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 광양 망덕포구
섬진강 끝자락의 속삭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광양=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01.섬진강 끝자락 광양 진월면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 윤동주의 유고 시를 보관해 세상에 빛을 보게 한 집이다. 광양=최흥수기자.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 된다. 뜻밖의 결과도 되돌아보면 고비고비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단단한 고리로 연결돼 있다. 광양 망덕포구는 550리 섬진강이 남해로 흘러 드는 곳이자, 호남정맥의 끝자락이다. 넓어진 강폭만큼이나 질펀할 사연들을 뒤로하고 요즘 망덕포구는 시인 윤동주와의 인연으로 더 알려졌다. 북간도 룽징(용정)이 고향인 윤동주의 시가 남도 끝자락 망덕포구에서 빛을 보기까지의 사연을 따라가 본다.
◇윤동주의 시가 섬진강 끝에서 빛을 본 까닭은
망덕포구는 푸른 물굽이마다 금모래가 흐르고, 산자락마다 봄 꽃이 만발하는 섬진강 중ㆍ상류에 비하면 풍광은 빼어나다 할 수 없다. 더구나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엔 광양 철강산업단지의 높은 굴뚝이 우뚝해 한적한 강 마을 정취와는 거리가 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섞인 강어귀를 따라 횟집이 늘어선 풍경은 여느 포구와 다를 게 없는데, 커다란 간판 사이에 스러질 듯 오래된 양철지붕 가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정병욱 가옥’이라는 정식 명칭 앞에 ‘윤동주 유고 보존’이라는 수식이 붙어 있다. 긴 이름만큼 사연이 복잡하다.
“정병욱이 없었으면 시인 윤동주는 없었을 겁니다.” 최영철 전남 문화관광해설사가 던지는 첫마디에 모든 사연이 함축돼 있다. 누구나 한 구절쯤 외고 있을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처음 출간된 해는 1948년이다. 광복을 6개월 앞두고 1945년 2월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지 3년이 지나서다. 윤동주는 투옥되기 전인 1941년 시집을 내려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출간을 미뤘다. 행간 곳곳에 서려 있는 저항과 독립의 의지 때문에 일제로부터 탄압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는 시집을 출간하기 전 3부의 필사본을 남겼다. 한 부는 자신이 간직하고, 또 한 부는 은사인 이양하 교수에게 맡겼다. 나머지 한 부는 연희전문학교 후배인 정병욱에게 부탁했다. 나이는 윤동주가 다섯 살 위였지만, 둘은 친구처럼 지냈다. 1940년 두 사람은 일본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학교 기숙사에서 나와 서울 북아현동과 누상동 등지에서 함께 하숙을 하기도 했다.
02.섬진강 끝자락 배알도 수변공원에서 본 망덕포구 풍경.
03.정병욱 가옥에 전시된 윤동주 친필 원고. 정병욱은 윤동주보다 다섯 살 아래 후배였지만 ‘정병욱 형 앞에’라고 썼다.
04.1948년 정음사에서 처음으로 출간한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푸른색 표지)도 전시돼 있다.
05.정병욱 가옥의 옛 모습. 바로 앞이 강이었지만 지금은 도로가 나 있다.
정병욱은 1944년 징용에 끌려가면서 원고를 그의 어머니 손에 맡겼다. 훗날을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이라 그는 일본군에 끌려가며 “동주나 내가 다 죽고 돌아오지 않더라도 조국이 독립되거든 이것을 연희전문학교로 보내어 세상에 알리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유언처럼 남겼다. 그의 어머니 박아지씨는 혹시라도 일제의 수색에 발각되지 않을까, 아들이 맡긴 원고를 명주 보자기에 겹겹이 싸서 마루 밑에 숨겼다.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귀환한 정병욱은 1948년 윤동주의 연희전문 동기 강처증과 함께 유고 31편을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하게 된다. 본인과 은사가 보관하고 있던 원고의 행방이 묘연해진 상황에서, 섬진강 끝자락 양조장 마룻바닥에 잠자고 있던 윤동주의 시가 마침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윤동주의 비범함을 진작에 알아보고 시인이 되길 포기했다는 국어학자 정병욱은 회고록 ‘잊지 못할 윤동주’에서 “내가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런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 줄 수 있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했다.
06.정병욱 가옥은 선친이 양조장으로 지은 집이다. 뒷마당의 깊은 우물이 그나마 양조장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07.망덕포구의 평화로운 모습. 광양에 제철소가 들어선 후 바다 조업은 사실상 금지됐고, 섬진강에서 재첩과 벚굴을 채취하는 소형 어선 몇 척만이 포구를 오가고 있다.
