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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광주. 전남

흑두루미와 함께하는 새해맞이 '순천만 여행'

by 혜강(惠江) 2019. 1. 3.

순천=글·사진 박경일 기자

 

 

 

전남 순천의 순천만을 끼고 있는 대대들 위를 철새떼가 날고 있다. 지금 이곳에 흑두루미 2600마리가 와 있다. 대대들의 농민들은 흑두루미의 먹이로 볍씨를 남겨두고 벼를 수확하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과거 고급 음식점이었다는데, 흑두루미 보호를 위해 순천시가 매입했다.

 

 

 신년을 축하하는 연하장 삼아 전남 순천만에 날아온 ‘흑두루미’를 한 해를 여는 LIFE & Style의 첫 지면에 데려왔습니다. 두루미는 연하장에 단골로 등장합니다. 날개 펴고 우아하게 날아가는 연하장의 두루미 그림은 새로 맞은 한 해의 상서로운 기운을 전해주지요. 왜 하필 두루미일까요. 연하장에 두루미를 그려 넣은 건 한자로 학(鶴)이라 불리는 두루미가 새해의 꿈과 소망, 그리고 평화와 장수를 의미하는 새이기 때문입니다. 조선 시대 고관대작의 관복에 두 마리 학을 새긴 흉배를 달았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화투의 1월에도, 500원짜리 동전에도 두루미가 새겨져 있네요.

 순천만을 찾아오는 흑두루미는 강원 철원 등지에서 볼 수 있는 그냥 ‘두루미’와는 좀 다른 종류입니다. 두루미는 순백의 몸에 날개깃 끝이 검고 정수리에 붉은 점이 찍힌, 그래서 ‘붉은 단(丹)’ 자와 ‘정수리 정(頂)’ 자를 써서 ‘단정학(丹頂鶴)’이라고도 합니다. 반면 흑두루미는 목 아래 깃털이 검은색입니다. 회색 빛깔의 재두루미하고도 또 다릅니다. 체구가 약간 작긴 하지만, 흑두루미의 우아한 기품은 두루미 못잖습니다. 특히 우아하게 깃을 치며 차고 맑은 겨울의 대기 속을 먹을 찍어 그린 것처럼 회화적으로 날아오르는 모습만큼은 두루미보다 더 근사했습니다.

 마침 신년은 ‘순천 방문의 해’입니다. 순천에는 순천만 말고도 낙안읍성이며 선암사, 송광사에 이르기까지 명소가 그득합니다만 흑두루미 날아든 순천만 습지와 함께, 찾아갔던 곳은 추억을 소환하는 공간들이었습니다. 순천에는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열차 승무원을 위한 철도관사마을도 있었고, 1980년대쯤의 서울 변두리 산동네를 그대로 복제한 촬영세트장도 있습니다. 낡고 오래된 옛 곡식 창고 건물을 멋지게 꾸며낸 공간도 있었습니다.

 다른 명소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런 곳들을 찾아갔던 것은, 그리고 새로운 날에 뒤로 돌아 과거의 공간으로 갔던 것은, 새해를 맞는 희망과 기대는 누추하게 살았던 시절에 오히려 더 각별했음을 기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서 그럴까요. 이제는 다들 해 바뀜의 시간을 별다른 감회 없이 맞고 있습니다만, 다들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축복이었습니다.

 이른 새벽, 흑두루미가 대열을 이뤄 머리 위로 날아오르는 순천만의 들에 서서 그때의 축복을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마음만큼은 지금보다 더 따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잊었던 온기와 축복을 새해에는 모두 되찾을 수 있기를…. 그래서 먼 훗날 뒤돌아서 오늘을 따스한 시간으로 추억할 수 있기를…. 눈치채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신년 벽두에 순천에 가서 말하고 싶었던 건 새해를 맞는 ‘기대와 희망’이었습니다.


