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천관산동백숲
3만그루 초록 윤기 ‘자르르’…
꽃보다 잎…골짜기 뒤덮은 수줍음, 원시림 옮겨 놓은 듯
장흥=글ㆍ사진 최흥수기자
관산읍에서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몇 차례 돌다 보면 짙푸른 동백 숲이 골짜기 하나를 뒤덮고 있다. 빛 한 가닥 통과하기 어려울 만큼 빼곡하다. 마을 주민들이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무협영화처럼 동백나무 가지를 밟고 걸어 다녔다고 할 정도다. 동백나무는 대대로 가난한 산골마을을 먹여 살린 고마운 존재였다. 아름드리 동백은 훌륭한 숯 재료였다. 드넓은 동백 숲엔 지금도 7개의 숯가마 터가 남아 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부평리 마을의 주 수입원은 갱엿이었다. 땔감으로 쓸 동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보다 훨씬 전 일제강점기에는 전투기용 기름을 대느라 동백유를 짜서 바쳤다. 그때만은 고난의 숲이었다.
동백 귀한 줄 모르고 마구잡이로 잘라 썼으니 오래된 나무가 남아날 수 없었다. 지금 숲을 이룬 동백은 대체로 수령 60~80년 정도다. 250년 이상 된 것도 이따금씩 발견되는데, 바위틈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해 수난을 면한 경우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은 이럴 때 쓴다.
천관산동백숲에 편의시설이라곤 2개의 전망대와 일부 구간에 목재 산책로를 설치해 놓은 것이 전부다. 산책로라고 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원시의 산을 걷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둑한 숲으로 들어가면 아직 떨어진 꽃도 매달린 꽃도 많지 않다. 4월은 돼야 더 풍성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신 3만 그루 동백 숲이 내뿜는 초록 기운은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햇살에 반짝이는 동백 잎이 기름을 발라 놓은 것처럼 눈이 부시다. 계곡엔 꽃을 찾아 날갯짓하는 동박새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05. 바닥을 발갛게 물들인 용산면 묵촌마을 동백숲.
06. 바로 옆이 보리밭이어서 붉은 색이 더욱 선명하다.
바닥을 붉게 물들인 동백의 정취가 아쉽다면 대안으로 용산면 묵촌마을 동백숲이 괜찮다. 장흥에서 관산읍으로 가는 도로 옆이어서 찾아가기도 쉽다. 묵촌마을 동백 숲은 지금 절정에 달해 가지도 바닥도 온통 붉은 물결이다. 마을의 액운을 막고자 조성한 인공림으로 수령 250~300년 된 동백나무 140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주변은 초록으로 뒤덮인 보리밭이어서 붉은 꽃잎이 한층 돋보인다. 묵촌마을은 장흥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한 이방언(1838~1895)의 고향이자, 송기숙의 대하소설 ‘녹두장군’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 송기숙의 옛집도 용산면에 남아 있다.
관산읍에서 정남진전망대로 가는 길목엔 이름난 마을 숲(나무)도 있다. 옥당리 마을 어귀에는 커다란 곰솔 한 그루가 삼족오처럼 세 가닥으로 뻗어 넓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위윤조(1836년생)라는 사람이 뙤약볕에 앉아서 밭일하는 아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노모를 위해 심었다고 해 ‘효자송’으로 부른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삼산리에는 천연기념물 제481호로 지정된 후박나무가 있다. 둥그스름하게 퍼진 수형이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세 그루가 뭉쳐 있다. 수령 400m으로 추정되는 후박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이 짙고 넓어 여름이면 온 동네 주민들이 사랑방이자 쉼터로 이용한다. 마을을 지키는 노거수 한 그루에 인심도 풍경도 넉넉해진다.
07.관산읍 효자송. 소나무로는 드물게 아래서 세 갈래로 뻗어 그늘이 넓다.
08. 관산읍 삼산리 후박나무. 넉넉한 그늘로 여름이면 온 동네 사람들의 쉼터다.
<출처> 2019. 3. 26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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