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이 시는 2006. 10 19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정현종 시인의 핵실험 규탄시입니다.<편집자>
무엇을 바라는가
-핵실험에 부쳐
정현종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질렀으니, 묻거니와
정말 바라는가.
사람의 일한 거처요 길인
몸과
마음이
굶주리고 폭행당해
그 비참이
참혹한 지경에 이르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
이 손바닥만한 땅에서
핵실험을 해
7천만의 삶을 터전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있는
집단이여,
그대들은
자신들이
모든 참담의 원천
모든 불행의 원천
모든 광증(狂症)의 원천
모든 슬픔의 원천이 되는 걸
정말 바라는가.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우리 얼굴에 오는 바람이
지옥의 공기
지옥의 바람이기를 바라는가.
우리가 마시는 물
우리가 먹는 밥이
죽음의 물
죽음의 밥이기를 바라는가.
핵실험한다고
어떤 산 하나를 장사지내니
온갖 생물의 보금자리
물과 공기의 보금자리인
이 땅의 모든 산들이.
크고 작은 산천이
흐느끼는 소리 들린다.
이 땅을 지구의 화장터
물의 빈소
공기의 가스실로 만들려는가.
그 어떤 이유도
‘핵실험’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우리 그 참담함을 이미
알기 때문에.
정말
마비되었는가.
사람다움에 대한
나날의 생활에 대한
제정신에 대한
아주 작은 감정마저도
마비되었는가.
단언컨대
그대들의 목적이 무엇이건
그건 이루지지 않을 것이며,
그대들이 성취하는 건
나라의 파멸.
주검들 너머
악취 나는 연기 속에
기괴하게 떠오르는
지옥일 것이다.
그대들이 성취하는 건
파블로 네루다가 노래하듯이
‘씨앗과 세포와 화관(花冠)의 죽음
사랑과 심장들과 피의 절멸’일 것이다.
지구를 온통 구역질로 가득 채우며.
-사진 정현종 시인
◆ 정현종 시인=1939년 서울 출생. 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82년부터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고 지난해 2월 정년퇴임했다.
2001년 제1회 미당문학상을 비롯해 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이산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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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현종의 북한 핵 분노와 근심
정현종(67.사진)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다. 시력(詩歷) 40년이 넘도록 순수시만 고집했다. 그랬던 시인이 북한의 핵실험을 맹렬히 비판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시인은 A4 용지 세 장에 눌러 쓴, 1연 57행 분량의 친필 원고를 본지에 건네며 "워낙 충격적이고 심각했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평소 시풍과 달리 직설적 언어를 내지른 작품에서 시인의 근심과 분노를 읽는다. 시인은 시에서 북한 체제를 '7천만의 삶의 터전을/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있는/집단'이라 부르며 '그대들의 목적이 무엇이건/그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17일 늦은 오후 서울 동부이촌동 작업실에서 시인을 만났다. 생각보다도 표정이 어두웠다. 작품 설명을 부탁했지만 "시에 다 들어있다"고 답했다. 시인은 시로써 발언한다는 오랜 신념의 발로이리라. 일문일답을 옮긴다.
세상 어느 좌파가 핵 찬성할 수 있을까
이 큰일 어쩌나, 고민하다 절로 시 터져
-어떤 생각으로 썼나.
"한 나라에 위기가 찾아오면 글쟁이에겐 그 위기에 대해 말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큰일이 벌어졌다는 발언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 지금,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작품을 쓰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절로 쓰게 됐다. 시란 이런 것이다. 절실하면 터져나오는 것이다. 앞 부분 대여섯 행에서 몇몇 표현만 다듬었다."
-선생은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다. 1970~80년대에도 선생은 문학적 관점을 견지한 바 있다. 사회를 향해 발언하기도 했지만 이처럼 직설적이진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현종의 시'와 이번 작품은 무척 다르다.
