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당선시>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 김륭 1. 실직 한 달 만에 알았지 구름이 콜택시처럼 집 앞에 와 기다리고 있다는 걸 2. 구름을 몰아본 적 있나, 당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내 머리에 총구멍을 낼 거라는 확신만 선다면 얼마든지 운전이 가능하지 총각이나 처녀 딱지를 떼지 않은 초보들은 오줌부터 지릴지 몰라 해와 달, 새떼들과 충돌할지 모른다며 추락할지 모른다며 울상을 짓겠지만 당신과 당신 애인의 배꼽이 하나인 것처럼 하늘과 땅의 경계를 가위질하는 것은 주차딱지를 끊는 말단공무원들이나 할 짓이지 하늘에 뜬 새들은 나무들이 가래침처럼 뱉어놓은 거추장스런 문장일 뿐이야 쉼표가 너무 많아 탈이지 브레이크만 살짝, 밟아주면 물고기로 변하지 3. 구름을 몇 번 몰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해나 달을 로터리로 낀 사거리에서 마음 내키는 데로 핸들만 꺾으면 집이 나오지 붉은 신호등에 걸린 당신의 내일과 고층아파트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보다 깊은 어머니 한숨소리에 눈과 귀를 깜빡거리거나 성냥불을 긋진 마 운전 중에 담배는 금물이야 차라리 손목과 발목 몇 개 더 피우는 건 어때? 당신 꽃 피우지 않고도 살아남는 건 세상에 단 하나, 사람뿐이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새가 아니라 벌레야 구름이란 눈이나 귀가 아니라 발가락을 담아내는 그릇이란 얘기지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말이야 그걸 아는 나무들은 새를 신발로 사용하지 종종 물구나무도 서고 말이야 생각만 해도 끔찍해 구름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소란스러울까 4. 아주 드문 일이지만 콜택시처럼 와 있는 구름의 트렁크를 열어보면 죽은 애인의 머리통이나 쩍, 금간 수박이 발견되기도 해 초보들은 그걸 태양이라고 난리법석을 떨지 <심사평> 최종심까지 논의된 작품은 최찬상의 ‘폐가 앞에서’, 이용헌의 ‘게발’, 김륭의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등 3편이었다. ‘폐가 앞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무난하고 안정돼 있다는 점에서, ‘게발’은 시적 형성력이 뛰어나고 감동을 주는 부분이 있으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룬 점이 다소 진부하다는 점에서 먼저 제외되어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를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는 시적 발상과 그 상상력이 뛰어나다. 그의 상상력은 기발하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경쾌하기까지 하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현실의 크고 작은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될 정도로 마취당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에서 오는 이 위안의 마취력은 실은 현실의 고통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는 화자의 능청스러운 독백이 시종일관 시 전체를 끌고 가는데, 그 화자는 실은 대응력이 결핍된 실직자다. 실직당한 이의 고통스러운 현실적 상상력이 이러한 역설적 상상력의 시를 낳은 것이다. 선자들은 그의 상상력의 뿌리가 견딜 수 없는 삶의 고통스러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 크게 신뢰가 갔다. 엄숙함과 진지함에서 벗어나 이토록 경쾌하게 고통을 노래함으로써 우리를 위로해주는 시도 드물다.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천양희·정호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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