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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곰탕4

나주읍성과 고샅길, 오밀조밀 ‘작은 한양’…1000년 기품이 어디 가랴 나주읍성과 고샅길 오밀조밀 ‘작은 한양’…1000년 기품이 어디 가랴 나주=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16.‘작은 한양’이라 불리는 나주는 광주에 주도권을 빼앗긴 후 쇠락을 거듭해 왔다. 나주읍성 서성문 주변은 1~2층 건물에 좁은 골목으로 연결돼 시골마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나주=최.. 2019. 3. 21.
나주 맛여행, 맑은 국물에 넘쳐 나는 남도의 넉넉한 인심 나주 맛여행 맑은 국물에 넘쳐 나는 남도의 넉넉한 인심 위치 : 전남 나주시 금계동 등 * 한 그릇의 나주곰탕 * 나주시로 가족여행을 간다면 별미기행에 앞서 시내의 나주목문화관부터 들러 역사를 공부해보자.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나주가 발달해온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 나주는 예로부터 곡창 호남의 상징이며 교통, 군사, 행정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의 이중환은「택리지」에서 나주를 서울(한양)과 닮았다 하여 작은 서울이란 뜻으로 ‘소경(小京)’이라 기록하기도 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나주에 10여 년 간 머물면서 오씨처녀(장화왕후)를 만나 2대 임금인 혜종이 태어났는데 후에 임금이 태어난 마을이란 뜻으로 ‘흥룡동(興龍洞)’, ‘어향나주(御鄕羅州)’라는 명칭이 생겼다. 나주는 고려 성종 2년(983), 전국.. 2012. 3. 25.
나주, 2천년의 이야기를 간직한 영산강의 보석 전남 나주 2천년의 이야기를 간직한 영산강의 보석 한국관광공사 제공 ▲영산강 유채꽃 전남 담양군 용면에서 발원해 광주, 나주, 영암을 지나 목포의 서해바다로 빠져나가기까지 350리를 굽이치며 흐르는 영산강. 작은 지류들을 만나며 굴곡을 더욱 크게 하고 강의 품을 넓게 열어 살찌운 땅이 바로 나주다. 전주와 나주의 앞글자를 따서 전라도라는 명칭이 만들어졌을만큼 나주는 불과 한세기 전까지만 해도 전라도 땅의 중심지였다. 영산강변의 영산포는 남해바다에서 올라 온 해산물들과 나주평야에서 모아진 곡물들이 모이는 호남 지역 최대의 물자교류지였다. 일제시대에는 호남지역의 곡물들이 영산포를 통해 일본으로 공출되면서 수탈의 거점이 되기도 했던 아픈 역사도 갖고 있다. 1977년까지도 배가 드나들었으나 1981년 영산강 .. 2011. 5. 10.
나주 오미(五味), 첫술만 떠도 감탄이 절로 나주 오미(五味), 첫술만 떠도 감탄이 절로 구진포 장어·영산포 홍어·나주 곰탕·사랑채 한정식·송현 불고기 곰탕 맛 좀 알면 '맑은 국물'… 마니아라면 '홍어 코' 도전 나주=글·김우성 기자 / 사진·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한때 여기, 강 따라 사람들이 흘러들었다. 거리는 번성했다. 여인숙은 꽉꽉 찼고 요정은 노랫소리로, 장터는 흥정하는 소리로 복작거렸다. 강 따라 번성한 거리는 강이 막히자 서서히 퇴색했다. 여인숙도, 요정도, 장터도 사라졌다. 그 흔적을 추억하듯 진한 홍어 냄새가 거리를 흐른다. 나주 영산포 얘기다. 맛의 도시, 나주에서 역사는 음식으로 기록된다. 곰탕은 흥성했던 조선시대와 맞닿았고, 홍어와 장어는 영산강의 전성(全盛)을 기린다. 역사를 추억하는 음식의 맛은 깊다. 깊어서, 이들 세 .. 2010.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