# 안개의 포구 위를 기품있게 비행하다…흑두루미

 

▲ 이른 아침, 역광으로 반짝이는 순천만 갈대밭의 모습. 일출 무렵 갈대밭을 걸으면 머리 위로 흑두루미떼가 날아오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이른 아침, 순천만 연안의 대대포(大垈浦) 습지에 안개가 낮게 깔렸다. 대대포는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소설가 김승옥이 대표작 ‘무진 기행’에서 문장으로 그려냈던 안개의 풍경과 꼭 닮아 있었다. 아침 볕을 받아 순천만의 갈대 군락은 황금빛으로 빛났는데, 안개는 눈부시게 빛나는 갈대를 덮은 반투명한 ‘트레이싱 페이퍼’ 같았다.

이런 풍경의 정수리 위로는 이따금 생각난 듯이 새들이 날았다. 남쪽의 차가운 갯벌에서 밤을 보낸 흑두루미들이었다. 천적을 피해 갯벌로 나가 잠을 자는 두루미는 해가 뜨자마자 낱알을 먹으러 순천만의 겨울 논으로 돌아왔다.

 흑두루미의 비행은 매력적이다. 나는 자세부터가 품격 있다. 푸드덕거리는 오리의 경망스러운 날갯짓과는 격이 다르다. 흑두루미가 우아하게 날개를 저을 때마다 장식처럼 날개 끝의 깃털이 드러나는 게 특히 인상적이었다. 대열을 이뤄 나는 흑두루미는 어느 순간, 기류를 타고 활강한다. 그때 흑두루미들은 도장으로 찍은 듯이 모두 같은 자세가 된다. 한 마리 새를 컴퓨터 키보드의 ‘Ctrl+v(복사)’와 ‘Ctrl+c(붙여넣기)’로 여러 마리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다.

 순천만으로 날아온 흑두루미의 숫자는 이렇게 눈으로 센다고 했다. 이른 아침 대대포 둑방에 두세 명이 서서 갯벌에서 밤을 보내고 육지로 돌아오는 흑두루미의 수를 하나하나 부르고 적는 것이다. 그렇게 한 마리 한 마리를 세는 것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쉽단다. 이렇게 확인한 지금 순천만의 흑두루미 숫자는 모두 2600마리다. 전 세계에 있는 흑두루미의 수가 1만6000마리에서 1만7000마리 정도라니 순천만에 날아온 흑두루미가 전 세계 흑두루미의 15.3% 정도 되는 셈이다.

 순천만에는 흑두루미를 비롯해 다양한 철새들이 찾아든다. 순천만 일대가 생태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다. 철새는 생태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존재 자체가 감격이다. 빈 논에 가득 내려앉은 흑두루미며 오리들이 꾸르륵거리며 먹이를 먹는 모습이나 일제히 날아올라 선회비행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가만가만 숨죽인 채로 논에 앉은 흑두루미의 매끈한 자태를 보는 것도, 흑두루미가 일출 무렵이나 노을 무렵에 머리 위로 긴 대열을 이루며 날아가는 서정적인 모습을 보는 것도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겨울 벌판에 앉은 철새들이 힘찬 날갯짓으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모습은 또 얼마나 장관인가.


# 전 세계 흑두루미 네 마리 중 한 마리…순천만

 

▲ 양곡 창고를 개조해 만든 조곡동의 커피숍 브루웍스 내부.

 순천만에서 흑두루미가 처음 확인된 것은 지난 1996년의 일이다. 순천시가 한 사업자에게 순천만 골재채취 허가를 내주자, 이에 반대하는 시의회와 시민단체가 골재채취를 막고자 전문조사단을 꾸려 순천만 하구 생태계 조사에 나섰다. 갈대군락과 갯벌생태계 파괴를 걱정해 시작한 보전운동은 생태계 조사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순천만 일대에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와 저어새 등이 서식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던 것이다. 순천만에 흑두루미가 날아온다는 사실은 당시 문화일보가 최초로 확인해 보도했다.

 당시 순천만으로 날아와 월동한 흑두루미는 70여 마리 남짓. 그러던 것이 해마다 늘어나 지금은 2600마리에 달한다. 세계 최대의 흑두루미 월동지인 일본 가고시마(鹿兒島)의 이즈미(和泉)시. 그곳까지 가는 과정에서 순천을 경유지로 삼는 흑두루미가 또 1500마리쯤 된다. 그러니 전 세계 흑두루미의 4분 1 정도인 4100마리가 여기 순천만을 다녀가는 셈이다.

