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및 정보/- 광주. 전남

해남 달마산 '명상의 산행', 고행하듯 오른 칼랄 능선

by 혜강(惠江) 2019. 4. 24.

 

해남 달마산 '명상의 산행'

 

고행하듯 오른 칼랄 능선 … '달마의 봄'에 번뇌를 잊다.

 

 

해남 = 글·사진 박경일 기자

 

 

 

차로 능선까지 올라가서 평지와 다를 바 없는 산길을 700m만 걸으면 만날 수 있는 달마산의 암자 도솔암. 천 길 허공의 아슬아슬한 벼랑에 손바닥만 한 마당을 들여 지어낸 암자다. 암자의 내력은 통일신라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뒤 오래 비워져 있다가 지난 2002년 다시 지어졌다.

 

 

 땅끝을 향해 달리는 한반도의 마지막 지맥(地脈)이 바다를 앞두고 힘차게 일으켜 세운 산이 있습니다. 전남 해남의 달마산입니다. 산을 그저 높이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달마산은 여실히 보여줍니다. 해발고도만 보면 500m에도 채 못 미칩니다만, 달마산에는 공룡의 등줄기 같은, 혹은 달리는 말의 갈기 같은 기암으로 이뤄진 기골 장대한 산세(山勢)가 있습니다. 암봉은 크고 굵은 붓으로 먹을 찍어서 대담하고 빠르게 그려낸 듯하고, 그 사이사이에 솟은 바위는 창을 꽂은 듯합니다. 징검다리 건너듯 바위를 딛고 서서 보는 땅끝에는 남녘의 쪽빛 바다와 초록의 밭으로 그득했습니다. 달마산에는 ‘달마고도’가 있습니다. 달마산 아래 미황사에서 출발해 달마산 팔분 능선쯤을 감고 도는 둘레길입니다.

 짐작하다시피 달마고도는 속도나 높이에 얽매이지 않고, 수행하듯 혹은 명상하듯 걷는 평안한 길입니다. 2년 전에 놓인 이 길이 ‘명품 길’로 소문나면서 달마산의 이름이 비로소 알려졌습니다. 달마고도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한편으로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마고도가 좋은 길이긴 하지만, 달마산의 등지느러미를 딛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지맥을 다 걷는 달마산 종주가 보여주는 파노라마의 아름다움에는 감히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감히 말하건대 달마고도보다 달마산 종주가 열 배쯤, 아니 백 배쯤 더 좋습니다.

 달마산 종주는 달마고도를 걷는 것보다 훨씬 힘듭니다. 밧줄을 붙잡고 올라야 할 때도 있고, 아슬아슬한 칼날 능선을 걷는 구간도 있습니다. 굴러내린 바위로 가득 채워진 너덜겅 계곡을 딛고 가야 하는 길도 있습니다. 발밑으로 깨진 돌들의 날이 서 있어서 줄곧 발끝을 보며 걸어야 하고, 좀처럼 속도도 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달마산 종주를 권하는 건, 그것이 ‘남는 장사’이기 때문입니다. 달마산 능선을 걷는 일이 고되긴 합니다만, 걸음으로 바친 노고와 흘린 땀에 비해 얻게 되는 경관의 빼어남과 성취감이 확실하다는 얘기입니다.

 걷다가 힘이 들면 속도를 조절하면 되고, 종주 길이 거칠면 언제든 유순한 달마고도로 내려서서 걸어도 됩니다. 저마다 자신의 체력만큼, 혹은 마음을 낸 만큼 걷다가 내려올 수 있습니다. 좀 힘들 것 같아도 눈 딱 감고,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달마의 등지느러미에 올라보시지요. 달마 대사의 깨달음까지는 몰라도, 축복 같은 남녘의 봄볕에 온몸을 흠뻑 적시고 돌아오실 수 있으실 겁니다.

 

 

산 끝에서 만난 선물 같은 풍경

 

 

전남 해남 달마산 종주코스의 관음봉에서 바라본 쪽빛 바다와 해안의 모습. 달마산은 종주 내내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훌륭한 바다 풍경을 보여준다. 바다 건너로 보이는 곳이 완도다. 해남 땅에서 달도를 딛고 완도로 건너가는 ‘완도대교’가 보인다

 

 

암봉 너머 쪽빛바다, 벼랑 아래 초록밭 ...물과 뭍의 어울림

 

#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을까

 먼저 산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달마산이 이름으로 삼은 ‘달마(達摩)’ 얘기부터. 달마 대사는 인도 파사국의 왕자였다.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선종을 이끌었다. 선종은 글씨나 불경을 잘 모르더라도 수행을 잘하고 선행을 쌓으면 마음속의 부처를 꺼낼 수 있다고 믿는 불교의 종파. 체계적인 ‘학문과 배움’으로 믿음과 깨달음을 구할 수 있다는 교종이 대세이던 시절에 수행자의 ‘마음과 실천’에 불법의 완성이 있다고 믿었던 선종의 주장은 가히 ‘혁신’이었다. 선종이 불경의 경전이 아닌 우리 삶 속에 불법의 완성이 있다고 갈파한 건, 부유하거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었던 해탈을, 글을 쓰고 읽지 못하는 이들의 자리까지 가지고 내려왔음을 뜻한다.

