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비밀 간직한 고령 대가야읍
아득한 세월 품은 700개의 무덤…신비한 침묵
고령=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널리 알려진 가야의 건국 신화는 금관가야의 난생(卵生) 설화다.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황금알에서 동자가 태어났는데, 가장 먼저 알을 깨고 나온 동자가 지금의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되고, 다섯 동자가 나머지 가야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가락국기(駕洛國記)’를 인용한 대목이다. 대가야의 건국 신화는 조금 다르다. 가야산 산신인 정견모주와 하늘 신 사이에서 태어난 두 형제 가운데, 형인 뇌질주일은 대가야의 시조인 이진아시왕이 되고, 동생인 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 성종 때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신라 최치원이 지은 ‘석리정전’에서 인용한 시조 형제 설화다.
박물관에 들어서면서 마주하는 대가야의 범위를 표시한 지도가 인상적이다. 대가야는 북쪽으로 전북 무주부터 남쪽으로 전남 고흥에 이르기까지 여섯 가락국 중에서 가장 넓은 영역에 세력을 떨쳤다. 중심지인 고령은 대가야의 동북부 한 귀퉁이에 불과하다. 신라가 낙동강 유역을 장악한 상황에서 바다와 연결된 물길을 찾아 섬진강 수계까지 진출한 결과다. 700개가 넘는 무덤 중 가장 큰 지산리 44호분과 45호분의 축조 과정도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다. 무덤에서 출토된 토기는 1,500년이 넘은 것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돌을 쌓아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한 석곽 무덤이었기 때문이다. 복제품이긴 하지만 무덤에서 나온 금관도 정교하다.
박물관에서 나오면 곧바로 지산동고분군으로 산책로가 연결돼 있다. 고령의 주산은 서울과 경주의 남산처럼 대가야의 상징적 산이다. 능선에는 대형 고분이, 경사면 구릉에는 중ㆍ소형 고분이 분포한다. 주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길은 등산이라 하기엔 싱겁고 산책이라 하기엔 버겁다. 걷기가 부담스러우면 박물관을 기준으로 북측보다 남측 능선을 택하면 한결 수월하다. 어느 길이든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하다.
05.지산동고분군의 대가야 무덤은 주산 능선과 경사면 전체에 분포돼 있다. 고분 탐방로를 걸으면 대가야읍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06.탐방객과 비교해 보면 무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07.능선도 탐방로도 둥글둥글, 모난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대표 무덤(44ㆍ45호분)이 있는 주산 방향으로 먼저 길을 잡았다. 출발부터 조금 오르막이지만 숨이 찰 정도는 아니다. 봉분도 둥글둥글, 원형 무덤 사이로 난 길도 곡선이다. 까칠하고 모난 마음도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다. 말끔하게 이발한 봉분에는 노란 양지꽃과 진분홍 할미꽃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봉분을 호위하듯 별처럼 꽃잎을 드리운 수양벚꽃도 드문드문 보인다. 부드러운 무덤 능선에 등을 기댄다. 무덤 주인이 왕족인지 귀족인지 알 수 없지만, 그 권위와 위세도 오랜 세월에 누그러져 아늑함과 부드러움만 남았다. 산책로 중간중간에 남겨 둔 커다란 소나무가 제법 넓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햇빛을 피하기도 좋다.
1977년 발굴된 44호분은 지름 27m, 높이 6m의 규모로 지산동고분군에서 두 번째로 큰 무덤이다. 안에는 3기의 대형 돌방과 이 돌방을 둘러싸듯 배치한 32기의 소형 순장 돌덧널(석곽)이 들어 있었다. 이미 도굴된 상황이었는데도 금귀고리, 금동그릇, 은장식쇠창, 야광조개국자 등이 출토돼 원래는 훨씬 많은 부장품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학계는 고분의 규모와 구조,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가야 고분 중 최고의 지위를 가진 왕릉으로 추정한다. 44호분에서 위로 60m가량 떨어진 45호분은 중앙에 돌방 2기를 나란히 설치하고 주위에 11기의 돌덧널을 원을 그리듯 배치해 무덤의 주인 외에 12인 이상이 순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금제 귀고리와 목걸이, 호위무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쇠도끼와 화살촉 등도 함께 출토됐다. 지산동고분군의 704기 무덤 중 지금까지 발굴된 것은 대형 무덤을 중심으로 12기가 전부다. 일제강점기에 상당 부분 도굴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많은 무덤이 어떤 역사의 비밀을 품고 있을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대가야시장과 우륵박물관
지산동고분군에서 동쪽 산자락으로 내려다보면 대가야읍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가야 궁성지로 추정되는 산자락에는 현재 고령향교가 자리를 잡았고 그 주변으로 상가와 학교,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읍내에 남은 대가야의 흔적은 왕이 마신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인 왕정(王井)이 유일하다. 100년 역사의 고령초등학교 운동장에 보호각으로 덮어 놓아 누구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우물은 뚜껑 돌을 덮고 앞을 터놓은 형태로 그리 깊지 않지만 사시사철 일정량의 물이 샘솟는다. 퍼낼수록 새로 채워지는 게 샘의 이치인데, 보호에만 집중했는지 우물에 이끼와 수초가 잔뜩 끼어 마실 수는 없는 상태다.
11.고령 초등학교 운동장의 왕정.
12.물이끼가 끼어 마실 수는 없는 상태다.
13. 우륵박물관 앞 가야금을 타는 우륵 동상.
읍내 외곽에는 우륵기념탑과 우륵박물관이 있다. 대가야 출신으로 신라에 망명한 우륵은 고구려의 왕산악, 조선읍내 외곽에는 우륵기념탑과 우륵박물관이 있다. 대가야 출신으로 신라에 망명한 우륵은 의 박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꼽힌다. 우륵박물관이 위치한 곳의 행정지명은 쾌빈리지만, 이전에는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진 고을이라는 의미의 금곡리 혹은 정정골로 불렸다.
현재 우륵이 지은 악곡은 전해지는 것이 없고 상기물(임실), 하기물(남원), 거열(거창), 달기(하동) 등 가야의 지명을 딴 12곡의 제목만 전해온다. 우륵박물관의 전시물도 생몰 연대조차 불분명한 우륵보다 그가 발명한 12현 가야금에 집중돼 있다. 궁중음악에 연주된 정악가야금, 19세기 말부터 보급된 산조가야금의 특징을 알기 쉽게 보여 준다. 국악과 전통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로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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