 이렇게 순천을 찾아오는 흑두루미가 늘어난 건, 갯벌 생태를 보전하고, 먹이를 공급하는 등의 노력을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순천시는 흑두루미의 먹이 확보를 위해 순천만 인근 대대들의 농민들과 ‘생물다양성관리계약’을 체결했다. 수확 시기 후에 논에 벼를 베지 않은 채로 눕혀두거나 볍씨를 뿌리거나 보리를 경작해 철새들의 먹이로 활용하도록 하는 계약이었다. 여기다가 흑두루미는 물론이고 철새들에게 큰 위협이 되는 전깃줄을 없애기 위해 흑두루미 도래지 일대의 논 인근에서 280여 개가 넘는 전신주를 모두 뽑았다.


 

 

 

# 생태보호와 협력, 그리고 평화의 메시지까지

 주변 환경을 관리하고 먹이를 공급하면서 순천만의 흑두루미 개체 수가 급격하게 늘었지만, 사실 흑두루미의 증가가 꼭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다. 순천만을 찾는 흑두루미가 급격히 많아진다는 건, 다른 서식지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이곳 순천만 외에도 낙동강 일대 습지 등에 흑두루미 서식지가 여러 곳 있었는데, 4대 강 사업으로 강이 다 파헤쳐지고 습지가 메워지면서 서식지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순천만 흑두루미에 관한 한 순천시의 목표는 뜻밖에도 ‘지역 분산’이었다. 관광지 매력도를 위해 새를 더 불러모으는 게 목적이려니 했는데, 순천시는 인접 지역인 여수나 보성 등으로 흑두루미의 서식지를 분산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고 했다. 관광 수입 욕심 대신 생태적 배려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순천시는 이미 철원 등 다른 철새 도래 지역 지자체와 관측 정보 등을 교류하고 있다.

 이런 교류와 협력으로 흑두루미의 다양한 데이터가 쌓였고, 이를 통해 정교한 분석이 이뤄진다. 이를테면 이런 식. 올해 첫 흑두루미가 예년보다 하루 먼저 순천만을 찾았는데, 그 이유로 ‘천수만 수위 증가’가 지목됐다. 흑두루미가 서해안 루트로 내려올 때 휴식을 취하는 천수만의 수위가 높아지는 바람에 내려앉지 못하고 곧바로 순천만까지 날아왔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첫 두루미 관측 후 1주일이 지난 뒤에야 후발대가 도착한 이유도 설명한다. 정교한 시계처럼 모든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 순천만에 흑두루미가 늘어난 것도, 흑두루미가 멋지게 활강하는 것도, 흑두루미가 차가운 갯벌에서 잠을 자는 이유까지도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순천만의 흑두루미는 ‘생태보호를 위한 연대와 협력’을 상징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남북 화해와 평화’라는 메시지까지 덧대졌다. 남북 화해 무드 속에서 지난 5월 170번째로 람사르협약에 가입한 북한이 람사르협약 101번째 가입국인 한국과 습지관리 정보를 공유하면서 흑두루미 서식지 복원사업을 공동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가을이면 북에서 남으로, 봄이면 다시 남에서 북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흑두루미를 남북이 힘을 합쳐 보호한다는 것은 얼마나 은유적인 일인가.

 

 

1980년대쯤의 서울 변두리 달동네 풍경을 감쪽같이 옮겨다 놓은 순천드라마세트장.

 

 

# 전국에서 유일하다…철도관사마을

 연하장 속을 나는 두루미를 찾아서 순천으로 향한 신년의 여정이 낡고 오래된 풍경을 가진 곳들로 이어졌다. 왜 ‘신년 벽두에 미래가 아니라 과거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설명한다. ‘누추하지만 오래된 추억을 소환하는 곳을 찾았을 때의 느낌은, 비유하자면 신년의 훈훈한 덕담과 비슷하다.’ 진짜 그렇다. 신년을 맞이하는 기분은 지금보다 과거가 훨씬 더 벅찼고 감격적이었다.