 교종이 득세하던 중국에서 달마는 배척의 대상이었고, 죽음의 위기를 수없이 겪다가 결국 모함을 받아 죽음에 이른다. 그리고 3년 뒤 달마는 부처의 몸이 돼서 주장자에다 신발 한 짝을 걸고는 인도로 되돌아갔다. 달마는 이렇게 서쪽으로 갔다. 그런데 해남의 전설에 의하면 달마는 서쪽의 인도로 가는 대신, 동쪽의 해남 땅까지 왔다. 여기까지가 산 이름이 달마산이 된 내력이다. 그렇다면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던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도 같은 것을 물었다.

 영화제목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질문이자 화두다. 해남으로 온 달마를 설명하던 스님이 답 대신 말해준, 화두를 푸는 단서는 이렇다. 화두를 계속 잡고 있으면 생각이 끊어지는 경지가 온다. 그때 원래부터 존재해왔지만 보지 못했던 ‘본성’을 확연히 알게 된다. 화두란 논리적인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몰입으로 생각이 사라지게 해 본성을 보게 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얘기다.

 달마산에는 절집 미황사가 있다. 뒤편에 펼쳐진 기암과 단청이 다 지워져 갓 세수한 듯한 모습의 대웅전이 썩 잘 어울리는 절집이다. 법당 건물 몇 채의 소박하던 과거와 달리 주변에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면서 고즈넉하던 옛 맛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다른 절집과 비교하면 아직도 고즈넉하다.


# 미황사에서 삼만삼천 번의 절을 하다

 

▲ 위 사진은 달마산 암릉에서 내려다본 미황사의 모습. 아래는 단청이 다 지워져 갓 세수한 맨얼굴 같은 미황사 대웅보전.

 미황사는 신라의 고승 의조화상이 창건했다. 사적비에 적힌 창건설화는 이렇다. 인도에서 온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달마산 아래 포구에 도착했는데, 배 안에는 불경과 불상이 가득 실려 있었다. 전날 꿈에서 ‘금으로 된 사람(금인·金人)’으로부터 ‘달마산 꼭대기에 1만 개 불상이 나타나, 그 아래 부처를 모시려 한다’는 얘기를 들은 의조화상이 점지받은 대로 ‘경전과 불상을 실은 소가 누운 자리’에다 절집 미황사를 지었다. 의조화상의 꿈에 나타난 1만 개 불상은 아마도 기기묘묘한 달마산의 기암괴석을 말함이리라. 미황사의 ‘미(美)’는 소의 울음소리가 하도 아름다워서 따왔고, ‘황(黃)’은 금인의 황홀한 색에서 따와 붙인 것이다.

 미황사는 첫 대면부터가 인상적이다. 누각이자 문인 자하루 아래에서 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단청이 지워진 대웅보전이 이른바 ‘생얼’로 서 있다. 자하문 계단 아래서는 하늘만 보이고, 계단을 하나씩 디딜 때마다 지붕 선과 기둥, 그리고 마당이 차례로 눈앞에 나타난다. 대웅보전의 첫 느낌은 ‘말갛다’는 것. 대웅보전은 오색단청이 다 지워졌는데, 외려 그래서 더 아름답다. 갓 세수를 마친 청순하고 뽀얀 얼굴 같다고 할까. 고개를 들어 대웅전 지붕 뒤쪽을 보면 달마산의 우뚝한 기암이 펼쳐진다. 절집 뒤로 마치 거대한 수석을 배경처럼 놓아둔 듯하다. 기암은 불꽃 형상이지만, 흰빛의 바위는 뜨겁다기보다 어쩐지 차가운 느낌이다. 절집이 말갛듯이, 바위도 차분하고 말갛다. 산과 절이 어쩌면 이리도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미황사 대웅보전에서 절을 세 번 하면 소원 하나가 이뤄진다고 했다. 고작 절 세 번에? 대웅보전에서는 절 한 번에 1000배로 친단다. 그러니 절 세 번이면 3000배다. 법당에 1000명의 부처가 그려진 ‘천불도’가 있어 그렇다는 얘기. 3000배를 절 세 번으로 갈음하니 최고의 효율이라 할 수 있겠다. 이보다 더 많은 절을 더 쉽게 하는 방법도 있다. 대웅보전 법당 밖에서 절을 하면 한 번에 1만 배란다. 달마산에 부처를 상징하는 1만 개 기암이 있어서다. 의조화상이 미황사 창건 당시 1만 개 불상을 봤다는 얘기는 사적기에도 나온다. 법당 안에서 삼배, 법당 밖에서 삼배를 한다면 자그마치 도합 3만3000배다.

