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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껫 방라로드, 성(性) 편견 사라진 트랜스젠더들의 낙원

by 혜강(惠江) 2008. 2. 26.

푸켓 방라로드

 

성(性) 편견 사라진 트랜스젠더들의 낙원

 

 

글·사진=김연미

 

 

 

 

▲푸껫 바통비치 전경(왼쪽). 바통비치의 야자수들

 

 

  비행기가 푸껫 국제공항에 가까이 이르자 태국인 스튜어디스의 안내방송이 나온다. 귀에 소곤거리는 사랑의 속삭임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나른하다. ‘태국은 조용한 나라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경쾌한 한국인 여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두 나라 여승무원 목소리를 들으며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목소리가 그 나라의 민족성을 대변하는 걸까? 무슨 일에든 급한 한국인과 “노(No Problem)!” 하고 대답하는 느긋한 태국인의 차이를 생각하게 했다.

 

  이윽고 비행기가 착륙하자 사람들이 서둘러 짐을 내렸다. 짐을 챙기던 한 한국인이 “푸껫에는 찜질방이 없나?”라고 일행에게 물었다. “푸껫은 밖에 나가면 다 찜질방”이라는 너스레가 답으로 돌아온다. 공항을 나서는 사람들 위로 따가운 햇살이 쏟아졌다.

 

  푸껫은 사계절이 여름이며 찜질방이다. 야자수 밑에 돗자리만 깔면 한국의 여름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우리에겐 다 같은 여름처럼 느껴지는 날씨가 현지 사람에게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우기가 끝나는 11월의 날씨를 현지인들은 선선하게 느낀다고. 그때는 코르덴 바지를 입는 사람도 있을 정도란다.

 

  푸껫은 태국에서 가장 큰 섬으로 우리나라 제주도의 절반 크기다. 서양인들 사이에서는 ‘동양의 진주’라 불리며, 태국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힌다. 태국 본토보다 더 자유로운 것도 푸껫의 매력 중하나다. 푸껫의 평균기온은 22~34℃. 5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이고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는 건기다. 성수기는 11월부터 4월로, 이때는 유럽 여행객들이 넘쳐 숙소를 잡기도 어렵다.

 

 

디스코테크서 춤추며 가슴·성기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

 

 

  푸껫 바통비치에 도착한 것은 밤이었다. 환하게 빛나는 네온사인 사이로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스타벅스, 맥도날드, 하겐다즈 등 낯익은 간판들이 눈에 띈다. 노천카페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 술을 들고 해변으로 가는 사람들로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바통비치 방라로드는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천국이다. 150여 개 크고 작은 술집들이 밤 9시가 되면 일제히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 거리의 매력은 밤이 깊을수록 더욱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방라로드의 한 술집에서 춤을 추는 트랜스젠더들(왼쪽). 1년 내내 번화한 방라로드의 밤 풍경

 

 

  푸껫은 마이카오, 나이톤, 나이양, 수린, 라와이비치 등 크고 작은 해변이 인도양의 안다만 해를 바라보며 완만하게 뻗어 있다. 그중 몇 개의 해변은 호텔 전용 비치로 사용되지만 대부분은 공영 비치다. 바통비치도 공영 비치의 하나로 푸껫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휴양지다. 푸껫 서쪽 해변은 바통비치보다 아름답지만 파도가 세다. 바통비치는 다른 해변에 비해 섬 안쪽으로 깊이 들어와 있어 파도가 잔잔하다. 6km의 해변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가장 먼저 개발된 휴양지답게 바통비치 주변은 도시의 환락가처럼 밤마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바통비치 로드 뒤로 수많은 길들이 마치 나무뿌리처럼 뻗어 있는데, 가장 번화한 골목이 방라로드다. 다닥다닥 붙은 선술집과 디스코테크, 음식점, 옷가게 등이 가득 들어서 있다. 그러나 이 거리에는 다른 곳과 차별되는 무언가가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낯 붉힐 일이 점점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나보다. 세월이 얼굴을 두껍게 만드는지, 문화 전반에 깔린 섹슈얼리즘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푸껫 방라로드에서는 새삼 얼굴을 붉히게 됐다. 사실 한국에서나 낯을 붉힐 일이지 이곳에서는 그냥 일상인데 말이다. 10분쯤 거리를 흘끔거리다 “어머나”로 시작해서 한 시간쯤 흉을 본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거리에 동화돼 큰 소리로 웃고 떠들게 된다. 그게 푸껫의 매력이고, 방라로드의 매력이다.

 

  이 거리에는 유난히 트랜스젠더가 많다. 노천 디스코테크에서 춤추는 트랜스젠더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성을 숨기지 않는다. 춤을 추면서 자신의 가슴과 성기를 아무렇지 않게 드러낸다. 마치 그것이 일종의 장식품인 양 드러내기를 꺼리지 않는다. 이들은 관광객과 사진을 찍고 2달러의 돈을 받는다.

 

  노천 디스코테크에서 트랜스젠더 ‘미키’를 만났다. 그녀는 예쁘다. 서른 살의 그녀는 성 정체성의 혼란보다는 여자로 살아가는 게 더 편리하다는 이유로 10년 전 성을 바꿨다. 태국이 모계중심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슴 수술을 했고, 아래 수술을 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희망이 있어 행복하단다.

 

  나는 그녀의 춤을 보고 싶어서 춤을 청했다.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서 춤을 췄다. 음악은 즐겁고 방라로드 사람들의 미소는 아름답다. 한 시간 동안 수다를 떤 뒤 나는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환락의 거리에서 밤새 수다는 끝나지 않았다. 방라로드는 성 정체성이 전복되는 곳이다. 기존의 편견을 버리고 타인을 알아가는 재미난 거리다. 살짝 낯을 붉히긴 하겠지만…. 

 

 

 

<출처> 2007. 4. 24 / 주간동아 5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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