 먼저 가볼 곳은 순천역 인근의 조곡동 철도관사마을이다. 철도관사마을은 일제강점기이던 1936년 순천철도사무소 직원을 위해 조성한 주거단지. 지금이야 초라한 구옥이 가득한 쇠락한 마을이지만, 당시에는 마을 입구에 운동장과 병원, 사교구락부(클럽), 목욕탕 등 부대시설을 거느린 순천 최고의 복지타운이었다. 이런 관사마을은 순천 말고도 서울, 대전, 부산, 영주에도 있었는데,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여기 순천의 철도관사마을이다. 당시만 해도 순천은 남도 철교 교통의 요충지로, 일제 자원수탈의 길목 역할을 했다. 그런 이유로 순천은 근현대 철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철도관사마을은 가로세로로 곧게 뻗은 도로를 따라 주택이 들어선 신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도로를 끼고 들어선 관사는 일제강점기 철도국장이 거주하던 4등 관사부터 8등 관사까지 152가구가 들어섰다. 관사의 규모는 직위에 따라 330㎡에서 2000㎡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관사 중 가장 작은 것이 정원을 포함해 100평 남짓이었다니 웬만한 ‘저택’ 수준이다. 죽도봉의 야트막한 산자락이 마을 북쪽에 있는데, 직급이 높은 관사일수록 마을 위쪽에 자리를 잡았다. 무엇보다 조망을 최고로 친 것이다.

 아직까지 철도 관사마을에 남아 있는 일본식 관사는 50여 채 남짓. 관사는 현직 철도 직원이 사는 집도 있고, 퇴직 직원이 50년 가까이 기거하는 집도 있으며, 일반인들이 사들여 살고 있는 집도 있다. 이리저리 손을 본 집도 있지만, 상당수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다다미방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집도 있고, 독특하게도 자그마한 기차역사 형태로 지은 관사도 있다.

 철도관사마을에는 옛 철도 사진으로 조성한 벽화거리가 있고,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기차를 주제로 한 카페 ‘기적소리’도 있다. 마을 입구에는 승차권 등 철도와 연관된 옛 물건을 전시하는 소박한 철도마을 박물관도 있다. 박물관 2, 3층은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고 있다. 철도관사마을을 둘러보겠다면 박물관에서 마을 주민의 해설을 신청하는 것이 요령. 주민들이 거주하는 관사를 들어가 볼 수도 없고, 관사의 내력도 알 수 없으니 해설이 없으면 재미도 없다.

 

 

대대들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흑두루미들. 흑두루미는 깃이 검은색이지만 목 위쪽은 희다. 흑두루미는 워낙 예민해서 주변에서 조금의 기척만 느껴져도 날아가 버린다.

 

 

# 새해는 누추한 마을에 축복처럼 찾아왔다

 철도관사마을 인근 조곡동 농협 근처에는 ‘청춘창고’가 있다. 일제강점기 지어진 양곡 창고를 청년들의 창업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청춘창고 1층에는 음식점이, 2층은 공예 공방이 들어서 있는데, 모두 청년 사장이 운영한다. 이들 청년은 순천시와 최대 2년 계약을 맺고 저렴한 임대료와 3개월간 전기, 수도, 가스비 면제 조건으로 이곳에 입주했다.

 청춘창고 맞은편 길 건너에는 ‘브루웍스’라는 카페가 있다. 역시 양곡 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인데 높은 지붕과 화학실험실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인테리어로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다. 다소 거칠면서도 모던한 느낌의 이른바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카페로 관광객은 물론이고 순천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순천의 원도심인 향동 일대에도 도시재생으로 만든 매력적인 공간이 있다. 700년 역사의 순천부 읍성이 있었던 향동은 명실상부한 순천의 중심이었으나 조례동이나 연향동 등이 개발되면서 쇠락했다. 그러다가 도시재생사업을 벌여 작은 공방과 카페들이 즐비한 ‘문화의 거리’와 ‘정원의 거리’ ‘700년 골목길’ 등을 차례로 조성하면서 하나둘 사람들이 다시 찾아들고 있다.

