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孤高)1 고고(孤高) / 김종길 고고(孤高) - 김종길 북한산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나 인수봉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水墨)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신록이나 단풍,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래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밋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하는, 그 고고(孤高)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와 인수봉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 시집 《하회에서》 (1977) 수록 ◎시어 풀이 *수묵(水墨) : 이 엷은 먹물.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고고한 삶의 자세와 정신세계에 대한 지향(의지.. 2020. 5. 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