"그만큼 충격이 컸고,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직설적이다. 때로는 비유나 수사(修辭)가 거추장스러운 문학도 있다. 나는 이번이 그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북한 체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북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에 대해 조금이라도 느끼는 바가 있다면 북한의 권력집단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르는 권력집단에 대해 말하지 않는 글쟁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북한과 평화롭게 더불어 사는 게 제일 좋다. 이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한국엔 북한 핵실험을 비판하지 않는 집단도 있다.
"일부 좌파 집단의 행동에 대해선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다. 아니, 세상의 어느 좌파가 핵을 찬성할 수 있느냐. 지상의 모든 핵은 폐기돼야 마땅한 것 아니냐. 북한의 잘못에 대해 아무 말도 않는 그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이미 다 보도된 것이긴 하지만 정치인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핵실험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라에 큰일이 터졌는데 대통령의 얼굴에서 미소 비슷한 게 보였다. 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데…. 너무 진지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한국 작가들 역시 입을 다물고 있다.
"우리 전체의 운명과 관련된 일이라면 저절로 민감해지는 게 작가다.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일이라면 문학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발언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후배 문인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발언하라는 것이다. 글쟁이가 침묵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번 작품을 놓고 문단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말이 많을 것 같다.
"반응 같은 건 모르겠다. 쓰고 싶어 썼을 뿐이다. 오해의 소지는 물론 없으리라 본다. 우리가 느끼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면 내가 느꼈던 것과 똑같이 느낄 것이다."
시인의 책상 위엔 미완성 원고가 놓여 있었다. 제목은 '2006년 여름 서울-큰 정치지도자를 고대하며'였다. 어떤 작품이냐고 묻자 "우리 정치인을 비판하는 시"라고 답했다. 미완성 작품이라 당장 공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대신 '귀먹어 기막히고/눈 멀어 암담한'이란 구절은 읽어줬다. "'이런 지도자는 곤란하지 않겠느냐'란 시가 될 것"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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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글쟁이는 나라에 위기가 오면 말할 책임이 있다”
'무엇을 바라는가―핵실험에 부쳐’ 라는 시를 냈다. ‘이 손바닥만한 땅에서/ 핵실험을 해/ 7천만의 삶의 터전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있는/ 집단이여/ 그대들은/ 자신들이/ 모든 참담의 원천/ 모든 불행의 원천/ 모든 狂症광증의 원천/ 모든 슬픔의 원천이 되는 걸/ 정말 바라는가.’
북한 핵실험에 대해 대다수 문인, 예술가들이 침묵하는 지금, 한반도에 죽음의 재를 드리운 북핵의 反반생명, 反반자연, 非비인간을 질타한 작품이다.
정씨는 대표적 抒情서정시인답지 않게 현실과 북한을 향해 直說的직설적으로 내지른 데 대해 “나라에 위기가 오면 글쟁이에겐 말할 책임이 있다. 시 쓰는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을 저지르는 북한 권력집단에 대해 말하지 않는 문인이란 있을 수 없다.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일은 문학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발언해야 한다”고 했다.
생명을 노래하는 것은 문학의 출발점이자 바탕이며 本分본분이다. 핵무기는 소중한 생명, 아름다운 자연과 兩存양존할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핵실험한다고/ 어떤 산 하나를 장사 지내니… 이 땅을/ 지구의 화장터/ 물의 殯所빈소/ 공기의 가스실로 만들려는가’ 라고 탄식했다.
시인은 무딘 세상을 깨우는 사람이다.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그래서 ‘25시’의 작가 비르질 게오르규는 “잠수함 속 토끼는 산소가 떨어지면 사람보다 먼저 괴로워하고 죽는다. 문인은 인간 존엄이 무너진 혼탁한 세상에서 ‘잠수함의 토끼’여야 한다”고 말했다. 헤르만 헤세도 “시인은 주변 세계의 양심 상태를 알려 주는 地震計지진계”라고 했다.
