을 불심으로 승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또 <까치소리>는 까치소리에 빚어지는 인간의 운명적인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김동리는 혼미한 격변기에 우리 순수문학을 굳건히 지켜왔고, 인생의 구경(究竟)을 탐구하는 문학정신을 주창하여 해방 후 새로운 휴머니즘문학의 근간을 이루어 1982년 노벨문학상 5위 이내에 선정될 만큼 세계적인 작가로 평가된다.
기념사업회는 유족들이 마련한 재원을 기금으로 하여 한국소설의 큰 산맥을 이룬 김동리를 기리는 문학상을 제정하고 1998년 첫 수상작을 낸 뒤 해마다 시상하고 있다.
B. 시인 박목월관
1. 시인 박목월의(朴木月)의 생애
박목월(1916∼1978)은 1939년 [문장]지에 정지용(鄭芝溶)에 의해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 <가을 어스름>, 1940년 <연륜(年輪)>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장했다.
청록파의 한 사람으로, 초기에는 동심의 소박성, 민요풍, 향토성 등이 조화를 이룬 짧은 서정시를 지어, 특유의 전통적ㆍ자연적 시풍을 이룩했다. 이란 시풍으로 시사적(詩史的)인 면에서 김소월(金素月)과 김영랑(金永郎)을 잇는 향토적 서정성을 심화시켰으며, 애국적 사상을 바탕으로 민요조를 개성 있게 수용하여 재창조한 시인이다
1968년에 간행한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에는 생활주변에서 역사적ㆍ사회적 현실로 시야가 확대되고 심화되어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관념성을 보였다. 작가로서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보면,
* 시인. 본명은 영종(泳鍾).
* 1916년 1월 06일 경상북도 경주군 건천읍 모량리 571에서 아버지 박준필(朴準弼)씨와 어머니 박인재 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했다.
* 1933년 18세 때《어린이》지에 동시<통딱딱 통짝짝>이 특선되었고, 같은 해 《신가정(新家庭)》지에 동요 <제비맞이>가 당선된 이후 많은 동시를 썼다.
* 1935년 대구의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동부금융조합에 입사했다.
* 1939년 《문장》 9월호에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가, 1940년 <가을 어스름>과 <연륜>이 《문장》을 통해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 무렵 진주 시인협회에서 간행하던 《등불》이라는 동인지에 가담, 동인 활동을 했다.
* 1946년 무렵부터 교직(대구의 계성중학교 교사)에 종사하였고, 김동리 서정주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했고, 1947년 한국문필가협회 발족과 더불어 1948년 한국문학가협회 상임위원으로 문학운동에 가담하였다.
* 1948년에는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집》을 출간(1946)하여 주로 순수 자연서정을 노래한 청록파(靑鹿派) 시인으로 활동했다.
* 1954~1970년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 1955년 첫 시집 《산도화(山桃花, 1954)》로 제3회 아시아자유문학상을 받고, 1968년《청담(晴曇)》으로 대한민국문예상 본상(本賞) 등을 수상하였다.
* 1959년 한양대학교 조교수가 된 후, 1962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되어 그 후 한양대 문리대 학장을 역임했다.
* 1957 한국시인협회를 창립하여 1973 <심상(心象)>을 발행하고, 1974 한국시인협회회장이 되었다.
그 외 시집으로는 1959년에 시집 《난(蘭)․기타)》를 간행하고, 이어 《경상도 가랑잎》, 연작시집 《어머니》,《심상》, 《구름에 달가듯이》,《박목월시선》, 《백일 편의 시》,《무순》, 《내 영혼의 숲에 내리는 비》,《박목월 시집》,《사랑은 고독한 것》, 《친구여, 시와 사랑을 이야기하자》, 《달빛 목선 가듯》, 《나그네의 은빛 수첩》, 《나그네》, 《누구에게 추억을 전하랴》, 《소금이 빛나는 아침에》, 《구름에 달가듯이》 등이 있고, 자작시 해설집으로 《보랏빛 소묘》가 있다.
동시집으로 《산새알 물새알》이 있고, 수필집으로는 《구름의 서정(1956)》 《토요일의 밤하늘(1958)》 등이 있다.1978년 3월 24일 지병인 고혈압으로 작고하였고, 1979 유고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이 간행되었다.
