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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07 전북일보 당선작 : 늙어가는 판화 / 이현수

by 혜강(惠江) 2007. 1. 21.

<2007 전북일보 당선시>


늙어가는 판화





                                                   

                                                                                - 이현수

조각도 앞에 손을 둔다
순간, 조각도가 날렵하게 손에 스쳤다
아직도 내 손에 깎아내야 할 부분이
이렇게 많구나, 싶었다

어머니 얼굴은 남겨 둬야할 곳보다
파내야할 곳이 더 많았다
얼굴 윤곽보다 뚜렷한 곡선을 여러 번 파내다보면
결국에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얼굴
그래서 더 어머니로 보였던 얼굴

동그랗게 몸을 말고
조각도를 따라 비워지는 굴곡
그 허공에도 몇 겹의 층이 있어
잉크로 찍어내면 더욱 환해졌다
어두워질수록 빛나는 주름의 공허

몇 번씩 그 결을 만지며
여백을 남기는 어머니
완성된 얼굴 판화가 내 어머니이기만 할까
하나면 충분할 것을 여러 장 찍어내며
확인하는 것이다.


<심사평>

 
시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선물 가운데 하나는 소통의 즐거움이다. 소통의 그물, 이른바 네트워크에 속한 기쁨은 이에 연루된 사람의 수가 적다고 작아지지 않는다. 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두루 엮인 그물을 긴장하게 하는 높은 안테나는 세속과 타협 않는 비판정신 또는 일종의 반골정신 같은 것으로 이루어졌음에 틀림없다. 이 도저하게 올곧은 사람됨의 바탕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을 여간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저, 학교를 졸업한 후 시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보아라. 그들은 차마 무서워서 다시 시를 펼치지 못하는 것이다.

 심사를 맡은 우리는, 심사를 통해 새로운 소통을 체험하게 되었음을 영광스럽게 고백한다. 이 소통이 더러 잔치의 성격을 띠기도 함을 우리는, 예심을 거쳐 올라온 20여 예비시인이 쓴 70여 편의 시를 읽으며 깨닫게 되었다. 특히 우리는, 정재영, 문정희, 임상훈, 김정경, 최민영, 신은영, 이현수의 작품들을 남겨 거듭 읽어보았다. 정재영의 ‘손이 쥔 손’, 문정희의 ‘붉은 다라이 공장에서’, 임상훈의 ‘덕지덕지’ 등은 당선작으로 올려도 손색이 없을 작품이라는 데 우리는 흔쾌히 동의했다.

   다만 ‘신춘문예답다’고 말할 유형적 한계를 나누어 가지고 있었고 동봉한 다른 작품들이 이런 의구심을 다 지워 주지 못했다. 김정경의 ‘몸의 곶간’, 최민영의 ‘애벌레의 꿈’, 신은영의 ‘춤추는 애벌레’, 이현수의 ‘늙어가는 판화’ 등은, 시의 전통적 미덕이 젊은 상상력으로 되살아나는 진경을 엿보게 했다. 그러나 신춘문예가 사람이 아니라 작품에 주는 격려라는 점에서 우리의 선택은 편치 않았다.

 신은영과 이현수의 작품을 두고 고심하던 우리는 후자를 남기기로 결정했다. 신은영은 보낸 작품들의 전반적 수준에서는 더 나았으나, 집중된 한 편을 보여주는 데는 이현수에게 뒤졌다. 당선작은 상황의 개연성은 약했으나, 육친의 정으로 밥을 지어 세월과 삶의 양념으로 비벼낸 간단치 않은 내공을 보여주었다. 당선자에게 축하한다. 또 낙선자들에게도 격려의 갈채를 보낸다. 낙선이야말로 뜻있는 글꾼에게는 한때의 양식이 아니었던가. 시적 소통을 놓지 않는 우리 모두에게 시적 축복이 폭설처럼 내리기를! 

                                                                                                    -심사위원 : 안도현, 이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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