 절도 절이지만, 미황사에 가거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그중 하나가 부도암의 부도다. 미황사에 딸린 암자 부도암에는 고승의 사리를 담은 부도탑을 모아 놓았다. 돌로 지은 부도탑은 그것 그대로 조형예술품이다. 게와 물고기, 거북이 문양 하나하나가 빼어난 그림 같아 찬찬히 둘러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미황사 대웅보전의 기둥에서, 또 부도에서 게나 물고기가 자주 모습을 보이는 건, 불법이 바다로부터 왔음을 뜻한다. 또 하나 미황사에서 꼭 보고 와야 할 것이 대웅보전 앞에서 바라보는 일몰이다. 미황사 대웅보전에서의 일몰은 깊고 장렬하다. 적요한 절집을 온통 붉고 노랗게 물들이는 노을을 두고 한 스님이 ‘석양 보시’라고 했다.


# 달마산의 등지느러미를 딛고 걷다

 달마산의 지맥은 남북으로 흐르니, 달마산 종주는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 달마산 남쪽 끝에는 도솔봉이 있고, 북쪽에는 큰바람재가 있다. 묵묵히 걷기만 해도 7시간이 넘게 걸리는 달마산 종주 출발지점을 정하는 관건은, 오르막길 구간의 거리를 줄이고 기울기를 낮추는 방향을 찾는 것. 그렇다면 남쪽 도솔봉을 종주의 출발지점으로 삼는 게 좋겠다. 북쪽 큰바람재로 오르는 길은 사뭇 가파르지만, 도솔봉 쪽으로는 능선 높이의 통신중계소까지 시멘트포장도로를 차로 타고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정답인 건 아니지만, 몸이 좀 편하자면 남쪽에서 북쪽으로 걷는 게 낫다는 얘기다.

 중계소까지 차로 올라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능선에 붙으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가장 먼저 마중 나오는 건 달마산의 기묘한 암봉들이다. 물고기 등지느러미처럼, 혹은 날카로운 창끝처럼 우뚝 일어선 암봉 뒤로 쪽빛 바다가 펼쳐지고, 아찔한 벼랑 아래로는 초록색 파밭으로 둘러싸인 구릉과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딛고 가는 풀 섶에는 산자고, 양지꽃, 현호색, 제비꽃까지 지천으로 피어났다. 도무지 어디에다 눈을 둬야 할지, 무엇부터 봐야 할지 정신이 다 혼미해지는 산길이다.

 중계소에서 평지와 다를 바 없는 산길을 700m만 걸으면 이내 작은 암자 도솔암에 당도한다. 아슬아슬한 벼랑에 손바닥만 한 터를 잡아 지어낸 도솔암은 드넓은 땅과 바다를 굽어보며 천 길 허공에 걸려 있는데, 흡사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모습이다. 석 자 석 치의 나막신을 신은 거인이 축대를 쌓아 지은 암자라는 전설도 암자가 앉아 있는 자리의 비범함에서 나왔으리라.

 도솔암의 내력은 통일신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도솔암은 조선 정유재란 때 왜군들에 의해 불타 빈터와 주춧돌만 남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2002년에 오대산 월정사의 법조 스님이 불자들과 함께 기와와 자재를 져날라 불과 한 달여 만에 법당을 지어냈다. 암자 마당에 서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달마산 종주산행이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거나 단순 산행도 자신이 없다면, 부탁하건대 도솔봉 중계소에서 도솔암까지, 평지와 다를 바 없는 이 구간만이라도 한 번 걷기를 권한다. 그것만으로도 달마산이 얼마나 매혹적인 경관을 품고 있는지를 짐작이나마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거기서 떡봉을 넘고 대밭사거리를 건너 불썬봉으로 이르는 점입가경의 경관까지 더 보여주고 싶지만….


# 산을 보는 자리, 바다를 보는 자리

 달마산은 산 전체가 날카롭게 쪼개지는 규암으로 형성돼 있어 암봉을 건너갈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능선을 따라 창검을 꽂은 것 같은 들쑥날쑥한 기암괴석은 보기에는 좋지만, 건너가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바위를 딛고 급경사를 내려가는 구간도 있고, 발 디딜 자리 없는 바위틈 사이로 아슬아슬 내려와야 하는 곳도 있다. 아찔한 구간에는 밧줄이 매어 있고, 두어 군데 철계단을 놓은 구간도 있지만 가슴이 콩닥거리는 길이 적지 않다. 그래도 도솔봉과 도솔암을 지나서 대밭사거리까지는 길이 쉬운 편이라 대밭사거리에서 부도암을 거쳐 미황사로 내려간다면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산행이 된다.