2. 박목월의 시세계
박목월의 시는 초기, 중기, 후기시로 나누어진다. 초기에는 동심의 소박성, 민요풍, 향토성 등이 조화를 이룬 자연 친화와 교감의 짧은 서정시를 계속 발표해서 특유한 전통적 시풍을 이룩한다. 향토적인 정서를 배경으로 하여 본원적인 고향을 추구한 시편들이다.
이러한 경향의 초기시는 <청록집>및 개인 시집 <산도화(山桃花)>등에 잘 나타나있다. 맑고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잃어버린 고향을 찾는 순수한 정서로 창작된 그의 시는 가장 압축된 시 형식 속에 무한한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어서 독자들을 사로잡는 특이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율조와 조화됨으로써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는 평을 들어왔다. 어린애와 같은 동심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시인이 가지지 못한 독특한 개성적 톤(tone)을 발성한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나그네'( 출전 : 상아탑 15호, 1946. 4)
<나그네>는 박목월의 초기 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표연히 왔다가 홀연히 떠나가는 나그네의 이미지가 향토적인 정서와 민요조의 가락에 힘입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절제된 시어, 고도로 압축된 형태미가 그 예술성을 드높여 준다. 일제 말 어두운 시절 조지훈이 경주에 사는 목월을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지어 보낸 '완화삼'이란 시의 화답(和答)으로 지은 작품이라 전해진다. <윤사월(閏四月)>, <산도화(山桃花)> 등이 모두 동류에 속하는 것들이다.
산은 구강산(九江山)보라빛 석산(石山)
산도화두어 송이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옥 같은물에
사슴은암 사슴발을 씻는다.
- <산도화> 전문
시인은 그의 시집 <산도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 민요적인 해조(諧調)야말로 우리 겨레의 낡고 오랜 핏줄의 가장 생생한 것이며, 그것에 새로운 꽃송이를 피우려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다" 일제 치하에서의 이지러지고 어두웠던 시절을 애닯고 서럽게 살아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넋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고 나아가서 삶에 대한 꿈을 체념해야만 했던 작자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작품으로, 한국적인 향토와 민족의 설움이 하나로 융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6.25사변 이후, 즉 1950 년대 이후부터는 소박하고 담담한 생활 사상 등을 읊기 시작, 초기 시풍과는 다른 현실성이 가미된 면모를 보였으며, 이것은 <난, 기타>, <청담> 등에 잘 나타나있다. 이것은 인생과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며, 시가 시대적 상황과 독자와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제4시집 <경상도의 가랑잎> 이후로는 생활 주변에서 조국의 역사적, 사회적 현실로 확대 되고 심화된 경지에 사물의 본질은 추구 하려는 사념적 관념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시의 소재를 찾아, 거기서 삶과 죽음의 허무함을 현실적 자연과 교감하여 시적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가나 문명비평적인 관점에서 승화시킨 시들이다. <가정(家庭)>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 올린
여기는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내 얼굴을 보아라.
출전 - <경상도의 가랑잎, 1968>
이 시는 힘겨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생활인으로 돌아온 시인이 아버지로서의 고통을 토로하는 한편, 자식들에 대한 막중한 책임 의식을 스스로 확인하는 작품으로, 현실적 세계를 시적 대상으로 삼은 생활시로서의 진면목을 보여 주고 있다.
박목월은 토착정서와 민요의 가락을 시와 음악으로 승화하여, 어린이들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들로부터 ‘국민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시인이며, 시사적(詩史的)인 면에서 김소월(金素月)과 김영랑(金永郎)을 잇는 향토적 서정성을 심화시켰으며, 애국적 사상을 바탕으로 민요조를 개성 있게 수용하여 재창조한 시인이다.
동리․목월 두 사람은 이 시대 모든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문인들이다. 문학의 토양이 되는 한국적 현실 위에서 시대적인 특수성을 발휘했던 그들은 문학사적으로 든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있었기에 한국문학은 더욱 풍요하고 심오한 영역으로 확대되었다고 생각하며 문학관을 나왔다.
앞으로 동리ㆍ목월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문학제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예술의 향기가 넘쳐나는 경주의 참모습을 보여주어 문학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가꾸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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