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모정이 시어(詩語)로 짙게 남다.

 

땅뺏기ㆍ고무줄놀이 하던 ‘조금새끼’들은 다 어디로 갔나

 

목포=글ㆍ사진 최흥수기자

 

 

 

01. 유달산에서 내려다 본 목포 서산동 풍경. 영화 ‘1987’ 촬영지인 ‘연희네슈퍼’에서 언덕 꼭대기 보리마당으로 이어지는 골목이 주민들의 시 작품으로 장식돼 있다. 목포=최흥수기자

 

 

 너무 익숙해 잘 안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목포가 그렇다.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의 영향이 크다. 가사에 등장하는 유달산, 삼학도, 노적봉이 전부인 줄 알았다.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그것에만 주목하면 주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유달산 남쪽에 형성된 개항장은 반듯반듯하게 정방형으로 구획이 정리돼 있다. 반면 개항장 서쪽 서산동ㆍ온금동은 가느다란 골목을 따라 다락처럼 층층이 작은 집들이 몰려 있다. 진도 조도 흑산도 등 목포 외곽의 섬 사람들이 들어와 형성한 마을이다. 유달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 끝자락의 축대가 지금도 장벽처럼 두 지역을 확연하게 구분한다.

 

 

02. 서산동 시화골목 입구 풍경. 1970~80년대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정겨운 골목 끝에 화사한 꽃이 피었다

 

 햇살이 따스한 초겨울 오후, 서산동 입구 어느 집 평상에선 대여섯 명의 주민이 모여 조촐한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머리와 꼬리만 잘라내고 몸통을 통째로 숭덩숭덩 썬 생선 한 마리와 김장김치 한 보시기가 도마 위에 올려져 있다. 생선 이름을 묻자 대답대신 양념초장을 듬뿍 바른 회 한 조각을 들이밀었다. 비리지 않을까 했는데, 김치 한 조각까지 더하니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이것이 목포 인심이제.” 대답은 결국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 생선 이름이 뭐가 중요할까.

 

 

03. 서산동 집 앞 평상에서 주민들이 회 한 조각으로 정을 나누고 있다.

 

04. 교복을 입은 관광객이 영화 ‘1987’을 찍은 연희네슈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05. 추억의 주전부리를 판매하는 백양세탁소. 서치봉 할아버지가 올 3월까지 실제 세탁소를 운영하던 곳이다.

 

 서산동은 겉모습도 이웃 간의 정이 속속들이 배어 있을 것 같은 1970~80년대에 머물러 있다. 경사가 시작되는 마을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오래 된 녹색 택시다. 실제 운행하는 것은 아니고, 관광객을 위한 소품이다. 바로 옆 ‘연희네슈퍼’에는 편의점에서 볼 수 없는 바나나킥, 인디안밥, 쫀드기, 캬라멜 등 추억의 과자와 사탕이 진열돼 있다. 이 역시 추억을 되살리는 소품일 뿐이다. 연희네슈퍼는 영화 ‘1987’을 찍은 곳이다. ‘1987’은 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서 6월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뜨겁고 치열했던 그 해를 다룬 영화다. 연희네슈퍼는 대학생 연희(김태리)의 집으로 등장한다. 서산동이 영화의 배경이 된 데에는 이 동네가 최소한 30여년 전 서울의 어느 변두리와 흡사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경찬 시나리오 작가가 목포 출신이라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슈퍼 안에는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그의 사진도 걸려 있다.

 

 연희네슈퍼 맞은편 ‘아이스께끼’ 가게는 ‘인증샷’ 용 교복을 빌려주는 의상 대여점으로 변신했고, 바로 옆 ‘백양세탁소’가 연희네슈퍼를 대신해 추억의 먹거리를 판매한다. 백양세탁소는 올해 3월까지 서치봉(84)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실제 세탁소다. “한 40년 전에는 집집마다 조그만 방에 서넛씩 살았어. 좁은 골목이 아침저녁이면 명동 골목처럼 빡빡해부러. 그 덕에 세탁사해서 나도 자식 셋 대학 다 보냈네.” 주전부리를 파는 매대 옆에는 그가 50여년간 써 왔던 재봉틀도 놓여 있다.

 

 세탁소를 마지막으로 도로가 끝나고, 이곳부터는 걸어서만 갈 수 있는 골목이다. 목포 사람들은 골목을 ‘꼴목’이라 발음한다. 둘이 나란히 걷기도 힘들고, 물지게를 지면 옆으로 게걸음을 해야 하는 좁디 좁은 골목길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마을 주민들은 지금도 차에 싣고 온 물건을 양손에 들거나 머리에 이고 이 ‘꼴목’을 오른다.

 

 

06. 층층이 다닥다닥 지붕을 맞대며 들어선 서산동 골목 주택.

 

07. ‘바보마당(바다가 보이는 마당)’에 전시된 서산동 풍경 사진.

 

08. 낡은 빈집이 전시공간으로 변신했다. 집도 마을도 사진도 작다. 

 

  초입에서 조금 오르면 골목은 셋으로 갈라진다. 첫째 골목으로 길을 잡았다. 정감 넘치는 길을 쉬엄쉬엄 걷다 뒤돌아보니 좁은 골목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허름한 벽체에 어울리지 않게, 파스텔 톤 페인트로 화사하게 단장한 집 몇 채가 잇달아 나타난다. 텃밭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규모의 마당에 서산동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바보마당(바다가 보이는 마당)’을 활용한 목포 출신 사진작가 김신의 ‘골목의 바다’ 작품이다. 공식 전시장은 서까래에 한자로 ‘일천구백칠십팔년’이라는 연도가 선명한 낡은 집이다. 방 안의 작품도 작기는 마찬가지고, 나머지 공간은 골목길을 추억하는 관람객의 낙서로 채웠다. 작가는 작은 마을, 작은 집, 좁은 골목이라는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작품도 일부러 작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목포북항 개발로 사라진 고향마을의 정서를 이곳 서산동에서 찾은 것이다.

 

 

09. 쪽방을 연상케 하는 빈집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미술관으로 변했다.

 

10. 누군가가 꽃다운 시절을 보냈을 낡고 작은 방안이 화사한 꽃 그림으로 가득 찼다.