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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긍정적인 밥 / 함민복

by 혜강(惠江) 2020. 2. 8.


긍정적인 밥
 
                                             

- 함민복

 ()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1996>  


 

일러스트=잠산

<해설> 문태준·시인

"아무리 하찮게 산// 사람의 생()과 견주어 보아도// ()는 삶의 사족(蛇足)에 불과"('')하지만 시인은 시를 써서 세상의 돈을 쥔다. 끙끙대고 밤을 새우며 쓴 노력에 비하면 원고료는 박하고, 몇 년 만에 펴내고 받는 인세로 꾸리는 생활은 기궁하다.

  그러나 이 가난한 시인은 원고료와 인세를 교환하면 쌀이 두 말, 국밥이 한 그릇,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이나 되니 든 공에 비해 너무 많은 게 아닌가라고 묻는다. 쌀이 두 말이 되기까지의 노동, 한 그릇의 국밥이 되기까지의 노동, 굵은 소금 한 됫박이 되기까지의 노동에 비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가 라고 말한다. 땡볕 속에서 몸으로 얻어낸 그것들에 비할진대. 이 세상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에 비할진대.

 함민복(46) 시인의 초기 시는 거대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노래했다.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이 아닌가"('자본주의의 사연')라고 노래했고, 서울을 문명을 주사하는 '백신의 도시'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1996년 그는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인, 마당에 고욤나무가 서 있는 강화도 동막리 폐가 한 채에 홀로 살림을 부렸다. 동네 형님 고기잡이배를 따라다니며 망둥이, 숭어, 농어를 잡고, 이제는 뻘낙지를 잡을 줄도 아는 어민후계자 시인이 되었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려 박는 것이 아니라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뻘에 말뚝 박는 법')는 것도 배웠고, 그물 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승리호의 봄')라며 농담을 할 줄도 안다.

 강화의 서해 갯바람과 갈매기와 뻘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시는 단단한 문명에 맞서는 '부드러움의 시학'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시단에서는 한동안 드물었던 '섬시()' 명편들을 낳고 있다. 강화도의 '물때달력'을 오늘도 들여다보고 있을 시인아.


< 출처> 2008. 2. 20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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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밭을 닮은 시인이 사는 섬 그 섬에서 석양주를 기울이다

미안한 마음 / 함민복 산문집풀그림1849500

                                                                                       박해현기자


 강화도 바닷가 마을에는 함민복시인이 산다. 내륙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강화도와 아무런 인연이 없지만, 이제 강화도의 시인하면, 함민복을 떠올리게 된다.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라고 시작하는 시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를 통해 시인은 강화도의 뻘밭 앞에서 순해진다. 여의도의 이십배나 된다는 그 거대한 뻘밭을 보면서 시인은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에 순종하면서, 문명의 야만성에 슬퍼하면서 산다.

 시인이 강화도에 발을 디딘 것은 10년 전이다. 우연히 그 섬에 간 시인은 보증금 없이 매월 10만원만 내면 살 수 있는 폐가 한 채를 발견했다. 텃밭이 있고, 고욤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있기에 시인은 그 집에 둥지를 틀기로 했다. 그리고 시만 쓰면서 지금도 살고 있다. 전업 시인에게 겨울 갯바람은 혹독하다. 보일러에 기름이 떨어졌던 어느해 겨울, 시인은 전기밥통의 밥을 비우고 물을 넣어 끓였다.

 “천장에 매달린 백열전등 빛의 열기와 끓인 물 한 밥통의 온기로 밤을 견뎠다는 시인은 너무 추워 이불 속에서 밥통을 껴안았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밥통을 이불 바깥으로 내놓았다. “한 가지 희망이라도 남겨놓지 않으면 얼어죽을 것만 같은 밤이었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올 겨울 난방비를 확보했느냐고 물었더니, 그 특유의 헤헤하는 웃음소리만 들려온다. “산문집 초판을 3000부 찍었다고 하는 걸 보니, 책이 잘 팔려야 따뜻하게 잘 수 있는 모양이다. 강화도 생활 10년을 맞아 이제 물때가 언제인지 본능적으로 알 정도로 섬사람이 다 된 시인의 눈에는 모든 생명과 사물이 각자 섬처럼 보인다.

 그는 이렇게 썼다. ‘닻을 뽑습니다. 배가 물살을 가르며 물을 박차고 나갑니다. 섬에서 멀어지며 배는 또 하나의 섬이 됩니다. 섬에서 멀어진 만큼 배는 섬이 됩니다. 내 마음을 떠난 마음들, 그 마음들은 지금 어디서 항해를 하고 있을까, 그 그리운 섬들은, 마음을 떠난 마음 배들은.’ 모든 사람은 섬과 섬처럼 서로 떨어져 있지만, 그리움이 있기 때문에 서로 어울린다.

 시인의 섬에 사는 사람들은 해질 무렵 만나서 마시는 술을 석양주(夕陽酒)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렇게 하루 동안 쌓인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시인의 그리움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위대한 긍정의 힘을 향한 것이다. 이미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는가.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하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이 하나 없네’(‘긍정적인 밥부분)

 그 시인이 매일 바라보는 푸른 바다의 해조음이 들리는 산문집이다. ‘토마토를 먹다가 토마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시인의 음성도 들린다. ‘토마토는 내가 먹는 것보다 까치가 쪼아먹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씨앗을 위해.’라는 시인이다.

<출처> 2006.12.30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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