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샘1 그 샘 / 함민복 그 샘 - 함민복 네 집에서 그 샘으로 가는 길은 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이면 물 길러 가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지요. 서로 짠 일도 아닌데 새벽 제일 맑게 고인 물은 네 집이 돌아가며 길어 먹었지요. 순번이 된 집에서 물 길어 간 후에야 똬리* 끈 입에 물고 삽짝* 들어서시는 어머니나 물지게 진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집안에 일이 있으면 그 순번이 자연스럽게 양보되기도 했었구요. 넉넉하지 못한 물로 사람들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던 그 샘가 미나리꽝*에서는 미나리가 푸르고 앙금* 내리는 감자는 잘도 썩어 구린내 훅 풍겼지요. - 시집 《말랑말랑한 힘》(2005) 수록 ◎시어 풀이 *똬리 : 짐을 머리에 일 때 머리에 받치는 고리 모양의 물건. *삽짝 : ‘사립문’의 방언 *미나리꽝 : 미나.. 2020. 10. 2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