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돝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긴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가까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詩 정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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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선규 의 고향, 삶의 원형을 찾아서 출처: 오마이뉴스 |
출처 : 블로그 > 시와 숭늉이 만날 때 | 글쓴이 : 청안애어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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