 대밭사거리를 지나면서부터 길이 험해지기 시작한다. 달마산 정상까지 이런 험준한 구간이 계속된다. 아슬아슬한 바위 사이를 오르내리며 날선 바위를 딛고 걸어야 한다. 가파른 지형에 놓은 철제 계단도 계단과 계단 사이가 버거울 정도로 높다. 이윽고 당도한 달마산 정상. 정상석에 ‘달마봉’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괄호 속에 가둬 뒀지만 달마산 정상의 이름은 엄연히 ‘불썬봉’이다. ‘불을 켠다’에서 ‘켠다’의 전라도 사투리는 ‘쓴다’이다. 불썬봉이란 ‘불을 켠 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 돌탑을 쌓아 놓은 불썬봉 산정에는 완도의 숙승봉과 해남 북일면의 좌일산에서 횃불을 이어받는 봉화대가 있었다지만, 불법이 깃든 달마산에 켰다는 불이 꼭 봉화만이었을까.

 달마산 종주 구간에는 바위틈 사이로 금빛 물이 나온다는 두 개의 금샘이 있고 암자 터도 여럿 있다. 하지만 거칠고 험한 바위 사이로 난 길을 찾느라 도무지 샘이니 암자 터를 찾을 여유가 없다. 불썬봉 동쪽에 있는 천 길 낭떠러지 부근에 두세 사람이 겨우 앉아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칼로 깎은 듯한 구멍, ‘미타혈’ 암자 터만큼은 꼭 찾고 싶었는데 그게 어디쯤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정상을 넘어 만나는 관음봉은 해남의 동쪽 해안과 바다 건너 진도 일대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특급 조망대다. 달마산 종주 내내 바다를 보고 걷지만, 바다와 해안 경관이 가장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자리가 바로 관음봉이다. 여기서 걸어온 구간의 암봉을 뒤돌아보면 까마득하다. 관음봉에서 가파르고 긴 하산로를 조심조심 내려서서 너덜겅 길을 한참 걷고 나면 길은 송촌마을로 이어진다. 도솔봉 중계소에서 이곳 송촌마을까지 달마산의 등지느러미를 딛어가며 걸은 길은 12㎞ 남짓. 등산코스 안내도에는 7시간이었지만, 너덜겅에서 길을 잃는 바람에 1시간이 더 걸렸다. 긴 산행에 몸은 힘들었지만, 화두는 잊지 않았다. ‘달마는 왜 이곳까지 왔을까.’

 

 


■ 가는길 먹을 것 묵을 곳

 해남 달마산 가는 길 = 달마산 종주의 출발지점인 도솔봉 통신중계소까지는 시멘트포장도로가 놓여 있다. 해남군 송지면 마봉리 마련마을의 마련저수지를 끼고 도솔봉 약수터 쪽으로 길을 잡으면 산행 시점인 중계소 인근 군부대 입구에 닿는다. 중계소 앞에는 주차구획선까지 그려져 있을 정도로 잘 정비돼 있다. 종주산행을 한다면 산행이 끝나는 송촌마을에서 택시를 불러 중계소로 돌아오면 된다. 종주산행의 시점과 종점 주변 이정표에는 개인택시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종주가 아니라 달마산 정상인 불썬봉만 다녀오겠다면 미황사에서 출발하는 게 좋겠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해남을 간다면 숙소는 읍내보다 땅끝마을 쪽을 택하는 편이 낫다. 해남읍의 숙소는 낡고 오래된 곳이 많아 주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다. 땅끝마을에는 호텔과 모텔, 펜션, 민박집이 즐비하다. 이즈음에는 주말에도 따로 예약 없이 숙소를 잡을 수 있다.

 해남의 맛집 중에서는 떡갈비를 내는 천일식당이 가장 이름났지만, 한정식으로 해남 사람들이 더 높이 쳐주는 맛집이 한성정(061-536-1060)이다. 떡갈비, 홍어삼합, 새우찜 등을 푸짐하게 상에 올리는데 4인 한 상 기준으로 내온다. 지은 지 100년이 넘는 한옥에서 영업하는 땅끝기와집(061-534-2322)도 한정식으로 이름난 곳이다. 대흥사에서 녹우단으로 가는 길 주변에 장수통닭(061-536-4410)을 비롯해 20여 곳의 닭요리전문점이 있다. 닭불고기, 닭죽을 비롯해 다양한 닭요리를 코스로 내놓는 집들이다.

 

 

<출처> 2019. 4. 3 / 문화일보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