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1 (시) 나목(裸木) / 남상학 나목(裸木) 남상학 주여, 지금 저는 늦은 겨울 빈 들에 서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햇볕이 앙상한 가지 끝에서 떨어지는 시간을 줍고 있는데 겨울을 채 건너지 못한 새들이 얼어붙은 하늘을 기웃거리며 어디론가 황급히 길을 떠납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찬 바람 불어 배고픈 영혼(靈魂)이 길게 흐느끼고 나목(裸木)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마른 갈대밭에서 처량하게 웁니다. 그 소리에 부딪히며 떠밀리며 살아온 삶의 자국이 투명한 하늘에 선명하고 칼날 같은 빙판(氷板) 위에 전신을 몰아세우는 바람이 오히려 나를 귀 뜨이게 함은 웬일입니까. 주여, 이 시간 먼 곳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침묵(沈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눈물 뒤에 빛나는 보석(寶石)을 보게 하소서. 2020. 1. 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