 여기다가 가볼 곳으로 순천의 드라마세트장을 보탠다. 이곳에는 재개발로 다 철거되고야 만 서울 변두리의 달동네 모습이 있다. 마술처럼 말이다. 비탈진 언덕을 따라 다닥다닥 처마를 잇댄 달동네의 판잣집들이 빼곡히 들어찼는데, 그 처마 사이로 난 골목을 오르다 보면 정겨웠던 옛 이웃들이 문을 열고 나와 인사를 건넬 것 같다. 달동네 초입에는 백열전구 아래 젓가락 장단이 울려 퍼질 것 같은 대폿집도 있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을 내걸고는 뜨끈한 국물에 푸짐하게 밥을 말아줄 것 같은 해장국집도 있다.

 달동네 골목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 난데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다 잊힌 줄로만 알았던 따뜻한 추억들을 만날 수 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이웃과 나누며 살 줄 알았던 사람들이 살았던 이런 누추한 마을에 새해는 더 축복처럼 왔다. 순천에는 낙안읍성, 선암사와 송광사 등 내로라하는 관광지들이 있지만, 철도관사마을과 낡은 원도심 골목, 그리고 누추한 달동네 풍경의 세트장을 새해의 첫 여행으로 추천하는 것은, 그곳이 고단했지만 따스했던 추억을 꺼내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 여행정보

 

 

 

 흑두루미 어디서 볼 수 있을까=흑두루미는 지금 순천만 습지에 있다. 순천만 습지 매표소를 지나서 만나는 순천만 습지 탐사선이 드나드는 갈대밭 수로 오른쪽으로 펼쳐진 너른 들판(대대들)이 낮이면 흑두루미가 먹이활동을 하는 곳이다. 대대들 안쪽으로는 출입할 수 없지만 대대 어촌계사무실 인근에서도 군집을 이뤄 먹이활동을 하는 흑두루미 군락을 볼 수 있다. 흑두루미들이 간혹 대대들이 아닌 해룡 쪽으로 건너갈 때도 있지만, 오후 두어 시쯤이면 이곳 대대들로 돌아오곤 한다. 대대들에는 흑두루미 말고도 오리류들이 가득하다. 흑두루미를 보호하면서 사람의 간섭이 사라져 다른 철새들도 계속 늘고 있는 것. 해가 뜨거나 질 무렵에 순천만 갈대밭을 걷는다면 머리 위로 흑두루미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출 때는 바다에서 내륙 쪽으로, 일몰 때는 내륙에서 바다 쪽으로 무리 지어 날아간다. 흑두루미의 비행을 보기에도, 역광을 받아 반짝이는 갈대밭의 경관을 즐기기에도 일몰보다는 일출 무렵이 더 낫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전남 순천에는 특급호텔인 에코그라드호텔(061-811-0000)을 비롯해 다양한 등급의 숙소가 있다. 순천만에코촌유스호스텔(061-722-0800)이나 낙안민속자연휴양림(061-754-4400) 등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숙소다. 한국관광공사의 한국관광품질인증을 받은 순천만 해룡성고택(061-744-1760)과 순천만민속한옥펜션(061-741-6735) 등도 괜찮다. ‘아름다운 건축상’을 받은 감각적인 디자인의 바구니 호스텔(061-745-8925)은 인기가 높다. 길 건너(010-7430-6969), 정원(010-7251-8253), 느림(010-9299-8917) 등의 상호를 가진 게스트하우스도 추천한다.

 순천에는 아랫장이 있다. 2, 7일에 서는 오일장이다. 아랫장에는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 먼저 ‘아랫장 시장통짜장’부터. 가게 상호는 짜장이지만 이름난 건 홍합을 수북하게 담아주는 삼선짬뽕이다. 푸짐한 해물을 넣었음에도 가격은 4500원이다. 짜장면은 2500원을 받으니 한술 더 뜬다. 시장 건너편에 2호점을 냈을 정도로 성업 중이다. 돼지국밥을 내는 건봉국밥(061-752-0900)은 아랫장을 대표하는 이름난 식당이다. 아랫장에서는 매주 금, 토요일 저녁에 야시장이 선다. 낙지호롱꼬치구이부터 오코노미야끼 스타일의 녹두빈대떡까지 다양한 먹거리를 내는 포장마차가 길게 늘어서는 먹거리 장이다. 아랫장이 있다면 웃장도 있다. 웃장은 5, 10일에 서는 장이다. 웃장에는 15개 돼지국밥 식당이 몰려 있다.

 

<출처> 2019. 1. 2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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