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그늘 아래1 감나무 그늘 아래 / 고재종 감나무 그늘 아래 - 고재종 감나무 잎새를 흔드는 게 어찌 바람뿐이랴. 감나무 잎새를 반짝이는 게 어찌 햇살뿐이랴. 아까는 오색 딱다구리가 따다다닥 찍고 가더니 봐 봐, 시방은 청설모가 쪼르르 타고 내려오네. 사랑이 끝났기로서니 그리움마저 사라지랴. 주먹 송이처럼 커갈 땡감들. 때론 머리 위로 흰 구름이고 때론 온종일 장대비를 맞아보게. 이별까지 나눈 마당에 기다림은 왠 것이랴만, 감나무 그늘에 평상을 놓고 그래그래, 밤이면 잠 뒤척여 산이 우는 소리도 들어보고 새벽이면 퍼뜩 깨어나 계곡 물소리도 들어보게. 그 기다림 날로 익으니 서러움까지 익어선 저 짙푸른 감들, 마침내 형형 등불을 밝힐 것이라면 세상은 어찌 환하지 않으랴. 하늘은 어찌 부시지 않으랴. - 시집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2001) .. 2020. 4. 1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