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후포항

 

백년손님' 정겨운 벽화…'가슴 철렁' 쪽빛 바다

 

 

울진=최흥수 기자

 

 

01.후포리 등기산공원에서 출렁다리를 지나 바다 위로 스카이워크가 놓여져 있다. 후포리 ‘백년손님’ 벽화마을은 사진 오른쪽 등기산 뒤편이다. 울진=최흥수 기자

 

 ‘왕돌초광장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울진 후포항 입구의 아치형 광고판에는 아직도 지난 3월초 끝난 대게 축제 홍보 문구가 걸려 있었다. 해안선 길이만 112km에 달하는 울진의 최남단이자, 가장 큰 항구인 후포는 대게 항구로 널리 알려졌다. ‘영덕대게’의 브랜드파워에 밀려 한때 대게 공급 기지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당당히 ‘울진대게’의 중심 항구로 떠올랐다.

 

 

◇대게마을에 ‘백년손님 남서방’ 벽화골목 

 

 특산물이든 음식이든 ‘원조’를 따지고 들면 끝이 없다. 그럼에도 울진군은 ‘왕돌초’를 내세워 후포를 원조 대게 어항이라 주장한다.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약 25km 지점 동해상의 왕돌초는 동서 21km, 남북 54km에 걸쳐 있는 거대한 수중 암초로 대게를 비롯해 각종 어류가 서식하는 황금어장이다. 무엇이든 넉넉하고 후하다는 의미의 후포(厚浦)도 원래 물고기를 잡는 큰 그물을 뜻하는 ‘후리’에서 비롯됐다니 후포는 예부터 이래저래 큰 항구였던 모양이다.

 

 

02.등기산공원 후포등대 부근에서 내려다본 후포항. 대게 집산지이자 울진에서 가장 큰 항구다.

 

03.대게 원조마을을 자부하는 평해읍 거일리 포구에 게 발 조형물이 서 있다. 뒤편은 해상 낚시터인 ‘바다목장’이다.

 

04.평해읍 거일리 포구와 ‘바다목장’.

 

 

 후포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평해읍 거일리다. 거일리 포구 앞에도 ‘원조 대게 마을’을 알리는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왕돌초 해역에서 잡은 대게가 가장 먼저 육지에 닿은 곳이었다는 안내문도 장황하게 새겨 놓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ㆍ임원경제지ㆍ대동지지 등 역사 문헌을 들춰 오래 전부터 이곳이 대게 집산지였고, 주민들이 불러온 마을 이름이 ‘게알’이었다는 점도 원조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름은 대게철이 아니다. 후포항 주변 횟집과 식당에서 대게 요리를 맛보는 건 어렵지 않지만 거의가 러시아산이라고 보면 된다. 국내에서 5~9월은 대게잡이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홍게로 널리 알려진 붉은대게도 이달 말까지만 잡을 수 있다. 왕돌초광장에 위치한 후포여객선터미널 2층 홍보전시관에 가면 대게와 붉은대게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요 근래 후포에서 대게 다음으로 유명한 인물을 꼽으라면 지난해 종영한 SBS의 예능 프로그램 ‘백년손님’의 남서방(남재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남서방 때문에 후포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어촌마을이 됐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마을은 왕돌초광장에서 도로 하나 건너 등기산을 빙 둘러싸고 형성돼 있다.

 

 

05.후포리 ‘백년손님’ 벽화마을 초입은 ‘진이발’ 외벽. 이발관 사장임이 머리 감기는 물통을 들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06.TV 예능프로그램 ‘백년손님’의 남서방(남재현) 처가로 이어지는 골목의 벽화.

 

07.남서방 처갓집 앞에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횟집과 식당, 수산물 가공공장을 지나면 차 한 대 겨우 지날 정도의 좁은 골목이 이어진다. ‘진이발’ 사장님이 머리 감길 때 쓰는 물통을 들고 있는 대형 그림을 시작으로 백년손님을 주제로 한 벽화가 이어진다. 남서방과 ‘후타삼(후포리 타짜 삼인방)’ 외에 대게, 오징어, 문어 등 주민과 뗄 수 없는 수산물을 소재로 한 그림이 낮은 담장을 장식하고 있다.

 

 삼척 정라진이나 동해 논담골처럼 이곳도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산자락에 빼곡히 자리를 잡았을 텐데, 그 가난의 그림자는 밝고 정겨운 벽화로 어느 정도 가려졌다. 파랑과 빨강 계열 원색 지붕 아래 마당에 소나무 가지가 늘어진 집 담장엔 소나무 기둥, 장미꽃이 화사한 담장엔 붉은 장미, 능소화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 담장엔 능소화 넝쿨을 그렸다.

 

 이도 저도 없는 담장에는 클림트를 연상시키는 황금색 여인으로 장식했다. 소담스러운 벽화 골목을 빠져나가면 정식 이름도 갖지 못한 작은 해변이 반긴다. 백사장으로 밀려드는 바다색이 초록이다. 모든 것이 비워진 휴식의 공간이다.

 

 

08. 트릭아트 형식의 후포리 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