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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성탄제 / 김종길

by 혜강(惠江) 2020. 2. 8.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일러스트 권신아


<해설> -정끝별·시인

  김종길(81) 시인의 '성탄제'를 읽는 일은 내게 유년의 흑백 사진을 보는 일처럼 애틋하고 살가운 일이다. 겨울밤, 열에 시달리며 칭얼대던 어린 내게 아버지의 코트 자락은 서늘했다. 겉옷을 벗으신 아버지는 물에 만 밥 한 숟갈 위에 찢은 김치를 씻어 올려놓으시고는 아, , 하셨다. 하얀 가루약도 그렇게 먹이셨다. 어머니가 방을 치우고 이부자리를 펴는 사이 오래오래 나를 업고 계셨다.

  산수유 열매는 고열에 약효가 있다. 열에 시달리는 어린것을 위해 산수유 열매를 찾아 눈 덮인 산을 헤매셨을 아버지의 발걸음은 얼마나 초조했을까. 할머니가 어머니의 부재를 대신하고 있으니 아버지 속은 얼마나 더 애련했을까. 흰 눈을 헤치고 따오신 산수유 열매는 혹한을 견디느라 또 얼마나 안으로 말려 있었을까. 눈 속의 붉은 산수유 열매는, 바알간 숯불과 혈액과 더불어 성탄일의 빨간 포인세티아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가 찾아 헤매셨던, 탄생과 축복과 생명과 거룩을 염원하는 빛깔이다. 생을 치유할 수 있는 약()의 이미지다.

  김종길 시인은 명망있는 유학자 집안의 후예다. 한학과 한시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가 선택한 것은 영문학이었다. 우리나라에 영미시와 시론, 특히 이미지즘을 소개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유가적 전통과 이미지즘이 어우러진 그의 시는 명징한 이미지, 절제된 표현, 선명한 주제 의식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이를 일컬어 '점잖음의 미학'이라 했던가.

  차가운 산수유 열매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이 어린것의 열을 내리게 했을 것이다. 특히 산수유, 서느런, 성탄제, 숯불, 설어운 설흔 살의 '' 음이 서늘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그 서늘한 청량제 속 따스한 혈맥이 우리네 가족애일 것이다. 그 따스함은,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그의 시 '설날 아침에'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마음으로 설날 아침을 맞이하자. 매운 추위 속에서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맞이하자. 그 한가운데 가족이 있음을 기억하자.

<출처> 2008.02.06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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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서 따온 산수유 통해 자애로운 아버지 형상화

- 남진우의 "시집 속의 시 한 편

  ‘성탄이란 인류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인간에게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나큰 사랑이 가시적으로 구현된 사건이다. 2000여년 전 로마제국의 변방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이후 전 인류의 운명을 결정지은 위대한 드라마의 시초가 되었다.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河回에서’·민음사)는 이처럼 서구적 기독교적 의미망에 둘러싸인 성탄제에 자신의 고유한 체험을 추가하여 시적 변주를 시도하고 있다. 화자의 유년시절에 대한 회상에 기초한 이 작품은, 이런 모순된 표현이 가능하다면, 토착적 유교적 성탄제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거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가부장의 존엄성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다. 그 아버지는 자식에게 순교를 요구하는 무서운 아버지가 아니라 스스로를 희생하는 자애로운 아버지, 자식을 위해 추운 겨울날 눈길을 헤치고 고생 끝에 산수유 열매를 따오는 아버지, 그래서 죽음의 문턱에 이른 아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주는 아버지이다.

  이 시는 인간이라는 종이 식물계와 구분되지 않는 계보학적 연속성을 이루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열매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라는 구절이 말해주듯 화자의 몸속에 흐르는 피는 산수유 열매의 즙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가족적 우주적 총체성에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개인-가족-자연 간의 소박하면서도 절실한 친화의 정서를 보여주는 이 시는 그 자체로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시절의 한 단락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쓸쓸한 감회를 자아낸다. <시인·문학평론가>

<출처> 2004.01.30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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