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부(靑磁賦)
- 박종화(朴鍾和)
선(線)은
가냘픈 푸른 선은ㅡ
아리따웁게 구을러
보살(菩薩)같이 아담하고
날씬한 어깨에
사월 훈풍(薰風)에 제비 한 마리
방금 물을 박차 바람을 끊는다.
그러나 이것은
천년의 꿈 고려청자기!
빛깔 오호! 빛깔
살포시 음영(陰影)을 더진 갸륵한 빛깔아
조촐하고 깨끗한 비취(翡翠)여
가을소나기 마악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하늘 한조각
물방울 뚝뚝 서리어
곧 흰 구름장 이는 듯하다.
그러나 오호 이것은
천년 묵은 고려청자기!
술병, 물병, 바리, 사발
향로, 향합, 필통, 연적
화병, 장고, 술잔, 벼개
흙이면서 옥(玉)이더라.
구름무늬 물결무늬
구슬무늬 칠보(七寶)무늬
꽃무늬 백학(白鶴)무늬
보상화문(寶相華文) 불타(佛陀)무늬
토공이요 화가더라
진흙속 조각가다.
그러나 이것은
천년의 꿈 고려청자기!
▲이해와 감상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청자나 석굴암 대불 등을 소재로 삼아 시를 쓰는 일이 심심해 보일 수도 있으나, 어떤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나라가 없어져 버리고 나랏말을 공공연히 사용할 수 없었던 시절, 수천년래의 우리 문화가 종언을 고할 위험 앞에 있었던 시절, 또는 무엇이 우리의 것이며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할 지에 대해 고뇌하던 시절에 위와 같은 종류의 소재로 시를 쓰는 일은 큰 의의가 있었다.
이 시는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작품이다. 제 1연에서는 전체적인 청자의 맵씨있는 선을 그리고 있으며, 제 2연은 신비로운 비취빛을 가을하늘에 비유하여 찬탄하고 있다. 이어 제 3연에서는 경이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청자가 천년이나 묵은 것임을 간결하게 환기한 후 제 4연에서는 청자의 다양한 종류를 열거하였으며, 제 5연에서는 그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청자를 장식한 세부적인 무늬의 종류를 열거하였다.
▲작자 박종화(朴鍾和, 1901-1981, 월탄)는
서울 출생으로 휘문고보를 졸업한 뒤 시 전문지 《장미촌》에 〈오뇌의 무도> , 〈우유빛 거리〉를 발표하며 등단〉(1921년)하였고, 1922년 문학잡지 《백조》 동인에 참여하며 홍사용, 박영희 등과 함께 일명 백조파를 형성했다. 시집에는 〈흑방비곡(黑房秘曲)), 〉(1924년), 〈청자부(靑磁賦)〉(1946년) 등이 있다.
초기에는 낭만적인 분위기의 시를 쓰다가 점차 한국의 역사와 문화 유산에 관심을 돌리면서 역사 소설 창작에 몰두했다. 역사소설 〈금삼(錦衫)의 피〉(1938년), <다정불심〉(1942년), 〈대춘부〉(1938년), <임진왜란〉(1957년), 〈목 매이는 여자〉, <아랑의 정조〉, 〈대춘부〉, <여인천하〉, 〈자고 가는 저 구름아〉(1965) 등을 발표했다.
박종화의 외아들이 소설가 현진건의 딸과 결혼하여 두 사람은 사돈 관계이며,박종화의 호를 딴 월탄문학상이 제정되어 있다. 문학비, 묘소 : 경기도 장흥면 부곡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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