정씨는 “이 큰일을 어쩌나 고민하니 詩시가 절로 터지더라” 며 후배 문인들에게 “침묵하지 말라”고 했다. “세상에 어느 左派좌파가 핵을 찬성할 수 있느냐. 북한의 잘못에 대해 아무 말도 않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문학적·정치적 입장을 떠나 민족의 삶의 터전을 잿더미로 만들 핵 앞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반대하는 것은 이 땅에서 문학 하는 사람과 예술가, 지식인들이 회피할 수 없는 임무이자 운명이다.
입력: 2006.10.19 22:47 46' / 수정 : 2006.10.19 23:09 53'
-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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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 그러나 기뻤다`
정현종 시인 `문인들이여, 침묵하지 말라` 로 뜨거워진 문단
장문의 답시-격려글 쇄도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정현종(67)씨가 북한의 핵실험을 맹렬히 비판하는 1연 67행의 장시 '무엇을 바라는가-북한 핵실험에 부쳐'를 발표하고 이틀이 지났다. <본지 10월 19일자 2면>
문단은 지금 한창 시끄럽다. 40년 넘게 서정시만 고집해온 시인이 직설적 언어로 북한 체제를 비판한 것도 놀라웠고, "글쟁이는 나라에 위기가 오면 말할 책임이 있다"며 "침묵하지 말라"고 갈파한 것도 의외였기 때문이다. 마침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이달 말 금강산에서 남북문학인모임 결성식을 열어야 할지 고민 중에 있었다. 술렁거리는 문단의 분위기를 전한다.
◆ 처음엔 놀랐고 다음엔 환영
정현종 시인과 40년간 친분을 쌓은 문학평론가 김치수(66.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처음엔 충격이었다"고 털어놨다. "정 시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어 "남북한 문학 교류라는 명목 아래 북한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일부 문인들을 보고 기분이 언짢았던 참이었다"며 "정 시인의 시를 보고 기쁘고 반가웠다"고 덧붙였다.
문단 반응은 대체로 이와 비슷하다. 처음엔 놀라웠고, 다음엔 환영한다는 것이다. 한국시인협회 오세영(서울대 국문과 교수) 회장도 "지난 시대 이 땅의 문인들은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야 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며 "정 시인이 갈파했듯이 문인들이 일부 좌파의 논리에 빠져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문인들도 "정현종 선생님을 열심히 응원해야겠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독자 반응도 뜨거웠다. KBS 선임 PD이자 시인인 장충길(55)씨는 '붉은 강-정현종 시인의 시에 답함'이란 장시를 본지에 보냈고, 최진호 부경대 교수도 '문인들의 개혁 운동을 기대한다'는 내용의 글을 부쳤다. 시집이 언제 출간되느냐를 묻는 문의전화도 여러 통 있었다.
◆ "북한은 지혜롭지 못했다"
프랑스에 체류 중인 소설가 황석영씨는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은 더 이상의 물리적 행동을 자제하고 미국은 직접 대화에 나서라"라고 주장했다. 소위 양비론적 입장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진보 성향의 문인단체들도 대부분 이와 같은 생각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 김형수 사무총장은 "어떻게 대처해야 우리 민족이 위험에 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작가들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 개인의 판단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정현종 선생의 작품에 대해 직접 할 말은 없다"고 답했다. 대신 "그러나 우리는 북한과 미국 양자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지켜왔다"며 "한반도에서의 핵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참으로 어려운 때"라며 입을 열었다. "양비론은 북한 핵실험 이전엔 유력한 논리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라며 "북은 지혜롭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시인의 작품에 대해선 "개인의 자유 의견이니 왈가왈부할 게 못 된다"고 선을 그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이번 주말 남북문학인모임 결성식 개최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행사 개최가 결정되면 작가회의는 북한 핵실험에 대한 의견을 발표할 예정이다. 북한의 자제와 미국의 대화를 함께 촉구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김형수 사무총장은 전했다.
2006. 10.21 / 중앙일보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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