정병욱 가옥은 1925년 남해에서 거처를 옮긴 선친 정남섭이 양조장으로 지었다. 선친은 일제강점기 고향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고, 거제와 하동에서 일시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일제 치하의 교직이 마음 편한 자리는 아니어서 미련 없이 사직하고 광양으로 이사해 양조 사업을 하게 된다. 간판을 따로 걸진 않았지만 ‘망덕양조장’은 1978년까지 영업을 해왔다. 지금은 뒷마당에 깊은 우물이 남아 있을 뿐 양조장의 흔적은 찾을 길 없다. 대신 원고를 숨겼던 마루와 건물 일부를 단장해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으로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정병욱 형 앞에’라 적은 친필 원고 두 페이지와 시집 몇 권을 놓은 게 전부지만, 마치 윤동주의 고향 마을에 온 듯 그의 시혼(詩魂)이 짙게 느껴진다.
◇왜구 막던 진지가 저항 시인의 고향으로
‘망덕’이라는 지명은 높은 곳에서 망을 보는 곳이라는 뜻의 전라도 방언 ‘망댕이’가 변한 것으로 추측된다. 교통의 요지는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섬진강의 끝이자 내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망덕포구는 예부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길목이었다. 정병욱 가옥 뒤편 망덕산 꼭대기에는 왜구의 동향을 살피던 조선 수군의 초소가 있었다. 관점에 따라 끝은 곧 시작이다. 망덕산은 호남정맥의 끝이자 백두대간의 시작점이라 자랑한다. 망덕포구 상류 신아리 산꼭대기에도 작은 보루가 남아 있다. 굵은 돌로 쌓은 둘레 100m 남짓한 구조물로 백제 때 쌓은 것으로 보인다. 안내판은 해발 170m 꼭대기에 오르면 섬진강과 하동ㆍ광양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설명해 놓았는데, 현재는 나무에 가려 주변 지형을 파악하기 어렵다.
08.임진왜란 때 판옥선을 건조한 선소마을.
09.마을 앞에 대형 전어 조형물이 서 있다.
정병욱 가옥에서 조금 떨어진 진월면소재지는 ‘선소마을’로 불린다. 임진왜란 때 주력선인 판옥선 네 척을 이 마을에서 건조했다. 지금은 옛 흔적은 남아 있지 않고 수면에 비친 마을 풍경만이 푸근하다. 망덕포구는 가을 전어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선소마을 어귀에 대형 전어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조그만 포구를 압도할 정도로 커서 설명을 보지 않으면 무슨 형상인지 알기 어렵다. 바로 옆에는 ‘내 고향 망덕포구’ 노래비가 서 있다. 이런 노래도 있었나 싶어 당황스러운데, 인근의 윤동주 시비 공원으로 발길을 옮기면 다시 숙연해진다. 정병욱 가옥에서 빛을 본 그의 작품을 크고 작은 돌에 새겨서 공원으로 꾸몄다. 암울한 시기, 빈틈없는 자기 성찰로 채워진 시어가 포구의 서정과는 거리가 있지만, ‘또 다른 고향’은 어쩐지 망덕포구와 자신의 인연을 예감한 것처럼 들린다. ‘(중략)가자 가자 /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 백골 몰래 /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10.선소마을 어귀의 윤동주 시비 공원. 망덕포구는 백골에 쫓기는 고단한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는,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이 아닐까.
11.망덕포구 섬진강 자전거길 쉼터에 ‘윤동주-세상 밖으로’라는 제목으로 그의 일대기를 전시해 놓았다.
마을 앞 섬진강 자전거길에는 ‘윤동주 쉼터’를 꾸며 놓았다. 정병욱 가옥이 바로 보이는 지점에 관련 사진과 함께 윤동주의 일대기를 전시하고, 대표작으로 ‘별 헤는 밤’을 새겨 놓았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그의 고향 북간도처럼 밤이 되면 망덕포구 하늘에도 별이 쏟아질 듯하다.
12. 망덕포구의 주요 먹거리는 재첩과 강굴이다. 선소마을 한 식당의 재첩국 백반.
◇망덕포구 여행 정보
▦망덕포구는 남해고속도로 진월IC에서 가깝다. 수도권에서 내려가면 완주순천고속도로 구례IC에서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는 도로를 이용하는 게 최상이지만, 이맘때는 꽃놀이 여행객으로 붐비기 때문에 길 막힐 각오를 해야 한다.
▦대중교통으로는 KTX 순천역에서 광양터미널로 이동해 망덕포구로 가는 17번 시내버스(하루 9회)를 이용할 수 있다. 정병욱 가옥에서 강 건너 배알도 수변공원은 섬진강 자전거길 종점(시발점)이다. 공원에서 배알도로 해상 산책로가 나 있다.
▦망덕포구 도로변엔 회 타운이 형성돼 있다. 섬진강 재첩국과 강굴(벚굴)이 유명한데, 어른 손바닥보다 큰 강굴은 벚꽃이 피는 3월 말부터 4월 말까지 알이 가장 굵다.
<출처> 2019. 3. 12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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